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 오후 국회 국민동의청원 홈페이지 모습. 접속자가 많아 정상적인 접속이 어렵다.
지난 4일 오후 국회 국민동의청원 홈페이지 모습. 접속자가 많아 정상적인 접속이 어렵다.

尹탄핵 국민청원, 법적요건 불충분…당장 현실화 어려워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을 요구하는 국회 국민동의 청원 참여자가 지난 3일 100만 명을 넘어섰다. 국회 ‘국민동의청원’ 홈페이지에 접속했더니 “현재 접속자가 많아 서비스 접속 대기 중입니다”라는 안내가 뜬다. 대기 시간이 30분이 넘길래 청원의 구체적인 내용도 읽어보지 못하고 그냥 나와야 했다.

청원자가 윤 대통령이 ‘채상병 특검법’ 등에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한 점 등을 이유로 국회가 탄핵소추안을 발의해야 한다는 글을 올린 지 13일 만의 일이다. 이 청원은 소관 상임위원회 회부 요건인 ‘5만 명 동의’를 얻어 지난달 24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회부됐다. 이후 국회 홈페이지가 마비될 정도로 방문객이 급증했고, 우원식 국회의장은 서버 증설을 지시했다. 특히 지난달 27일 김진표 전 국회의장이 펴낸 회고록을 통해 “2022년 12월 5일 독대한 윤 대통령이 이태원 참사가 특정 세력에 의해 유도되고 조작된 사건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고 주장하면서 청원인이 폭증하는 상황이다.

이에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 등은 “100만 명을 넘어 200만, 300만 명으로 이어질 것”이라며 한껏 고무된 모습이다. 실제로 청원 기간이 오는 20일까지이니 정 최고위원의 전망이 실제 상황이 될 가능성도 있다. 당장 민주당의 적극적인 지지자 수만 따져도 수백만 명은 훌쩍 넘는다. 윤 대통령에 반대하는 민주당 지지자들만 청원에 동의해도 300만 명을 채울지 모른다.

하지만 실제로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가 성사될 것인가 여부는 청원 동의 숫자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국민청원 동의 숫자가 500만 명이 된다고 탄핵의 가능성을 높이는 것은 아니다. 문재인 정부 시절에도 문 대통령을 탄핵하자는 청와대 청원이 200만 명에 육박했지만 진행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당시 문재인 정부 청와대는 “탄핵 절차 개시 여부는 국회의 권한이라 답변이 어렵다”고만 답하고 해당 청원을 폐기했다. 당시는 국회 청원 사이트가 아닌 청와대 게시판 청원 사이트이기는 했지만, 아무런 후속 조치가 없었던 것이다. 국회에서도 문 전 대통령 탄핵 청원이 2020년 2월 28일 공개돼 사흘 만에 10만 명이 동의해 법사위에 회부됐지만 해당 청원은 국회에서 전혀 논의되지 않았다. 그러다가 20대 국회 임기 만료로 폐기된 선례가 있다.

중요한 것은 청원이 실제로 탄핵의 법적 요건을 갖추고 있느냐 하는 점이다. 헌법 제65조는 대통령 탄핵소추 요건을 ‘헌법이나 법률을 위배한 때’라고 명기하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심판 기각 때 판결문에서 그 정도를 “공직자 파면을 정당화할 정도의 중대한 법 위반”이라고 판시한 바 있다. 그런데 국회에 탄핵 청원을 낸 권모 씨는 “윤 대통령 취임 이후 대한민국은 총체적 위기에 처해 있다. 채해병 특검, 김건희 특검에 대한 대통령 거부권 행사로 민주주의 근간이 흔들리고 있다”며 “경제, 안보, 외교, 민생, 민주 등 대한민국의 모든 분야가 총파산하고 있다. 이미 윤석열의 탄핵 사유는 차고 넘친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밝힌 구체적인 탄핵 사유는 ▲채상병 사건에서 박정훈 수사단장에 대한 외압 행사 ▲김건희 여사의 명품백 수수, 주가조작, 서울-양평 고속도로 의혹 ▲대북확성기 방송재개 등 전쟁위기 조장 ▲강제동원 피해자들에 대한 제3자 변제 추진 ▲후쿠시마 오염수 해양투기 방조 등 5개다.

