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코센터 전경. (사진=포스코)
포스코센터 전경. (사진=포스코)

[편집자주] 포스코와 KT&G가 리더십 재편의 변곡점에 섰다. 3연임 도전 인상이 짙던 최정우 포스코 회장과 4연임에 나설 가능성이 언급되던 백복인 KT&G 사장은 나란히 퇴진이 결정됐다. 뒷맛은 개운치 않다. 최 회장은 국민연금으로부터 연임 반대 압박을 받은 후에 차기 회장 후보군에서 배제됐다. 백 사장은 한 행동주의펀드가 뚜렷한 실적이 없었다며 외부 인사 영입을 촉구한 뒤에 용퇴를 결정했다. ‘주인 없는 기업’들을 바라보는 업계의 설왕설래를 담았다. 

흔들리는 포스코 후추위…‘KT 사태’ 재연되나

포스코그룹의 차기 회장 선출 작업이 대형 암초에 부딪혔다. 회장 선임 절차를 책임지는 포스코홀딩스 CEO후보추천위원회(후추위) 사외이사 전원이 ‘초호화 해외 이사회’ 의혹으로 경찰 수사선상에 올랐다. 후추위의 자격 논란이 불거질 수 있는 대목이다.

경찰 수사가 본격화되면 지난해 KT사태 때처럼 후추위 위원들이 전원 교체될 수도 있다. 이 경우 새로운 이사진을 구성할 때까지 회장 선출 작업은 혼란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최악의 경우 장기간 경영 공백도 예상된다.

업계에 따르면 서울지방경찰청 금융범죄수사대는 포스코그룹의 ‘초호화 해외 이사회’ 의혹과 관련해 수사에 나선 상태다. 수서경찰서가 최근 최정우 포스코 회장과 사내·외 이사 등 16명을 업무상 배임 또는 배임수재 등의 혐의로 입건해 조사해온 것을 이첩받은 것이다.

서울청 금융범죄수사대는 일선 경찰서가 담당하기 어렵고 복잡한 주요 또는 대형 경제·금융 사건을 전담하는 조직이다. 경찰이 수사의 판을 키운 모습이다. 이번 경찰 수사는 지난해 8월 6∼12일 캐나다에서 열린 해외 이사회에 참석한 이들이 쓴 7억원가량의 비용 출처에 불법성이 있다는 고발 접수에 따라 시작됐다. 의혹은 해당 비용을 사규에 따라 포스코홀딩스가 집행해야 하지만 자회사인 포스코와 캐나다 현지 자회사 포스칸이 나눠서 집행했다는 것이 골자다.

입건된 16명 중에는 후추위 멤버 7명 전원이 포함돼 있다. 이에 일각에선 차기 포스코 회장 선출에 관여하는 후추위의 공정성에 문제를 제기한다. 앞서 선임 절차의 공정성 문제를 제기한 ’최대주주‘ 국민연금의 개입 이후 최 회장이 후보군에서 제외된 데 이어 후추위 인사들이 수사 대상에 오르면서 차기 회장 선출을 둘러싼 불확실성이 커진 모양새다.

선거에 참여하는 이들이 ‘사법 리스크’의 덫에 걸리면서 현재 진행 중인 차기 회장 선임 절차가 좌초될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 없게 됐다. 특히 국민연금이 사외이사 7명 모두 최 회장 재임 기간 중 선임됐거나 연임된 인사라는 점을 들어 공정성 문제를 제기한 바 있어 후추위는 더욱 궁지에 몰린 모양새다.

이에 따라 국민연금 측이 회장 인선을 두고 또 다시 추가 행동을 할 가능성도 언급된다. 국민연금은 지난해 초 KT 수장 선임 때도 최대주주로서의 영향력을 발휘하며 연임 도전에 나섰던 구현모 전 대표를 낙마시킨 바 있다.

KT의 사외이사 교체 사태가 포스코에서 재연될 수도 있다. KT는 구현모 전 대표의 연임을 두고 내홍을 겪다가 사외이사 자격 논란이 불거지자 이사진을 새롭게 구성한 뒤 새로운 수장 선임 작업을 진행했다. 이 과정에서 KT는 약 8개월동안 경영 공백 사태를 겪었다.

사외이사들이 경찰에 입건되며 자격 논란이 불거진 포스코 후추위도 회장 선출 활동을 계속할 수 있을지 회의론이 나온다. 이를 의식한 듯 후추위는 지난 12일 입장문을 내고 “심심한 유감을 표명하며 비판의 취지를 겸허하게 수용하겠다”면서도 후보 선임 작업에 대해선 강행했다. 후추위는 “포스코 그룹의 새 회장 선출을 위한 엄정한 심사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중요한 시기에 후보추천위원회의 신뢰도를 떨어뜨려 이득을 보려는 시도는 없는지도 경계할 필요가 있다”고도 했다.

