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가 상승 요인에 따라 적절히, 그리고 천천히 전기요금을 올리기 위해서는 정치적으로 독립적인 기구를 통한 의사결정이 필요하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원가 상승 요인에 따라 적절히, 그리고 천천히 전기요금을 올리기 위해서는 정치적으로 독립적인 기구를 통한 의사결정이 필요하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최근 에너지 비용이 급등하면서 서민들을 놀라게 하고 있다. 지난달 전기와 가스요금이 각각 18.6%, 36.2% 올랐다. 대부분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원재료의 국제 가격이 크게 오른데다가 한국전력의 경우는 막대한 적자에 시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에너지별 발전비율은 2020년 기준으로 석탄 44.0%, 원자력 38.9%, 액화천연가스(LNG) 15.0% 순이다. 석탄의 경우 호주 뉴캐슬 기준 전력용 연료탄 현물 가격이 지난해 9월 톤당 182.6달러에서 올해 9월에는 역대 최고치인 452.8달러로 147.9% 올랐다. LNG도 비슷해 지난 9월 기준으로 1년 동안 톤당 571.15달러에서 1465.16달러로 156.5% 올랐다.  

원자재 가격이 오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한전의 경우 오랫동안 전기요금 인상이 억제된 것은 문제가 있다. 적자가 누적됨으로써 인상 압력이 쌓이다가 한꺼번에 대폭 인상됨으로써 경제에 타격을 준 것이다. 한전의 부채는 올해 2분기 기준으로 165조 8000억원에 이르고 적자는 상반기 14조원인데 연말까지 30조원에 달할 전망이다. 

더구나 막대한 채권을 발행해 적자를 보전해야 했는데 이것이 채권시장의 자금을 빨아들여 일반 기업들에게 자금난을 유발하고 있다. 한전은 올해 23조 9000억원어치의 채권을 발행했고 누적 발행액은 64조 7000억원에 이른다. 

전기요금은 2013년 이후 올해까지 9년간 인상이 억제됐다. 그동안 물가 상승률을 감안하면 오히려 내린 셈이다. 2019년 여름 냉방 장치 사용 증가에 따라 전기요금 부담이 늘어나자 요금의 누진 구간을 확대하는 방식으로 실질적인 요금을 낮추기도 했다. 지난해부터는 ‘연료비 연동제’를 도입해 연료비 상승시 이를 요금에 반영하도록 했으나 실행하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 말기에 들어서야 겨우 ㎾h당 9.8원의 기준연료비를 올리기로 하고 지난 4월과 10월에 각각 절반인 ㎾h당 4.9원을 인상한 것이다. 기준연료비는 LNG, 석유, 석탄 등의 무역 통관 가격 직전 1년간 평균치를 반영해 산정한다. 전기요금은 기본요금·전력량요금·기후환경요금·연료비조정요금 등으로 구성되는데, 이 중 전력량요금에 기준연료비가 포함된다. 

이처럼 전기요금 인상이 억제된 것은 물론 정치적인 이유 때문이다. 생활에 필수적인 서비스이자 제조업의 주요한 생산 요소인 전기 가격이 상승하면 고스란히 지지율 하락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어떤 정권이 들어서던 자신의 임기 중 요금 인상을 억제하고 다음 정권으로 부담을 넘기려는 유혹에 시달렸다.

따라서 원가 상승 요인에 따라 적절히, 그리고 천천히 전기요금을 올리기 위해서는 정치적으로 독립적인 기구를 통한 의사결정이 필요하다. 현재도 전기요금 조정 등을 담당하는 전기위원회가 있으나 산업통상자원부 소속으로 독립성이 결여돼 있다. 

현재 전기요금은 전기사업법에 따라 한전이 조정안을 작성해 산업부에 신청하면 전기위의 심의·의결을 거쳐 산업부가 최종 인가한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전기위는 심의만 하고 산업부가 결정권을 갖는다. 전기위는 9명의 위원으로 구성돼 있는데 산업부 에너지산업실장 1명만이 상임위원이며 나머지 민간위원 8명은 모두 비상임위원이다. 

이와 같은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기준금리를 결정하는 금융통화위원회와 같은 독립적인 기구 설립이 필요하다. 금통위는 대통령이 임명하는 한국은행 총재가 의장을 겸임한다. 또한 회의 내용에 대해 의사록을 작성하고 통화신용정책에 관한 사항은 외부에 공개한다. 정치적 외압에 비교적 독립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것이다. 

