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한국 홍성완 기자] ‘새옹지마(塞翁之馬)’. 새옹의 말이라는 뜻으로 사자성어의 유례는 이렇다. 

옛 중국 만리장성 변방에 살던 노인을 ‘새옹’이라 불렀는데, 이 새옹의 말이 오랑캐 땅으로 달아났다. 마을 사람들이 안타까워 “좋은 말이 달아나서 어쩌하냐”고 하자, 새옹은 “이 일이 좋은 일이 될지 누가 알겠는가”라고 답했다.

얼마 후 이 말이 오랑캐의 뛰어난 말을 데리고 다시 돌아와 마을 사람들은 새옹에게 축하의 이야기를 전했다. 그러자 새옹은 다시 “이 일이 화가 될지 누가 알겠는가”라고 답했다.

얼마 후 노인의 아들이 오랑캐의 말을 타다가 떨어져 다리를 다쳤다. 이에 마을 사람들이 다시 새옹을 위로하자, 새옹은 “누가 알겠소. 이 일이 나쁘기만 할지”라고 답했다.

얼마 후 전쟁이 일어나 장정들이 징집이 되어 싸움터에서 모두 죽었으나, 새옹의 아들만은 다리를 다쳐 징집을 피해 무사할 수 있었다.

이러한 이야기로 인해 인생에 있어 길흉화복이 항상 바뀌어 미리 헤아릴 수가 없다는 뜻으로 ‘인생사 새옹지마’라는 말을 하게 됐다.

새옹지마에 얽힌 이야기를 한 이유는 최근 우리나라의 전투기 사업 추진 과정을 보며 ‘새옹지마’라는 말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FA-50과 KF-21에 대한 관심은 국내보다 국외에서 더 높다. 보통은 자국내 언론들이 더 과장되어 기사를 내는데 반해 우리나라는 옹호든 비판이든 국외 언론들을 인용해 보도하는 경우가 많은 편이다. 그만큼 상대적으로 국민들의 관심이 덜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에 인접한 국가 폴란드는 최근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해 20조원에 달하는 우리나라 방산 무기를 수입하기로 결정하면서 국내에서도 관심이 커지고 있다.

폴란드가 수입하려는 주요 방산 무기는 명품 자주포로 소문난 K-9(썬더)과 3.5세대 최신예 전차 K-2(흑표), 그리고 경공격기 FA-50(파이팅이글)다. 이 자주포들은 전 세계 시장에서 60%를 차지하고 있다. 

특히 FA-50의 경우 폴란드가 48대를 수입하기로 하면서 그동안 망설였던 블록20 업그레이드를 사실상 확정했다. 이로 인해 블록20 업그레이드를 전제로 수입을 하겠다던 말레이시아 수출에도 청신호가 켜졌다.

FA-50의 모체는 고등훈련기로 만들어진 T-50이다.

T-50 개발 당시 일각에서는 초음속의 훈련기가 왜 필요한지에 대한 의문을 가졌다. 비판하는 측에서는 ‘운전면허 시험장에서 페라리를 쓰는 꼴’이라며 비난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러한 조롱과 비판들을 수용했다면 지금의 KF-21(보라매)도 없었을 것이다. 

T-50은 처음부터 초음속 전투기의 기술도입개발 사업으로 진행됐다. KF-X 사업을 어느 정도 염두해뒀다고 볼 수 있다. 

FA-50을 공군이 운용할 때도 비난은 계속 이어졌다. 5세대 전투기를 넘어 6세대 전투기가 나오는 시기에 한계를 지닌 경전투기가 무슨 소용이 있냐는 이유에서다.

이에 대한 비난은 KF-21까지 이어졌다.

KF-21은 4.5세대 전투기로 분류된다. 5세대급 항전장비를 갖췄으나 스텔스 기능은 떨어지는 수준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5세대급 보다는 떨어지지만 4세대 전투기보다는 진보했다는 의미로 4++세대 전투기라고도 부른다.

T-50을 경전투기 FA-50으로 개량하면서 KF-X 사업의 초음속기 독자개발이 가능해졌다고 전문가들은 평한다. 훈련기 치고 과도해 보였던 T-50을 기반으로 FA-50을 운용하면서 KF-21 개발의 중요한 발판이 된 것이다.

KF-X 사업은 2001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공군사관학교 졸업식장에서 “국산 전투기를 개발하겠다”고 천명하면서 시작됐다.

그런데 2006년12월부터 2008년2월 한국개발연구원(KDI)은 KF-X 사업은 ‘타당성이 없다’고 보고서를 내면서 사업 추진이 계속 미뤄졌다. 이후로도 계속 우여곡절 끝에 KF-X 사업 추진이 본격적으로 이뤄지지 못했다. 급기야 2013년에는 기획재정부가 KF-X 예산을 전액 삭감하면서 본격적인 개발은 기약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다행히 1년 만인 2014년 체계개발 예산이 승인되면서 본격적인 KF-X 사업 추진이 이뤄지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앞서 이야기 한 논란은 더 증폭됐다. 천문학적인 개발비용을 이미 완성된 5세대 전투기 수입으로 사용하자는 의견이 지속적으로 제기되는 등 비판의 목소리는 쉽게 사그라지지 않았다.

여기에 더해 미국 록히드 마틴이 기술이전을 약속한 AESA레이다(능동전자주사식 레이다), IRST(적외선 탐색 추적장비), EOTGP(전자광학 표적 추적장비), EW Suite(통합전자전장비) 등 4대 항전장비의 기술이전이 무산됐다. 

미국 의회가 ‘국가적인 중대한 첨단 기술을 이전하는 것을 금지한다’는 명목으로 승인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신형 전투기의 핵심 기술인 4대 항전장비 기술 이전이 무산되면서 KF-X 사업 추진은 또 다시 난항에 빠졌다.

