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군인·일용직 거쳐 당구에 ‘올인’
국내 선수 최초로 ‘퍼펙트 큐’ 달성

프로당구 선수 김종원이 스포츠한국과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이혜영 기자 lhy@hankooki.com
프로당구 선수 김종원이 스포츠한국과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이혜영 기자 [email protected]

부산 토박이 김종원(47·TS샴푸·푸라닭 히어로즈) 선수의 사투리는 부드럽고 구수했다. 외모에서 풍기는 넉넉함이 말투에도 담긴 듯하다. 그는 대한당구연맹 소속으로 선수 활동을 할 때 단 한 차례만 방송에 등장했다. 줄곧 상위권 순위를 유지했지만, PBA가 출범할 당시만 해도 ‘듣보잡’ 선수였다. 그는 늦깎이 선수다. 서른 살에 선수로 등록했다. 직업군인과 일용직 노동자를 거쳐 모은 돈으로 버티면서 선수 생활을 이어갔다. 생계를 위한 ‘투잡’도 기웃거리지 않았다. 오로지 당구만 바라본 ‘외길’ 인생을 걸어왔다. 그래서인지 아직 독신으로 지낸다. 당구와 오랜 연애를 택한 김종원은 으레 겪을 법한 권태기도 없었다. 아직도 시합장에 나서면 설렘이 여전하다.

해군 부사관·조선소 일용직 출신

대대 입문 6개월 만에 선수 등록

김종원은 당구의 매력에 흠뻑 빠졌지만, 선수가 될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는 고등학교 2학년 때 아버지를 여읜 슬픔을 잊기 위해 친구들과 심심풀이로 당구장을 찾았다. 당구와 상성이 잘 맞았다. 공부에는 큰 관심이 없어 진학보다는 직업군인을 선택했다. 해군 부사관으로 입대하기 전까지 매일 당구장에서 살다시피 했다.

“처음에 어머니가 당구장 출입을 반대하셨습니다. 당시만 해도 당구장 흡연이 만연할 때라 제가 흡연을 하지 않아도 제 옷이나 머리 정수리에 담배 냄새가 진득하게 배어 나왔거든요. 학생인 제가 담배 피우러 당구장을 간다는 오해를 하실 수밖에 없었죠. 그래서 어머니께 절대 담배를 피우지 않겠다고 굳게 약속한 뒤 당구장에 갈 수 있었어요.”

5년의 해군 부사관 근무를 마친 그는 조선소의 일용직으로 지냈다. 당구는 일과를 마치고 동료들과 취미로 즐겼다. 4구 기준 400점 정도 실력이었다.

계속 당구장을 찾았지만, 홀로 된 어머니와의 금연 약속은 지금까지 지키고 있다. 그나마 40대 후반의 나이에도 비교적 체력을 유지할 수 있는 바탕이 됐다.

“서른 살이 되자 좀 쉬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직장을 다 접고 당구장을 찾았습니다. 그때 처음으로 국제식 대대를 접했는데 완전히 새로운 세계가 열린 것 같았어요. 그래서 이후에는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고 당구장에서 살다시피 했죠.”

프로당구 선수 김종원이 스포츠한국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혜영 기자 lhy@hankooki.com
프로당구 선수 김종원이 스포츠한국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혜영 기자 [email protected]

당시만 해도 김종원은 당장 생계나 미래를 걱정하지 않았다. 생활비는 10년간 모아놓은 돈으로 절약하면서 충당했다. 딱히 미래를 설계할 만한 계기도 없었다. 그냥 당분간 스스로 하고 싶은 것만 하자는 마음가짐이었다.

“대대 입문하고 6개월 정도 지나자 주변 선수들의 권유와 추천을 받아 바로 부산당구연맹 선수로 등록을 했습니다. 처음 20점으로 시작해 1년 후 30점을 놓았으니 20점 중후반의 부족한 실력으로 선수가 된 거죠. 하지만 매일 당구장에서 게임과 연습만 몰두해서 그런지 실력이 쑥쑥 늘었어요.”