그러나 이런 내용으로 대통령에 대한 탄핵의 법적 요건이 가능하리라고 생각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헌법재판소 판례에 따르면, 윤 대통령이 직접 위법에 관련된 행위가 확인돼야 하고 사안이 중대해야 하는데 막상 이 두 가지 요건을 충족시키는 사유라기보다는 일종의 정치적 주장의 성격이라 할 수 있다. 그 가운데서 윤 대통령에게 직접 법적 책임을 물을 가능성이 그나마 있는 것이 채상병 사건 수사에 대한 외압 의혹인데, 이는 윤 대통령의 연관 가능 정황들도 나오고 그에 대한 대통령실의 반박도 나오는지라 공수처의 수사, 그리고 향후 ‘채상병 특검’의 성사와 추이 등을 지켜봐야 할 상황이다. 정치적 주장이 대부분인 이 정도 내용을 갖고 탄핵의 근거로 삼는 것은 무리가 있다.

국민의힘 의원들이 지난 4일 오전 '채상병특검법안' 무제한토론(필리버스터)이 진행되고 있는 국회 본회의장 앞 로텐더홀에서 더불어민주당을 규탄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국민의힘 의원들이 지난 4일 오전 '채상병특검법안' 무제한토론(필리버스터)이 진행되고 있는 국회 본회의장 앞 로텐더홀에서 더불어민주당을 규탄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민주당, 지도부 '신중론' vs 개별 의원 '강경론'

그럼에도 민주당의 기류는 복잡하다. 한편으로는 무리한 탄핵 추진에 대한 여론의 역풍을 의식한 신중론이 존재하지만, 탄핵 불사에 힘을 싣는 강경론도 만만치 않다. 서영교 최고위원은 “종이에 그냥 서명하는 청원이 아니다. 이렇게 어려운 청원에 기하급수적으로 숫자가 늘고 있다. 국민들이 얼마나 분노하고 있는지가 나타난 것 아닌가”라고 주장했다. 청원을 하려면 실명인증이나 국회 홈페이지 가입이 필요한 점을 거론하면서 그 의미가 상당하다는 얘기였다. 박지원 의원도 페이스북에 “격노 대통령에 대한 국민 격노가 거세다. 이태원도 격노! 채상병도 격노! 책임 대신 격노만 하는 대통령 리더십에 국민 격노가 시작됐다. 탄핵 요구의 봇물이 터졌다”라고 했다.

전당대회 최고위원 경선 출마를 선언한 김민석 의원은 “국정 능력을 상실한 대통령의 한계에 대한 국민 공감도 높아지고 있다”며 “최고위원 2년 임기 내 정권교체의 길을 찾겠다”고 말해 사실상 탄핵을 통해 윤 대통령 임기를 조기 종료시키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최민희 의원은 ‘행상책임’(行狀責任)이라는 낯선 개념을 거론하기도 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당한 근본 이유는 행상책임 때문”이라며 “(윤 대통령도) 행상책임을 져야 한다”고 최 의원은 주장했다. ‘행상’이란 말의 의미는 ‘행동이나 태도’인데, 대통령으로서 헌법·법률에 임하는 태도에 따른 책임이 행상책임이다. 위법에 따른 법적 책임이 아니라 ‘태도’의 문제를 탄핵의 사유로 확대해서 제기한 셈이다.

하지만 개별 의원들의 강경 발언들과는 달리 민주당 지도부 차원에서는 탄핵에 대해 신중한 분위기다. 당장 이재명 전 대표는 탄핵 청원에 대해 언급 자체를 하지 않고 있다. 거리두기를 하는 모습이다. 박성준 원내수석부대표는 “단순히 민심이 이렇다고 해서 (탄핵을) 추진하는 것은 정치인의 도리에 맞지 않는 것”이라고 선을 긋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지도부의 다른 관계자도 “탄핵을 본격적으로 논의할 정도로 여론이 무르익지는 않았다”며 “윤 대통령이 채상병 순직 조사에 직접 관여했다는 증거, 즉 ‘스모킹 건’이 나와야 할 것”이라고 했다.

