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배적 지위 남용 등 고발 3년간 없어 전속고발권 퇴색… 尹 '소신+검찰 중시' 작용하는 듯

"정치 경제 분야의 공정한 경쟁질서를 무너뜨리는 범죄에 대해서는 추호의 망설임도 없이 단호하게 대응해야 할 것입니다."

2019년 7월 당시 윤석열 신임 검찰총장은 취임 일성으로 이처럼 '공정경쟁'을 강조했다. 대검찰청은 설명자료에서 "'시장의 룰이 깨지면 모든 것이 다 무너진다. 룰을 위반하는 반칙행위는 묵과할 수 없다'"는 게 신임 총장의 신념"이라고 전했다. 

최근 들어 '재계 저승사자'로 불리는 공정거래위원회보다 검찰이 기업 수사의 전면에 나서 강도를 높이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의 이런 신념과 검찰의 역할을 중시하는 성향이 결합된 결과로 풀이된다. 

ⓒ연합뉴스 서울중앙지검
ⓒ연합뉴스 서울중앙지검

 

윤 대통령은 2021년 3월 검찰총장 시절, 이른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관련 언론 인터뷰에서 서울중앙지검장 재직 시 미국 반독점국을 방문했던 일을 언급했다.

"총 700여명 중 300여명의 검사가 카르텔(담합) 범죄에 대해 대배심 등을 통해 직접 수사를 담당하고 있었다. 뉴욕 월스트리트의 공신력을 높이는 데 크게 기여한 것도 로버트 모겐소 뉴욕 맨하탄 지방검찰청 검사장의 대형 경제범죄 수사였다. 그는 '화이트칼라 범죄 수사의 아버지'라 불린다. 그 혜택이 미국 국민에게 돌아가는 것이다."

미국 모델을 바람직하게 보는 것이며, 기업들에게는 보다 강도 높은 사정의 칼날이 겨눠지는 셈이다. 실제로 법무부는 지난달 업무보고에서 올해 하반기 중 공정거래, 범죄 수익 환수 등 전문 부서의 증설을 추진하고, 상반기 중으로는 공정거래 사범 협의회 정례화 등 공정위와 협력을 강화하겠다고 했다.  

공정위 전속고발권 폐지는 尹 소신?
검찰이 나서 고발 요청 사례 급증

특히 윤 대통령은 앞서 검찰총장 후보자 때 "공정위 전속고발권 폐지 문제는 중대 범죄인 경성담합(가격·입찰담합 등) 억제 등 공정한 경제 질서 달성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고 밝힌 바 있다.

전속고발권은 공정거래법 관련 사건에 대해서는 공정위 고발이 있어야만 검찰 기소가 가능하도록 하는 제도다. 법상 고발 요건인 '객관적으로 명백하고 중대하여 경쟁질서를 현저히 해친다고 인정하는 경우'에 대한 판단을 공정위가 함으로써 키(key)를 쥐게 한다. 

기업 활동 위축을 우려해 공정위의 경제적 분석 전문성을 기준으로 삼는 것이다. 재계는 폐지될 경우 고발이 남용될 수 있다며 유지를 원한다.

'친기업'을 표방한 윤 대통령은 이후 대선 후보 시절에 폐지 대신 '의무고발요청제와 조화로운 운용을 추진'하는 것으로 한 발 물러섰다. 감사원장, 중소벤처기업부장관, 조달청장이 공정위에 고발을 요청할 수 있는 제도를 지칭한 것인데, 검찰총장 역시 권한을 갖고 있다. 

'조화로운 운용'의 핵심은 역시 검찰이었다. 지난해 검찰이 공정위에 고발을 요청한 사례가 10건으로 2013년 제도 도입 이후 가장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2018~2021년 4년간 8건이었던 것을 비교하면 그만큼 검찰이 공정거래 사건에 적극적이라는 방증이다.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사부가 이달 초 한샘, 현대리바트, 에넥스, 넥시스, 우아미 등 주요 가구업체들을 대상으로 압수수색을 실시한 것은 검찰이 공정위보다 앞서 나선 사례다. 신축 아파트에 빌트인(붙박이) 형태로 들어갈 '특판 가구' 납품사를 정하면서 담합한 혐의를 받고 있다.

