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어 있는 불안 요소 산재…정치·외교적 지형 변화 시작

신원식 국방부 장관(왼쪽에서 둘째)이 지난달 23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에서 폴란드 정부와 군 관계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국방부
신원식 국방부 장관(왼쪽에서 둘째)이 지난달 23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에서 폴란드 정부와 군 관계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국방부

[주간한국 송철호 기자] 정부가 ‘글로벌 방산 4대 강국’ 도약을 위해 방위산업 경쟁력 강화에 나선 가운데, 국내 주요 방산 기업들이 올해 1분기에도 매출을 키우며 성장을 이어갔다. 올해는 사상 최초로 방산 수출 200억달러(약 26조 9320억원) 달성을 기대하고 있는 상황이다. 최근 5년간 K방산 수출 실적은 2019년 25억달러(약 3조 3650억원), 2020년 30억달러(약 4조 380억원), 2021년 73억달러(약 9조 8273억원), 2022년 173억달러(약 23조 2893억원)로 증가세를 보이다 지난해 135억달러(약 18조 1737억원)로 다소 감소했지만 올해는 유럽, 중동, 아시아 등 기존·신규 바이어의 지속적인 수출 문의가 이어지고 있다.

다만 K방산의 위상이 높아지는 것과 동시에 위협 요인과 불확실성이 공존하고 있다는 것이 문제다. 일단 유럽연합(EU)에서 ‘유럽 방위산업 전략’을 발표하는 등 노골적인 견제를 시작했다. 일본은 ‘방위 지침’ 개정까지 시도하며 세계 방산 시장에 발을 들여놓고 있다. 또 국내 방산 핵심 소재의 해외 의존도가 79%에 달하는 점도 향후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

올 1분기도 성장한 ‘K방산’
향후 수출 영토 지속 확장

올해 국내 방산업계 성장세가 한 단계 도약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최근 한 달간 증권가 컨센서스를 종합한 결과, 한화에어로스페이스, 한국항공우주산업(KAI), LIG넥스원, 현대로템 등 4개 방산 기업의 올해 1분기 매출은 총 4조 4000억원으로 1년 전 같은 기간보다 18% 늘어난 것으로 추산된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지난달 25일 폴란드 군비청과 16억 4400만달러(약 2조 2526억원) 상당의 '천무' 72대 2차 실행계약을 체결했다. 이번 계약은 정부 지원으로 오는 11월 말까지 별도의 금융 계약이 이뤄져야 발효된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이번 계약으로 1차 실행계약(K9 자주포 212문, 천무 218대) 외에 2차 계약 물량으로 K9 자주포 152문, 천무 72대를 확보했다.

KAI가 개발에 참여한 군 정찰위성 2호기는 한국시각으로 지난달 8일 오전 8시 17분 미국 플로리다주 커네버럴 우주군 기지에서 스페이스 X의 ‘팰컨 9’ 발사체를 사용해 발사에 성공했다. 이번 발사에 성공한 정찰위성 2호기는 지난해 12월 발사에 성공한 전자 광학(EO)·적외선 장비(IR)를 탑재한 ‘군사정찰위성 1호기’에 이은 ‘425사업’의 두 번째 정찰위성이다.

또 합성개구레이더(SAR) 탑재체를 장착한 첫 번째 위성으로 고해상도 성능의 첨단 중대형급 위성이다. 425사업은 내년까지 고성능 SAR 탑재 위성 4기와 EO·IR 탑재 위성 1기 등 총 5기의 국방 위성을 확보하는 사업이다. 한국-사우디 국방부는 지난 2월 6일 사우디 리야드에서 열린 ‘한국-사우디 국방장관 회담’을 계기로, 지난해 11월 LIG넥스원과 사우디 국방부 간 체결한 '천궁-Ⅱ' 10개 포대의 계약 사실을 공개했다.

천궁-Ⅱ는 2012년부터 국방과학연구소(ADD) 주도로 개발돼 LIG넥스원이 제작한 중거리·중고도 지대공 요격 무기체계로, 천궁-Ⅱ의 중동 지역 수출이 성사된 것은 2022년 아랍에미리트(UAE)에 이어 두 번째다.

현대로템은 지난 3월 12일부터 20일에 걸쳐 폴란드 그드니아에 폴란드 K2 전차 총 18대를 순차적으로 공급했다. 폴란드 K2 전차는 2022년 8월 폴란드 군비청과 1차 실행계약을 체결한 긴급 소요분(총 180대)의 일환으로, 이번 출고를 포함하면 현재까지 폴란드에 도착한 K2 전차는 총 46대(2022년 초도분 10대, 2023년 18대)가 됐다.

무기 시장의 정치·외교적 변화
K방산 상승세에 빨간불 켜지나

국내 방산 기업들이 글로벌 무기 시장의 정치·외교적 지형 변화에 주목하고 있다. 미·중 갈등이 고조되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까지 발발하면서 무기 구매에 정치·외교적 변수가 확대되고 있다. 실제 국내 방산업계는 이러한 정치·외교적 변수에 최대 수혜자 중 하나로 거론되는 상황이다.

