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비 1조원 한남2구역, 높이 제한 놓고 시공사 교체 여부 논의

서울 용산구 한남뉴타운 일대 전경. (사진=유토이미지 제공)
서울 용산구 한남뉴타운 일대 전경. (사진=유토이미지 제공)

[주간한국 이재형 기자] 서울 지역 재건축‧재개발 사업이 언덕‧산지 인근 지역은 고도 제한 규제로 갈등을 빚고, 강변은 용적률 완화 수혜로 속도를 내고 있다. 

서울시 용산구의 재개발 사업지인 한남뉴타운은 일부 구역에서 아파트 높이 등 설계를 놓고 불거진 갈등으로 사업에 제동이 걸릴 위기에 처했다. 보광동 일대 한남2재정비촉진구역 주택재개발정비사업(한남2구역) 조합은 다음달 중 총회를 열고 시공사인 대우건설의 계약 취소 여부를 결정할 계획이다. 지난해 11월에 시공사 지위를 놓고 경합했던 롯데건설 대신 ‘높이 규제 완화’를 약속했던 대우건설이 시공사로 선정됐는데, 이를 이행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조합이 계약 해지를 검토하는 것이다.

고도 제한으로 조합-건설사 갈등하는 한남2구역

한남2구역은 건축물 높이 규제를 받아 최고 높이 90m까지만 가능한다. 북쪽에 남산을 등지고 남쪽으로 한강을 바라보는 지형상 강 건너 편의 반포대교 남단이나 한남대교에서 볼 때 남산의 7부 능선을 넘어 가리지 않는 것도 기준으로 삼았다.

대우건설은 이를 118m까지 높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높이를 건물 층수로 환산하면 14층에서 21층으로 올릴 수 있어 조합은 더 높은 분양 이익을 거둘 수 있다. 박원순 전 시장 때 118에서 90m로 낮췄던 터라, 지난해 4선에 성공한 오세훈 서울시장이 다시 올려줄 것이란 기대가 있었다. 대우건설은 사업을 수주하면서 이 같은 정비계획 변경이 불발될 경우 조합의 재신임을 받겠다는 단서도 달았다.

그러나 지난 6월 30일 서울시가 다수 지역의 고도 제한 완화 계획을 밝힌 ‘신 고도 지구 구상안’에 한남2구역은 없었다. 조합은 이를 이유로 118m 실현 가능성을 의심하며 시공사 지위 박탈까지 거론하는 것인데, 향후 공방에 대비해 법률 자문도 받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총 사업비가 1조원에 육박하는 초대형 사업을 놓칠 위기에 놓인 대우건설은 조합에 내년 8월까지 결정을 연기해 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대우건설 관계자는 “실패라고 단정할 수 없는 상황이므로, 지금 시공사 지위 안건을 총회에 올리는 것은 시기가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고도 제한 풀어준 곳도 형평성 논란

서울시 용산구 이태원동과 남산 풍경. (사진=유토이미지 제공)
서울시 용산구 이태원동과 남산 풍경. (사진=유토이미지 제공)

고도 지구와 관련된 갈등은 곳곳에서 '뜨거운 감자'다. 서울시의 ‘신 고도 지구 구상안’에는 8개 지역(남산, 북한산, 구기·평창, 국회의사당, 경복궁, 배봉산, 오류, 서초동 법원단지) 주변에 설정된 규제를 완화하는 계획이 포함돼 있다. 해당 계획은 앞으로 서울시의회 의견 수렴과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 심의 등 절차를 거칠 계획인데, 통과될 경우 33년만에 고도 지구 규제가 조정될 전망이다.

하지만 이 가운데 서울 중구와 용산구에 위치한 남산 일대 고도 지구에서 추가 규제 완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서울시에서 주변 경관과의 조화를 이유로 지역에 따라 달리 적용하다보니 형평성 논란이 불거진 것이다.

중구는 ▲회현동 ▲명동 ▲필동 ▲장충동 ▲다산동 등 5개 동이 남산 고도 지구로 묶여있는데, 구상안에 따라 1·2종 일반주거지역은 기존 12∼20m에서 20∼28m로, 준주거지역은 기존 20m에서 최고 40m로 고도 제한이 완화될 수 있다. 또 회현동과 다산동의 1·2종 일반주거지역 일부는 일정 기준을 충족 시 8m까지 올려주기로 했다.

그러나 중구는 회현동‧다산동의 높낮이를 주변과 비교한 결과 경관을 해칠 가능성이 낮다고 판단하고 조건 없는 8m 완화를 서울시에 건의했다. 이외에도 고도 지구 지정 전 건립된 고도 제한 초과 건축물은 재건축 시 기존 높이를 최소한 보장하는 등 제한 완화를 건의했다. 중구 남산 고도 지구 안에는 이처럼 재건축하면 더 낮게 지어야 하는 건축물이 66개 있다고 한다.

마찬가지로 용산구도 ▲후암동 ▲용산2가동 ▲이태원동 ▲한남동 등 남산 주변 고도 지구에 대해 노후 건물 정비를 위해 추가 완화가 필요하다며 의견들을 제시하고 있다. 용산2가동 해방촌 지역은 높이가 인접지와 동일한데도 제1종 일반주거지역 높이가 기존 12m로 유지돼 지역 주민들은 항의성 현수막을 곳곳에 게시하는 등 반발하고 있다. 박희영 용산구청장은 “이번 남산 주변 고도 제한 완화는 적극 환영할 일이지만 타 지역과 비교해 불합리한 일부 지역에서는 기대가 컸던 만큼 상실감도 컸을 것”이라며 “고도 제한 추가 완화를 바라는 주민 의견이 최대한 반영되도록 서울시와 적극 협의하겠다”고 밝혔다.