물론 섣불리 KT의 경영 공백 사태가 재연될 것이란 관측은 금물이다. 포스코 정관에 따르면 사내외 이사들의 직무가 정지되려면 금고 이상의 형을 받아야만 가능하다. 다만 호화 이사회 논란이 증폭되고 있는 만큼 최종 후보가 누가 되더라도 계속해서 공정성 시비가 일어날 가능성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내부 후보자 중 1명을 차기 회장으로 확정하면 공정성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를 수 있다. 이미 사내 후보군의 입지가 줄었다는 평가도 나오는 실정이다.

공정성이 제기되는 상황을 막기 위해 후추위가 외부 인사를 택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도 나온다. 호화 이사회 논란이나 최 회장과 관련이 없는 제3의 인물이 주목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일각에선 지난해 말부터 꾸준히 관심을 받고 있는 권영수 전 LG에너지솔루션 대표가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또 다른 시나리오는 후추위가 재구성돼 선임 절차가 원점에서 재시작되는 경우다. 국민연금이 공정성에 이어 초호화 출장 사태까지 걸고 넘어지면 포스코도 도리가 없을 것이란 전망이다.

선임 절차가 새롭게 시작된다면 CEO 후보군 취합 방식도 달라질 수 있다. 현 후추위는 사내 후보와 서치펌을 통한 외부 후보자 추천을 통해 차기 회장 후보군을 취합했다. 아울러 당초 예정된 3월 주주총회에서의 회장 확정도 미뤄질 수밖에 없다. 8개월여 동안 ‘수장 공백’에 직면했던 KT 사태가 재연되는 것이다.

이에 따라 재계에서는 경찰 수사의 향방에 관심을 갖는다. 경찰 수사를 놓고 포스코 인사에 대해 정부 측의 간접적인 방향 제시라는 시선도 있다. 수사 시점이 수상하다는 것이다. KT 사태의 경우, 검찰의 ‘KT 일감 몰아주기 의혹’ 수사는 구 전 대표가 연임에 도전하던 시기에 맞춰 시작됐다. 일부에서 이번 경찰 수사를 놓고 KT를 떠올리는 이유다. 심지어 이번 수사는 국민연금의 공정성 문제 제기 이후에 나왔다.

KT&G 서울사옥 전경. (사진=KT&G)
KT&G 서울사옥 전경. (사진=KT&G)

‘4연임’ 포기한 백복인 사장…KT&G 운명은?

최장수 KT&G 수장 자리를 맡아왔던 백복인 사장이 4연임을 포기하면서 차기 KT&G 사장 자리에 누가 오를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KT&G가 2002년 민영화한 이후 3연임을 통해 8년 넘게 KT&G를 이끌었던 백 사장이 2015년, 2018년에 이어 2021년까지 연속 3연임에 성공했기 때문에 최근까지 재계에서는 백 사장의 4연임이 가능한 것 아니냐는 전망이 나오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포스코·KT 등과 같은 소유분산기업 최고경영자(CEO)의 연임을 부정적으로 보는 정부 입장이 적잖은 영향을 미치지 않았겠느냐는 추측도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KT&G 측은 외부 영향과는 전혀 무관하며 백 사장 개인의 용단이라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현재는 총 24명의 내·외부 인사들이 차기 KT&G 사장 후보에 이름을 올린 상황이다.

국내 담배 시장이 1988년 완전 개방된 이후 KT&G는 다국적 담배 기업들의 거센 공세를 이겨내고 현재 점유율 1위를 지켜내고 있다. 대부분 국가에서 담배 시장이 개방되면 현지 담배 기업은 점유율이 급격히 하락하거나 인수 합병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KT&G는 2002년 민영화 이후 매출액과 영업이익이 꾸준히 증가하는 성과를 거뒀다.

백 사장은 CEO 취임 후 특히 전자담배 시장 확대와 해외 진출에 역점을 뒀다. KT&G는 2017년 사상 첫 해외 매출 1조원을 돌파했고, 그 해 백 사장은 전자담배 ‘릴’(lil)을 출시, 시장에 안착시키기도 했다. KT&G는 2020년 창사이래 첫 연결매출 5조원을 돌파했다. 국내 전자담배 시장의 후발 주자였던 KT&G가 시장 점유율 1위에 오른 것도 백 사장의 최대 업적으로 평가받는다.

