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플레로 인한 시장 진정을 위한 미국 연방준비제도의 기준금리 대폭 상승에 따른 원/달러 환율이 1,400원대 고가 행진을 벌이고 있는 29일 오후 서울 중구 명동의 한 사설 환전소 간판을 시민들이 지나가고 있다.ⓒ연합뉴스
인플레로 인한 시장 진정을 위한 미국 연방준비제도의 기준금리 대폭 상승에 따른 원/달러 환율이 1,400원대 고가 행진을 벌이고 있는 29일 오후 서울 중구 명동의 한 사설 환전소 간판을 시민들이 지나가고 있다.ⓒ연합뉴스

 

‘테일러 준칙’(Taylor rule)은 1993년 미국 스탠포드대 존 테일러 교수가 제안한 적정 기준금리 계산공식을 말한다. 2008년 금융위기 이전에는 중앙은행의 기준금리를 결정하는 황금률로 받아들여졌으나 양적완화(QE)와 제로금리가 일상화되면서 사실상 사장되다시피 했었다.

그러나 테일러 준칙이 다시 부활할 조짐이 보이고 있다. 테일러 준칙을 제안한 테일러 교수는 지난 8월 말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5% 기준금리를 목표로 해야 한다"고 이야기했고, 연준 내에서도 일부 논의가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테일러 준칙 기반으로 적정 기준금리를 간단하게 계산해보면 미국은 8.1%, 유럽은 8.8%, 한국은 6.8%까지 올라가야 한다. 여기까지 금리를 끌어올릴지는 미지수이나 이는 결국 연준이 경기침체를 야기할 때까지 긴축을 밀어붙일 수 있다는 것이다. 얼마 전 세계적인 물류업체 페덱스와 다우 운송지수 급락은 그러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올해 주식시장은 중간중간 등락이 있긴 했으나 인플레이션을 헷지할 수 있는 가치주의 ‘상대강도’ 우위가 꾸준했다. 그러나 연준의 최종 승리(?)로 귀결된다면 가치주 역시 항복할 수 밖에 없다. 아이러니하게도 연준이 승리의 팡파르를 울리게 되는 전제조건이 경기침체이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9월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점도표는 금융시장에 큰 충격파를 안겼다. 기준금리 전망치가 직전에 비해 거의 100bp 가까이 상향됐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 걸까. 슬슬 "연준이 지나치게 빨리 가고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실제로 와튼 스쿨의 제러미 시걸 교수는 CNBC 인터뷰에서 "연준이 110년 만에 가장 큰 정책 실수를 범하고 있다"며 강한 일침을 날렸다. 그는 “1년 전 인플레이션이 일시적이라고 했던 사람이 물가 압력이 낮아지고 있는 지금 와서 긴축을 더 가속화하고 있다, 주택과 원자재 모든 가격이 하락하고 있는데 왜 노동자들과 중산층에게 부담을 지우냐. 이미 실질금리는 진작에 플러스권으로 돌아섰다”며 흥분하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혔다. 주말 파이낸셜타임즈(FT)에도 동일한 내용의 특집 기사가 실렸다. 중앙은행이 금리 예측능력이 떨어지다 보니 언더슈팅(단기 급락) 위험보다는 오버슈팅(단기 급등) 위험이 낫다는 식으로 대응하고 있다는 내용이다. 금리인상 속도가 너무 빠르다 보니 그 영향을 가늠할 충분한 시간이 없다는 점도 지적됐다. 또한 통화정책에는 시차가 있기 때문에 인상이 너무 과도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게 되면 불필요한 경기침체가 야기되며 그 강도도 꽤 심각할 수 있다는 보도였다.

그러나 이런 비판에도 불구하고 긴축 경로가 바뀔 가능성은 매우 낮아 보인다. 중앙은행의 전통적 책무는 물가 안정이기 때문이다.

지난 8월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 발표 후 명백하게 달라진 점이 하나 있다. 그것은 더 이상 2023년 금리인하 전망이 컨센서스가 아니게 되었다는 것이다. 기준금리 최종 상단도 4.5%까지 상승했고 금리인하 전망은 미약해졌다.

