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경호 "엉터리 경제학자들 아무나 비판"...석학 장하준 "수강 신청 잘못한 정부"

[주간한국 박철응 기자] "다행스러운 것은 최근 여러 경제 지표가 나아지고 있는 모습을 보인다는 겁니다. 터널 끝이 멀지 않았습니다. 다만 터널을 빠져나오느냐 마느냐는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에 달렸습니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13일 경제 분야 국회 대정부질문에 출석해 한 말이다. 윤석열 정부가 출범하기 전과 비교해 물가, 고용, 증시, 환율 등이 모두 양호하다고 했다. 그는 또 국제통화기금(IMF)의 올해 성장률 전망을 거론하면서 "우리는 그나마 선방한다고 평가했다"고 언급했다.

지난 4월 IMF는 올해 세계 경제 성장률을 2.8%로 전망하고, 한국에 대해서는 그 절반 수준에 불과한 1.5%로 전망한 바 있다. 지난해부터 지속적으로 하향 조정해온 결과다. 하지만 추 부총리는 선진국 권역 전망치인 1.3%와 비교해 그보다는 우리가 낫다는 점을 내세운 것이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6월 1일 서울 강서구 서울창업허브 엠플러스에서 열린 제5차 수출전략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6월 1일 서울 강서구 서울창업허브 엠플러스에서 열린 제5차 수출전략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한국 경제에 먹구름이 짙게 드리우고 있으나 정부는 이처럼 비교적 낙관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추 부총리는 다음날 국민의힘 친윤(친윤석열)계 공부 모임인 '국민공감' 초청 강연에서 최근 물가 상승률이 둔화되고 있다는 점 등을 강조하며 "야당이 함부로, 엉터리 경제학자들이 아무나 튀어나와 비판하는 것에 주눅 들 필요 없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기획재정부는 같은 날 추 부총리와 간담회를 가진 주요 연구기관·학계·글로벌 투자은행(IB) 등 거시경제 전문가들이 하반기로 갈수록 경기가 나아질 것이라는데 대체로 의견을 같이 했다고 전하기도 했다. 완만한 내수 회복세가 유지되고, 정보기술(IT) 부문을 중심으로 수출・투자도 점차 개선될 것으로 예상했다는 전언이다. 

'물가·고용' 부정 평가 여론 66%
경제 정책 'F학점' 평가도 46% 

국민들의 시각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코리아리서치와 한국리서치가 지난 5~7일 실시한 여론조사(표본크기 1000명, 휴대전화 면접 방식, 95% 신뢰수준에서 표준오차 ±3.1%포인트) 결과, 정부의 '물가 안정, 일자리 창출 등 경제 정책'에 대해 '잘못하는 편' 34%, '매우 잘못' 32%로 부정 평가가 66%를 차지했다. 긍정 평가는 28%에 그쳤다. 바로 추 부총리가 내세웠던 물가와 고용에 대한 국민들의 현실적 판단이다.

또 중앙일보 의뢰로 한국갤럽이 지난달 7~8일 실시한 '대통령 취임 1주년 여론조사'(표본크기 1003명, 무선 전화 인터뷰, 95% 신뢰수준에서 표준오차 ±3.1%포인트) 결과, 윤석열 대통령 취임 이전과 비교해 '살림살이가 좋아졌다'는 응답은 8.6%에 그쳤고 '비슷하다'(54.6%) 혹은 '나빠졌다'(35.2%)가 90%에 이르렀다.

남은 임기 중 가장 중점을 두어야 할 사항을 묻는 질문에도 '경제 회복/활성화'가 32.3%로 '외교/국제 관계 개선'(11.1%) '민생 문제/생활 안정'(7.3%) '부동산 문제 해결'(4.0%) 등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았다. 

앞서 경제개혁연구소가 한길리서치에 의뢰해 지난 4월 8~10일 실시한 '정부 경제 정책에 대한 국민 의식 조사'(표본크기 1007명, 전화면접 10.2% 무선 ARS 89.8%, 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 ±3.1%포인트) 결과, F학점 46.3%, D학점 9.9%로 56.2%가 부정적이라고 답했다. 긍정(A학점 15.0%, B학점 14.2%)은 29.2%에 그쳤고 C학점은 11.9%였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이 지난 4월 14~20일 전국의 대학교수 34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전문가 설문조사에서도 '핵심 전략 산업 육성으로 경제 재도약 견인'이라는 국정과제에 대해 45.8%가 '못한 정책'이라고 답했고 '잘한 정책이란 응답은 27.2%에 그쳤다. '경제 체질 선진화로 혁신 성장 디딤돌 마련'이란 과제 역시 49%가량이 '못한 정책'으로, 25%가량만 '잘한 정책'으로 평가했다. 

