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실 "9·19 군사합의 전체 효력 정지…4일 국무회의 상정"
"北 도발로 이미 유명무실…충분하고 즉각적 조치 가능해질 것"
"국민 생명·안전 지키기 위해 필요한 모든 조치 강구해 나갈 것"

지난해 12월 13일 오전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앞에서 열린 ‘9.19군사합의 무력화를 우려하는 접경지역 주민, 종교, 시민사회 공동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관련 손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지난해 12월 13일 오전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앞에서 열린 ‘9.19군사합의 무력화를 우려하는 접경지역 주민, 종교, 시민사회 공동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관련 손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데일리한국 박준영 기자] 한반도 평화와 화합의 상징으로 여겨졌던 9·19 남북 군사합의(이하 남북 군사합의)가 폐기 수순을 밟고 있다. 지난해 11월 북한이 전면 파기를 선언한 데 이어 우리 정부까지 전체 효력을 정지하기로 한 데 따른 것이다.

2018년 문재인 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평양에서 만나 한반도를 항구적인 평화지대로 만들겠다고 한 약속이 5년8개월여 만에 사실상 역사 속으로 사라지면서 가뜩이나 경색된 남북 관계는 '최악의 상황'을 맞이할 것으로 예상된다.

국가안보실은 3일 오전 김태효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처장(안보실 1차장) 주재로 실무조정회의를 열고 남북 군사합의 전체 효력을 정지하는 안을 오는 4일 열릴 국무회의에 상정하기로 했다. 

국가안보실은 이런 결정을 한 배경으로 북한을 지목했다. 최근 북한이 벌인 일련의 도발이 우리 국민에게 실제적인 피해와 위협을 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이미 북한이 남북군사합의 전면 파기를 선언하면서 남북 군사합의가 유명무실해진 탓에 우리 군의 대비 태세에도 많은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고 짚었다.

남북 군사합의는 2018년 4월 문재인 당시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판문점 선언에 대한 후속 조치로, 지상·해상·공중 등 모든 공간에서 적대적 군사 행동을 금지하는 내용이 담겼다. 하지만 북한은 그동안 남북 군사합의를 위반하며 도발을 지속해 왔다. 지난해 11월 군사정찰위성을 발사한 뒤 우리 정부가 남북 군사합의 일부 효력을 정지하자, 전면 파기를 선언하기도 했다.

남북관계 발전에 관한 법률(남북관계발전법)에 따르면 대통령은 필요시 남북 간 합의서의 효력을 정지시킬 수 있다. 이에 따라 윤석열 대통령이 4일 국무회의 의결을 거친 안을 재가하고, 이를 정부가 북한에 통보하면 절차는 마무리된다. 국가안보실에 따르면 남북 군사합의 효력은 양측의 신뢰가 회복될 때까지 정지된다.

국가안보실은 "이러한 조치는 우리 법이 규정하는 절차에 따른 정당하고 합법적인 것"이라면서 "그동안 남북 군사합의에 의해 제약받아 온 군사분계선 일대의 군사훈련이 가능해지고, 북한의 도발에 대한 우리의 보다 충분하고 즉각적인 조치가 가능해 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정부는 우리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켜 나가기 위해 필요한 모든 조치를 강구해 나갈 것"이라면서 "회의 참석자들은 북한이 도발을 지속할 경우 이에 상응하는 조치를 추가적으로 취해나가기로 하고, 회의 결과를 대통령과 NSC 상임위원들에게 보고했다"고 덧붙였다.

지난 2일 서울 양천구 목동에서 발견된 대남 오물풍선. 사진=합동참모본부 제공
지난 2일 서울 양천구 목동에서 발견된 대남 오물풍선. 사진=합동참모본부 제공

앞서 NSC는 전날 용산 대통령실에서 긴급 상임위를 개최한 뒤 북한이 오물 풍선과 GPS(위성항법장치) 도발 등을 이어가자 대북 확성기 방송 재개를 포함한 조치를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도발을 지속할 시 감내하기 어려운 조치에 착수하겠다고 경고했다. 이후 북한은 같은날 오후 오물 풍선의 추가 살포를 중단하겠다고 밝히며, 한발 물러섰다. 대신 남한이 대북 전단 살포를 재개할 경우 다시 오물 풍선을 살포하겠다는 조건을 달았다. 

전문가들은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남북 군사합의가 그동안 제 기능을 못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북한에 이어 우리 정부까지 폐기 수순을 밟으면서 한반도의 안전장치가 완전히 사라지면서 남북관계가 살얼음판을 걷게 돼 버렸다는 지적이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남북 간 불신, 적대의 수준이 너무나도 높아졌다"며 "예전에도 이런 시기가 있었지만, 지금은 안전장치는 물론 중재할 수 있을 만한 국가들도 사라져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상황이 펼쳐져 버렸다"고 말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 교수는 "남북 군사합의가 나름 한반도 평화의 '안전핀'으로서 역할을 해왔었는데 이제는 그 핀이 모두 뽑혀 버렸다"면서 "우발적인 충돌은 곧 전쟁으로 번질 수 있고, 남북 긴장이 고조되면 경제 전반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만큼 한반도 상황을 안정적으로 관리하려면 강경 일변도 대북정책만 펼쳐선 안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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