규제 형평성 논란도 떠올랐다. 2·3·4·5구역으로 구성된 한남뉴타운은 대부분 90m로 고도제한이 설정돼 있는데 특정 구역만 완화될 경우 특정 사업지에 대한 차별 혹은 특혜 시비에 걸릴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 한남3구역은 현대건설이 시공을 맡고 있으며, 4·5구역은 시공사 선정을 앞둔 상태다.

건설사 과장‧허위 광고 경각심 높아져

한편 최근 주택 정비업계는 제재를 받는 사례가 나타나는 등 입찰 과정에서 건축사 혹은 건설사의 과장‧허위 광고에 대한 경각심이 한껏 높아진 상태다. 신속통합기획 방식으로 재건축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서울시 규정(300%)을 벗어난 용적률(360%)을 제시하는 등으로 설계를 제출해 지침 위반 논란을 빚은 압구정3구역은 서울시가 건축사를 사기 미수 및 업무 방해로 고발한 데 이어 설계사 선정 과정이 부적정했다는 이유로 조합에 시정명령을 내렸다. 

업계 일각에서는 고도 제한을 넘는 높이를 제안해 한남2구역 시공사로 선정된 대우건설 역시 과대홍보에 해당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다만 서울시는 한남2구역이 정비계획에 규정 위반인 118m를 제출한 건 아니었던만큼, 규정에 위반된 설계를 지자체에 제출한 압구정3구역과 동일선상에 놓기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지난해 6월 개정된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은 입찰 과정에서 사실과 다른 정보를 제공하거나 사실을 부풀려 정보를 제공하는 행위도 금지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와 관련 서울시와 국토교통부는 지난달 27일 공동 보도자료를 내고 “정비사업 과정에서 법령이나 조례를 위반하는 행위가 있거나, 인·허가권을 가진 지자체의 지침에 따르지 않는 행위가 있으면 지속해 엄중히 조치하도록 관리·감독을 강화하고 관리·감독 과정에서 긴밀히 협력하면서 정비사업의 투명한 시행을 위해 필요하거나 미흡한 제도에 대해서는 지속해 개선해 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레이트 한강 프로젝트'로 강변은 수혜

서울 성동구 성수동 강변 풍경. (사진=유토이미지 제공)
서울 성동구 성수동 강변 풍경. (사진=유토이미지 제공)

이처럼 규제 완화에 목말라 진통을 거듭하는 고도 지구 상황과 대조적으로 강변은 한층 힘을 받고 있다. 오세훈 시장이 올해 한강변 주택 개발을 비롯한 ‘그레이트 한강 프로젝트’를 시사한 데 힘입어 파격적인 종상향을 포함한 개발 계획이 잇달아 나오고 있다. 대표적으로 전략정비구역 성수동과 압구정은 각각 80층, 70층 아파트 건립 가능성이 거론되고 그 기대감에 일대 주택은 거래가격이 급등하고 있다. 목동은 목동운동장과 목동유수지 일대를 통합 개발해 마이스(MICE) 단지로 개발하는 계획이 나왔고 여의도는 금융기관이 집적된 지역에 용적률을 1200%까지 완화할 계획이다.

오랫동안 공전을 거듭했던 옛 노량진수산시장 부지도 여의도와 용산을 잇는 수변복합 경제 거점을 조성하는 방향으로 지난달 서울시가 지구단위계획을 지정했다. 노량진역 인근에 위치한 이곳은 인허가 지연으로 구체적인 개발 계획을 세우지 못했는데 이번에 일반상업지역으로 용도도 상향돼 고밀 개발이 이뤄질 전망이다. 아울러 한강대교와 맞닿은 노들섬에 랜드마크를 조성하는 개발 계획도 순차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삼성물산은 지난 23일 서울 송파구 래미안갤러리에서 기둥과 보를 활용한 ‘넥스트 라멘구조’ 등을 활용한 주거문화 청사진 ‘넥스트 홈(The Next Home)’을 발표하면서 앞으로 이를 활용해 서울 주요 개발 사업지의 일감 수주에 적극 나서겠다고 밝혔다. 삼성물산은 그동안 주택 정비사업에서 다른 건설사에 비해 소극적이었지만 최근 서울시가 규제를 풀면서 전략을 수정한 것으로 해석된다. 김명석 삼성물산 주택본부장은 “요소 기술들을 단계적으로 프로젝트에 적용하고, 특히 고층으로 시공 예정인 여의도·성수·압구정 등 서울 강남권과 한강변 초고층 프로젝트에 이런 상품을 제안하고 적용해 주택시장을 선도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부와 지자체의 규제 완화 기조가 자칫 공공복리를 저해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심상정 정의당 의원은 지난 23일 국회에서 열린 ‘도시계획 혁신방안 무엇이 문제인가’ 토론회에서 “(정부와 지자체가) 도심 부지를 민간 사업자에 내주고 토지 용도 규제나 용적률과 건폐율 등 밀도 규제를 다 열어주고 있지만, 개발이익을 환수할 제도적 장치도 충분치 않다"면서 ”진정한 도시 개혁은 기후위기시대 탄소중립정책이나 저출산과 1인 가구 증가에 따른 공동체 정책 등이 포함돼야 하는데 그런 계획은 전혀 없이 총선을 앞두고 추진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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