순서상으로 따지면 먼저 채상병 특검을 통해 윤 대통령이 외압에 관련됐다는 증거가 나와야 탄핵도 가능하다는 얘기가 된다. 민심과는 상관없이 윤 대통령 탄핵을 위한 법적 요건이 아직은 취약하다는 것이 민주당 지도부의 판단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니 민주당 지도부로서는 채상병 특검 성사에 총력을 기울이는 것이 우선인 셈이다.

현직 대통령에 대한 탄핵은 대단히 민감한 사안이다. 탄핵소추의 선택은 민심에 부응하는 길일 수도 있지만 섣부르게 만졌다가는 여론의 역풍을 자초할 수 있다. 2004년 3월에 있었던 노무현 대통령 탄핵 사태가 대표적인 사례였다. 당시 한나라당·새천년민주당·자유민주연합 등 투표에 참석한 195명의 야당 의원들 가운데 193명의 찬성으로 탄핵소추안이 기습적으로 가결된 뒤, 헌법재판소에 소추의결서가 접수됐다. 그러나 국민이 선출한 대통령을 야당이 탄핵시키는 데 대한 여론의 역풍이 태풍처럼 불었고 그해 4월 15일 치러진 17대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이 과반이 넘는 152석을 차지하고, 제1당이던 한나라당은 121석밖에 얻지 못하는 결과를 낳았다.

그렇게 무서웠던 탄핵 역풍이 쉽게 인식되도록 바뀐 계기는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이 이뤄진 이후부터였다. 헌법재판소는 2017년 3월 10일 재판관 8명 전원일치 의견으로 박 대통령에 대한 파면 결정을 내렸다. 이는 2016년 12월에 국회가 박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의결하고 헌재에 접수한 지 92일 만의 결정으로, 헌재가 국회의 탄핵심판 청구를 인용해 대한민국 헌정사 최초의 현직 대통령 파면이 있게 됐다.

국민의 여론이 뒷받침되고 위법한 행위가 확인되면 현직 대통령에 대한 탄핵이 가능하다는 민주당 지지층의 경험은 윤석열 정부 아래에서 일찌감치 탄핵론에 불을 지피는 상황을 낳았다.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는 22대 총선을 치르면서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을 이미 공공연하게 거론한 바 있다. 조 대표는 국민동의 청원 게시판에 접속자가 폭주하는 이번 상황에 대해서도 “상황을 예의주시하면서 민심의 흐름을 살피고 모든 정치적, 법적 준비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조국혁신당은 일단 청원의 내용이 탄핵 사유에 해당되는지를 꼼꼼히 살펴보겠다는 입장이다.

국회법 절차에 따라 법사위는 청원이 상임위에 회부된 날로부터 20일 동안 숙려기간을 거친 뒤 법사위 전체회의에서 대체 토론 등을 진행하고, 법사위 청원 소위에 청원을 회부한다. 청원 소위는 심사 기간 동안 내용을 심사한 후 전체 회의 때 결과를 보고한다. 이후 청원이 본회의에 올라가서 통과되면 정부로 이송돼 후속 절차가 진행된다. 문재인 정부 시절에는 대통령 탄핵 청원이 법사위에 회부됐지만 아무런 논의도 없이 폐기됐다.