그만큼 국민과 전문가 모두 경제에 대한 위기감과 우려가 큰 것으로 풀이된다. 관세청에 따르면 올해 1~5월 수출은 2530억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13.6% 줄었고 무역수지 적자 규모는 274억달러에 이른다. 대중국 수출은 12개월 연속 감소했고, 미국 역시 2개월째 감소세다. 1분기에 그나마 버팀목 역할을 했던 민간 소비 역시 줄어드는 추세다. 수출과 내수의 복합 위기 상황이다. 

추경호 "사상 최고 고용률, 최저 실업률"
청년·핵심 산업 일자리 감소해 '온도차'

그럼에도 정부는 일부 지표를 들어 자신감을 내비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 역시 뜯어보면 우려할 요소가 적지 않다.

추 부총리가 '사상 최고 고용률, 사상 최저 실업률'이라고 강조했던 일자리 지표는 통계청이 지난 14일 발표한 지난달 고용 동향을 근거로 한 것 같다. 15~64세 고용률이 63.5%로 전년 동월 대비 0.5%포인트 상승했고, 실업률은 2.7%로 0.3%포인트 하락했다. 

취업자 수를 보면 보건업 및 사회복지 서비스업(16만 6000명, 6.0%), 숙박 및 음식점업(12만 8000명, 5.9%), 전문과학 및 기술서비스업(11만 1000명, 8.7%) 등에서 증가한 반면 건설업(-6만 6000명, -3.0%), 제조업(-3만 9000명, -0.9%), 도매 및 소매업(-3만 1000명, -0.9%) 등에서 감소했다. 경제 성장의 핵심 산업 일자리는 줄고 서비스업을 중심으로 늘어난 것이다.

연령대별로 보더라도 60세 이상에서 37만 9000명, 30대 7만명, 50대 4만 9000명 늘었으나, 20대와 40대는 각각 6만 3000명, 4만 8000명씩 감소했다. 비경제활동인구 중 '쉬었음' 상태는 18만1000명, 8.8%나 증가했다. 특히 20대의 '쉬었음' 인구는 3만 6000명, 11.1% 늘었다. 

정부가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과거 방식을 답습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장하준 런던대 교수는 최근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경제 정책에 어떤 학점을 줄 수 있을지'라는 질문에 "학점을 주기에 앞서 현 정부는 수강 신청을 잘못한 과목이 많은 것 같다"고 했다.

그러면서 "노동의 질이 중요할 때 노동시간과 관련한 과목을 듣고 있고, 냉전도 아닌데 한미일 동맹과 관련한 과목을 듣고 있다"면서 "출생률을 높이기 위해선 복지와 성차별과 관련한 과목을 들어야 하는데, 필리핀 가사도우미 도입 과목을 듣고 있다. 박정희 시대의 성장과 개발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 더 좋은 사회를 위해 좀 더 미래 지향적인 어젠다를 보여주는 과목을 수강했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미중 갈등과 관련해서는 "현재 상황을 신냉전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냉전 당시 미국과 소련은 무역 거래가 거의 없는 완전히 분리된 세계였다. 하지만 현재 미국과 중국은 샴쌍둥이 같은 존재다. 중국에서 들어오는 싼 물건이 없으면 미국은 물가 불안에 휩싸일 수밖에 없고, 중국은 미국 정부가 발행한 국채 가운데 13%를 가진 최대 투자국"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대기업 정책에 대한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강정민 경제개혁연구소 연구위원은 최근 '윤석열 정부의 경제 정책 평가' 보고서에서 "윤석열 대통령과 정부 인사들은 KT, 포스코, 은행 지주회사 등 소유 분산 기업의 지배구조 개선을 강조하지만, 이른바 주인이 있는 재벌 대기업이 지배구조 측면에서 더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사실은 전혀 언급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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