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메이저 대회인 마스터스 토너먼트가 열리는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클럽의 전경과 타이거 우즈가 경기하는 모습이다. 사진제공=ⓒAFPBBNews = News1
매년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메이저 대회인 마스터스 토너먼트가 열리는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클럽의 전경과 타이거 우즈가 경기하는 모습이다. 사진제공=ⓒAFPBBNews = News1

 

 

[골프한국] 골프는 가장 여성적인 게임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골프를 즐기는 남녀 성비가 74.5대 25.5로 남성이 압도적이지만(한국레저산업연구소 2022년 레저백서) 골프의 속성은 어느 모로 보나 여성과 밀접하다. 

 

실제로 코스 설계가들은 여체에서 코스 설계의 모티브를 얻는다고도 한다. 

“싱글 플레이어도 잘 쳐야 한 라운드에 6~7개의 나이스 샷을 할 뿐 나머지는 모두 나이스 미스 샷이다.”라는 명언을 남긴 토미 아머(Tommy Armour:1896~1968)는 그의 베스트셀러 에서 “골프코스는 여인을 닮았다. 우리는 그녀를 어떻게 대할 것인지 잘 알고 있는가 여하에 따라 여인들을 행복하게 해줄 수 있고, 아니면 가까이하지 못하게 할 정도로 거칠어지게도 할 수도 있다. 골프코스도 마찬가지다.”라고 했다. 토미 아머의 이 명언은 골프코스를 벗어나 골프 자체의 속성을 적나라하게 표현한 절창으로 다가온다.

 

스코틀랜드에서 태어난 토미 아머는 1920년 미국행 이민선 안에서 당대 최고의 골퍼였던 월터 헤이건(1892~1919)을 우연히 만나 골프와 인연을 맺었다. 헤이건은 디 오픈에 참가했다가 돌아가는 길이었다. 헤이건은 아머가 마음에 들었는지 그가 미국 골프장에서 일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다.

 

1930~1950년대에 프로선수로 활약한 아머는 US오픈과 디 오픈, PGA투어 챔피언십 등 3개의 메이저를 포함해 PGA투어 통산 25승을 달성했다. 현역 은퇴 후에도 스윙코치로 활약, 위대한 프로선수이자 위대한 스윙코치라는 명성을 누렸다. 
자신도 모르게 스윙에 이상이 나타나는 현상을 뜻하는 ‘Yips(입스)’라는 용어를 대중화시킨 그는 스윙을 주도하는 손이 왼손이냐 오른손이냐를 두고 논쟁이 일자 “왼손은 클럽헤드의 방향을, 오른손은 볼을 강하게 가격하는 힘의 원천”이라며 오른손과 오른팔의 역할을 강조했다. 

현재 PGA 챔피언스투어에서 활약하는 그의 손자 토미 아머 3세(63)는 PGA투어 2승을 포함 프로 전적 8승으로 할아버지의 명성을 잇고 있다. 

 

그가 골프의 길로 들어서는 데 결정적 계기가 된 월터 헤이건은 모두가 인정하는 전설적 골퍼다. PGA투어 통산 45승을 올렸는데 이 중 11번이 메이저 우승이다. 이는 잭 니클라우스(18회), 타이거 우즈(15회)에 이어 역대 3번째 대기록이다. 물론 당대에는 최고 기록이었다. 그래서 그에겐 ‘프로골퍼의 아버지’란 극존칭이 따른다.

후에 그의 생애를 다룬 ‘베가번스의 전설(The Legend of Bagger Vance)’이란 영화와 저서가 나올 정도로 그는 미국 골프 팬들의 사랑을 받았다. 헤이건으로 분한 로버트 레드퍼드의 연기가 인상적이었다.

 
토미 아머의 말대로 골프코스를 일방적으로 공략하려 들다가 많은 골퍼들이 어김없이 실패의 쓴맛을 보게 된다. 여인을 자기 뜻대로 하려 들면 십중팔구는 실패를 경험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사랑하고픈 여인을 만났을 때, 이 여인이 어떻게 내 사랑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할 것인가를 곰곰이 생각하듯 골프코스도 사랑을 구하는 진지한 자세를 갖춘 골퍼에게 마음을 열어준다. 
교감이 없는 관계란 일방적일 수밖에 없다. 그것은 관계가 아니다. 관계란 항상 둘 이상의 교감에서 발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랑은 더더욱 아니다.

 

오랫동안 '금녀의 벽'으로 둘러싸여 있었던 뮤어필드 골프클럽. 18번홀 그린의 모습이다. 사진제공=ⓒAFPBBNews = News1
오랫동안 '금녀의 벽'으로 둘러싸여 있었던 뮤어필드 골프클럽. 18번홀 그린의 모습이다. 사진제공=ⓒAFPBBNews = News1

 

 

골프클럽도 여성을 대하듯 끈기와 정성을 가지고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이렇게 해서 한번 손에 익은 클럽은 조강지처처럼 좀처럼 바꾸기가 쉽지가 않다. 또한 사랑과 정성을 쏟듯 싱글 핸디캐퍼들도 골프 감이 달아나지 않도록 연습을 게을리하지 않는 것이다. 

 

이처럼 골프 자체의 속성은 너무나 여성적이지만 골프 역사에서 여성과 골프의 관계는 원만하지 못했다.
최초의 여성골퍼는 스코틀랜드의 매리 여왕으로 알려져 있다.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의 골프광인 매리 여왕은 부군인 당리 경(卿)이 암살당한 지 3일도 안 돼 젊은 무장인 보스월 백작과 골프를 쳤다. 이 행동을 두고 의회가 규탄하기 시작했고 ‘여왕이 백작과 공모해서 남편을 죽였다’는 소문까지 나돌았다.

결국 여왕은 1587년 골프 역사상 가장 무거운 벌타를 받았다. 남편이 암살된 지 3일 만에 친 골프가 화근의 씨앗이 되어 기어코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졌다. 그녀의 비참한 운명은 여성 골퍼의 불행을 예고한 것으로, 이후 200년간 여성은 골프장에 얼씬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골프클럽이 ‘금녀(禁女)의 낙원’ 즉 ‘이브리스 파라다이스(Eveless Paradise)’로 불리기도 했다.

 

*칼럼니스트 방민준: 서울대에서 국문학을 전공했고, 한국일보에 입사해 30여 년간 언론인으로 활동했다. 30대 후반 골프와 조우, 밀림 같은 골프의 무궁무진한 세계를 탐험하며 다양한 골프 책을 집필했다. 그에게 골프와 얽힌 세월은 구도의 길이자 인생을 관통하는 철학을 찾는 항해로 인식된다.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의견으로 골프한국의 의견과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 *골프한국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길 원하시는 분은 이메일([email protected])로 문의 바랍니다. / 골프한국 www.golf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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