하지만 지금은 국회 상황이 다르다. 야당이 국회 의석의 절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상황이라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의 타당성을 둘러싼 여야 공방이 쟁점으로 부상할 가능성은 충분하다. 실제로 국회 법사위 청원심사소위원장인 김용민 민주당 의원은 “국회법에 따라 절차를 거치면 7월 셋째 주부터는 법사위 전체회의에서 이 청원에 대해 논의하고 청원을 소위에 보낼 수 있다”며 “소위에서 청원 내용의 타당성을 심사할 때 필요한 조사 및 청문회를 할 수 있다. 국회법에 있는 절차는 충분히 적극적으로 행사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국회에서 본인의 탄핵안을 처리하기 전 자진 사퇴한 김홍일 방송통신위원장이 지난 2일 퇴임식을 마친 뒤 정부과천청사 내 방통위를 떠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국회에서 본인의 탄핵안을 처리하기 전 자진 사퇴한 김홍일 방송통신위원장이 지난 2일 퇴임식을 마친 뒤 정부과천청사 내 방통위를 떠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MBC사장 교체 막기 위한 방통위원장 탄핵반복 ‘내로남불’

탄핵이 거론된 것은 윤 대통령만이 아니다.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 청원이 한창인 가운데 김홍일 방송통신위원장이 지난 2일 사의를 표명하고 윤 대통령은 즉시 면직안을 재가했다. 김 전 위원장은 이날 국회 본회의에 자신의 탄핵소추안이 보고될 것으로 예고되자 선제적으로 사퇴 카드를 꺼내든 것이다.

민주당이 김 전 위원장에 대한 탄핵을 추진한 데는 방통위가 최근 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 등 공영방송 이사진 교체 작업에 들어간 상황이 맞물려 있다. 방통위는 지난달 28일 방문진 등 공영방송 이사진 선임 계획안을 심의 의결했다. 오는 8월 12일 임기가 만료되는 방문진 이사진은 이 계획안에 따라 14일간 공모, 이후 국민 의견 수렴 절차 등을 거쳐 임명된다. 이 과정에서 방통위원들의 의결 절차가 두 차례 더 필요한데, 김 위원장이 사퇴하면 이 절차가 일정기간 중단될 수 있다. 김 위원장이 사퇴하거나 직무가 정지되면 남은 방통위원이 한 명뿐이라 2인 이상인 의사 정족수를 채울 수 없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방통위 계획대로 방문진 이사가 관례에 따라 여(6명)·야(3명) 추천 인사로 바뀌어서 MBC 사장 등 경영진 교체가 이뤄지는 상황을 막기 위해 김 위원장에 대한 탄핵을 추진했던 것이다. 일단 탄핵소추안이 통과되면 김 위원장 직무가 헌재 결정 때까지 정지돼 혼자 남은 이상인 부위원장만으로는 의사 결정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현재 상황에서 김 위원장이 탄핵 소추되면 방문진 이사 교체가 상당 기간 불가능해질 수밖에 없다. 김 위원장의 사퇴에 따라 탄핵소추까지는 가지 않았더라도 신임 방통위원장이 취임할 때까지는 방문진 이사 교체에 필요한 방통위의 의결 절차 진행이 불가능해 이사 교체에 차질이 빚어질 가능성이 커졌다.

지난해 말에는 이동관 전 방통위원장이 민주당의 탄핵소추 직전에 마찬가지 맥락에서 사퇴한 일이 있었는데 그런 상황이 반복된 것이다. 이에 민주당은 ‘꼼수 사퇴’라고 비난하며 김 위원장의 사퇴와 상관없이 국회 법사위 차원의 탄핵소추 사건 조사를 진행하고, 후임 방통위원장 인선 과정에 협조하지 않을 태세다. 현재 민주당은 후임 방통위원장이 임명되면 또다시 탄핵소추를 추진하겠다는 분위기다. 공영방송 이사진과 사장 교체를 막기 위해 방통위원장마다 탄핵소추안을 처리해 방통위를 마비시키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MBC라는 공영방송의 이사와 사장의 교체를 막기 위해 방통위원장에 대한 탄핵의 칼을 반복해서 꺼내드는 민주당의 모습은 부적절하다. 그것이 옳든 그르든 정권이 바뀌면 대통령이 선호하는 공영방송 이사진이 구성되고 사장이 임명되었던 것은 이제까지 당연한 일처럼 받아들여졌다. 민주당이 집권했던 문재인 정부 시절에도 다르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 와서 윤석열 정부의 여당은 공영방송에 관여하지 못하도록 막기 위해 탄핵을 무기로 삼는 것은 ‘내로남불’이라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자신들이 정권을 잡았을 때는 그렇게 하고서, 정권을 내놓고 나니까 탄핵이라는 방법을 동원해 대통령의 공영방송 사장 임명을 막는 것은 정당하지 않다. 물론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권이 선호하는 공영방송을 만들려는 행위를 근본적으로 막기 위한 제도개혁은 필요하다. 그러나 탄핵이라는 것이 그런 정치적 행위에 이용하라고 만들어 놓은 것은 아니다.