김종원은 비록 선수로 활동을 시작했지만, 성공하겠다는 뚜렷한 목표가 없었다. 생계를 위해 다른 일을 구하지 않고 당구에만 집중했다. 하지만 모은 돈을 불리기 위해 여기저기 투자했다가 낭패를 보기도 했다. 이런저런 풍파를 겪으면서 당구장 매니저 일을 찾아 나섰다. 자연스럽게 ‘헝그리 정신’을 담금질할 기회가 된 셈이다.

“경제적 어려움 등을 겪으면서 결혼 시기를 좀 놓쳤어요. 당구 선수의 길을 가면서 누군가를 책임진다는 일이 겁이 나고 무서웠나 봐요. 그러다 보니 지금까지 독신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나 봅니다. 이제는 마음만 맞는 상대만 만난다면 결혼을 하고 싶어요. 단지 떠밀려서 급하게 하는 결혼만은 사양입니다.”

PBA 출범이 새로운 동기 부여

“팀 리그 합류가 행운...그저 감사할 따름”

연맹 소속 당시 김종원은 전국대회 8강이 최고 성적이었다. 그나마 경기 장면이 방송에 나갈 기회도 거의 없었다. 그렇다고 하위권을 맴돌지는 않았다. 꾸준하게 20~30위권 성적을 유지하는 탄탄한 실력을 갖췄지만, 지명도는 낮았다.

PBA가 출범하자 그는 새로운 동기 부여를 갖게 됐다. 당구 선수로서 도전 의식이 솟아난 것이다. 바로 프로 선수로 전향했다.

“프로 무대에 참여할 기회가 생긴 것만 해도 다행이라고 생각했죠. 정상급 실력을 갖춘 선배 선수들이 생계 때문에 당구계를 떠나는 사례를 많이 봤거든요. 불운했던 거죠. 그에 비하면 저를 포함해 프로가 된 선수들은 기회를 잡은 겁니다. 실력만 있으면 대우를 받는 구도에 뛰어들 수 있으니까요.”

개막 시즌에는 신통한 성적을 내지는 못했다. 두 번째 시즌에 로빈슨 모랄레스(콜롬비아)가 개인 사유로 당시 TS샴푸 팀에서 이탈하자 김종원이 발탁됐다. 

“장기영 구단주께서 저를 직접 선택하셨어요. 정말 놀랍기도 하고 기뻤습니다. 하지만 저 스스로 마음의 준비가 덜 된 상태였나 봅니다. 단순하게 ‘나만 잘하면 된다’라는 생각에 팀원들까지 신경을 쓰지는 않았거든요. 시간이 지나서 보니 착각이었습니다. 팀원끼리 소통과 화합이 더 중요하다는 점을 뒤늦게 깨달았죠.”

프로당구 선수 김종원이 스포츠한국과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이혜영 기자 lhy@hankooki.com
프로당구 선수 김종원이 스포츠한국과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이혜영 기자 [email protected]

김종원이 합류한 후 팀 성적은 계속 바닥권으로 추락했다. 팀 분위기는 가라앉았고 팀원들 사기도 덩달아 떨어졌다. 분위기 전환 차원에서 구단은 김종원을 새로운 리더로 교체했다.

그는 당구를 시작한 이후 처음으로 막중한 책임감과 부담감을 가졌다. 어깨가 무거웠다. 팀 성적을 살리고 팀원들의 화합도 이끌어야만 하는 과제가 놓여 난감했다.

“일단 내 모든 것을 내려놓았습니다. 리더로서 뭔가를 지적하는 것이 아니라 팀원들이 편안하게 시합을 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살려주면서 부담감을 덜어주자고 결심했죠. 실없는 우스갯소리도 많이 던지기도 했습니다. 또 성격 자체가 좀 덤벙거리면서 ‘허당끼’가 있다 보니 팀원들이 쉽게 마음을 열 수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팀 막내인 용현지 선수가 합류하면서 팀 분위기의 활력소가 돼 김종원을 거들어줬다. 팀이 승리를 거둔 후 글로벌 신드롬을 일으킨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인사법의 마무리 동작을 세리머니로 펼친 것도 용현지의 아이디어였다. 이 동작은 팀이 승리를 거둘 때마다 선보인 장기영 구단주 특유의 동작에 대한 오마주였다.

하위권에 머물렀던 팀 성적도 살아났다. '웰컴저축은행 PBA 팀 리그 2022-2023' 전기 리그에서 TS샴푸·푸라닭은 예상을 뛰어넘고 하나카드에 이어 2위를 차지하면서 포스트시즌 직행에 성공했다. 부상 등으로 오랜 기간 부진했던 주축 이미래 선수가 부활한 것도 소득이다. 

