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내하청 노동자의 정규직화 피해가기 논란...현대차·모비스·동원 등도 줄줄이 자회사

[주간한국 박철응 기자] 포스코의 자회사 설립 추진에 대해 노동계와 공장이 있는 지역사회가 반발하고 있다. 대법원이 협력업체 소속으로 일하는 노동자들을 불법 파견이라고 판결하자 정규직화를 피하기 위한 꼼수로 자회사를 만들려 한다는 것이다. 

지난 3월 포스코는 "현재는 포스코가 제철소 설비에 대한 정비 계획을 수립하면 관련 업무에 대해 계약을 맺은 협력사들이 정비 작업을 수행하고 있는데, 앞으로는 대형화된 정비 전문 자회사가 보다 안전하고 체계적인 정비 활동을 수행하게 된다"고 밝혔다.

다음달에 제철소가 있는 포항과 광양 지역에 복수의 기계·전기 분야 정비 자회사를 설립할 예정이다. 해당되는 인원은 5000여명으로 알려졌다. 

금속노조 조합원들이 지난 4월 7일 서울 강남구 포스코센터 앞에서 자회사 설립을 반대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사진=금속노조)
금속노조 조합원들이 지난 4월 7일 서울 강남구 포스코센터 앞에서 자회사 설립을 반대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사진=금속노조)

 

포스코는 "최근 철강산업은 스마트팩토리 구축, 저탄소 제철 공정 도입 등 급격한 패러다임 전환이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이라며 "철강 제조의 근간이 되는 설비 경쟁력 강화 및 전문성 확보가 필수적이라고 판단해 자회사 설립을 추진하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또 지난해 9월 발생한 냉천 범람 사고로 큰 침수 피해를 입었던 포항제철소 설비를 복구하는 과정에서 체계적인 정비 체제 구축과 기술력 향상에 대한 중요성과 시급성을 재인식하게 됐다는 것이다. 기존 협력사 중 희망하는 경우는 포스코 정비 자회사 설립에 참여할 수 있으며, 현재 협력업체 직원은 우선 채용한다는 방침이다. 

금속노조 "무늬만 다른 비정규직"
대법, '불법 파견 정규직화' 잇따라 판결

하지만 금속산업노동조합(금속노조) 광주전남지부는 지난달 기자회견을 통해 "(지주회사인) 포스코홀딩스 설립에 이어 포스코 정비 자회사 설립도 군사작전 하듯 발표했다"면서 "사내 하청업체인 협력사를 통합, 편입한다는 정비 자회사는 무늬만 다른 비정규직을 유지하겠다는 것"이라고 규정했다. 

이어 "정비 자회사는 포스코 사내하청 노동자를 정규직으로 전환하라는 대법원 판결을 무력화하는 꼼수"라며 "사내하청 노동자가 금속노조로 대규모 조직되는 것을 막기 위한 민주노조 탄압수단이기도 하다. 그렇지 않고 포스코의 주장대로 전문성 강화와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면 자회사 설립이 아니라 포스코 정규직으로 전환하면 될 일"이라고 주장했다. 

지난해 7월 대법원은 협력업체 소속으로 포스코 광양제철소에서 근무한 59명이 포스코를 상대로 낸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에서 정년이 지난 4명에 대해서는 각하하고 나머지 직원들에게는 원고 승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이들은 회전하는 압연기의 롤 사이에 가열한 쇠붙이를 넣어 막대기 모양이나 판 모양으로 만드는 압연 공정에서 천장 크레인, 지게차 등을 이용한 운반, 제품 창고 내 유인 크레인을 이용한 운반 및 부대 작업 등을 해왔다. 

대법원은 협력업체가 수행할 업무, 크레인 운전에 필요한 인원 수, 크레인 운전 작업자가 수행하는 작업량 등을 포스코가 실질적으로 결정했다고 보았다. 또한 천장크레인과 전산관리시스템을 모두 포스코가 소유하고 협력업체는 독자적인 사업주로서의 실체가 미미한 것으로 보인다는 점 등을 판결 근거로 들었다. 