하지만 승승장구하던 K방산의 상승세에 빨간불이 켜졌다. EU에서 일어나는 역내 무기구매 확대 행보는 국내 방산업계에 상당한 불확실성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EU 집행위원회는 지난 3월 현재 20%인 EU 역내 무기구매 비중을 2035년까지 60%로 올리겠다는 내용을 담은 ‘유럽 방위산업 전략’(EDIS)을 발표했다.

최근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지난달 25일 파리 소르본대학교에서 “종전까지는 미국과 한국 무기 구입으로 유럽 국방 문제를 해결했지만, 이제 자주 국방 차원에서 역내 무기 구매량을 늘려야 한다”며 “유럽이 방산 발전 책임을 다하지 않으면 우리의 주권과 자율성을 지켜낼 수 없다”고 지적했다.

영국 국방부도 최근 차세대 자주포 도입 사업과 관련,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K-9A2를 배제하고 독일 크라우스 마파이 베그만의 RCH 155를 채택했다. 품질과 가격은 물론, 대당 생산시간 등도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우월하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었던 만큼, 영국이 독일과의 정치·외교적 관계를 의식한 결과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방산업계 관계자는 “마크롱 대통령의 발언으로 확산되고 있는 유럽 주요국의 견제구는 미국보다 한국 방산에 더 위협적인 것이 사실”이라며 “유럽 국가 입장에서 미국산 무기 구입은 불가피하지만, 한국 무기의 경우 실제 성능과 별개로 아직 가성비 좋은 선택지에 가깝다는 인식이 깔려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K방산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등을 계기로 시장의 빈틈을 잘 공략해 왔는데, 그 이후에 벌써 2년이 지났다”며 “방산 시장이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는 상황으로, 정치·외교적 변화도 작용하고 있지만 유럽 내부에서 국방비 증액을 비롯해 그간 떨어져 있는 유럽 내 방산 관심도를 끌어올리자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일본의 행보도 심상치 않다. 일본은 지난해 필리핀에 방공 레이더 4대를 수출한데 이어 2030년 실전 배치를 목표로 영국·이탈리아와 공동으로 6세대 전투기 공동 개발에도 나서고 있다. 일본은 ‘평화헌법’에 따라 무기 수출을 엄격히 규제해 왔으나 최근 규제를 대폭 완화하며 무기 수출에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일본은 차세대 전투기 수출을 위해 방위 지침 개정을 시도하며 방산 경쟁에 본격적으로 가세했다. 일본 정부는 2024회계연도(2024년 4월~2025년 3월) 예산안에서 방위비를 역대 최대 규모인 7조 9496억엔(약 69조 2839억원)으로 편성했다.

지난달 24일 오후 경남 창원시 진해구 해군사관학교에서 열린 ‘2024 이순신 방위산업전(YIDEX)’에서 참석자들이 부스를 둘러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지난달 24일 오후 경남 창원시 진해구 해군사관학교에서 열린 ‘2024 이순신 방위산업전(YIDEX)’에서 참석자들이 부스를 둘러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핵심 소재 해외 의존도 79%
정부, 방산 경쟁력 강화 나서

역대급 수출 호조를 누리고 있는 국내 방산의 핵심 소재 해외 의존도가 79%에 달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산업연구원이 지난 8일 발표한 ‘국방 핵심 소재 자립화 실태 분석 및 공급망 강화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내열합금, 타이타늄 합금 등 우리나라 국방 핵심 소재 10종의 해외 수입 의존도가 매우 높아 글로벌 공급망 변화에 크게 취약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첨단무기 개발과 생산에 필수적인 국방 핵심 소재들은 대부분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2022년 기준 국방 핵심 소재(10종) 총 조달금액 8473억원 중 78.9%(6684억원)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금속 소재(8종)는 조달금액 8086억원 중 80.4%(6500억원)를, 비금속 소재(2종)는 조달금액 387억원 중 47.5%(184억원)를 수입했다. 

소재별 해외 수입 의존도를 살펴보면, 마그네슘합금과 내열합금은 100%, 타이타늄 합금과 니켈·코발트는 99.8%, 알루미늄 합금은 94.9%로 방산 핵심 금속 소재 대부분이 해외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비금속 소재인 복합 소재와 세라믹도 각각 47.4%, 51.3%를 수입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 기업 차원에서 추진 중인 대응 방안은 국방 핵심 소재 공급기업 다변화(10.5%), 자체 비축 물량 확대(7.9%), 기술 혁신을 통한 대체·저감(5.3%) 등이며 수입국 다변화와 해외 조달원의 국내 전환도 응답 기업의 2.6%에 그쳐 매우 미미한 수준이었다. 국방 소재 취약 분야 중심의 자립화 및 공급망 강화 전략 마련이 시급해 보인다.

