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한국 안병용 기자] "기업의 생존은 CEO(최고경영자) 역량에 달렸다.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역전의 DNA를 지닌 CEO 한 명이 기업을 살린다."

낯설지 않은 이 금언은 한화그룹의 조선 부문에서 새로운 여정을 시작한 한화오션이 업계를 새삼 일깨워 준 계기가 됐다. 지난 10월 경영 턴어라운드 중책을 맡은 권혁웅 한화오션 부회장이 인수 이후 첫 실적발표에서 대우조선해양 시절부터 이어온 적자행진을 12개 분기 만에 끊어내는 괄목할 만한 성과를 보여준 것이다.

한화오션은 한화 품에 안긴 뒤 그룹 수뇌부의 특명이기도 한 경영정상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권 부회장이 사업부제로 조직을 개편하고 경영 체질 개선에 나선 지난 5월부터 한화오션의 생산성은 점차 높아지기 시작했다. 짧은 시일 내 적잖은 결실도 거뒀다.

한화오션의 올해 3분기 매출액은 1조9169억원으로 전년 동기대비 95.3% 늘었다. 영업이익과 당기순이익은 각각 741억원, 2316억원으로 흑자 전환했다. 3분기 말 연결기준 부채총계는 10조6000억원이다. 부채비율 약 397%로 2022년 말 1542%과 비교해 현저히 개선됐다.

대우조선해양 시절인 작년까지만 해도 1조6000억원이 넘는 연간 영업손실을 기록하며 재무구조 건전성이 악화돼 ‘좀비기업’이라 불리던 한화오션에 무슨 일이 있었기에 회생에 가까운 실적 개선이 이뤄진 걸까. 자연스레 한화오션 초대 사령탑으로 선임돼 경영을 진두지휘 중인 권 부회장에게 업계의 이목이 쏠린다.

권 부회장은 학생 시절 화학공학만 공부했다. 하나의 전공으로 학사에 석사, 박사까지 취득했으니 화학공학 분야에는 도가 텄을 법하다. 한양대에서도, 카이스트 대학원에서도 권 부회장은 화학공학 전공책만 들여다봤다. 한 분야를 파고드는 집념은 학생 신분을 벗어나서도 꺾이지 않았다. 그는 40년에 가까운 세월을 한화그룹에 몸 바친 원클럽맨이다.

권 부회장은 1985년 경인에너지(현 한화에너지)에 연구원으로 한화그룹에 첫발을 내디딘 뒤 한화에너지와 한화케미칼에서 현장 실무를 두루 경험했다. 이후 2012년 한화에너지 대표가 되면서 본격적으로 CEO로서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2018년에는 한화토탈 대표를 역임하는 등 대부분의 이력을 화학‧에너지 사업회사에서 쌓으며 전공을 한껏 살렸다.

2020년부터는 지주사인 ㈜한화 지원부문 총괄사장을 지내며 미래 신사업을 발굴하는 한편 계열사 간 시너지 효과를 높이는 데 주력해 왔다. 한화 측이 권 부회장을 전격 승진시키며 한화오션 수장을 맡긴 배경에도 “조선과 에너지 사업의 시너지 창출을 통해 글로벌 해양·에너지 전문 기업 성장을 견인할 적임자”라는 설명이 붙었다.

권 부회장 역시 분명한 성과를 내길 원한다. 취임 후 임직원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는 한화의 DNA가 ‘성장’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한때 글로벌 조선 1위에 빛났던 대우조선해양의 신화를 이제 한화오션의 이름으로 재현해 나가자”며 과거의 영광을 되찾자고 당부했다.

이미 소기의 성과는 거뒀다. 지난 7월 한화그룹으로의 흡수 이후 처음으로 치러진 군함 수주전에서 한화오션은 경쟁업체인 HD현대중공업을 제치고 해군 차기 호위함으로 불리는 울산급 배치(Batch)-III 5·6번함의 우선협상자로 선정됐다. 이어 11월 들어서 본계약까지 체결하며 본격적인 건조에 착수했다.

대한민국 해군의 노후화된 초계함과 호위함을 대체하는 이번 사업은 울산급 배치-III 계획의 마지막이다. 한화오션은 5번함을 2027년 12월, 6번함은 2028년 6월경에 대한민국 해군에 각각 인도한다. 한화오션은 2000년 이후 새로운 전투개념이 도입된 첨단 국산 구축함 건조사업인 KDX-I, II, III 사업의 전 라인업을 건조한 유일 업체다.

선박 건조 외에 한화오션이 노리고 있는 명예 회복의 핵심은 친환경 에너지 분야로의 확장이다. 대우조선해양 시절엔 정성립‧이성근‧박두선 전 사장 등 연구·건조·판매에 초점을 맞춘 선박·기술 전문가들이 CEO로 중용됐다면 한화는 에너지 전문가인 권 부회장을 전면에 내세워 경영 전략을 전면 수정하기 시작했다.

업계에선 권 부회장이 수소·암모니아 시대를 준비하는 한편 액화천연가스(LNG)와의 시너지 도모에 총력을 기울일 것으로 기대한다.

이미 해양 청사진은 내놨다. 유상증자로 1조5000억원을 마련, △함정 건조(1500억원) △친환경 연료 기술(3200억원) △선박 생산 디지털화(1000억원) 사업 △해외방산(4200억원) △해상풍력(3000억원) 등에 투자할 계획이다.

권 부회장은 인사 총괄 업무를 수행한 경험을 살려 인재 영입에도 열중이다. 한화오션의 인재 유치는 그룹 차원에서 진행되고 있는 사안이기도 하다.

기타비상무이사로 한화오션 경영진에 합류한 김동관 한화 부회장은 “어쩔 수 없이 조직을 떠난 분들을 다시 모으고자 한다”며 임금인상 등 인력 모집과 관련한 개선 방안을 강구 중이다.

권 부회장 입장에선 김승연 회장의 후계자로 자리매김한 김 부회장의 지원을 등에 업고 안정적으로 인재 확보에 열을 올릴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된 셈이다.

한화의 성장은 굵직한 인수합병(M&A)으로 이뤄져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02년 한화생명(옛 대한생명), 2015년 삼성의 방산·석유화학 부문 4개사 인수가 대표적이다. 한화가 대우조선해양 인수를 처음 시도한 지 15년 만에 품에 안은 것도 화학적 결합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만큼 한화오션이 그룹에서 차지하는 비중과 상징성은 크다. 이는 권 부회장의 경영 성과에 따라 한화가 재계 톱5로 도약하는 데 한화오션이 핵심적인 역할을 할 수도 있다는 얘기가 된다.

자산 총액이 83조원이던 한화는 12조3000억원의 한화오션을 흡수하며 100조 클럽 가입을 목전에 둔 상태다. 권 부회장을 중심으로 신사업을 본격화한 한화오션에 업계의 시선이 쏠릴 수밖에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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