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한국 김성수 기자]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가 인정한 ‘피겨 여왕’ 김연아. 2004년 데뷔부터 2014년 은퇴까지 정점을 지켰던 김연아는 세계신기록만 11회 경신한 불세출의 스케이터다.

김연아가 금메달을 거머쥐었던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프리스케이팅 경기를 마쳤을 때 미국 NBC 방송의 중계진은 “Long live the Queen(여왕 폐하 만세)”이라고 외치며 김연아의 연기를 극찬했다. ‘피겨 여왕’의 대관식이었다.

김연아의 연이은 활약에 그를 보고 피겨스케이팅을 시작하는 ‘김연아 키즈’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마침내 2023년. 여왕이 뿌린 씨앗들이 그 어느 때보다 꿈틀거리고 있다. 세계선수권대회를 앞두고 ‘김연아 이후 최초’라는 말이 연이어 들리고 있는 한국 여자 피겨스케이팅이다.

이해인(왼쪽 첫 번째), 김예림(두 번째), 신지아(세 번째). ⓒ스포츠코리아 ⓒ연합뉴스
이해인(왼쪽 첫 번째), 김예림(두 번째), 신지아(세 번째). ⓒ스포츠코리아 ⓒ연합뉴스

▶올림픽 탈락 딛고 ‘여왕의 잔상’ 남긴 이해인

이해인(17)은 2023 국제빙상경기연맹(ISU) 4대륙선수권대회에서 값진 '역전 우승'을 일궈냈다.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출전 실패의 아픔을 딛고 시니어 무대 첫 정상을 차지하며 '피겨 여왕' 김연아의 기록을 재현한 이해인이다.

이해인은 지난달 11일(이하 한국시간) 미국 콜로라도주 스프링스 브로드무어 월드 아레나에서 열린 4대륙선수권대회 여자 싱글 프리스케이팅에서 기술점수 74.96점, 예술점수 66.75점으로 합계 141.71점 시즌 최고점을 받아 1위를 차지했다. 쇼트 프로그램 점수(69.13)와 더한 총점은 210.84점으로 최종 우승도 거머쥐었다.

4대륙선수권대회는 아시아, 아메리카, 오세아니아, 아프리카 등 유럽을 제외한 4개 대륙 선수들이 경쟁하는 메이저 대회다. 한국 여자 선수가 4대륙선수권대회에서 금메달을 목에 건 것은 이해인 전까지 2009년 김연아가 마지막이었다. 지난해 이 대회에서 은메달을 획득한 이해인은 이번 우승으로 대회 2년 연속 메달을 차지함과 동시에 14년 만에 김연아의 뒤를 잇는 금메달리스트가 됐다.

이해인은 주니어 시절인 2019년 ISU 주니어 그랑프리에서 2연속 우승을 달성했다. 그는 2005년 김연아 이후 14년 만에 주니어 그랑프리 연속 우승을 이뤄내며 '포스트 김연아'로 진작부터 주목받았다. 하지만 시니어 무대 국제대회에서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했다. 이해인은 또한 베이징 동계올림픽을 앞둔 지난 2021년, 올림픽 출전권 2장을 놓고 유영, 김예림과 끝까지 경쟁을 펼쳤지만 1, 2차에 걸친 선발전에서 최종 3위에 그치며 아쉬움을 삼켰다.

하지만 이해인은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지난해 1월 4대륙선수권대회에서 개인 최고 점수인 213.52점을 받으며 은메달을 쟁취했다. 그리고 1년 뒤 같은 대회에서 금메달을 따내며 '대선배' 김연아가 쓴 영광의 역사를 재현했다.

이해인의 최대 강점은 강한 정신력이다. 덕분에 실수를 최소화하며 한국 선수들의 보편적인 약점으로 거론되는 스핀과 스텝에서 최고 레벨과 높은 가산점을 꾸준히 챙긴다. 인고의 시간을 버텨내고 4대륙 정상에 오른 것 역시 이해인의 ‘강철 멘탈’을 증명하는 부분이다.

주니어 그랑프리 연속 우승으로 김연아의 뒤를 이었던 이해인. 이제는 더 큰 얼음 위에서 여왕의 잔상을 남기며 전진하고 있다.

한국 여자 선수로 김연아 이후 14년 만에 피겨스케이팅 4대륙선수권대회 금메달을 따낸 이해인. ⓒ연합뉴스
한국 여자 선수로 김연아 이후 14년 만에 피겨스케이팅 4대륙선수권대회 금메달을 따낸 이해인. ⓒ연합뉴스

▶승전보 울리는 ‘진격의 피겨 장군’ 김예림

지난달 4대륙선수권 대회에서 은메달을 차지한 것을 포함해 이해인과 쌍벽을 이루며 ‘피겨 장군’이라고 불리는 선수가 있다. 한국 여자 피겨의 간판 중 하나인 김예림(20). 그는 한국 여자 선수로는 김연아 이후 최초로 시니어 그랑프리 금메달과 ‘왕중왕전’인 그랑프리 파이널 티켓을 차지했다.

