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 국회 본회의에서 김건희 여사 특검법이 통과되고 있다. 국민의힘은 대장동 50억 클럽 특검법 표결 전 퇴장했다. (사진=연합뉴스)
28일 국회 본회의에서 김건희 여사 특검법이 통과되고 있다. 국민의힘은 대장동 50억 클럽 특검법 표결 전 퇴장했다. (사진=연합뉴스)

[주간한국 안병용 기자] 김건희 여사가 안 보인다. 지난달 15일 윤석열 대통령과 네덜란드 순방에서 귀국했을 당시가 공식 석상에서의 마지막 모습이다. ‘디올백’과 ‘특검법’ 정국에서 관심을 피하자는 뜻이 담긴 행보라는 것이 중론이다. 하지만 ‘두문불출(杜門不出)’ 자체가 관심이 커지며 김 여사의 뜻대로 되지 않는 모양새다. 여당에서도 ‘김건희 리스크’에 대한 해소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어 김 여사의 운신 폭은 매우 좁아 보인다.

영부인이 대통령과 함께 가장 많이 모습을 나타내는 시기는 연말연시다. 그럼에도 김 여사는 칩거했다. 대통령실의 일정을 살펴보면 김 여사는 신년인사회와 종교행사 등 영부인들이 통상적으로 참여하는 연말연초 일정들을 모두 불참했다. 재작년 연말에는 이례적으로 대통령실 기자단을 대동한 채 단독일정을 소화하기도 했던 점을 감안하면 작년 연말의 두문불출은 매우 이례적이다.

윤 대통령이 지난달 소화한 일정 중 영부인이 참여할 만한 행사는 21일 독거노인 방문, 22일 전몰·순직 군경 유족 초청 크리스마스 행사, 24일 성당 미사, 25일 성탄 예배 등이 있었지만 김 여사는 전혀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개 식용 금지법’에 앞장서온 김 여사는 지난 9일 법 통과에도 따로 입장을 표명하지 않았다.

김 여사는 과거에도 ‘실종’된 적이 있다. 20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허위 경력과 논문 표절 등의 의혹이 퍼지자 2021년 12월 26일 카메라 앞에서 “남편이 대통령이 돼도 아내의 역할에만 충실하겠다”고 고개를 숙인 뒤 선거 때까지 두문불출했다. 그렇게 말이나 행동이 입방아에 오르는 걸 한동안 피했다.

그러나 총선을 불과 80여일 앞둔 상황에서는 더 이상 두문불출이 ‘전가의 보도’로 쓰일 수 없는 상황이 됐다. 국민의힘 내부에서도 김 여사를 둘러싼 논란을 ‘김건희 리스크’로 규정하며 해소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지난달 당 내부의 ‘총선 참패 보고서’로 분위기가 발칵 뒤집히며 발생한 여당의 위기론이 가중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잇따른다.

김경율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은 지난 18일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국민들의 정서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했을 때 감성에 미치는 영향에서 디올백이 주가조작 의혹보다 훨씬 더 심각하다”고 말했다.

김 비대위원은 지난 17일 한 유튜브 방송에 출연해서는 “지금 시점에서 분명히 진상을 이야기하고, 대통령이든 영부인이든 혹은 두 분 다 같이 입장을 표명하는 것이 국민들의 감정과 마음을 추스를 수 있는 방법”이라고 밝혔다. 특히 디올백 가방 수수 의혹에 대해 “몰카 공작”이라면서도 “더 중요한 건 여사님 관련이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도 18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이번 총선을 영부인 선거로 몰고 가는 것이 민주당 전략이고, 이 부분을 선거 전에 최대한 빨리 해소해야 된다는 것이 우리 당 대다수의 입장”이라면서 “디올백 같은 경우는 함정이긴 하지만 부적절했다고 솔직하게 사과를 하고 이해를 구하는 것이 공인으로서 바람직한 자세”라고 말했다.

대통령실은 김 여사 리스크에 대한 조치로 ‘제2부속실’ 부활을 검토 중이다. 제2부속실은 역대 영부인들의 연설과 의상 등을 담당해 온 조직이었는데 윤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 폐지를 공약한 뒤 실제로 취임한 후 이행했다. 여권 일각에서는 대통령 친인척을 감시‧관리하는 특별감찰관을 임명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제기된다.

하지만 제2부속실 설치와 특별감찰관 임명만으로 김 여사에 대한 우호적이지 않은 여론을 잠재우긴 어렵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윤 대통령이 최근 주요 수석비서관들과 핵심 참모를 불러 신년 기자회견 개최 여부를 놓고 결론을 내리지 못한 것은 김 여사 리스크에 질문이 집중될 것에 대한 우려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윤 대통령의 기자회견은 2022년 8월 취임 100일 회견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김 여사는 윤 대통령의 동반자다. 김 여사 리스크는 윤 대통령의 정치적 운명과도 연동돼 있다. 윤 대통령은 각종 여론조사에서 50~60%에 달한 김건희 여사 특검법 거부권 행사 반대 여론과 반대인 선택을 했다. 이는 김 여사 못지않게 윤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인식돼 있는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도 ‘김건희 방탄’ 프레임에 갇힐 수 있다는 점에서 여권 전체적으로도 치명적이다.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는 경향신문에 기고한 글에서 “‘김건희 리스크’는 김건희 문제가 아닌 윤 대통령의 문제”라고 진단했다.

강 명예교수는 “윤 대통령은 사실상 아내의 권력 지분을 인정하고 있는 것 같다”며 “그간 ‘김건희 리스크’가 자신의 지지율에 심대한 타격을 입혔음에도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은 채 구경만 한 이유를 설명할 수가 없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윤 대통령의 지지율이 30%대에 묶인 결정적 이유”라고 했다.

여론조사기관 한국갤럽이 지난 9~11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전국 만 18세 이상 유권자 1002명 중에 윤 대통령이 현재 직무를 잘 수행하고 있다고 한 응답은 33%였다. 잘못 수행하고 있다는 응답이 59%였다. 갤럽의 한 달 전 조사(12월 둘째 주)에서는 대통령 직무 긍정 평가가 31%였고, 부정 평가는 62%였다. 이 조사는 휴대전화 가상번호(100%)를 이용한 전화 면접으로 이뤄졌다. 표본 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3.1%포인트다. 응답률은 15.8%다.

리얼미터가 에너지경제신문 의뢰로 지난 8~12일 전국 18세 이상 2508명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서는 윤 대통령의 국정 수행 지지도가 직전 조사(1월 2~5일)보다 0.6%포인트 오른 36.3%로 집계됐다. 부정 평가는 0.5%포인트 내린 60.3%였다. 이 조사의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2.0%포인트다. 무선(97%)·유선(3%) 자동응답(ARS) 방식으로 진행됐다. 응답률은 3.2%다. 두 여론조사의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차재원 부산가톨릭대 특임교수는 “윤 대통령이 정치권에 들어오면서 내걸었던 캐치프레이즈인 공정과 상식과 맞지 않는 부분들이 국민들에게는 아쉬움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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