“리더가 된 이후 신경 쓸 일이 한둘이 아니어서 머리가 좀 아프긴 합니다. 팀원들 상황을 세심하게 살펴야 하고 매번 상대 팀 출전 선수를 예상하면서 대진표를 짜는 일도 고역이죠. 팀의 소통과 함께 분위기를 살리는 일도 만만치 않아 정작 팀 리그에서 제 성적이 좀 안 좋기도 해요. 그래도 저를 선택해준 구단주님과 팀에 지금도 감사드릴 뿐입니다. 저에게는 다시 없을 행운이죠.”

쿠드롱과 연달아 대결...소중한 경험

“환갑 넘어도 선수로 남는 게 목표”

김종원은 해외에서 열린 3쿠션 월드컵 대회에 나가지 못했다. 국내에서 열린 월드컵 대회에서도 ‘4대 천왕’급의 세계적인 선수들과 직접 대결할 기회가 없었다.

그에게 PBA 개인 투어는 기회의 장이다. 4대 천왕 중 한 명인 프레드릭 쿠드롱(웰컴저축은행) 선수와 맞대결을 펼치는 것 자체가 어쩌면 소중한 기회이자 행운이다. 경기를 통해 얻는 배움이 한 단계 더 성장할 수 있는 자양분이 되기 때문이다.

“쿠드롱 선수와 지난해 마지막 시즌 왕중왕전부터 올해 시즌까지 세 번이나 연이어 대결했지만 다 졌습니다. 처음에는 자꾸 주눅이 들고 위축됐는데 이후부터는 조금씩 익숙해지면서 편안해지기 시작했어요. 지더라도 내 공만 치자, 쉽게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끈질기게 달라붙자, 기회를 주지 말자고 되새겼더니 이제는 다시 붙으면 이길 수도 있겠다는 자신감이 들기도 해요. 경험이 중요하다는 점을 새삼 깨달았죠.”

프로당구 선수 김종원이 스포츠한국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혜영 기자 lhy@hankooki.com
프로당구 선수 김종원이 스포츠한국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혜영 기자 [email protected]

그는 지난해 9월 ‘TS샴푸 PBA 챔피언십 2021’ 대회 128강 전에서 국내 선수 최초로 퍼펙트 큐의 주인공이 됐다. 상대 점수와 상관없이 한 큐에 15득점으로 세트를 끝내는 퍼펙트 큐는 이전까지 외국인 선수들의 전유물이었다.

“솔직히 운이 좋았어요. 마지막 1점이 남았는데 뒤돌려치기 배치가 왔습니다. 이미 좀 흥분했는지 저도 모르게 그냥 샷이 나갔죠. 그 배치가 사실 키스 위험이 큰 함정이 있었거든요. 정말 운이 좋아서 겨우 키스를 피하고 퍼펙트 큐를 기록한 것인데 지금 생각해도 좀 아찔해요. 평소에도 공략법이 제대로 정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급작스러운 샷이 나가는 단점이 있는데 그 실수를 반복한 거죠.”

김종원은 아직도 당구 선수가 된 인생을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다. 지금도 시합에 나가면 등골을 타고 올라오는 압박감, 긴장감, 설렘을 즐긴다. 그 짜릿한 기분을 평생 놓치고 싶지 않다고 한다.

한창때는 하루에 10시간 이상 연습해도 질릴 틈이 없었다. 체력 역시 끄떡없었다. 하지만 나이가 점점 들면서 지금은 하루 5시간 정도 집중해 연습하는 편이다. 대회를 마치면 경기장에서 부산까지 운전하는 동안 복기를 수없이 반복한다. 그에게 장거리 운전은 복기를 통해 실력을 향상하는 꿀팁이다.

“나이가 들어도 체력이 허락할 때까지 선수로 뛰고 싶습니다. 환갑이 지나도 젊은 선수와 붙어 승리하는 것이 가장 큰 목표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성적도 꾸준해야 하고 체력이 뒷받침돼야죠. 시합에 집중하려고 개인 레슨도 전혀 하지 않고 있습니다.”

정완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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