전기위가 독립적인 기구가 되고 전기위원장이 대통령이 임명하는 장관급으로 격상되면 정치권이나 물가 당국의 의사와 무관하게 원가를 기준으로 전기요금을 결정할 수 있을 것이다. 전기위에 보다 큰 영역과 권한을 줌으로써 에너지 정책 전반에 일관성을 유지할 수도 있을 것이다. 

전기요금의 인상과 더불어 불합리한 가격 결정 구조도 개선할 필요가 있다. 현재 한전의 6개 자회사와 민간발전사가 발전을 담당하고 있고 송배전을 독점하고 있는 한전은 이들로부터 전기를 사서 일반 소비자에게 공급하는 구조를 갖고 있다. 

한전이 전기를 사오는 도매가격은 발전 단가가 가장 비싼 LNG 발전소를 기준으로 결정되고 있다. 따라서 발전사는 손해를 보지 않고 한전이 고스란히 부담을 떠안는 결과를 빚고 있다. LNG 수입 가격 상승으로 도매 가격은 올라가지만 한전이 받을 수 있는 소매 가격은 동결돼 있기 때문이다. 

7대 민간발전사의 올해 상반기 영업이익은 1조 600억원에 달한다. 특히 전력 사용량이 적은 2분기에 전년 대비 9배 이상 늘어난 2215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는데 이는 도매가격 상승에 기인한 것이다. 따라서 도매가격상한제를 도입해 이들이 이익을 보고 한전이 손해를 보는 구조에 제한을 가할 필요가 있다. 

더 나아가 사실상 담합처럼 운용되는 발전 시장에 경쟁을 도입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우리나라는 외환 위기 직후 전력 시장의 민영화를 추진하다가 노무현 정부 시절 중단되면서 기형적인 구조를 갖게 됐다. 

이명박 정부 시절에는 민간기업의 발전 시장 진출을 촉진하는 정책을 사용함으로써 이들의 발전 비중이 크게 늘어나게 됐다. 지난 5월 기준 민간 발전사의 판매 비중은 전체 전력 거래량의 28.84%, 거래 금액의 37.99%를 차지하고 있다.

전력 시장의 구조는 시장 경쟁을 취하는 모습을 갖췄지만 실제 운영은 정부가 독점 시장을 통제하는 형태로 이뤄지고 있다. 이 과정에서 민간발전사는 별다른 경쟁 압력 없이 정부가 받쳐주는 우산 아래서 손쉬운 수익을 거두고 있다. 

정부에서도 이러한 문제점을 인식하고 전력 도매 시장에 ‘가격 입찰제’를 도입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발전사가 기준연료비의 ±5~10% 범위에서 가격을 써내면 한전이 그 중에서 싼 것을 골라 사도록 하고, 제도가 정착하면 전면 경쟁 입찰로 전환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방식은 발전원별로 가격을 차등화하고 원가절감 유인을 제공함으로써 도매 가격을 낮추는데 기여할 것이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지나치게 낮은 원가만을 강조하면 마땅히 퇴출돼야 할 화석연료의 사용을 오히려 촉진하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석탄을 이용하는 화력발전소의 질서 있는 축소를 유도하고 세계적인 추세인 재생산에너지의 점진적 확대를 이끌어낼 수 있도록 제도의 설계가 필요하다. 수요자인 한전으로 하여금 클린에너지에 대한 가중치를 줄 수 있도록 함으로써 이러한 방향으로의 전환을 유도할 수 있을 것이다.

현재 한전의 막대한 적자와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인해 우리나라의 전력 시장은 중대한 전기를 맞고 있다. 잡다한 규제를 통해 억지로 전기요금 인상을 억제하려고 시도하기보다는 새로운 제도 도입을 통해 전력 시장의 왜곡을 바로잡는 계기로 삼는다면 전화위복의 결과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이다. 

정인호 객원기자 프로필

▲캘리포니아 주립대 데이비스 캠퍼스 경제학 박사 ▲KT경제경영연구소 IT 정책연구 담당(상무보) ▲KT그룹 컨설팅지원실 이사 ▲건국대 경제학과 겸임교수 등을 지낸 경제 및 IT 정책 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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