김예림은 지난해 11월19일 일본 홋카이도 삿포로 마코마나이 아이스 아레나에서 열린 2022~2023 ISU 시니어 그랑프리 5차 대회 NHK 트로피 프리스케이팅에서 기술점수 66.90점, 예술점수 66.37점, 감점 1점, 합계 132.27점을 받아 쇼트프로그램 점수(72.22)와 합한 총점 204.49점으로 금메달을 따냈다.

김예림은 이 우승으로 그랑프리 포인트 28점을 확보해 파이널 출전권을 획득했다. 그랑프리 파이널은 그랑프리 시리즈에서 가장 좋은 성적을 거둔 6명의 선수가 경쟁하는 '왕중왕전'이다.

한국 선수가 시니어 그랑프리 금메달을 획득한 건 2009년 김연아 이후 13년 만이다. 그랑프리 파이널 여자 싱글 무대를 밟은 것 역시 2009~2010시즌 김연아 이후 처음이다. 비록 그랑프리 파이널에서 6위에 그친 김예림이지만 그가 이룬 성과는 이미 값진 것이었다. 그랑프리 시리즈 자체가 전 해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뛰어난 성적을 거둔 선수들을 초청하는 대회이며 거기서 또 한 단계 올라선 ‘궁극의 무대’가 바로 그랑프리 파이널이기 때문.

김예림은 ‘피겨 장군’이라는 별명에 걸맞게 시원한 스타일의 연기를 펼치는 것으로 유명하다. 점프에 불리한 큰 키를 가졌지만 오히려 이를 활용해 보는 사람도 개운함을 느끼는 점프를 보여준다. 또한 긴 팔과 섬세한 손끝 동작을 이용해 차분한 연기도 무리 없이 소화한다.

박력과 서정을 넘나드는 ‘팔방미인 피겨장군’ 김예림. 그가 앞으로 울릴 승전보에 많은 기대가 모인다.

한국 여자 선수로 김연아 이후 13년 만에 피겨스케이팅 시니어 그랑프리 금메달을 따낸 김예림. ⓒAFPBBNews = News1
한국 여자 선수로 김연아 이후 13년 만에 피겨스케이팅 시니어 그랑프리 금메달을 따낸 김예림. ⓒAFPBBNews = News1

▶주니어 역사 새로 쓴 ‘신성’ 신지아

시니어뿐만 아니라 주니어 무대에서도 ‘김연아 이후 최초’가 나왔다. 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 '신성' 신지아(14)가 주니어 세계선수권대회에서 2년 연속 은메달을 획득했다.

신지아는 지난 4일 캐나다 앨버타주 캘거리 윈스포트에서 열린 2023 ISU 주니어 피겨스케이팅 세계선수권대회 여자 프리스케이팅에서 기술점수 70.27점, 예술점수 61.44점, 감점 1점 합계 130.71점을 받았다. 그는 쇼트프로그램 점수(71.19)를 합한 총점 201.90점으로 2위를 차지했다.

신지아는 지난해 주니어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은메달을 목에 걸며 2005년 김연아 이후 17년 만에 해당 대회 메달 획득으로 큰 기대를 받았다. 그리고 이번 대회 은메달로 2년 연속 주니어 세계선수권 메달 획득에 성공하며 또다시 ‘김연아(2005~2006) 이후 최초’ 역사를 썼다.

작은 체구에도 불구하고 높고 힘찬 점프가 강점인 신지아. 자신의 점프처럼 더 높이 도약하고자 하는 ‘샛별’이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한국 여자 선수로 김연아 이후 17년 만에 피겨스케이팅 주니어 세계선수권대회 2년 연속 메달을 따낸 신지아. ⓒ연합뉴스
한국 여자 선수로 김연아 이후 17년 만에 피겨스케이팅 주니어 세계선수권대회 2년 연속 메달을 따낸 신지아. ⓒ연합뉴스

한편 오는 20일 일본 사이타마에서 2023 피겨스케이팅 세계선수권대회가 열린다. 전 세계에서 내로라하는 실력자들이 모이는 세계선수권은 ISU가 주관하는 시니어 피겨스케이팅 국제대회 중 가장 권위 있는 무대라고 볼 수 있다. 선의의 경쟁을 이어가고 있는 이해인과 김예림이 이 무대에서 혼신의 연기를 펼칠 준비를 마친 가운데 많은 팬들의 관심 역시 쏟아질 전망이다.

-스한 위클리 : 스포츠한국은 매주 주말 '스한 위클리'라는 특집기사를 통해 스포츠 관련 주요사안에 대해 깊이 있는 정보를 제공합니다. 이 기사는 종합시사주간지 주간한국에도 동시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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