‘제2 중동 붐’으로 ‘오일머니’ 거둬들일까…급변하는 안보·정세 대응이 관건

사우디아라비아를 국빈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앞 줄 왼쪽)이 지난 22일(현지시간) 리야드의 야마마궁에서 열린 공식 환영식에서 무모하메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 겸 총리(앞 줄 오른쪽)와 함께 걸으며 대화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사우디아라비아를 국빈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앞 줄 왼쪽)이 지난 22일(현지시간) 리야드의 야마마궁에서 열린 공식 환영식에서 무모하메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 겸 총리(앞 줄 오른쪽)와 함께 걸으며 대화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주간한국 송철호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1일부터 4박 6일 간 사우디아라비아·카타르 순방을 마치고 지난 26일 오전 귀국했다. 윤 대통령의 이번 순방 길에는 139개 기업 등이 포함된 대규모 경제 사절단이 동행하면서 ‘제2의 중동 붐’에 대한 기대감이 컸다.

특히 지난해 11월 모하메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 겸 총리의 방한 당시 네옴시티 신도시 사업 참여와 방위 산업 협력 등에 대한 논의가 집중적으로 이뤄졌기 때문에 이와 관련 구체적인 후속 성과가 나올지에 관심이 쏠렸다.

실제로 이번 순방에서는 사우디와 46건, 카타르와 10건의 양해각서(MOU)가 체결되는 등 이들 국가와 총 202억달러(약 27조 4000억원) 규모의 계약과 협약이 체결됐다. 특히 국방·방산·대테러 협력을 강화키로 한 점이 눈에 띄는 대목이다. 지난 1년간 아랍에미리트(UAE)를 포함한 중동 '빅3' 국가에서 거둔 성과는 792억달러(약 107조원)에 달한다.

윤 대통령의 중동 순방 직전 빈 살만 왕세자가 ‘이스라엘-하마스 전쟁’과 관련해 팔레스타인 지지를 선언하자 순방에 대한 우려가 컸던 것이 사실이다. 사우디와의 네옴시티 프로젝트와 K방산 협력 관계에 기대감이 컸던 우리 정부 입장에서는 ‘외교 리스크’를 안고 순방을 시작한 셈이다.

이번 순방을 통해 네옴시티 프로젝트와 관련해 국내 기업들의 다양한 수주 성과에 대한 호평이 이어지고 있다. 다만 건설·플랜트 등 중동의 불안정한 정세에 영향을 많이 받는 분야의 리스크 요인도 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함께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사우디와 ‘국방 공동성명’ 채택
韓 정상 최초 카타르도 방문

윤 대통령은 이번 순방에서 사우디와 카타르를 방문했다. 먼저 사우디에서는 정상회담을 통해 지난해 11월 빈 살만 왕세자의 방한 때 체결된 290억달러(약 39조 4000억원) 규모의 투자 계약과 MOU에 대한 후속 조치를 점검했다. 여기에 더해 이번 국빈 방문에서는 총 51건에 걸쳐 156억달러(약 21조 2000억원) 규모의 계약과 MOU를 체결했다.

특히 윤 대통령은 지난 23일(현지시간) 저녁 사우디 영빈관에서 칼리드 빈 살만 알 사우드 사우디 국방장관과 압둘라 빈 반다르 알 사우드 국가방위부 장관을 접견해 안보 상황을 공유하는 자리를 가졌다. ‘한-사우디 국방 협력 및 방산 협력 강화 방안’ 등에 대해 의견을 나눈 것이다.

칼리드 국방장관은 “결실 단계에 접어든 한-사우디 방산 협력 성과가 양국 관계의 새로운 이정표가 될 것이고, 이는 상호 신뢰에 기반해 가능한 일”이라며 “앞으로 한국과 차세대 방산 협력을 함께하길 희망한다”면서 기술 협력과 공동 생산까지 함께하는 포괄적인 협력을 제안했다.

이후 윤 대통령과 빈 살만 왕세자는 지난 24일 사우디 수도 리야드에서 ‘한-사우디 공동성명’을 채택했다. 양국이 공동성명을 낸 것은 43년 만이다.

이 공동성명에는 ‘국방 및 안보 분야에서 양측은 양국 공통의 이익에 부합하고, 지역 및 국제 안보와 평화 구축에 기여하는 방식으로 국방·방산 분야에서 협력과 조정을 증진하고자 하는 의지를 표명했다’는 문구가 담겼다.