한마디로 탄핵의 과잉이며 남발이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지난 1일까지 민주당은 김 위원장을 포함해 장관급 3명, 검사 5명 등 총 8건의 탄핵소추안을 발의했다. 이는 역대 정부를 통틀어 가장 많은 탄핵소추안 발의 숫자다. 지난해 2월에는 ‘핼러윈 참사’ 책임을 묻겠다며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에 대한 탄핵안을 통과시켰지만 헌법재판소는 지난해 7월 기각했다.

이어 지난해 9월에는 ‘유우성씨 간첩 조작 사건’과 관련해 보복 기소를 했다는 이유로 헌정사상 처음으로 검사 개인에 대한 탄핵안도 냈는데 역시 헌재에서 기각됐다. 또 지난해 11월에는 이동관 당시 방통위원장과 손준성·이정섭·이희동·임홍석 검사에 대한 탄핵소추안도 발의했다. 이 위원장은 탄핵안이 국회 본회의에 표결되기 직전 사퇴해 탄핵안이 폐기됐다. 이러다 보니 법적 요건을 갖추지 못해 헌법재판소에서 기각될 것을 예상하면서도 일단 업무정지를 시키고 보는 정치적 무기로 민주당이 탄핵소추를 이용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민의힘 의원들이 지난 4일 오전 '채상병특검법안' 무제한토론(필리버스터)이 진행되고 있는 국회 본회의장 앞 로텐더홀에서 더불어민주당을 규탄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국민의힘 의원들이 지난 4일 오전 '채상병특검법안' 무제한토론(필리버스터)이 진행되고 있는 국회 본회의장 앞 로텐더홀에서 더불어민주당을 규탄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재명 수사 검사 탄핵발의, 보복성 압박용 시선 초래

그럼에도 민주당은 김홍일 위원장이 사퇴한 지난 2일, 이재명 전 대표 관련 수사를 이끈 주요 검찰 간부들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당론으로 발의했다. 민주당은 이날 소속 의원 전원 명의로 강백신 수원지검 성남지청 차장검사, 김영철 서울북부지검 차장검사, 박상용 수원지검 부부장검사, 엄희준 부천지청장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발의했다. 그런데 엄 검사와 강 검사는 이 전 대표의 대장동·백현동 의혹 수사를, 박 검사는 대북 송금 의혹 수사를 각각 맡은 바 있어 그에 대한 보복성 압박의 탄핵이라는 시선을 낳고 있다.

이렇게 되면 앞서 민주당이 탄핵소추한 검사 3명에 더해 7명째 현직 검사의 탄핵소추를 추진하게 된 셈이다. 민주당은 앞서 ‘서울시 공무원 간첩 조작 사건’과 관련한 보복 기소 의혹을 이유로 안동완 검사 탄핵소추안을 발의해 지난해 9월 본회의 가결을 이끌어냈다. 헌정사상 첫 현직 검사 탄핵소추였으나, 지난 5월 헌법재판소에서 기각됐다. 또 민주당은 지난해 12월에는 각각 ‘고발 사주’ 의혹과 공무상 비밀누설 혐의 등을 사유로 손준성·이정섭 검사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통과시켰다. 두 검사에 대한 탄핵안은 현재 헌재에서 심판 절차가 진행 중에 있다.

