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티플마인드오케스트라·국립극장 ‘함께, 봄’ 성황
피아니스트 윤한과 협연 ‘마음 울리는 음악’ 선사

피아니스트 이강현이 뷰티플마인드오케스트라와 프랑시스 프랑크의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협주곡’ 1악장을 협연한 후 관객에게 인사하고 있다. 오른쪽은 지휘자 이원숙. ⓒ국립극장 제공
피아니스트 이강현이 뷰티플마인드오케스트라와 프랑시스 프랑크의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협주곡’ 1악장을 협연한 후 관객에게 인사하고 있다. 오른쪽은 지휘자 이원숙. ⓒ국립극장 제공

[데일리한국 민병무 기자] #1. 피아니스트 이강현은 세 살 때 발달장애를 진단받았다. 전공자로서는 비교적 늦은 나이인 초등 5학년 때부터 본격적으로 피아노 교육을 시작했다. 실력이 크게 향상된 계기는 ‘뷰티플마인드 뮤직아카데미’ 덕분이다. 대학교수와 전문연주자로 활동하고 있는 선생님들의 재능기부로 운영 중인 아카데미에서 일대일 맞춤교육을 받았다.

매일 7~8시간씩 꾸준히 연습했다. 비장애인도 해내기 힘든 과정을 근면과 성실로 하나하나 극복했다. 이후 수많은 콩쿠르와 독주회, 그리고 협연을 통해 두각을 나타내면서 관심을 받았다. 서울예고를 거쳐 2021년 서울대 피아노과에 입학해 현재 3학년에 재학 중이다.

그는 이원숙 지휘자와 함께 무대로 걸어 나왔다. 1부 마지막 순서다. 관객에게 인사한 후 무대 뒤쪽 왼편에 있는 피아노 앞에 앉았다. ‘뷰티플마인드오케스트라’와 호흡을 맞춰 프랑시스 프랑크의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협주곡’ 1악장을 들려줬다. 원래는 피아노 두 대를 위한 곡이지만 한 대의 피아노를 위한 곡으로 편곡했다. 이강현의 열 손가락을 타고 매력적인 프랑스풍 선율이 귓전을 맴돌았다. 발달장애인이 피아노를 제법 잘 친다는 신기한 시선이 아니라, 음악을 사랑하는 한 젊은이가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흐뭇한 자리다.

연주를 마친 뒤 이원숙 지휘자와 손을 잡고 관객에게 인사하는 폼이 멋지다. 양팔을 쭉 펴고 무릎을 살짝 굽힌 폼이 인상적이다. 보기만 해도 대견스럽다. 저절로 힘찬 박수소리가 터져 나왔다.

피아니스트 윤한이 뷰티플마인드오케스트라와 협연한 후 관객에게 인사하고 있다. 오른쪽은 지휘자 이원숙. ⓒ국립극장 제공
피아니스트 윤한이 뷰티플마인드오케스트라와 협연한 후 관객에게 인사하고 있다. 오른쪽은 지휘자 이원숙. ⓒ국립극장 제공

#2. 올해 데뷔 13년차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인 윤한이 2부 무대를 꾸몄다. 영화음악 4곡과 자작곡 1곡을 선사했다. 5곡 모두 오케스트라와의 협주곡용으로 편곡(김덕주·이원숙·김두영·전주영)했다. 그는 “이번 공연을 준비하면서 연습할 때마다 늘 새롭고 감동적이었다. 오히려 제가 더 힐링이 됐다”며 “특히 저를 반갑게 맞아준 친구가 있었다. 저는 정확하게 생각나지 않았지만, 그 친구는 저를 몇 월 며칠 어디서 만난 적이 있다며 또렷하게 기억했다. 정말 뭉클했다”고 밝혔다.

특히 윤한은 자신이 작곡한 ‘바람의 왈츠’로 시원한 아름다움을 선물했다. 그는 “제주도 여행 때 바람 부는 모습이 마치 왈츠를 추는 것 같아 작곡했다”며 “지금까지 피아노 솔로곡으로만 연주했는데 이번에 처음 협주곡으로 들려준다”고 설명했다. 바쁘고 지친 일상 속에서 온전히 휴식할 수 있는 삶의 여유를 전해주었다.

이강현(피아노), 배성현(피아노), 심환(클래식기타), 허지연(클래식기타) 등 ‘클래식계 우영우들’에게 불가능은 없었다. 뷰티플마인드오케스트라는 피아니스트 윤한과 힘을 합쳐 ‘콘서트 임파서블(Concert Impossible)’을 ‘콘서트 파서블(Concert Possible)’로 만들었다. 한층 더 탄탄해진 케미로 서로의 소리에 귀 기울였다. 실력도 개성도 제각각이지만 음악을 향한 순수한 열정으로 아름다운 하모니를 완성하며 깊은 울림을 전달했다.

