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즈 트러스 영국 총리(오른쪽)와 쿼지 콰텡 영국 재무부 장관. 지난달 23일 영국 정부가 대규모 감세안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하자 영국 국채 금리가 급등하는 등 금융 시장에 혼돈이 일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리즈 트러스 영국 총리(오른쪽)와 쿼지 콰텡 영국 재무부 장관. 지난달 23일 영국 정부가 대규모 감세안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하자 영국 국채 금리가 급등하는 등 금융 시장에 혼돈이 일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오늘날 세계 경제의 가장 큰 걱정거리는 인플레이션이다. 인플레이션은 화폐 가치의 하락이므로 화폐 소유자의 구매력을 떨어뜨린다. 손해를 만회하기 위해 경제 주체들은 경쟁적으로 가격을 올린다. 기업주들은 상품가격을, 근로자는 임금을 올리려고 안간힘을 쓴다. 

물가가 올라가는 가운데 부담을 타인에게 전가할 수 없는 사람이나 기업들은 타격을 입게 된다. 연금 생활자나 대기업에 납품하는 중소기업 등이 예가 될 것이다. 실질적인 소득 감소를 우려하는 사람들은 소비를 줄이기도 한다. 이 와중에 이득을 보는 사람들도 있고 손해를 보는 사람들도 있지만 전체적으로 부정적인 효과가 크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지난 3월부터 기준금리 인상을 계속하고 있다. 0.25%에 불과했던 기준금리가 벌써 3.25%까지 올라갔으나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2.0%에 이를 때까지 후퇴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반복적으로 밝히고 있다. 

미국의 지난 8월 전년 동월 대비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은 8.3%로 6월의 9.1% 7월의 8.5% 보다 낮으나 여전히 위협적인 수준이다. 연준이 정한 목표인 2.0%와는 한참 차이가 나므로 기준금리 인상은 한동안 계속될 전망이다.

인플레이션은 향후 어떻게 될 것인가?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이지만 나름대로 추정하기 위해서는 인플레이션의 원인부터 짚어보는 것이 필요하다. 

현재와 같은 인플레이션이 시작된 것은 지난해 초 무렵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의 발병에 따라 공장 폐쇄 등으로 공급망이 훼손되고 석유·곡물·금속의 3대 원자재 가격이 모두 폭등하면서 공급 측면에서 충격이 왔다. 

그러나 대규모 실업 발생 등으로 수요도 급감했으므로 당장 물가가 올라간 것은 아니었다. 다만 재난지원금 등 정부의 적극적인 재정 확대에 힘입어 수요가 회복되면서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공급이 좀처럼 이전 수준을 만회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올해 들어서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석유·가스 등 에너지와 곡물 가격이 치솟으면서 사태가 악화된다. 그러니까 현재의 물가 상승은 다분히 공급 측면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금리를 올린다고 공급이 느는 것도 아닌데 연준은 왜 금리를 인상시키는 것일까? 

금리 인상의 목적은 수요 억제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그동안 미국을 위시한 다수 국가들은 낮은 금리와 양적완화를 통해 자산 가격을 올리고 그로부터 발생하는 ‘부의 효과’에 힘입어 경기를 부양했다. 부자가 됐다는 인식으로 소비를 늘리자 그를 뒤쫓아 투자도 증가하는 것이다. 

거기에다 코로나19에 따른 막대한 재난지원금 살포도 수요 진작에 역할을 했다. 미국 정부는 2020년 3회에 걸쳐 전 국민을 대상으로 재난지원금을 지급했고 바이든 행정부가 출범한 직후인 지난해 3월에는 아예 ‘미국 구조 계획’이라는 법을 제정해 1조 9000억달러를 지출했다. 이는 미국 국민소득의 8.5%에 해당하는 것으로 미국 역사상 최대 규모다. 

미국의 재정확대는 지속되고 있다. 지난 8월에는 ‘반도체 칩과 과학법’을 제정해 2800억달러를 반도체와 첨단기술 생태계 육성에 투자할 계획이고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을 발효시켜 전기차 보조금 등에 4370억달러를 지급할 예정이다. 

공급이 좀처럼 회복되지 못하는 상태에서 이처럼 수요를 자극하는 정책이 시행되니 인플레이션이 잡힐 리가 없다. 미국 정부에서 할 수 있는 유일한 대응책은 금리를 올려 자산가격을 내림으로써 수요를 억제하는 것뿐이다. 이것은 경기 침체를 불가피하게 불러온다. 

