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화재 현장. 사진=대구달성소방서
전기차 화재 현장. 사진=대구달성소방서

최근 안타까운 사건이 발생했다. 23명이 숨진 경기 화성시 아리셀 공장 사고를 계기로 국내 이차전지 제조업체들도 화재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아직 조사 중이긴 하지만 2층 패킹 작업장 생산 라인에서 전기 스파크가 발생한 것이 원인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최초 발화한 배터리가 수 미터(m)를 튕겨 나가 다른 배터리를 충격하고, 이후부터 연쇄적으로 불길이 붙은 ‘열폭주’로 진단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리튬의 열폭주가 화재를 확산시켜 피해를 키운 것이 분명하다. 이전부터 리튬 배터리의 화재 위험성은 꾸준히 지적됐었다. 리튬은 화재 발생 가능성이 아주 높은 원소로, 외부 공기나 물과 반응하면 열을 발생시켜 불을 일으킬 수 있다. 또한 리튬은 열에 민감해 내‧외부 온도를 관리하지 못하면 과열로 불꽃이 일어날 수 있다. 배터리 내부에서 발생한 열이 외부로 빠져나가지 못하면 내부 온도를 계속 상승시키는 열폭주 현상까지 나타날 수 있다.

공기, 물과의 접촉 혹은 외부의 열원이 아니더라도 단순한 충격만으로 열폭주로 이어질 위험성이 존재한다. 리튬 배터리 내 양극과 음극이 접촉하지 않도록 막는 분리막이 있는데, 이 분리막이 손상되면 결국 쇼트가 나는 것이다. 특히 아리셀에서 제작하는 리튬 배터리가 ‘군납용’이라 피해가 걷잡을 수 없이 컸던 것이라는 분석이다. 군납용은 일반 배터리에 비해 용량이 크기 때문이다. 이에 아리셀 공장 3동 내 2층에 당시 3만 5000여개 군용 배터리가 적재돼 있었는데, 일정 간격 거리를 두고 배터리를 보관했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아리셀 공장에 적재된 리튬 일차전지는 리튬 이차전지에 비해 화재에 더 취약하다. 리튬 이차전지는 리튬이 산화물 형태로 존재하지만, 리튬 일차전지는 순수한 리튬 금속이 그대로 들어가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 방전된 상태로 출고하는 이차전지와 달리 일차전지는 완충된 상태로 보관·출고되기 때문에 높은 에너지를 품고 있게 되며, 약간의 외부 충격으로도 화재가 발생할 수 있다. 결론은 개별 배터리 셀이 접촉되지 않도록 간격을 두고 개별 트레이에 넣어 보관해야 한다는 것이다.

배터리 1차 폭발 후, 42초 만인 오전 10시 30분 45초에 이미 자욱한 유독가스와 연기가 공장 내부를 가득 채웠고, 수초 뒤 폭발 사고로 이어졌다. 이렇게 짧은 시간에 발생한 화재가 완전 진화될 때까지는 무려 22시간이 걸렸다. 그만큼 배터리가 갖고 있는 에너지가 다 소진될 때까지 주변으로 열이 전달되지 않도록 냉각시키면서 기다리는 것 외에 특별한 방법이 없는 것이다.

이번 사건으로 국내 전기차 화재도 다시 주목받고 있다. 2017년 1건을 시작으로 매해 늘어 2022년에는 44건으로 급증하고 있다. 특히 최근 3년 간을 보면, 2020∼2022년 전기차 화재 건수는 모두 79건인데, 2020년 11건이던 전기차 화재 건수가 2021년에는 24건으로 갑절 넘게 늘었다. 2022년에는 44건으로 다시 두 배 가까이 불어났다. 화재 원인으로는 전체 79건 중 원인을 알 수 없는 경우가 24건으로 가장 많았고, 전기적 요인이 18건, 부주의 15건, 그리고 교통사고 9건 등의 순이었다.

주목할 만한 부분은 사고 장소에 대한 분석이다. 전기차 화재 장소로는 일반도로가 34건, 주차장 29건, 고속도로가 6건 등을 차지하고 있다. 주차장 화재사고는 운행을 하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발생한 비율이 제법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 1만대당 화재 발생 비율을 보면 내연기관 차량은 2017년 2.20대에서 2022년 1.84대로 낮아졌으나, 전기차는 같은 기간 0.40대에서 1.12대로 크게 높아졌다. 전기차 보급 이후 노후화로 인해 화재 사고가 급증한 것이 아닌지 의심할 수 있는 대목이다.

전기차 화재는 보통 내연기관 차량 화재보다 진화하는 데 어려움이 크다. 열폭주 현상과 불길을 잡을 전용 소화약제가 없기 때문이다. 배터리 팩 내부에서 불이 났을 경우, 차량이 순식간에 화염에 휩싸이고 화염 방향도 통상 위로 치솟는 내연기관과 달리 수평으로 진행되는 경향이 있어 주변 차량 등으로 불이 번져가며 피해가 커지는 경우가 많다.

상황이 이러함에도 현재 전기차 화재 진압용으로 개발된 제품들의 성능이 만족스럽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보통의 분말소화기로는 진화가 되지 않는다. 분말이 배터리 내부에 침투하지 못하고, 냉각 효과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산소를 차단해 불을 끄는 ‘질식소화 덮개’도 배터리 온도를 낮추지 못해 주변 배터리에서 열폭주 현상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결국 소방 당국은 물로 불을 끄는 ‘주수 소화’ 방식으로 전기차 화재에 대응하고 있다.

만약 전기차에서 화재가 발생할 경우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은 없다고 봐야 한다. 우선은 소방 당국에 빠르게 연락하고, 제작사나 경찰서 등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곳에 추가로 연락하는 것이 좋다. 본인을 포함 탑승자나 주변 사람들의 대피를 유도하고, 혹시 지하 주차장일 경우에 관리사무소에 연락해 지하에 있는 다른 사람들을 대피시키고, 주차장 입구에서 차량의 추가 진입을 차단할 필요가 있다.

최근에는 사고로 인한 화재를 제외한다면, 전기차의 내장된 프로그램이 배터리 이상 유무를 사전에 인지하고 전원을 차단하거나 운전자에게 경고를 보내도록 돼 있다. 따라서 이러한 경고를 접하게 되면, 지하 주차장의 경우 빠른 연락을 통해 차량을 지상으로 견인하는 조치가 필요하다. 평소 예방 요령으로는 보유한 전기차의 완충 비율을 85% 내외로 억제하고, 급속 충전보다는 완속 충전을 이용하는 것이 배터리의 안정적인 관리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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