방산업계 관계자는 “한-사우디 간 방산 협력은 일회성이 아닌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협력 프로그램으로서 논의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사우디와 주변국 간 안보·정세 상황 등을 고려해 사우디 측이 구매할 국산 무기 체계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규모가 얼마나 될지는 구체적으로 공개되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아직 수출이 논의되는 단계에서 중동 시장 거점을 논하기에는 이르다”며 “무기 체계가 도입된다고 해도 보통 짧게는 30년, 길게는 40년 이상 운용하는 것으로, 장기적인 협력인 만큼 외교적 변수도 다수 발생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 밖에 윤 대통령은 지난 24일 오후 대한민국 정상 최초로 카타르도 방문했다. 윤 대통령은 타밈 빈 하마드 알 타니 카타르 국왕과의 정상회담을 통해 에너지 안보, 신산업과 인프라 협력을 중점적으로 논의했다.

카타르 국빈 방문 계기로 열린 ‘한-카타르 비즈니스포럼’에서는 총 12건의 MOU와 계약을 통해 46억달러(약 6조 3000억원) 이상의 수출·수주 성과도 예상된다.

사우디아라비아를 국빈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3일(현지시간) 오후 영빈관에서 칼리드 빈 살만 알 사우드 사우디 국방장관(오른쪽)과 압둘라 빈 반다르 알 사우드 국가방위부 장관(왼쪽) 접견에 앞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사우디아라비아를 국빈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3일(현지시간) 오후 영빈관에서 칼리드 빈 살만 알 사우드 사우디 국방장관(오른쪽)과 압둘라 빈 반다르 알 사우드 국가방위부 장관(왼쪽) 접견에 앞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사우디, 세계 무기시장의 큰 손
‘천궁-Ⅱ’ 외 韓 무기체계 관심

1970년에 처음 발걸음을 내디딘 한국 방산이 반세기 만에 눈부신 발전을 거듭해 이제는 ‘K방산’이라 불리며 이례적인 호황기를 맞이하고 있다.

국내 방산은 1980년대까지 기본 병기 생산 능력 확보에 주력했고 1990년대 이후 연구개발(R&D) 우선 정책과 첨단 무기 체계 개발로 영역이 확대됐다.

우리나라 방산 수출량은 최근 5년간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수출입은행에 따르면 최근 5년은 직전 5년 대비 176.8% 증가한 70억달러(약 9조 5000억원)의 수출량을 달성해 세계 8위를 기록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유럽 수출이 꾸준히 늘어나고 있고 이번에 중동 시장 수출 길까지 열리면 세계 5위 수출량 달성도 가능해 보인다.

채우석 방위산업학회 회장은 “최근 폴란드, 호주, 이집트 등에 우리 무기 체계가 수출되는 등 한국 방산은 이제 새로운 100년을 준비해야 할 중요한 전환점에 도달한 것으로 보인다”며 “분쟁 지역이 많은 중동 시장은 생각보다 큰 데다, 특히 사우디 등은 수출시 현금 동원 능력이 좋기 때문에 우리 방산업계가 무역을 하는데 상당히 수월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채 회장은 이어 “현재 중동 정세가 위태롭기 때문에 정부 차원에서 중동 시장을 외교적으로 개척한다면 큰 도움이 된다”며 “아직은 수출 논의 단계고 도입 이후에도 무기 체계 운용 특성상 긴 협력 관계가 필요하지만, 기본적으로 우리 무기의 성능이 우수하고 기술 이전과 탁월한 현지 생산 능력까지 감안하면 큰 문제는 없을 것으로 판단된다”고 덧붙였다.

방산업계에 따르면 이번 사우디와의 방산 계약은 지난해 초 UAE가 35억달러(약 4조 8000억원) 규모의 국산 중거리 지대공 유도무기(M-SAM) ‘천궁-Ⅱ’를 사들이기로 계약한 것과 비슷한 수준으로 관측된다. 이미 사우디 측은 지난해 3월 천무 제작사 한화에어로스페이스와 30억사우디리얄(약 1조 900억원) 규모의 방산 계약을 체결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근 사우디는 국제 무기시장의 큰 손으로 떠오르고 있다. 스톡홀름 국제평화연구소(SIPRI)에 따르면 2018~2022년 세계 무기 수입시장 점유율 순위에서 사우디는 1위 인도(11%)에 이어 2위(9.6%)에 올랐다.

