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 올라 대출 부담 커지고, 주가 떨어져 지분 매각도 난감

금리는 치솟고 주가는 떨어지는 악재로 삼성그룹 오너 일가도 곤혹스럽게 됐다. 그동안 상속세를 내기 위해 대출을 받거나 지분을 매각했는데, 두 방식 모두 쉽지 않아진 것이다. 결국 주가가 올라줘야 하는데 경기 침체와 악화된 영업 환경 때문에 전망이 불투명하다. 

삼성 일가는 지난해 4월 세무당국에 12조원 규모의 상속세를 신고하고 연부연납(장기간에 걸쳐 나눠 납부) 식으로 6회에 걸쳐 내기로 했다. 그동안 두 차례 2조원씩을 납부해 8조원가량이 남아있으며 내년 4월에 다시 2조원을 내야 한다. 

유안타증권에 따르면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장 상속세가 3조 1000억으로 가장 많은데 1조 333억원을 납부했고 2조 667억원이 남아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2조 9000억원 중 9667억원을 냈고 1조 9333억원을 납부해야 한다.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과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의 잔여 상속세는 각각 1조 7333억원, 1조 6000억원 규모로 추정된다. 

고(故) 이건희 선대회장이 남긴 유산은 26조원에 이른다. 이 중 주식 상속가액은 20조원 규모다. 부동산과 미술품 등도 있지만 대부분 계열사 지분으로 이뤄진 셈이다. 삼성 일가의 연간 배당 수익이 세전 8800억원 수준임을 감안하면 막대한 상속세 자금 마련을 위한 추가 자금 확보가 필수적이다. 

연간 이자만 800억, 더 늘어날 듯
주가는 '5만전자' 못 벗어나 난감

이재용 회장을 제외한 세모녀 일가는 지난해 1차 납부 때 주식담보대출을, 올해 2차는 지분을 매각했다. 삼성전자 주식 담보 계약 규모는 9700억원, 삼성물산 6540억원, 삼성SDS 471억원 등이다. 세 모녀의 주식담보대출 총액은 2조원 규모로 알려졌으며 금리는 3%대에서 5% 안팎에 이른다. 연간 이자 비용만 800억원에 이를 정도다. 은행이 개인과 거래할 수 있는 대출 규모에 한도가 있다보니 상대적으로 금리가 높은 증권사를 통해 자금을 조달하기도 했다. 

홍 전 관장의 경우 삼성전자 주식 담보로 한국투자증권에서만 1750억원을 빌렸는데 이자율은 4.9% 수준이다. 이부진 사장 역시 삼성전자 주식 담보로 4.5% 이자율에 1000억원을 대출받았다. 이서현 이사장의 일부 주식담보대출 금리는 5.25%까지 치솟았다. 대출 계약 이후 기준금리 상승을 감안하면 내년엔 이자 부담이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연합뉴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지난 21일 서울 강서구 서울김포비즈니스항공센터를 통해 베트남으로 출국하기 위해 차에서 내리고 있다.
ⓒ연합뉴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지난 21일 서울 강서구 서울김포비즈니스항공센터를 통해 베트남으로 출국하기 위해 차에서 내리고 있다.

 

또 증권사들은 대출을 실행하면서 110~150%의 담보 유지비율을 설정했다. 주가가 이 비율보다 떨어지면 반대매매를 하거나 추가로 담보를 요구할 수 있다. 이래저래 주식담보대출을 더 늘리기 어려운 상황으로 보인다. 

올해 2차 납부를 앞두고는 대규모 지분 매각이 이뤄졌다. 홍 전 관장은 삼성전자 지분 0.33%를 매각해 1조 3700억원을 확보했다. 이서현 이사장은 삼성생명과 삼성SDS 주식을 팔아서 4100억원을, 이부진 사장도 삼성SDS 지분 매각으로 1900억원가량을 마련했다. 

대출을 하든, 지분 매각을 하든 관건은 주가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삼성전자의 경우 올해 초 8만원에 육박하던 주가가 5만원대까지 떨어진 상태다. 반도체 업황 부진의 직격탄을 맞고 있는 것이다.

골드만삭스는 최근 삼성전자의 4분기 영업이익 전망을 5조 8000억원으로 기존보다 25.6% 하향 조정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58% 감소하는 수치다. 골드만삭스는 "메모리 업종 약화와 스마트폰·TV 출하량 감소를 반영해 영업이익 전망치를 하향 조정했다"고 설명했다. 특히 반도체 부문 예상 영업이익을 지난해 동기 대비 83% 급감한 1조 5000억원으로 예상했다. IBK투자증권도 삼성전자의 4분기 영업이익 전망치를 3분기 대비 44.1% 감소한 6조 630억원으로 분석했다. 

이재용, 지배권 감안 지분 매각 안 해
'삼성생명법'으로 지배구조 압박도

영업 활동을 통해 벌어들인 현금에서 투자 비용을 제외한 잉여현금흐름은 올해 순유출로 마무리될 것이란 전망이 강하다. 이익이 줄어도 투자는 늘리고 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2019년 발표한 '시스템반도체 비전 2030'을 통해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 팹리스(반도체 설계) 등에 2030년까지 171조원을 투자하겠다는 계획이다. 매년 평균 17조원씩인 셈이다. 

삼성전자는 잉여현금의 50%를 배당 재원으로 활용하는 주주환원 방침을 두고 있다. 쌓여 있는 현금성자산이 128조원에 이를 정도이지만, 적어도 배당을 위한 근거과 여력은 극히 약해진 것이다. 