입찰 담합 사건은 대개 공정위가 조사해 고발하면 검찰이 수사에 착수하는 절차가 일반적인데 이번에는 검찰이 직접 수사에 들어간 것이다.

더욱이 리니언시(자진신고자 처벌 경감) 제도를 통해 공정위와 검찰에 함께 신고가 들어온 경우인데, 공정위 조사보다 검찰 수사를 앞세운 셈이다. 검찰은 관련 조사를 마친 이후 공정위에 고발을 요청할 것으로 전해진다. 

오너와 경영진까지 향한 수사 칼날
삼성·한국타이어·SPC 등 줄줄이 조사

공정위의 법인 고발에 더해 검찰이 경영진까지 타깃으로 삼은 사례도 있다.

중앙지검 공정거래조사부는 지난달 회삿돈 유용 혐의를 받는 조현범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한국타이어) 회장의 자택과 본사, 계열사 등 10여곳을 압수수색했다. 계열사 부당 지원 의혹도 받고 있다.

지난해 11월 공정위는 한국타이어가 계열사로부터 타이어 몰드(타이어의 패턴·디자인·로고 등을 구현하기 위한 틀)를 고가로 구매한 행위에 대해 "계열사 간 부당 지원을 통해 총수 일가에게 부당한 이익을 제공한 행위"라며 한국타이어 법인을 고발 조치했다. 조 회장은 고발 대상에서 빠졌는데, 이후 검찰이 공정위에 요청해 조 회장을 수사 대상으로 삼은 것이다. 

ⓒ연합뉴스 조현범 한국타이어 회장
ⓒ연합뉴스 조현범 한국타이어 회장

 

지난해 10월에는 아이스크림 가격 인상 담합 혐의로 빙그레·롯데푸드·롯데제과·해태제과의 임원들과 빙그레 법인을 검찰이 기소했다. 같은 해 2월에 공정위가 4개사에 1115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하고 고발했는데, 검찰은 수사를 통해 고발 대상에 없던 해태제과 임원까지 포함해 기소한 것이다. "담합 근절을 위한 개인 처벌을 강화하는 게 국제 트렌드"라는 게 당시 검찰의 설명이었다. 

검찰의 기업 수사는 전방위적으로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지난해 말 허영인 SPC그룹 회장에 대해 총수 일가 증여세 회피 목적으로 계열사 주식을 저가에 팔도록 한 배임 혐의로 불구속기소했으며, 공정위가 계열사 부당지원으로 고발한 사건도 추가 수사하고 있다. 

조달청 입찰에서 6조원대 철근 담합 혐의로 현대제철·동국제강·대한제강·한국철강·와이케이스틸·환영철강공업·한국제강 등 7개 제강사 법인과 관련 임원들이 기소됐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발주한 보험 입찰에서 담합했다는 이유로 삼성화재해상보험·한화손해보험·메리츠화재해상보험 등 손해보험사 3곳과 임직원들도 재판에 넘겨졌다. 

최근 검찰이 수사에 착수한 GS리테일 하도급법 위반 의혹 사건은 공정위가 지난해 8월 과징금 243억원만 부과하고 검찰에 고발하지 않았다. 그러자 이번에는 중소벤처기업부가 나서 공정위에 고발 요청을 한 것이다.

공정위 조사에 따르면 GS리테일은 수급 사업자들에게 김밥 등 신선식품 제조를 위탁하면서 정당한 사유 없이 성과장려금 68억 7800만원과 판촉비 126억 1200만원, 정보제공료 27억 3800만원을 수취한 혐의를 받고 있다. 

삼성도 예외가 아니다. 검찰은 휴양콘도 운영업체인 아난티와 삼성생명에 대해 횡령·배임 혐의로 두 회사 사무실과 아난티 대표이사, 삼성생명 전 부동산사업부 임직원 주거지 등 10여 곳을 지난 20일 압수수색했다. 2009년 아난티가 서울 송파구에 있는 땅과 건물을 사들였다가 삼성생명에 매입가의 2배가량 액수로 되파는 과정에서 비리가 있었을 가능성을 수사하고 있는 것이다. 