시장조사기관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2017년 KT&G의 전자담배 스틱 점유율은 3%에 불과했다. 당시 한국필립모리스의 스틱 점유율은 87%로 압도적이었다. KT&G는 한국필립모리스를 맹추격해 결국 2022년 1분기 시장에서 스틱점유율 1위에 올랐다. 당시 KT&G의 연매출은 5조 8565억원으로 최대 매출액을 경신했다.

KT&G의 지난해 3분기 연결기준 매출액도 전년 동기대비 4% 늘어난 1조 6895억원으로 집계돼 분기사상 최고치를 달성했고, 같은 기간 영업이익은 0.3% 오른 4067억원으로 나타났다. 연간 매출 호조도 예상되는 상황이다.

하지만 백 사장은 지난 9일 KT&G 이사회에 연임에 나서지 않겠다는 뜻을 전달했다. 백 사장은 당시 이사회에서 “KT&G의 글로벌 최고의 도약과 변화를 위해 새로운 리더십이 필요할 때”라며 “미래비전 달성과 글로벌 리딩 기업으로 한차원 더 높은 성장을 이끌 역량 있는 분이 차기 사장으로 선임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KT&G는 지난해 12월 28일 이사회 및 이사회 내 위원회인 지배구조위원회를 열어 사장 후보 심사기준 등을 의결하며 차기 사장 선임을 위한 본격적인 절차에 착수했다. 지배구조위원회는 전원 사외이사로 구성, 이번 이사회는 독립적 의사 결정을 위해 사외이사만 참석했다.

아직 차기 사장 후보군이 공개되지 않았지만 내부적으로는 방경만 수석 부사장이 차기 사장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방 수석 부사장은 1998년 KT&G 전신인 한국담배인삼공사에 입사한 뒤 현재 총괄부문장 겸 전략기획본부장을 맡고 있다. 이외에 이상학 지속경영본부장, 오치범 제조본부장, 도학영 영업본부장, 박광일 부동산사업본부장 등이 거론된다.

다만 행동주의 펀드 플래시라이트캐피탈파트너스(FCP)를 중심으로 내부 인사보다는 외부 인사를 차기 사장으로 선임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사내 후보군 중 사장이 선임될 경우, 사실상 내부 세습과 다를 것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FCP는 포스코, KT와 달리 KT&G가 대표이사 후보를 주주에게 추천받지 않은 점도 문제 삼았다.

최근까지 백 사장의 4연임이 가능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올 때만 해도 KT&G 1% 지분을 가진 FCP가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며 판도가 바뀌었던 터라 KT&G 차기 사장에 외부 인사가 올라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FCP 관계자는 “백 대표가 용퇴를 선언했지만 우호 지분과 백 대표 임기에 선임된 사외이사들이 차기 대표이사 후보 선정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상황”이라며 “정기 주주총회에서 시장이 아닌 백 대표와 사측이 원하는 대표가 선정될 가능성이 여전히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KT&G 지배구조위원회는 지난 11일 회의를 통해 사외후보 14명, 사내후보 10명 등 총 24명을 차기 사장 후보군으로 확정했다. 백 사장은 차기 사장 후보군에 포함되지 않았다. 사외 후보군은 공개모집 응모자 8명과 외부인사 추천후보 6명의 사외 지원자 14명 전원이 포함됐고, 사내 후보군은 고위 경영자 육성 프로그램 대상자 중 10명이 포함됐다.

KT&G에 따르면 사장 선임 절차는 관련 법령 및 정관에 따라 약 3개월에 걸쳐 ‘지배구조위원회-사장후보추천위원회-주주총회 승인’의 3단계로 진행된다. 향후 지배구조위원회는 사장 후보군을 대상으로 본격적인 심사를 진행할 예정이다. 이 과정에서 5명으로 구성된 인선자문단의 의견을 반영, 이달 말 사장후보추천위원회에 추천할 사장 후보 심사 대상자를 선정한다.

이후 사장후보추천위원회는 사장 후보 심사 대상자에 대한 심사를 거쳐 다음달 중순 사장 후보 심사 대상자를 압축한 후 그 명단을 공개할 예정이다. 이후 다음달 말 최종 후보자를 선정, 오는 3월 말 정기 주주총회에서 차기 사장 선임이 결정될 예정이다.

백종수 KT&G 지배구조위원장은 “KT&G를 한차원 더 높은 글로벌 리딩 기업으로 도약시키기 위해 새로운 리더십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용퇴한 백 사장의 결단을 존중한다”면서 “모든 주주의 이익과 회사의 미래 가치를 극대화한다는 원칙 하에 사장 후보 선정을 위한 심사를 충실히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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