장원준 산업연구원 성장동력산업연구본부 연구위원은 “우선적으로 방산 부품과 동격 수준으로 방산소재의 개념을 재정립하고 개발-생산-시험평가-인증 등 전 주기 차원의 국방 핵심 소재 자립화 기반 마련을 서둘러야 한다”며 “국방 소재 통계 및 공급망 조사 정례화를 통해 공급망 취약점을 식별하고 조기경보 시스템 구축과 우방국과의 글로벌 공급망 협력을 적극 추진해 나가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에 정부도 방산 경쟁력 강화에 나섰다. 산업통상자원부와 국방부는 지난달 17일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올해 첫 ‘방위산업발전협의회’를 공동 주재했다. 주요 내용을 살펴보면, 먼저 첨단 방산의 생태계 역량을 확충하기 위해 첨단 소재부품에 대한 기술 투자를 확대하고 방위산업 생태계의 기초체력을 강화한다. 우주, 인공지능(AI), 유무인 복합, 반도체, 로봇 등 5대 첨단 방산 분야에서 60개 핵심 기술을 도출하고 올해에만 첨단 방산 소재부품 개발에 4000억원 규모를 투자한다.

다음으로 첨단화되고 있는 미래 방산 시장에 대응해 첨단 민간 기술의 국방 적용 확대 등 민군 협력과 산업 융복합을 촉진한다. 관계부처 합동으로 민군 기술협력 예산을 단계적으로 확대하고 첨단항공엔진개발 등 부처 협업으로 도전적인 연구개발(R&D)도 본격 추진한다.

마지막으로 글로벌 시장 진출 확대를 위한 지원시스템도 강화한다. 20여개 유망 수출 전략 국가를 대상으로 소득수준, 방위수준, 산업·에너지 등과의 연계 가능성 등을 고려해 맞춤형 수출 전략을 추진한다.

채우석 한국방위산업학회 회장은 “방산은 국가 안보를 강화하면서 동시에 전후방산업 경제파급 효과가 높은 전략 산업으로, 방산 수출 등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서는 산업 생태계의 경쟁력이 핵심”이라며 “방산 기업들은 빠른 납기와 가격 경쟁력을 넘어 이제 기술 고도화와 유럽 방산 기업들과 공동 개발 전략으로 방산 시장 입지 다지기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K방산 발목 잡는 금융지원?
속도감 있는 수출 금융 절실

방산업계에서는 금융지원 문제가 완전히 해소되지 않아 이미 계약이 완료된 폴란드 2차 수출 물량까지 물거품이 될 수 있다는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지난 2월 수출입은행의 법정자본금을 기존 15조원에서 25조원으로 확대하는 수출입은행법 개정안이 통과됐다. 하지만 아직까지 수출입은행에 자본이 투입되지 않은 상황이다. 실제 자금을 투입해야 하는 정부는 여전히 “검토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내세우고 있다.

당장 폴란드와의 무기 공급계약 규모는 상당하다. 문제는 지난해 말 폴란드의 정권 교체 이후 수입산 무기체계에 대한 부정적인 기류가 형성되고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EU가 유럽산 무기 비중 확대를 권고하는 등 현지 분위기가 변하고 있어 폴란드와 남은 계약을 차질 없이 마무리하기 위해서는 정책 금융지원이 속도감 있게 이뤄져야 한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경우, 폴란드와 체결을 완료한 2차 물량에 대한 무산 가능성까지 나오고 있다. 지난해 12월 폴란드와 체결한 K9 자주포 152문(3조 4000억원 규모) 수출 계약은 다음달까지, 천무 다연장로켓 72대(2조 2526억원 규모)는 오는 11월 말까지 각각 별도의 금융지원 계약을 마련해야 효력이 발생한다는 조건이 붙었기 때문이다.

또 K2 전차 1000대를 폴란드에 공급하기로 한 현대로템도 1차 계약에서 180대 공급을 약속한 데 이어 K2 820대 규모의 2차 계약을 추진하고 있다. 현대로템의 경우, 정책 금융지원뿐만 아니라 폴란드가 K2 전차의 현지 생산 및 기술 이전 등을 요구하고 있어 세부 사항을 조율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방산업계 관계자는 “방산 수출은 정부 간 계약의 성격이 짙은 데다 대체로 계약 규모도 크기 때문에 무기 수출국이 구매국에 정책 금융지원을 제공하는 것이 관례”라며 “국가 간 거래에서 기업이 입장을 내는 것이 곤란하다”고 말했다.

아울러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 우방 국가와의 무기체계 공조는 물론, 시장 다변화가 조속히 진행될 수 있게 방산 수출 지원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며 “무엇보다 K방산의 좋은 흐름을 이어갈 수 있도록 정부가 속도감 있게 수출 금융을 실행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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