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나주시 빛가람동에 있는 한국전력 본사 사옥. 사진=연합뉴스
전남 나주시 빛가람동에 있는 한국전력 본사 사옥. 사진=연합뉴스

중앙 및 지방정부의 빚을 ‘국가채무’(D1)라고 한다. 보통 우리가 국가부채라고 할 때 D1을 가리킨다. D1에 비영리 공공기관의 빚을 합해 ‘일반정부 부채’(D2)라고 부른다. D2에 비금융 공기업의 빚을 더한 것을 ‘공공부문 부채’(D3)라고 한다.

2022년 기준으로 D1 1126조원, D2 1157조원, D3 1588조원이다. D2에서 D3로 넘어가면서 수치가 크게 튀어 오르는 것을 볼 수 있다. 어떤 일이 있어도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는 뜻에서 진정한 국가부채는 D3라고 봐야 할 것이다. 엄밀하게 말하면 금융 공기업의 부채도 포함시켜야 하지만 공식적인 자료가 공개되고 있지 않다.

정부는 국가부채 증가를 억제하기 위해 긴축적인 예산을 편성하고 있다. 일단은 씀씀이를 줄이려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공공기관 부채가 늘어나면 모든 노력이 허사다. 그런데 공공기관 부채는 무섭게 늘어나고 있다. 공공기관 경영정보 공개시스템에 따르면, 비금융 공공기관의 부채는 2019년 524조원에서 지난해 709조원으로 급증했다.

부채 비율도 같은 기간 161.5%에서 183.0%로 상승했다. 한국전력 202조원, 한국토지주택공사(LH) 152조원, 한국가스공사 47조원으로 이들이 상위 3인방이다. 한국전력과 가스공사는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석유·가스 가격 상승을 요금에 제 때 반영하지 못한 요인이 컸다. LH는 신도시 개발 비용을 부채로 조달한 탓으로 보인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의 D2 기준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은 55.2%에 이른다. 주요 7개국(G7)의 126.1%보다 한참 낮다. 이것만 보면 국가부채가 잘 관리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유감스럽게도 D3 기준의 비교 자료는 흔하지 않다. IMF가 2019년 기준으로 추정한 GDP 대비 비금융공기업 부채 비율은 우리나라가 20.6%로 일본(15.8%) 등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대부분의 국가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다.

금융 공기업까지 포함하면 그림이 더 분명해진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의 추정에 따르면 2019년 기준 GDP 대비 금융 공기업 부채 비율은 우리나라가 62.7%로 일본(47.7%), 캐나다(28.6%), 호주(26.3%), 영국(18.7%)을 크게 앞서고 있다.

결론적으로 우리나라는 정부 부채를 잘 통제하고 있지만 공기업을 통해 많은 부채를 지고 있어 실제 상황은 만만치 않다. 정부는 직접 사업을 추진할 수도 있고 공기업에 위임할 수도 있으므로 정부의 빚이 공기업에 전가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정부가 부담을 공기업에 떠민 경우도 있다. 한국전력과 가스공사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급등한 에너지 가격으로 한국전력의 전력 구입비가 대폭 상승했다. 우리나라에서 발전 및 도시가스용으로 많이 사용되는 천연가스(LNG) 선물 가격은 2021년 12월 100만 BTU당 3.6달러에서 2022년 4월 9.3달러까지 치솟은 다음 지난해 1월 2.4달러로 내려왔다.

에너지난이 한창이던 2022년 유럽의 전기 요금은 5배 올랐으나 우리나라 주택용 요금은 14% 인상에 불과했고 현재도 2022년 초 대비 36% 인상에 그치고 있다. 가스공사의 경우에도 정부가 요금을 원가 이하로 억제한 결과 미수금 15조 7000억원이 쌓여 있다.

막대한 적자로 인해 이들 공기업은 채권을 발행해 자금을 조달하고 있고, 지난해 이자 비용으로 한국전력 4조 4000억원, 가스공사 1조 6000억원을 지출했다. 경영 상태로만 보면 부실 기업이지만 유사시 국가가 지급을 보증하므로 이들의 신용등급은 국가와 동일하다.

이에 이들 기업의 회사채는 낮은 금리로 발행되며 금융기관은 이를 선호한다. 한정된 회사채 시장에서 일반 기업들은 뒷전에 밀리거나 높은 금리를 지불해야 한다. 정부가 원가나 환율에 따라 요금을 적절하게 조정해야 하나 실제로는 정치권의 압력으로 억제된다.

LH의 경우에는 지난해 3기 신도시 조성에 따른 보상을 위해 11조원의 채권을 발행했다. 임대주택 사업에도 상당한 자금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국책사업이므로 불가피한 측면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부동산 경기 하락으로 주택분양 및 토지매각 수입이 줄어들어 부채 비율은 더 올라갈 전망이다.

산업은행은 부실 자회사를 상당수 보유하고 있다. 국가적으로 중요한 산업인 경우에는 그저 시장에 맡길 수 없으므로 산업은행이 어느 정도 저수지의 역할을 하는 것은 불가피하다. 한국은행은 산업은행이 발행한 채권을 적격담보증권으로 인정하고 이를 담보로 대출을 제공한다. 일시적이지만 국가의 발권력이 동원되는 것이다.

최근에는 여러 공기업들이 부채를 통한 자금조달에 나서고 있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는 채권 발행이 가능하도록 정관을 변경했는데, 전세 및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보증 사고에 대비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의 새출발기금과 한국수출입은행의 공급망안정화기금도 채권 발행을 준비하고 있다.

또한 정부는 지방 공기업의 부채 규제를 완화해 이들의 투자를 늘리려 하고 있다. 부채 규모 1000억원 이상 또는 부채비율 200% 이상인 공사·출자출연기관을 부채중점관리기관으로 지정하고 있는데 올해부터 이를 완화한다. 주택공급·토지개발과 산업단지 조성사업에 참여하도록 독려하고 있다.

정부가 불경기에 대응하거나 정책적인 목적으로 공기업을 활용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것은 민간기업이 할 수 없는 영역이며 공기업의 존재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국가채무에 대해 그토록 중시하면서 공기업 부채에 대해 느슨한 태도를 취하는 것은 일관성이 없다. 국가부채가 제대로 관리되고 있는지도 장담하기 어렵다.

현재 공기업 부채는 국가가 실질적으로 보증하고 있지만 공식적으로는 국가보증채무에서 빠져 있다. 국가보증채무는 국회의 동의를 얻어 기획재정부 장관이 명시적으로 보증한다. 따라서 올바른 국가부채 관리를 위해서는 금융 및 비금융 공기업 부채를 포함해 국가가 보증하는 모든 채무를 국회 차원에서 관리해야 할 것이다. 국회 동의를 얻는 과정에서 부적절한 사업은 걸러지게 될 것이다.

전기·가스 등 에너지 요금에 대해서는 방송통신위원회와 같이 독립적인 위원회를 통해 심의·결정돼야 할 것이다. 원가와 연동해 요금이 결정될 수 있도록 최대한 정치적 압력을 배제해야 한다. 지금처럼 뜨거운 감자를 돌리는 방식은 에너지 과잉 사용을 유도하고 언젠가 요금의 폭탄 인상을 불가피하게 해 국민에게 충격을 줄 것이다.

정인호 객원기자 프로필

▲캘리포니아 주립대 데이비스 캠퍼스 경제학 박사 ▲KT경제경영연구소 IT 정책연구 담당(상무보) ▲KT그룹 컨설팅지원실 이사 ▲건국대 경제학과 겸임교수 등을 지낸 경제 및 IT 정책 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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