포스코의 사내 하청 노동자들은 1만 8000여명에 이르며 지난해 대법원 판결을 받은 이들 외에도 3000명가량이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을 진행 중이다. 사내 하청 방식을 이용하는 제조업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사안이다. 당시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유사한 판결이 이어질 경우 우리 기업의 글로벌 경쟁력은 물론 일자리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유사한 판결'은 이어졌다. 석달 후인 지난해 10월 대법원은 현대차와 기아 공장에서 도장, 생산관리 등 업무를 수행해온 사내 하청 노동자들이 낸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에서도 회사 측이 직접 고용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컨베이어벨트를 직접 활용하지 않는 간접 생산 공정 종사자들까지 직접 고용 대상으로 삼은 것이다. 파견법은 파견 대상 업무가 아닌데도 파견 근로자를 사용하거나 2년을 초과해 사용하는 경우 등에 대해서는 사용사업주(원청)가 직접 고용토록 의무를 부여하고 있다. 

이처럼 불법 파견에 대한 판결들이 나온 이후에 자회사 설립 사례들이 잇따르면서 우회 전략이거나 꼼수라는 지적이 나오는 것이다. 현대차의 부품 계열사인 현대트랜시스는 파워트레인 생산 전문 계열사 트라닉스를 지난달 출범시켰다. 자동변속기 조립과 듀얼클러치변속기(DCT)의 가공 조립 공정을 담당하는 사내 협력업체를 생산 전문 계열사로 통합했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트라닉스 지분을 현대트랜시스가 100% 소유하는 구조다. 

또 동원그룹은 현대모비스 등 자동차 부품 물류 사업을 담당하는 동원로엑스의 계열사로 넥스트로를 최근 설립했다. 앞서 현대모비스는 지난해 11월 모듈과 부품 제조를 각각 전담하는 생산 전문 통합 계열사 모트라스와 유니투스를 출범시켰다. 

관건은 처우, 찬성 현수막도
의회·지자체 "상생 방안 마련하라"

관건은 처우다. 포스코는 정비 자회사 직원들의 급여와 복리후생 수준을 포스코 그룹 기준과 맞춘다는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광양 지역 일부 협력업체 직원들은 자회사 설립을 원한다는 현수막을 광양 시내에 걸기도 했다. 하지만 금속노조는 협력업체 소속 처우와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권오산 금속노조 광주전남지부 노동안전보건국장은 "협력사 노동자들은 포스코 정규직 처우에 비해 절반 정도, 자회사는 60% 수준으로 파악하고 있다"면서 "그룹 기준이라고 하는 것이 결국 기존 처우 정도이거나 자회사 수준이 될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 판결에도 불구하고 달라지는 것이 거의 없는 셈이 된다"고 말했다. 

금속노조 포스코사내하청 지회는 지난 2일 서울 포스코센터 앞에서 결의대회를 열어 "수십년간 포스코는 불법 파견으로 노동자들을 차별하고 착취해왔다는 것을 (대법원이) 판결했다"면서 정규직화를 요구하기도 했다.

그런가하면 광양시의회는 지난달 집회를 열어 포스코 지역 상생협력 방안 마련을 촉구했다. 시의원들은 정비 자회사 설립 결정의 재검토와 적극적인 미래 신산업 투자 등을 요구했다.

광양시도 "각종 자재와 공구, 용역 등의 납품을 도맡아왔던 지역 중소납품 업체를 제치고 포스코 계열사인 '엔투비'를 통한 납품이 현실화할 것이라는 우려가 있다"고 했다. 또 김남일 포항시 부시장은 언론 기고를 통해 "포스코가 정비 자회사 설립을 추진하면서 또 다시 지역사회가 연일 들끓고 있다"면서 "협력사는 포스코의 자회사 설립 추진으로 인력과 기술 그리고 자산까지 넘겨야 할지도 모르는 존폐의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고 했다. 

서영배 광양시의회 의장은 "포스코와 지역 업체들이 대화를 하고 있으며 그 결과에 따라 향후 대응 방침을 정할 것"이라며 "100% 고용 보장은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으며, 일괄적으로 급여를 높이는 것은 어렵고 근무 경력이 적어 급여가 더 적은 직원들은 장기적으로 높여나간다는 방침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엔투비를 통한 납품도 하지 않는 방향에서 얘기되는 것으로 안다"고 했다. 

저작권자 © 한국아이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