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생 행동주의 사모펀드인 얼라인파트너스가 SM 지분을 1% 안팎 확보했다. ⓒ연합뉴스
신생 행동주의 사모펀드인 얼라인파트너스가 SM 지분을 1% 안팎 확보했다. ⓒ연합뉴스

 

최근 행동주의 투자가 큰 화제가 되고 있다. 사실 행동주의 펀드가 우리나라에서 활동한 것은 20년이 훨씬 넘었다.

2004년 소버린 자산운용의 SK 경영진 퇴진 요구, 2005년 칼 아이칸의 KT&G 주주가치 제고 사례, 2015년 엘리엇 자산운용의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반대 등은 외국계 운용사가 중심이 된 케이스다. 그러나 2006년 활동했던 장하성 펀드나 2018년 땅콩 회항으로 유명해진 KCGI의 한진그룹 지배구조 개선 요구는 한국계 운용사가 주축이 된 케이스다.

올해 SM엔터테인먼트, 오스템임플란트, KT&G 주가 상승에도 행동주의가 기여한 부분이 큰 데 과거보다 더욱 강력하게 느껴지는 이유가 하나 있다. 바로 정책 당국의 태도 변화다.

지난 1월 금융감독원장이 "은행권이 발생한 이익의 3분의 1을 주주 환원하고 3분의 1을 성과급으로 지급한다면, 최소한 나머지 3분의 1 정도는 우리 국민 내지는 금융 소비자 몫이라는 것이 개인적 생각"이라고 발언하면서, 은행의 배당과 주주환원을 용인하는 발언으로 해석이 되었다.

여기에 지난 1월 말에는 금융위원회가 '글로벌 스탠더드에 부합하는 배당절차 개선방안'이라는 보도자료를 내놓았다. 내년부터는 미국이나 유럽처럼 배당액이 먼저 확정되고 배당을 받을 주주는 나중에 확정하는 방향으로 제도가 바뀐다.

이에 지난 주 한국거래소(KRX)도 상장사들이 빠르면 올해 결산 배당부터 개선된 절차를 적용할 수 있도록 1분기 중 공시규정 시행 세칙을 개정하겠다고 나섰다. 분기 배당을 받는 주주를 3, 6, 9월 말일 주주로 규정한 부분을 삭제한 자본시장법 개정안도 2분기 중 발의된다. 이렇게 되면 배당 기산일을 훨씬 유동적으로 결정할 수 있다.

최근 한국가스공사가 소액주주에게만 배당을 실시하기로 결정한 것도 독특하게 느껴지는 부분이다. 한국가스공사는 기획재정부가 최대주주(26.15%)이고 한국전력이 2대주주(20.47%)이기 때문이다. 기재부와 한전은 배당을 안받더라도 소액주주 배당은 해야 한다고 판단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필자는 이러한 정부의 스탠스 변화가 대규모 무역수지 적자, 그리고 인구 감소 본격화에 따른 국민연금 고갈 우려 때문이라고 본다. 구체적으로는 첫째, 무역적자가 장기화되면서 자본시장을 통해 외국인 투자자금을 유인해 외환시장 안정을 담보해야 한다는 인식 변화가 발생했을 가능성이다. 둘째 국내 대기업들의 주주환원을 유도해 국민연금 운용 수익률을 제고하고 기금 고갈을 늦춰야 한다는 절박감이 더해졌을 가능성이다.

실제로 2022년부터 대중 무역수지가 적자로 전환하고, 러-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우리 정부는 채권시장에서는 세계국채지수(WGBI) 편입, 주식시장에선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선진국 편입을 추진하고 있다. WGBI의 경우 작년에 이미 한국 국채가 관찰대상에 편입됐고 이르면 오는 3월 편입이 확정된다. 그러나 MSCI는 아직 갈 길이 멀다. 이에 행동주의 투자를 예전처럼 부정적인 시선으로만 대하긴 어려워졌다.

과거 행동주의 펀드는 '천박한 주주자본주의', '국부 유출', '하이에나와 같은 기업 사냥꾼', '먹튀 논란' 등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그러나 이제는 개인들의 주식투자 저변이 확대됐고 연기금도 수익률 제고를 위해 주주권 행사에 적극적으로 나서기 시작하며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다.

특히 국민연금은 은행과 은행지주의 경우 발행주식총수의 10%를 초과해 보유할 수 없게 되어 있는데, 몇 년 전부터 연기금의 수익률 제고를 위해 시중은행 10%, 지방은행 15%으로 막혀 있는 은행주 보유 제한을 풀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아직 관련 규제 완화 조짐은 없지만, 올해 얼라인 파트너스 등이 은행 배당 확대를 주문했고 대부분 수용된 것을 보면 중장기적으로 재검토될 가능성도 없진 않아 보인다. 어쨌거나, 은행은 안정적 배당수익률을 확보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업종이기 때문이다.

최근 자본시장연구원에서는 '코리아 디스카운트 원인 분석'이라는 연구 보고서를 발간한 바 있다. 45개국 상장기업 자료를 바탕으로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특징과 원인을 살펴보니 사실상 '미흡한 주주환원 수준'이 가장 큰 원인이었다는 내용이었다.

지금까지 해소가 안 되던 디스카운트가 갑자기 해소될 리 만무하지만, 올해만큼은 그래도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를 기대해볼 수 있을 것 같다. 지주사 전환시 주식 현물출자를 할 경우 법인세 과세를 이연해 주는  과세이연 특례 유예기간이 올해 말까지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올해 안에 지주회사 전환을 위해 인적분할을 계획한 기업들이 상당히 많다.

그런데 얼마 전 현대백화점의 인적분할 안건이 다수의 기관 투자자 반대로 주주통회를 통과하지 못했다. 올해 지주회사 전환을 계획한 기업들은 주주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최근에 제기된 트러스톤 자산운용의 BYC 감사위원 선임 제안, 얼라인 파트너스의 JB금융지주 결산배당 요구, 플래쉬라이트 캐피탈의 KT&G 사외이사 및 감사위원 추천, DB하이텍의 소액주주 연대 요구, 광주신세계 소액주주 연대의 주주제안 등이 큰 의미를 지닌다고 보는 이유다.

한국 대표 그룹사인 삼성그룹과 현대차그룹이 주주환원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기 시작한 것도 과거와 달라진 점이다. 지난 주 삼성물산은 3조원 규모의 자사주를 5년 내에 전량 분할 소각하고 향후 3년간 관계사 배당수익의 60~70% 수준을 재원으로 배당정책을 유지하겠다고 발표했다. 최근 현대차그룹 3개사 역시 적극적인 주주환원 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지금까지는 환경·사회·지배구조(ESG) 중 E(환경)가 많이 강조되었다면, 상기의 이유로 앞으로는 G(지배구조)에 더 초점이 맞춰질 것으로 보인다. G의 요소 중 상당 부분이 이사회의 독립성과 다양성, 그리고 주주가치 강화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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