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불안 여전…전세사기특별법 개정 놓고 ‘무한 대립’

지난달 29일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앞에서 열린 전세사기 특별법 개정안 공포 촉구 기자회견에서 안상미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원장이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지난달 29일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앞에서 열린 전세사기 특별법 개정안 공포 촉구 기자회견에서 안상미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원장이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주간한국 이재형 기자] “특별법 개정은 절망의 벽 안에 갇힌 피해자들에게 숨 쉴 구멍이나 다름없다. 윤석열 대통령은 피해자들의 구조 요청에 즉각 응답해야 한다.” 지난달 29일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원회 회원들과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회원들이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호소한 말이다.

2021년 전세사기가 사회 문제로 대두된 지 3년여 시간이 지났다. 전세사기 피해구제를 위한 추가 대책을 놓고 여야가 치열하게 대립하고 있다. 정치권이 합의를 도출하지 못한 채 공전하는 동안, 피해자들은 사법 절차를 총동원해도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해 주거권을 침해당하고 있다. 새로운 사기 피해자도 등장해 재발방지대책 역시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전세계약이 끝나도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해 애끓는 임차인들의 아우성이 올해도 잇따르고 있다. 대법원 등기정보광장에 따르면, 올해 1∼4월 전국 임차권등기명령 신청 건수(집합건물 기준)는 1만 7917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만 1339건)보다 58.0% 늘었다. 임차권등기명령은 임차인이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채 이사해야 할 경우, 차후 우선 변제받을 권리를 보호받기 위해 법원에 신청하는 것이다.

전세금을 지키기 위한 세입자들의 ‘임차권등기명령’ 신청 건수는 지난해 4만 5445건으로 역대 최다를 기록했는데, 올해도 4월까지 신청 건수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크게 늘어 최고 기록을 경신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전세사기로 인한 집단 고소 사태도 되풀이된다. 경기도 수원시에서는 도시형생활주택과 빌라 등에서 다수 임차인을 받고 전세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은 김모씨에 대한 고소장이 수사 당국에 다수 접수됐으나 잠적해 수사에 차질을 빚고 있다. 경찰이 수사를 개시하기 수개월 전에 김씨가 이미 해외로 도피해 잠적했기 때문이다.

피의자를 찾아 재판까지 가더라도 피해자와 합의 등 이유로 감형되기도 한다. 전세사기로 인해 피해자가 입는 고통에 비하면 낮은 형량에 조소하는 반응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최근 재판에선 40억원대 전세 사기를 벌인 일당이 항소심에서 감형됐다. 지난달 24일 대전지법 형사5-3부(부장판사 이효선)는 사기 등 혐의로 기소된 조직폭력배 A씨와 브로커인 B에게 각각 1심보다 가벼운 징역 7년과 3년 6개월을 선고됐다. 이들은 1심에서는 동일하게 징역 9년형을 받았었다.

A씨 등은 2022년 5월까지 총 52명을 상대로 전세보증금 총 41억원을 받아 챙긴 혐의를 받는다. 과거 알코올 중독자 명의로 다가구주택을 매입한 후 15명에게 보증금 13억 6000만원을 가로채기도 했다. 그러나 A씨 등은 일부 피해자들과 합의하거나 피해가 회복된 사실이 인정돼 감형을 받았다. 재판부는 “일부 피고인은 피해 회복을 위해 형사 공탁하기도 했고 경매로 추가 회복이 가능해 보이는 점, 당심에 이르러 진지하게 반성하는 점 등을 고려하면 1심 형량이 너무 무거워 부당하다”고 판시했다.

전세사기의 배경이 되는 빌라 주택 시장의 불안한 상황도 개선되지 않고 있다. 경기도는 최근 일부 지역 아파트와 연립·다세대주택의 전세가율이 80~90%까지 치솟은 점을 들어 임차인들에게 깡통전세를 경고하고 나섰다. 전세가율이란 주택매매가격 대비 전세가격의 비율을 말하는데, 전세가율이 지나치게 높으면 집을 팔아도 보증금을 변제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

경기도가 한국부동산원의 매매·전세 실거래 자료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안성시의 연립·다세대주택 전세가율은 평균 93.9%로 최근 1년 평균(74.6%)에 비해 19.3%포인트나 증가했다. 이어 용인시 수지구 92.2%(최근 1년 86.9%), 안양시 만안구 82.1%(최근 1년 80.6%), 용인시 처인구 80.7%(최근 1년 77.9%) 등이 전세가율이 크게 증가해 깡통전세 사고 위험이 커졌다.

‘피해자 우선 구제’ vs ‘형평성’ 
끝없는 여야 이견 대립

박상우 국토교통부 장관이 지난달 29일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전세사기피해자법 개정안 재의 요구 브리핑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박상우 국토교통부 장관이 지난달 29일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전세사기피해자법 개정안 재의 요구 브리핑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전세사기 피해자를 지원하는 전세사기피해자지원특별법은 지난해 5월 도입됐으나 피해 구제 효과가 부족하다는 평가가 이어져 왔다. 이에 국가가 우선 전세사기 피해자 보증금 채권을 매입하고, 차후 경매로 회수하는 ‘선(先)구제 후(後)회수’ 방안이 야당 주도로 추진됐다. 이런 내용을 담은 전세사기피해자지원특별법 개정안이 발의됐고 지난달 28일 국회 본회의 문턱을 넘었으나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폐기됐다. 정부는 보증금을 직접 구제하는 대신 국가가 문제 주택을 경매로 매입해 다시 임대하는 방안을 고수하고 있다. 선구제 후회수 방안을 둘러싼 여야 이견 대립은 22대 국회에서도 계속 이어질 전망이다.

정부는 다른 사기 피해 대책과 비교할 때 전세사기 대책의 형평성을 강조한다. 지난달 29일 박상우 국토교통부 장관은 브리핑을 열고 전세사기피해자지원특별법에 대해 “사인 간 계약에 따른 사기 피해자를 국가가 공공의 자금으로 직접 구제하는 전례 없는 법률안”이라며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다. 박 장관은 특히 “보이스피싱 등 전기통신금융 사기나 다단계판매 사기 등 다른 사기 피해와 전세사기 피해 모두 범죄로 인한 피해”라며 “그럼에도 전세사기 피해에 대해서만 다르게 대우하는 것은 헌법상 평등 원칙에 반할 우려가 있다”고 덧붙였다.

반면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총선의 민심을 정면으로 거역하는 국민 배신 행위이자 국회의 입법권을 침해하는 반민주적 폭거를 강력하게 규탄한다”며 “본회의 표결에 불참하고 무조건 거부권을 건의하는 여당에, 법안이 통과되자마자 거부권을 건의하는 장관에,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거부권을 행사하는 대통령 이게 제정신이냐”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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