검찰은 또 그룹 차원의 급식 일감 몰아주기로 계열사인 삼성웰스토리를 부당 지원한 혐의로 삼성전자와 최지성 전 미래전략실장을 지난해 11월 기소한 바 있다. 몰아줬다고 판단한 거래 금액은 2013년부터 2020년까지 매출 2조 5951억원, 영업이익 3426억원에 이른다. 검찰은 "국내 최대 기업집단인 삼성 그룹 계열사들과 수의계약을 통한 대규모 급식 거래로 안정적 매출과 높은 영업이익을 올려 사실상 사업 위험이 제거된 상태에서 급식 사업을 영위했다"고 지적했다. 특히 웰스토리가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최대주주인 삼성물산의 100% 자회사라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대형로펌들 전담조직 꾸려 대응
김병준 영입한 전경련, 그 배경은?

이 같은 기업 수사는 모두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사부가 도맡고 있다. 기업 입장에서는 가장 두려운 존재인 셈이다.

반면 공정위는 시장 지배적 지위 남용 등 불공정 행위에 대해 지난 3년간 한 건도 고발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카카오모빌리티의 택시 콜 몰아주기 사건도 257억원의 과징금만 부과하고 고발하지 않아 '솜방망이' 지적을 받고 있다. 

대형 법무법인(로펌)들은 공정거래 관련 사건 대응 역량을 키우고 있다. 태평양은 지난달 말 공정거래형사대응센터를 출범시키면서 "최근 기업의 공정거래 이슈가 형사 이슈로 확대되는 추세에 따라 위험 진단과 사건 초기 단계부터 종합적 대응의 필요성이 커졌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창원지검 마산지청장을 맡았던 허철호 변호사를 주축으로 형사 및 공정거래 분야의 핵심 전문가 60여명으로 구성됐다.

세종은 김민형 전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사부장을 파트너 변호사로 영입했다. 20년가량 기업 관련 형사, 공정거래, 금융 증권 등 사건을 다뤄왔다. 또 2021년 7월부터 공정거래조사부장을 맡아 삼성웰스토리 사건 등의 수사를 지휘했던 고진원 변호사는 지난해 법무법인 바른에 합류했다. 

이런 가운데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는 지난 23일 김병준 사회복지공동모금회 회장을 미래발전위원장 겸 회장 직무대행으로 선임했다. 향후 6개월간 전경련 혁신과 조직 운영 방안을 마련하게 된다. 이례적으로 기업인이 아닌 정치인 출신이 수장을 맡은 것이다.

과거 국정농단 사태 연루로 존폐의 위기에까지 몰렸던 전경련이 다시 친정부 색채를 강화한 것 아니냐는 평가가 많다. 김 회장은 참여정부 때 대통령실 정책실장과 교육부총리를 맡았다가 이후 진영을 옮겨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윤석열 대선 후보의 상임선거대책위원장, 대통령직인수위 지역균형발전특별위원회 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참여연대는 김 회장에 대한 논평에서 "현 정권 개국공신이자, 박근혜 탄핵 정국 당시 국무총리 후보로 지명되었다가 탄핵으로 철회되고 난 후 계속 현 여권을 중심으로 활동해오던 정치인이다. 반면 경제 관련 경력은 전무한 것으로 알려졌다"면서 "국정농단 헌정 유린 사태에 대해 철저한 반성과 스스로 뼈를 깎는 개선에 나서도 모자랄 전경련이, 도리어 경제 관련 전문성도 적은 친정권 인사를 자신들의 회장 직무대행에 앉혀 권력과의 연결고리를 강화하려 시도하다니 규탄받아 마땅한 일"이라고 비판했다. 

검찰의 수사와는 별개로 정부가 재벌에 대해서는 제도적으로 혜택을 주고 있다는 시각이다. 참여연대는 "중대재해처벌법 무력화 시도와 함께 노동조합 탄압 국면 조성, 중대범죄를 저지른 재벌 총수에 대한 사면·복권 결정, 사익편취 금지 규정 기준 완화 등 재벌 기업과 그 오너에게 특혜를 주는 방식의 정책·법령 개정 등을 줄기차게 밀어붙여 왔다"면서 "전경련이 재벌 이익 옹호를 넘어 정권과 유착하려는 의도를 다시금 내비치고 있으니 개탄할 따름"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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