결국 우리나라는 4대 항전장비를 국산 개발하기로 결정한다. 록히드마틴은 “전 세계의 전투기 개발 역사상 10년 만에 개발을 마친 경우는 존재하지 않다. 그런데 4대 항전장비까지 국산화 시킨다는 건 아무리 빨라도 10년, 아니 20년 내 전투기 개발은 절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는 후문도 있다.

하지만 기적에 가까운 이러한 일들을 한화시스템과 LIG넥스원 등 국내 방산업체들과 KAI가 결국 해내고 말았다. 그것도 계획 일정을 넘기지 않고 말이다.

여기에 세계 최고의 공군력을 지닌 미국은 5세대 전투기 F-35의 운용유지비가 천문학적인 규모가 들어가자 공군 전략 운용에 변화를 주기로 결정한다. 바로 육군에 존재하던 개념인 ‘하이-미들-로우 믹스(High-Middle-Low Mix)’ 전략을 공군 운용에 도입하는 방안이었다.

5세대 전투기인 F-35의 도입수량을 줄이고 미들급 전투기와 로우급 전투기의 숫자를 늘려 효율적인 운영을 끌어간다는 복안이다. 사실 이 같은 전략은 대한민국 공군과 함께 일본 항공자위대가 계획하고 있는 전략이기도 하다.

F-35 등 스텔스 기능을 가진 최첨단 전투기로 핵심적인 적국의 시설들을 타겟으로 설정하고, 그 뒤를 미들급 전투기들이 지원하는 방법으로 효율적인 운용에 중점을 두는 전략이다. 로우급 전투기는 지상군을 도와 적국의 지상플랫폼을 파괴하고, 아군 방공망과 협력을 이뤄 본토를 수비하는 역할 등을 수행하도록 한다.

미국 공군이 이 같은 전략 운용 방식을 채택하기로 알려지면서 4.5세대 전투기인 KF-21은 우리 공군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인 관심이 올라가고 있다. 미국 무기 수입이 부담스러운 국가들에겐 KF-21이 훌륭한 대체제가 될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여기에 지난 7월22일에는 1차 시험비행이 성공적으로 이뤄지면서 순조로운 개발 진행상황을 보이면서 여러 국가들 사이에서 물밑 작업이 들어오고 있다.

로우급 전투기인 FA-50 역시 여러 국가의 러브콜을 받고 있다. 수입국인 필리핀과 이라크에서 기대보다 더 좋은 결과를 보여주면서 신뢰성도 매우 높다.

특히, 상대적으로 매우 저렴한 운용유지비와 록히드마틴과의 합작으로 F-16과 부품호환이 70% 이상 가능하다는 점도 기존 F-16 운영 국가들에 관심을 끌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폴란드가 수입을 결정함에 따라 유럽에서도 수출 저변이 급속하게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여기에 폴란드를 포함해 FA-50에 관심을 보이고 있는 국가들은 KF-21 수입까지 염두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처럼 FA-50과 KF-21의 개발 과정과 현 상황을 비교해보면 ‘새옹지마’라는 말이 떠오를 수밖에 없다. 많은 비난을 받았던 FA-50은 경전투기 시장에서 독보적인 위치에 올랐고, FA-50을 운용하면서 얻은 노하우로 인해 KF-21 개발도 순항할 수 있었다.

미국 의회가 법을 만들어 4대 항전장비를 받지 못할 때도 KF-X 사업이 좌초될 위기까지 놓였으나, 오히려 국내 자체 개발에 나서면서 기술적인 도약을 이룰 수 있었다.

그리고 또 하나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 중 하나가 바로 ‘조선업의 침체’가 KF-21 사업 성공에 한 몫 했다는 사실이다.

항공업과 조선업은 기술적인 분야에서 의외로 유사한 부분이 많다고 한다. KF-21 개발 당시 가장 어려운 점 중 하나는 바로 기술 인력 확보였다. 그런데 2014년부터 이어진 조선업의 침체로 인한 대량해고로 인해 인력 수급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조선업의 침체는 우리 경제에 불행한 일이었으나, 우리의 전투기 사업에는 호재 아닌 호재가 됐던 것이다.

아직 시험비행 중인 KF-21에 대한 미래를 단정하기는 이르다. 

그러나 지금까지 비난과 비판 받아온 시간들 속에서 계획대로 일정을 소화해 나가는 과정을 보면 기대감이 높아지는 건 사실이다. 그 동안 강대국의 눈치를 보면서 작은 고장에도 국내에서 정비하지 못하고 몇 달 몇 년을 기다려야 했던 날들을 벗어날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이다.

아울러 KF-21의 성공은 우리나라 방산산업의 항공 플랫폼이 생긴다는 의미도 있다. 

세계적으로도 인정받고 있는 우리의 미사일기술을 마음껏 시험할 수 있는 상황이 펼쳐지는 것이다. 아울러 최근 10년 간 가장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우리의 방산산업에 방점을 찍음으로써 침체되어 가는 국내 수출 산업과 일자리 창출에 새로운 활력이 될 수 있다.

전 세계 경제 침체 속에서 우리 경제 역시 당분간 침체기를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를 통해 우리 경제의 체질을 바꿀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 바로 '새옹지마'의 과정처럼 말이다.

우여곡절 끝에 흉(凶)을 길(吉)로 바꾼 우리 항공우주 개발자들과 기업들, 그리고 지금도 방산 산업 발전에 기여하는 관련 업계 종사자 분들을 보며 우리 모두 좀 더 힘을 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리고 눈앞에 현상만 가지고 다른 이들의 노력을 비난만 하는 것 보다 좀 더 멀리 바라보며 잘한 것은 응원하고 칭찬하는 국민들이 더 많아지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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