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한국 박현영 기자] 미국과 중국이라는 거대한 고래 싸움에 한국은 마치 가운데 낀 새우처럼 눈치 보기에 들어갔다. 자칫 이들 고래 사이에서 등이 터지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는 분위기다. 최근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는 중국산 전기차에 100% 관세를 부과하기로 하면서 무역 갈등에 불을 지폈다. 중국 정부도 ‘눈에는 눈’ 원칙을 내세우며 맞대응에 나섰다

국내 자동차업계에선 한국차가 미국과 중국의 갈등에 단기적으로 어부지리를 취할 수 있을 것으로 분석했다. 다만 장기적으로 볼 때는 미국과 중국 모두에 큰 영향을 받은 국내 산업 특성상 결국 부정적 결과를 불러올 것이라고 우려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사진=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사진=연합뉴스

대선 앞둔 조 바이든, 표심 확보·중국 압박 ‘일거양득’ 노림수

바이든 행정부는 지난 14일(현지시간) 중국의 불공정 무역관행을 이유로 무역법 301조에 따라 무역대표부(USTR)에 핵심 전략산업 관련 관세 인상을 지시했다.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중국은 경쟁이 아니라 부정행위(cheating)를 하고 있다”는 강도 높은 비판과 함께 전기차·반도체·태양전지 등 핵심 산업의 대중국 관세를 최대 4배 인상했다.

이는 사실상 보호 무역을 내세운 수입금지 조치에 가까운 관세다. 특히 중국산 전기차 관세는 내년부터 기존 25%에서 100%로 인상됐다. 조 바이든 행정부는 “중국산 전기차 관세 부과는 기존 중국의 불공정한 무역 관행으로부터 미국 제조기업을 보호하기 위해 마련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바이든 행정부는 올 가을에 중국산 커넥티드 차량에 대한 규제도 내놓을 전망이다. 커넥티드 차량은 인터넷 등에 연결해 차 안에서 뉴스와 날씨, 교통정보 등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는 스마트 차량이다. 바이든 행정부는 그동안 중국산 커넥티드 차량의 해킹 가능성을 지적해 왔다.

바이든 행정부는 중국에서 생산되는 소프트웨어로 작동되는 커넥티트 차량이 미국 내에서 유통될 경우, 심각한 국가안보 위협에 처하게 될 것으로 우려했다. 커넥티드 차량은 운전자 동선 파악과 차 안에서의 대화를 모두 듣고 있으며, 이같은 방대한 정보가 중국으로 가는 것은 국가 안보에 치명적이라는 분석이다.

미국과 중국의 갈등은 오는 11월에 치러지는 미국 대선을 앞두고 더욱 심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중국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일수록 미국 유권자의 표심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 바이든 대통령의 계산이다. 자국 산업을 보호하는 것과 동시에 미국 내 경합주(州) 노동자들의 표를 얻기 위한 수단으로 중국 견제를 택한 것으로 풀이된다.

중국은 ‘눈에는 눈’ 원칙에 따라 미국에 맞불을 놓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중국은 무역협정을 맺은 국가가 관세를 높일 경우, 동등한 관세로 대응할 수 있도록 관세법을 개정해 둔 상태다. 중국이 미국 수입품에 관세를 부과하며 맞대응할 경우, 양국 간 갈등은 더욱 서로 치고 받으며 고조될 것으로 보인다.

BYD 전기차. 사진=BYD
BYD 전기차. 사진=BYD

미중 갈등에 한국 車업계, 반사이익은 '살짝' 피해는 '우려' 

국내 자동차업계는 미국 관세 정책에 단기적으로 반사이익을 얻게 될 것으로 분석했다. 그러나 미국 정부가 중국산 저가 전기차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하기 어려운 만큼, 이익을 보는 기간은 그리 길지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나아가 차량용 부품과 반도체 등 다른 분야로 미중 갈등이 확산될 경우엔 반대로 한국기업도 큰 피해를 볼 수 있을 것으로 관측했다.

미국 정부가 가장 우려한 것은 중국산 저가 전기차의 공습이다. 중국 전기차 기업인 BYD는 지난해 연간 판매목표 300만대를 달성, 2년연속 글로벌 친환경차 1위 자리를 거머쥐었다. 특히 지난해 4분기에는 순수 전기차를 52만 6409대 판매, 미국 테슬라(48만 4507대)를 분기 판매에서 처음 앞질렀다.

중국 전기차의 점유율 확대 전략은 명확하다. 저가 전기차를 판매하며 가격경쟁력을 극대화하는 방식이다. 중국 정부의 막대한 지원을 발판 삼아, BYD의 주요 전기차 라인업은 1만달러(약 1350만원) 수준으로 판매되고 있다. BYD의 저가 전기차 공세에 ‘휘청’한 테슬라도 원가 절감에 초점을 맞추고 판매 전략을 수정할 정도다.

미국 현지에서도 이번 정부의 조치가 중국산 전기차의 진출을 조금 지연시켰을 뿐이라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관세를 100%로 올린 미국 정부 조치에도 중국산 전기차의 가격과 품질이 미국 시장에서 여전히 매력적으로 보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미 미국 자동차 기업들은 중국산 저가 전기차와 가격 경쟁을 하는 것이 어렵다고 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기업인 현대차와 기아 등도 중국산 전기차 기업과 가격경쟁력 싸움이 힘들다는 것을 인식하고, 프리미엄 전략으로 방향을 틀었다. 다만 저렴한 배터리 개발과 공정방법 개선 등을 통해 가격경쟁력을 만회하는 방법을 찾고 있을 뿐이다.

국내 자동차업계는 미중 무역갈등이 커질수록 미래 불확실성도 커지는 만큼, 플랜 B·C가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국 자동차 산업은 FTA 등 관세가 없는 지역에 수출을 하며 먹거리를 취하는 경제구조다. 이에 미국이 관세를 부과한다는 것 자체가 전혀 도움이 안된다는 주장이다.

김필수 대림대학교 미래자동차학부 교수는 “현재 미국 판매량이 거의 없는 중국 전기차에 관세를 4배 올리는 것은 크게 의미없는 정치적 구호인 셈”이라며 “반대로 강대국인 미중간 갈등이 고조될수록 그 유탄에 한국만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분석했다.

이어 “한국 자동차 산업은 부품·원료 등에서 중국 의존도가 크고, 중간 완제품도 중국에 수출하는 입장”이라며 “불확실성이 커진 미중 무역갈등 상황에 현재 한국차 산업은 위험한 상태”라고 진단했다.

저작권자 © 한국아이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