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케미칼 등 롯데 계열사들 무더기 신용등급 하락...대기업의 잇단 유동성 위기 확산

CJ CGV 영화관 모습. (사진=CGV 누리집 갈무리)
CJ CGV 영화관 모습. (사진=CGV 누리집 갈무리)

[주간한국 이재형 기자] 기습적 '유상증자 쇼크'가 주식시장을 덮쳤다. 최근 조단위의 대대적인 유상증자 계획을 밝힌 SK이노베이션과 CJ CGV가 난데 없는 주가폭락 사태에 처한 것이다. 한꺼번에 막대한 물량의 신주를 발행하면서 주주가치가 희석되자 투자자들이 매물을 쏟아낸 것이 원인이다. 특히 증자를 통해 확보한 자금은 신규 투자가 아니라 상당 부분을 빚 갚는데 사용하겠다고 밝힌 점이 투자자들의 불안감을 자극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유증 발표로 SK이노‧CJ CGV 주가↓
CGV는 대부분 빚 탕감 용도 

최근 증시에서는 SK이노베이션과 CJ CGV가 각자 유상증자 계획을 공시한 후 주가가 나란히 곤두박질쳐 주목을 끌었다.

SK이노베이션은 지난 6월 23일 1조 1777억원 규모의 유상증자 계획을 공시한 이후, 주가가 3거래일 연속 하락했다. 누적 하락폭은 11.99%. 시가총액은 1조원 가까이 증발했다.

CJ CGV는 지난 6월 27일 주가가 종가 기준 9590원을 기록,  유상증자 발표 전날인 지난 6월 19일 주가(1만 4140원)에 비해 33% 떨어졌다. 이는 CGV가 현물출자 포함 총 1조 2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 계획을 밝힌 뒤 벌어진 일이다. CGV 주가가 1만원 밑으로 떨어진 것은 2008년 10월 이후 이번이 처음이다.

유상증자는 통상 기존 주식의 가치가 희석되기 때문에 주가에 악재로 작용하는 경우가 많다. 유상증자 규모가 크면 클수록 주가는 더욱 민감할 수밖에 없다.

특히 CGV의 경우 유상증자 규모가 시가총액을 웃돌 정도여서 그 여파가 이례적으로 컸다. 대신증권은 최근 보고서를 통해 CJ CGV가 대규모 유상증자 영향으로 7월 말까지 주가 변동성이 클 것으로 내다봤다. 김회재 대신증권 연구원은 "발행가격이 확정되는 시기인 7월 말까지 주가 변동성이 커지고 단기 주가 하락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단순히 유상증자 규모가 크다고 해서 주가에 악영향을 끼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신사업 등 회사의 비전을 위한 투자 목적이 아니라 채무를 갚기 위한 유상증자는 악재일 수밖에 없는데 이번 사례가 그렇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CGV의 경우 일반공모를 통해 조달하는 자금 5700억원 가운데 시설자금과 운영자금은 각각 1000억원(17%), 900억원(16%)에 불과하고 절반이 넘는 3800억원(67%)이 단순 채무 상환용이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최근 경기둔화 및 고금리로 영업이나 대출을 통해 현금을 조달하기 어려워지자 대기업들이 주가하락까지 무릅쓰고 유동성 확보에 나선 것 아니냐는 비관적 해석도 나온다.

SK이노베이션은 유상증자 1조 1800억원 가운데 70%(8287억원)를 수소·암모니아를 비롯한 미래에너지 사업 발굴과 연구개발(R&D) 시설 조성 등의 목적으로 사용하지만, 채무상환 목적에 쓰는 돈도 3500억원(30%)으로 적지 않게 할애했다.

CJ, 현물출자로 지배권 확보
"기업·주주가치 심각하게 훼손 우려"

이에 더해 CGV의 경우 유상증자 과정에서 대주주인 CJ주식회사의 참여 방식도 도마 위에 올랐다.

유상증자는 신주 발행으로 기존 주주가치가 희석되는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대주주가 자기 자본을 투입, 지분율 만큼 사들이는 경우가 많다. 가령 한화오션은 지난달 1413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로 자금 조달에 나섰지만 주주배정이 아닌 제3자배정 방식을 택해 주주가치가 희석되는 것을 최소화시켰다.

CJ주식회사는 CGV 주식 48.5%를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CGV에서 5700억원어치 주식을 일반 공모 발행하면서 CJ주식회사는 600억원만 참여하기로 해 일반 주주로부터 빈축을 사고 있다.

또한 CGV는 제3자 배정 방식의 현물 출자를 통해 CJ주식회사가 100% 보유한 CJ올리브네트웍스의 지분을 받고 CGV 신주를 CJ주식회사에 내놓게 됐다. 올리브네트웍스 지분가치는 4500억원으로 평가됐다. 결과적으로 CJ와 오너 일가는 올리브네트웍스만 CGV 자회사로 넘기고 상당한 CGV 주식을 확보하게 돼 대단위 유상증자에도 불구하고 지배력을 유지할 수 있게 됐다.

이와 관련,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은 지난 6월 29일 논평을 내고 “모기업인 CJ에 제3자 배정 유상증자를 실시하고, CJ는 현금 대신에 CJ가 100% 지분을 보유한 CJ올리브네트웍스를 4500억원의 가치로 현물출자하여 동사의 지분을 취득하겠다는 계획을 밝힌 것에 대해 CJ CGV의 기업가치와 주주가치를 심각하게 훼손할 우려가 크므로 반드시 재고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신용등급 '줄하락'...위기의 롯데

한편 올 들어서 유통, 화학, 물류 등 계열을 거느린 대기업들이 투자 성과 부진과 업황 악화 등의 여파로 고전을 면치 못하는 모양새다. CJ와 SK이노베이션도 그 영향을 받아 자금 확보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CGV는 지난 1분기 기준 사채 및 차입금 7534억원, 부채비율 912%으로 재무상태가 악화됐다. 이번 증자로 부채비율은 240% 수준으로 떨어져 자본잠식 위기의 급한 불은 끈 것으로 전망된다.

CJ ENM은 지난해 7억 8538만 달러를 들여 인수한 미국 콘텐츠 제작사 피프스시즌(옛 엔데버콘텐트)은 올해 1분기 실적이 400억 원의 적자에 그쳐 역시 성과를 내지 못했다.

SK이노베이션은 지난 2021년 10월 배터리 사업부를 물적분할하고 2조원을 투입했던 SK온이 지난해까지 흑자전환에 실패하는 등 아직까지 정상화에 도달하지 못한 상태다.

앞서 지난 1월 총 1조105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단행했던 롯데케미칼도 후폭풍이 계속되고 있다. 국내 신용평가사들은 롯데 주요 계열사(롯데케미칼, 롯데지주, 롯데건설, 롯데렌탈, 롯데쇼핑, 롯데캐피탈)의 신용등급을 무더기로 하향 조정했다.

롯데케미칼의 경우 일진머티리얼즈 인수대금 부담과 이후 불거진 롯데건설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등이 재무 구조상 문제로 꼽혔다. 롯데케미칼은 지난해 영업 손실 7626억원(연결 기준)을 기록하고 올해 1분기도 영업 적자가 지속하는 등 업황도 부진을 면치 못하는 상황이다. 이런 악재가 겹친 결과 롯데케미칼의 순차입금 규모는 지난 3월 말 기준 3조 3000억원까지 불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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