뷰티플마인드오케스트라는 올해도 국립극장과 함께 장애·비장애 구분 없이 음악으로 소통하는 클래식 공연 ‘2023 함께, 봄’을 15일 해오름극장 무대에 올렸다. 무장애(無障礙), 즉 배리어 프리(Barrier-free) 공연으로 진행됐다. 문지애 아나운서가 사회를 맡아 시각장애인을 위한 음성 해설을 했고 청각장애인을 위한 수어 해설도 함께 제공한다. 프로그램북도 점자 겸용으로 제작했다.

뷰티플마인드오케스트라는 장애인과 소외계층 청소년 음악가들의 지속가능한 예술 활동 환경을 만들기 위해 2010년 창단했다. 현재 지적장애 및 발달장애 학생 28명, 비장애 저소득층 학생 9명, 선생님 12명 등 모두 58명으로 구성됐다. 객원 1명도 함께 활동하고 있다. 이원숙이 14년간 지휘를 이끌고 있다.

뷰티플마인드오케스트라는 첫 곡으로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봄의 소리 왈츠(Op.410)’를 선사했다. 지금의 계절의 딱 들어맞는 선곡이다. 원래는 소프라노를 위한 독창곡이었으나 후에 관현악곡으로 편곡돼 널리 연주되고 있다.

이어 표트르 일리치 차이콥스키의 ‘현을 위한 세레나데(Op.48)’ 1악장을 연주했다. 원곡은 현악 4중주에 더블베이스가 추가된 형식이지만 뷰티플마인드는 현악 파트를 더 보강한 포맷으로 선보였다.

피아니스트 배성연은 이지수 작곡가의 ‘아리랑 랩소디’를 협연했다. 한국민요 ‘아리랑’을 바탕으로 피아노와 오케스트라를 위해 만든 작품이다. 지난해 ‘함께, 봄’ 공연에서는 이지수 작곡가의 ‘K.new’를 연주해 2년 연속 뜻 깊은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마지막 부분에서 단원들은 일제히 ‘와~’ 함성을 내뱉는 깜짝 퍼포먼스를 보여줬다.

발달장애를 가진 심환은 백석예술대에서 클래식기타를 전공했다. 한때 3년간 우체국에서 우편물 분류원으로 일했던 시간도 있었다. 그러나 그의 궁극적인 선택은 다시 기타였다. 기타리스트 허지연은 시각장애와 지체장애를 함께 지니고 있다. 중복장애에도 불구하고 절대음감과 악보 기억력이 뛰어나다.

두 사람이 호아킨 로드리고의 ‘아란후에스 협주곡’ 1악장을 들려줬다. 스페인 정서를 가득 담고 있는 곡이다. 관객들이 두 기타리스트의 연주 모습을 관객들이 잘 볼 수 있도록 이원숙 지휘자는 악보대를 오른쪽으로 옮겨 지휘했다. 관현악의 날개를 타고 속삭이는 기타 소리가 가슴으로 들어왔다.

2부가 시작되기 전 단원들의 모습이 담긴 영상이 상영됐다. “150cm에서 152cm로 키가 컸다.” “이화여대에 입학해 너무 기쁘다.” “큰 무대에 서니 실력도 쑥쑥 자라는 것 같다.” “이젠 도움만 받는 사람이 아니라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되겠다.” “맛있는 기내식을 먹으로 세계로 연주여행을 떠나고 싶다.” 해맑은 웃음으로 그동안의 소감과 미래의 소원을 이야기하느 모습이 예뻤다.

윤한은 뷰티플마인드 단원들과 함께 대중에게 친숙한 영화 ‘007 살인번호’ ‘러브 어페어’ ‘조커’ ‘미션 임파서블’의 OST를 선보였다. ‘007 살인번호’와 ‘미션 임파서블’에서는 긴장감 넘치는 음악을 선사했다, ‘러브 어페어’에서는 감미로움을, ‘조커’에 나오는 ‘어릿광대를 보내주오’에서는 쓰담쓰담 다독임을 담아냈다. 앙코르는 아스트로 피아졸라의 ‘리베로 탱고’를 연주했다.

이날 공연에 참석한 김예지 국회의원은 “배리어 프리 공연 예산을 두 배로 확대해 보람을 느낀다”라며 “앞으로 ‘함께, 봄’뿐만 아니라 ‘함께, 여름’ ‘함께, 가을’ ‘함께, 겨울’까지 공연이 이어지기를 기대한다”고 말해 박수갈채를 받았다.

또 콘서트를 관람한 뷰티플마인드 홍보대사 권유리(‘소녀시대’ 멤버)는 “음악을 향한 순수한 열정으로 그동안 얼마나 연습을 많이 했을지 알 수 있는 무대라 더욱 소중하고 감동적이었다”며 “모두가 차별 없이 음악으로 하나 되는 이 순간에 함께할 수 있어 기쁘고 홍보대사로서 더욱 큰 자부심과 책임감을 느낀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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