민주당이 새로 발의한 4명의 검사에 대한 탄핵안은 국회 본회의에서 보고돼 법사위에 회부됐다. 민주당은 법사위에서 해당 검사들의 비위 행위에 대한 조사를 진행할 것임을 공언하고 있다. 국회법에 따르면, 탄핵소추안이 발의되면 국회의장은 발의 후 처음 개의하는 본회의에 보고하고, 본회의는 의결로 법사위에 회부해 조사하게 할 수 있다. 또 탄핵소추안을 회부받은 법사위는 지체 없이 조사·보고해야 한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이 전 대표를 수사했던 검사들에 대한 탄핵안을 발의하고 법사위에서 이들의 비위행위를 조사하겠다는 것은 이 전 대표 수사에 대한 압박과 공소유지 방해로 해석될 수밖에 없다.

민주당 ‘검사범죄 대응 TF’ 소속 김용민 의원은 제안 설명에서 “국회는 부패 검사, 정치 검사를 단죄하기 위해서 국회 권한을 계속 사용할 것”이라고 했지만 검찰은 강력히 반발하고 나섰다. 이원석 검찰총장은 민주당이 이 전 대표를 수사한 검사들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발의하자 이를 “권력자의 형사처벌 모면용”이라며 반발했다. 이 총장은 민주당의 검사 탄핵소추안에 대해 “피고인인 이 전 대표가 재판장을 맡고, 이 전 대표의 변호인인 민주당 국회의원과 국회 절대 다수당인 민주당이 사법부의 역할을 빼앗아와 재판을 직접 다시 하겠다는 것과 같다”고 비난했다.

여기에 현직 검사장을 포함한 검사들의 댓글과 게시글들이 잇따르면서 검찰 내부 반발이 급속도로 확산하는 분위기다. 특히 이 전 대표 사건과 관련된 검찰 간부들이 “우리나라 법치가 이렇게 한순간에 무너질 줄 몰랐다”고 앞장서서 성토하고 있다. 국민의힘은 물론이고 대통령실 또한 비판에 가세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이 대표를 수사했던 검사를 탄핵하겠다고 하는 것은 결국 ‘내가 원하는 방식대로 수사할 수 있게 해달라’, ‘민주당이 수사권을 갖게 해달라’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본다”고 지적했다.

굳이 검찰이나 대통령실, 그리고 여당의 비판이 아니더라도 이 전 대표에 대한 수사를 이끌었던 검사들에 대한 탄핵 발의는 탄핵 권한의 남용이라는 시선을 피하기 어렵다. 고위공직자들의 위법행위에 대한 책임을 묻기 위해 만들어진 탄핵제도를 정치적 방패 혹은 칼로 이용한다는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 진보, 보수 불문하고 대부분의 신문들이 탄핵안 발의된 검사들을 두고 모두 이 전 대표를 수사했던 점을 가리켜 민주당을 비판하는 사설을 게재한 상황이 이를 말해준다.

민주당은 근래 들어 남발하고 있는 탄핵 행보에 대해 보다 엄격히 절제하는 모습을 보여야 할 필요가 있다. 민주당을 중심으로 야권이 보유한 190석에 가까운 의석은 그렇게 탄핵 권한을 충분한 법적 요건조차 없이 남발하라고 국민이 준 것은 아닐 것이다. 일단 탄핵소추를 시켜 놓고 헌재에서 기각되는 일이 반복돼도 아무런 책임도 의식하지 않는 모습은 ‘묻지마 탄핵’이라는 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다.

국회의원들에게 부여된 탄핵의 칼은 제대로 사용하면 고위공직자들의 위법과 비리를 막는 좋은 도구가 될 수 있지만, 절제하지 못하고 마구 사용하면 정치를 파괴하는 흉기가 될 수 있음을 민주당은 생각할 때다. 거대 야당의 ‘탄핵 독주’에 대한 국민의 시선을 두려워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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