금리 인상이 달러를 강세로 만들기 때문에 미국 입장에서 원자재 가격을 하락시킬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원자재는 달러로 거래되는데 달러의 강세는 미국을 제외한 국가에게 자국 통화가치로 평가한 수입 원자재 가격의 상승으로 나타난다. 이는 원자재 수요를 위축시킨다. 

반대로 원자재 생산 국가에게는 가격이 오른 효과가 나타나므로 공급을 늘릴 유인을 제공한다. 더구나 임금 등 생산비용은 자국 통화로 지급되므로 달러 가치가 오르면 생산비가 줄어드는 효과도 발생한다. 원자재 수요의 감소와 공급의 증가는 원자재 가격의 하락으로 나타난다. 

미국의 금리 인상은 달러의 지배력을 유지하기 위해 어느 정도 불가피하기도 하다. 그동안 미국은 제로 금리에 더해 막대한 양적완화로 전 세계에 달러를 살포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 9000억달러에 불과하던 연준의 자산은 9조달러로 10배가량 증가했다. 인플레이션의 억제는 이러한 돈의 회수를 위한 좋은 명분을 제공하기도 한다. 

인플레이션의 주요한 원인이 공급 측면에 있는 상황에서 미국의 금리 인상은 전 세계의 인플레이션 위기 타개에 큰 도움이 되기는 어렵다. 오히려 우크라이나 사태의 악화와 유럽의 에너지 위기 등 지정학적 요인에 의해 악화될 가능성이 크다. 더구나 미국은 자국 중심으로 글로벌 공급망을 재편함으로써 그동안 물가 안정에 도움을 주던 세계화에서 벗어나고 있다. 

인플레이션이 정점을 친 듯 주춤하고 있으나 앞으로 빠르게 내려가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뜻이다. 우리나라의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은 지난 7월 전년 동월 대비 6.3%를 고비로 8월 5.7%, 9월 5.6%로 주춤하고 있으나 아직 하강 추세로의 반전을 확신하기 어렵다. 

이러한 상황에서 미국의 금리 인상은 우리에게 어려운 과제를 던져준다.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 금리를 낮게 유지하면 환율 급등으로 외환시장과 자본시장이 불안해지고 수입 물가가 더욱 기승을 부리게 된다. 

반대로 미국을 따라 금리를 급하게 올리게 되면 경기가 빠르게 식고 부동산 가격을 급락시킴으로써 가계부채 문제를 폭발시킬 위험이 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미국의 눈치를 보며 안절부절 못하는 처지에 놓인 것이다. 

그렇더라도 인플레이션이 상당기간 지속되고 경기의 악화가 어느 정도 불가피하다는 전제 하에서 대응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부동산 경착륙이 가계부채의 상당 부분을 부실화시키고 이것이 금융기관으로 전이되는 사태를 막는 것이다. 

다중채무자, 청년 및 고령층, 자영업자 등 취약계층과 제2금융권에 집중된 가계부채는 고금리에다가 상환능력이 떨어져 비상시의 충격을 견디기 어렵다. 부동산 경기 급랭은 미분양으로 이어져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 등의 금융에 타격을 주고 이것이 다른 부문으로 확산될 위험도 크다.

정부의 재정을 충실하게 관리하는 것도 중요하다. 가계와 기업이 위기에 봉착했을 때 그것을 구제하고 충격을 흡수하는 것은 정부의 재정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점에서 정부의 법인세 및 종합부동산세 인하 조치는 재고돼야 할 것이다. 

최근 영국 정부는 450억파운드(약 73조원)의 감세 조치를 발표하고 그로 인한 부족분을 국채 발행으로 메우겠다는 방침을 세웠다가 파운드 가치의 급락과 국채 금리의 급등이라는 위기를 자초한 바 있다. 

영국과 같은 준기축통화국조차 그러한데 우리나라는 말할 것도 없다. 충분한 재정을 유지하며 위험에 처한 취약계층과 중소기업을 지원함으로써 불가피한 경기 침체와 인플레이션의 골짜기를 조심스럽게 지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정인호 객원기자 프로필

▲캘리포니아 주립대 데이비스 캠퍼스 경제학 박사 ▲KT경제경영연구소 IT 정책연구 담당(상무보) ▲KT그룹 컨설팅지원실 이사 ▲건국대 경제학과 겸임교수 등을 지낸 경제 및 IT 정책 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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