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준이 사상 초유의 4연속 자이언트 스텝(한 번에 기준금리 0.75%포인트 인상)을 단행함에 따라 한국은행도 24일 6차례 연속 기준금리를 올릴 것으로 예상된다. 사진은 3일 서울 시내 한 은행에 내걸린 금리 현수막.ⓒ연합뉴스
미국 연준이 사상 초유의 4연속 자이언트 스텝(한 번에 기준금리 0.75%포인트 인상)을 단행함에 따라 한국은행도 24일 6차례 연속 기준금리를 올릴 것으로 예상된다. 사진은 3일 서울 시내 한 은행에 내걸린 금리 현수막.ⓒ연합뉴스

 

밀튼 프리드만은 "인플레이션은 언제 어디서나 화폐적 현상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이 화폐수량설은 '중앙은행이 인플레이션을 통제할 능력이 있다'고 믿게 만드는 역할을 했다.

그러나 강산은 변하기 마련이다. 요새 미국에서는 '재정적 물가이론'이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재정적 물가이론은 2011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토마스 사전트  뉴욕대 교수, 크리스토퍼 심즈 프린스턴대 교수의 이론이다. 이는 물가와 재정은 불가분의 관계이며, 아무리 중앙은행이 노력을 해도 정부가 계속 지출을 늘리면 재정적자는 증가하고 인플레이션은 절대 잡지 못한다는 주장이다. 어차피 일반 대중 입장에서는 중앙은행이 돈을 푸나, 정부가 돈을 푸나 똑같은 돈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영국에서도 감세를 주장하다가 채권금리가 급등하고 파운드화가 급락하자 결국 총리가 책임을 지고 사임했다. 영국처럼 함부로 돈을 풀다가 인플레이션만 자극하고 금융시장을 망가뜨릴 수 있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함부로 돈 쓰지 말자'는 재정균형주의가 세를 얻을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다. 이렇게 되면 정부 정책이 'V'자 반등을 만들고, 망할 가능성이 높은 기업들에게 적극적으로 손을 내밀었던 것이 예전 사이클에서 자주 보였던 모습이지만, 이번에는 그 반대라고 봐야한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최근 발표된 한국은행의 채권시장 대책은 상당히 전향적이었다. 환매조건부채권(RP) 매매 대상증권을 3개월간 한시적으로 확대하면서 한국전력 채권 등 9개 공공기관채와 은행채를 담보물에 포함시켰다. 증권사를 대상으로 6조원 규모의 RP 매입도 재개했다.

필요한만큼 채권을 맡기고 돈을 빌려갈 수 있도록 길을 터준 파격적인 조치다. 예상을 뛰어넘었다는 의견이 많았다. 그러나 발표문 말미에 한은은 '이번 조치는 금융안정을 위해 시행하는 것이며 현 통화정책 기조와 배치되는 것은 아니다'라며 선을 그었다. 전면적인 통화 완화로 갈 생각이 없음을 분명히 한 것이다. 정부에서는 부동산 경기 급랭을 방지하기 위해 주택담보대출비율(LTV) 50% 완화 등 대책을 내놓았지만 현재 담보대출금리 수준이 예전에 비해 너무 높아져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이 많다.

결국 부채를 줄이고 구조조정을 유도할 수 밖에 없는 '디레버리징'(부채 축소)이 불가피한 시대로 가고 있다. 어떻게 할 것인가의 문제일 뿐, 이런 디레버리징 장세의 출현은 필연적이라고 보인다. 이 과정에서 정책 당국의 책무는 시스템 리스크로 연결되지 않도록 면밀하게 모니터링하고 질서정연하게 진행되도록 도움을 줘야 한다.

그러나 이번 디레버리징은 과거의 디레버리징과 결정적 차이점이 존재한다.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와 2000년 IT 버블은 기업 부채의 디레버리징 장세를 촉발했다. 기업이 파산하고 경기가 크게 위축됐지만 그 과정에서 인수ㆍ합병(M&A)이 활발해지면서 기업금융(IB) 비즈니스가 꽃을 피웠다.

수수료 비즈니스가 전성시대를 맞았던 것도 이 때다. 반면 2008년 모기지 버블 붕괴 이후는 미국 중심의 가계부채 디레버리징 장세였다. 가계의 부채 감축을 돕기 위해 중앙은행이 직접적으로 채권을 매입하는 양적완화가 일반화됐고, 금리가 하락하면서 채권 기반 상품 공급이 활발해지며 초저금리 환경 하에서 프라이빗 에쿼티(PE) 비즈니스가 활성화됐다.

그러나 2022년은 앞서 지적한 것처럼 정부 부채의 디레버리징 장세다. 강원도 레고랜드 사태도 거슬러 올라가면 지방자치단체의 과잉채무와 한전채의 과다발행으로 인한 물량 부담이 시초였다. 전기요금을 못 올리다보니 한국전력의 부담이 커지고 채권시장에 결과적으로 부담을 준 것이다. 전기료를 올리고 채무 조정을 하는 등 과도해진 정부의 재정 부담을 줄여야 시장도 안정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가계부채와 기업부채의 디레버리징 방식과 정부부채의 디레버리징 방식에는 근본적인 차이점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정부부채는 빈부격차, 국가안보, 노령화 등에 대응하는 '공공선'(common good)의 성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과감한 지출삭감이 어렵다. 경기침체 상황에서 정부까지 지출을 삭감하면 다 죽자는 이야기밖에 안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부부채의 디레버리징 과정은 반드시 인플레이션을 수반하게 된다. 돈줄을 줄이다가도 다시 풀 수밖에 없는 상황이 반드시 발생하는 것이다. 실제로 최근 물가를 잡겠다며 강도 높은 긴축을 주장하던 미국 연방준비제도(Fedㆍ연준) 내에서도 속도조절론이 등장했다. 75bp에서 50bp로, 내년에는 25bp로 인상폭을 줄여야 한다는 주장이 세를 얻고 있다.

최근 한은 금융통화위원회에서도 속도 조절을 주장한 소수의견이 2명이 나왔고 캐나다도 75bp 인상을 포기하고 50bp 인상으로 선회했다. 미국도 국채시장 유동성 부족으로 채권을 다시 사들이는 '바이백'을 검토한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이렇게 되면 물가는 안타깝지만 다시금 고개를 들게 될 것이다. 모두 긴축의 강도를 줄이는 조치들이기 때문이다. 결국 인플레이션이 장기화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나 인플레이션을 통해 자산의 명목가치가 증가하면 부채는 시간이 지나가면서 자연스레 휘발된다. 장기적으로는 인플레이션을 꼭 나쁘게만 볼 일은 아니라는 것이다. 인플레이션을 피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오히려 인플레이션 리스크를 적극적으로 헷지하고 활용하는 방법을 고민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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