그럴 만도 한 것이 지표의 세부 내용이 좋지 않았다. 에너지 가격이 크게 하락했음에도 전기 요금은 급등했고, 핵심 물가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주거비의 상승세가 매우 견고하게 유지되고 있다. 주거비 항목은 집값보다는 렌트비와 연계되기 때문에 주택 재고동향이 중요하다. 미국은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붕괴 이후 주택공급이 장기간 위축되었다. 주택 재고 부족은 단기간에 해소될 수 있는 성질이 아니라는 의미다. 물가가 하향 안정화된다 해도 정책 당국이 만족할 정도로 시원하게 떨어지긴 어려울 것 같다.

이에 미국 실질금리는 단 6개월 만에 2년물, 5년물, 10년물, 30년물 전구간 모두 플러스로 돌아섰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이 한창일 땐 돈 빌리기 쉬운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실질금리를 마이너스 수준으로 유지했다. 하지만 연준의 마음이 바뀌고 난 후 단 6개월 만에 실질금리가 모든 구간에서 100bp 이상 상승했다.

미국이야 석유와 가스도 펑펑 나고 ‘리쇼어링’(해외이전 기업의 국내 복귀)도 열심히 하고 있으며, 농산물을 생산해 줄 곡창지대까지 있으니 이런 긴축도 견딜 만한데 다른 나라들은 미국 따라가려다 탈이 나는 수가 있어 걱정이다. 특히 한국은 가계부채라는 자체적인 문제도 있는 상황이라 현명한 판단이 필요하다.

상반기 주식시장 하락의 주된 원인은 주가수익비율(PER), 즉 평가가치(밸류에이션)가 높은 종목들의 멀티플 디레이팅(주가수익비율 하락)이었다. 통화긴축이 시작됐지만 경제재개 모멘텀 덕에 고용시장은 견조했고 주당순이익(EPS) 상승세도 유지됐다.

하락한 것은 단지 밸류에이션 뿐이었다. 미국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의 12개월선행(12MF) PER은 22배에서 15배로 급전직하했다. 그러나 하반기는 양상이 다르다. 최근 주식시장 하락의 주된 원인을 살펴보면 경기둔화와 기업이익의 후퇴로 인한 EPS의 조정이기 때문이다.

7월 초 저점을 찍었을 당시 코스피의 12MF PER은 8.5배에 불과했다. 그런데 최근 애널리스트들의 EPS 하향 조정이 본격화되면서 오히려 PER은 9배 이상으로 상승했다. 실적이 하향되다 보니 아이러니하게도 주가가 떨어졌는데도 오히려 주식이 더 비싸 보이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채권과 주식의 기대수익률 차이인 ‘일드갭’(주식 기대수익률과 국고채 3년물 수익률의 차이를 알아보는 지수) 지표 이야기도 많이 나오고 있다. 통상 PER의 역수를 주식의 기대수익률(E/P)이라고 한다. ‘EPS 하향 = PER 상승 = E/P 하락’이므로 일드갭도 비우호적으로 흘러갈 가능성이 높아졌다. 게다가 S&P500 배당수익률은 2% 정도에 불과한데 부도위험이 없는 미국채 2년물은 4.2%, 10년물은 3.8%에 육박하고 있다. ‘굳이 주식을 왜 해야 하나’라는 질문이 나올 만하다.

시장은 아직 바닥 징후가 잘 안 보인다. 실질금리가 10년 이래 최고치로 급등하고, 다우존스 지수는 직전 저점을 하회했다. 하지만 투자자들의 공포 심리를 나타내는 변동성 지수(VIX)가 아직 안정적인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패닉 셀링’이 없었다는 소리다.

9월부터 연준의 자산긴축(QT) 속도가 2배로 가속화된 상황이라 유동성 여건도 여전히 빡빡하다. 특히 역대급으로 높아진 실질금리에도 불구하고 중앙은행의 긴축 완화 조짐이 전혀 없는 상황이라 경기침체뿐만 아니라 일부 신용위험의 현실화 또한 모니터링을 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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