국방기술진흥연구소가 발표한 ‘2022 세계 방산시장 연감’에 따르면 2021년 중동의 국방비 지출은 약 1860억달러(약 252조 8000억원)로 전 세계 국방비 지출 중 8.8%를 차지했다. 사우디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방비 비중이 6.6%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방산업계 관계자는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등이 우리 정부나 기업들 입장에서는 잠재적 외교 리스크인 것이 사실”이라면서도 “이러한 전쟁으로 인해 사우디 등 중동 국가들이 군사비 지출을 급격하게 늘리고 있기 때문에 우리 방산업계 입장에서는 사우디 등이 K방산의 큰 손으로 떠오를 수 있는 큰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밝혔다.

건설사 ‘제2 중동 붐’ 시작될까
전쟁·사막 환경·미수금 문제 주의

사우디 네옴시티 프로젝트 중 250억달러(약 33조 9000억원) 규모 사업에서 한국 기업의 수주 소식이 이어지고 있다.

현대엔지니어링과 현대건설이 24억달러(약 3조 3000억원) 규모 가스플랜트 사업 수주 계약을 따내는 등 사우디 진출 50주년을 맞은 한국 건설업계에 제2 중동 붐에 대한 기대감이 최고조에 달하고 있다.

최상목 대통령실 경제수석은 지난 23일 리야드에서 브리핑을 열고 “우리 기업들이 네옴시티의 터널, 건축 구조물, 항만 등 총 250억달러 규모 6개 사업의 수주를 추진 중”이라며 “6개 사업 모두 한국 기업의 수주가 유력한 상황이고, 이르면 연말께 윤곽이 드러날 것”이라고 설명했다.

세계 최대 산유국인 사우디는 1973년 고속도로 건설 공사 이후 50년간 국내 건설사의 전통 ‘수주 텃밭’으로 불린다. 해외건설협회에 따르면 지금까지 국내 건설사가 사우디에서 수행한 건설 공사는 총 1600억달러(약 217조 5000억원)가 넘고, 이는 역대 해외 수주 누계(총 9540억 달러, 약 1296조 9000억원)의 17%를 차지할 만큼 큰 규모다.

현대건설은 지난 24일 수주한 가스플랜트 사업 계약을 포함해 올해 사우디에서 참여한 신규 프로젝트만 10조원에 달한다고 밝혔다. 현대건설은 올해에만 아미랄 프로젝트(6월), 네옴-얀부 초고압직류송전선로(8월) 등을 수주한 바 있다. 사우디 정부가 탈석유, 첨단 기술, 친환경 국가로 도약키 위해 진행 중인 ‘비전2030’ 핵심 프로젝트에도 참여 중이다.

현대자동차그룹도 사우디 진출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실제로 현대차그룹은 도로, 항만 등 산업 인프라에 이어 전기차를 비롯한 완성차 생산, 친환경 수소 에너지, 첨단 플랜트 수주 등으로 사업 분야를 넓혀나갈 계획이다. 특히 고(故) 정주영 선대회장이 1970년대 중동 붐을 일으켰던 사우디에서 첨단 신사업으로 새 동력을 찾겠다는 전략이다.

이 밖에 삼성물산과 사우디 국부펀드(PIF)는 모듈러 건축, 건설 자동화 등 스마트 건설을 위한 합작법인을 설립한다. 내년 말 모듈러 구조물 생산이 본격화되면 네옴시티 건설에 우선 적용할 예정이다. 이번 협약을 기반으로 네옴시티 친환경 산업단지인 옥사곤 내 주택단지를 모듈러 방식으로 건설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하지만 이스라엘과 하마스 전쟁이 경제계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큰 여파를 일으킬 것으로 우려되는 가운데 중동 지역에 진출한 건설 기업들에도 불똥이 튈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또 중동 건설업계의 악명 높은 미수금 문제와 열악한 사막 환경도 극복해야 할 과제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이스라엘과 하마스 전쟁의 불똥이 다른 주변 국가들에게 번질 수 있다는 우려가 지속적으로 나오고 있다”며 “가뜩이나 열악한 사막 환경에서 건설 현장은 전쟁이 발생했다고 무작정 철수할 수 있는 형태가 아니기 때문에 유사시 그 손실을 그대로 건설업계가 떠안게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과거에는 노동력을 제공하고 돈을 벌어오는 방식이었지만 지금은 자본을 투자하거나 프로젝트 건설의 전 과정을 책임져야 하는 것도 신중하게 접근해야 할 이유 중 하나”라며 “게다가 현대건설, 삼성물산, 한화 건설부문 등은 중동에서 미수금 문제로 골머리를 앓아 왔던 경험이 있기 때문에 이 부분에서의 확실한 대비가 있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저작권자 © 한국아이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