이재용 회장의 경우 상속세 납부를 하면서 세 모녀와는 다른 양상을 보여왔다. 그룹 지배권을 감안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 회장은 1차 상속세 납부 전 수천억원 규모의 개인신용대출을 시중은행으로부터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함께 지난해 5600억원에 이르는 배당 수익 등을 모아서 세금을 납부해 온 것으로 보인다. 지분에는 아직 손을 대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 회장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은 1.63%에 불과하다. 하지만 삼성물산의 최대주주이기 때문에 삼성생명과 삼성전자로 이어지는 고리로 그룹 지배권을 유지하고 있다. 안정적인 지배권을 갖추려는 측면에서만 본다면 오히려 지분을 늘려야 하는 상황이다. 

특히 국회에 재논의되기 시작한 보험업법 개정안, 일명 '삼성생명법'은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주식을 원가 아닌 시가로 적용해 5~7년에 걸쳐 21조원어치를 팔도록 하는 내용이다. 삼성 지배구조의 아킬레스건을 건드리는 것이다.

이 법안을 발의한 이용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삼성전자가 삼성생명 지분을 자사주로 매입한 후 소각할 수 있도록 법적 제약을 없애는 법안을 추가로 최근 발의했다. 그러면서 이 의원은 "주식시장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을 뿐만 아니라 주가가 상승하게 되므로 삼성전자 주주로서도 환영할 만한 방안"이라며 "2012년 12월 삼성 미래전략실에서 작성한 일명 프로젝트G문건에서도 이미 검토했었던 방안"이라고 했다. 

이 의원이 언급한 문건에는 '(삼성)생명의 (삼성)전자 지분은 지금 당장 법적으로 해소돼야 할 의무는 없으나 향후에도 금산분리에 대한 지속적인 사회적 요구가 예상되므로 중장기적으로 해소 필요'라고 적시됐다. 삼성생명법은 2000년대 초부터 문제제기가 됐고 이미 8년 전에 법안이 발의됐다. 오랜 논쟁 사안이나 국회 다수당인 민주당의 의지에 따라 통과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삼성전자 주가 관리 중요 이슈"
권성동 "삼성생명법은 삼성해체법"

국민의힘에서는 반대 목소리가 높다. 대표적 '친윤'(친윤석열)인 권성동 의원은 지난 19일 페이스북을 통해 삼성생명법을 '삼성해체법'이라고 지칭하며 "5~7년 유예기간을 둔다지만 그 엄청난 물량이 시장에 강제 매각된다는 것 자체가 주식 시장의 대형 악재"라고 주장했다.

이어 "'삼성해체법'이 통과되면 삼성전자 특수관계인 지분율은 현재 약 20%에서 8%로 급감하게 된다. 그렇다면 국민연금이나 외국자본이 삼성전자의 1대 주주가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자사주 매입 방안 역시 "막대한 투자 비용을 엉뚱한 곳에 사용하게 된다. 시장을 모르는 법안이 반도체 협력업체들과 미래 근로자들의 성장 기회를 박탈하게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에 관련 법안을 발의한 박용진 민주당 의원은 권 의원에게 1대1 공개 토론을 제안하면서 "2020년 12월 말, 삼성전자의 외국인 지분은 55% 대였고 주가는 8만 1000원이었다. 그 때는아무도 '삼성이 외국 자본에 넘어갔다'고 말하지 않았다. 지금 삼성전자 외국인 지분은 50% 아래에 있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삼성이 회사의 수백만 주주와 소비자, 수천만에 달하는 이해관계자보다 바로 단 한사람, 이재용과 오너 일가 지배구조를 최우선하기 때문에 생긴 문제라고 생각한다. 대한민국 법률의 취지마저 불식시키는 불투명한 지배구조야말로 성장의 적"이라고 주장했다. 

어쨌든 법안이 통과되더라도 유예기간을 감안하면 장기 계획을 세워 대응할 수 있다. 하지만 당장 내년 4월로 닥치는 '발등의 불'을 끄려면 이 회장에게도 역시 '최후의 보루'는 지분이 되겠다. 아직 주식을 담보로 한 대출은 하지 않았으니 그만큼 여력도 크다.

최남곤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문제는 삼성 그룹의 현 주가가 상속세 기준 주가에 비해 낮다는 점"이라며 "지배주주 일가 입장에서는 담보대출의 비용이 증가했기 때문에 배당과 지분 매각 옵션의 활용을 고려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짚었다. 그러면서 "상속세 납부 시점인 4월까지는 삼성전자 등 주요 핵심 계열사의 주가 관리가 중요한 이슈로 부각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단기간 내에 삼성전자 실적이 회복되기는 어렵겠지만 주가는 미래 가치를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바닥'을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 김운호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지난 21일 삼성전자의 목표주가 7만원을 유지하면서 "최근 경쟁사들의 보수적인 투자 및 실적 전망으로 업황 바닥에 대한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이어 "D램 가격 반등은 기대하기 어렵지만 내년 1분기부터 낙폭이 크게 줄어들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면서 "내년 하반기에 공급량 조정은 수급이 균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만 현 주가가 이미 업황 개선 기대감을 일찍 반영하고 있다고 봤다. 큰 폭의 주가 상승을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이승우 유진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내년은 금리 인상의 누적 효과로 인한 수요 둔화와 메모리 재고 조정으로 반도체 기업 실적의 추가 악화가 불가피할 전망"이라며 "삼성전자의 내년 실적은 매출 281조원, 영업이익 25조 5000억원으로 각각 8%, 44% 감소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는 이어 "시장은 이미 내년 수요 둔화와 메모리 반도체 다운턴을 상당 부분 프라이싱(가격책정) 해 놓고 있다"면서 "앞으로 남은 주가의 드라이버는 4분기 실적이나 내년 실적은 아닐 가능성이 크다. 그보다는 메모리 시장을 짓누르고 있는 재고 부담이 과연 의미있게 줄어들어 2024년에는 실적이 회복할 수 있는 지의 여부"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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