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한국 홍성완 기자] 최근 경기침체 우려로 한국은행은 기준금리 인상 기조를 멈추고 동결을 선택했다. 반면에 시장에서는 이달 열릴 미국 연방준비제도(이하 연준)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가 기준금리인상에 나설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 나아가 빅스텝(기준금리 0.50%포인트 인상)까지 단행할 수 있다는 전망도 힘을 얻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나라 경제를 지탱해주던 수출이 5개월 연속 하락했고, 무역수지 적자는 1년째 이어지고 있다. 가랑비에 옷 젖듯 달러환율은 1300원을 훌쩍 넘어섰다. 한국은행의 선택은 환율 방어를 더욱 어렵게 하고, 이는 다시 물가상승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 경제침체를 잡으려다 서민들이 죽어나는 상황에 이르고 있다는 우려가 점점 현실화 되어가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이 터지기 전인 지난해 1월부터 예견되기도 했다. 중앙은행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던 시기였다. 그러나 최근 한국은행의 행보를 보면 본인들이 최우선해야 할 역할을 망각하고 있는 게 아닌지 걱정이 드는 건 나만의 기우일까.

◆ 폴 볼커를 기억하자

우리는 2차 오일쇼크로 세계경제가 휘청거릴 때를 기억할 필요가 있다.

1929년 대공황이 터지면서 미국은 새로운 영웅의 탄생을 고대했다. 이를 통해 탄생한 대통령이 제32대 대통령으로 올라선 프랭클린 루즈벨트이다. 1932년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지명된 그는 케인스 이론을 바탕으로 하는 ‘뉴딜(New Deal)정책’을 들고 나왔다. 정부가 시장에 적극 개입하고, 공급과 수요를 동시에 늘리는 방안으로 현재의 대공황을 탈출한다는 게 그의 주장이었다.

이러한 그의 생각은 적중했고, 당시 상황에서는 이 방식이 제대로 먹혔다. 그로 인해 루즈벨트는 유일무이한 4선 대통령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루즈벨트의 정책은 1973년부터 비판받기 시작한다. 제4차 중동전쟁을 계기로 아랍 산유국들이 석유를 무기화해 단기간 원유가격을 4배 가까이 올리면서 세계 경제는 심각한 불황을 겪게 된다. 바로 1차 오일쇼크의 시작이었다.

이후 1978년 이란 혁명으로 석유 수출이 중단되면서 2차 오일쇼크까지 오게 되자 전 세계는 장기적인 경기침체에 들어선다. 더 큰 문제는 경제가 침체되면 물가는 떨어져야 하는데, 오일쇼크로 인해 물가도 폭등했다. 경기침체와 물가 폭등이 동시에 발생하는 ‘스태그플레이션’ 현상이다.

전 세계적으로 스태그플레이션 충격파가 한창이던 시기 등장한 인물이 바로 1979년 연방준비제도 의장에 임명된 폴 볼커다. 

폴 볼커는 ‘인플레이션 파이터’이자 ‘살아있는 규제’라고 불렸다. 그는 스태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선 정부가 아닌 중앙은행이 적극 개입해 우선적으로 물가부터 안정화시켜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당시 세계 경제에 주류였던 루즈벨트 대통령의 ‘뉴딜정책’, 즉 케인스 이론에 반대되는 이론을 들고 나온 것이다.

폴 볼커는 자신의 철학에 따라 기준금리를 가파르게 올리기 시작했다. 기준금리 인상으로 시중에 있는 돈을 빨아들여 화폐 가치를 올리고, 이를 통해 우선적으로 물가를 안정시켜야 경제도 안정된다는 개념이었다. 이 때 기준금리는 무려 20%대까지 올라간다.

여론은 아우성을 쳤다. 폴 볼커가 불도저처럼 기준금리 인상을 단행하자 ‘경기침체를 가속화시키고 있다’며 그에 대한 비판적인 목소리가 연일 높아지고 있었다.

하지만 볼커의 정책은 결국 인플레이션을 잡아내는데 성공한다. 이로 인해 미국 경제를 필두로 글로벌 경제는 안정화에 접어들기 시작했다. 볼커의 업적은 이후에 또 한 번 재평가를 받는다.

볼커의 강력한 통화 긴축 정책은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 없이도 알아서 부실기업들이 정리되는 역할을 했다. 이를 통해 버블(거품)이 끼지 않는 건강한 경제구조를 만들어내면서 튼튼한 펀더멘탈(경제 기초)를 쌓은 것이다. 이는 미국이 최대 호황기를 누릴 수 있는 발판으로 평가받는다.

사람들은 이러한 역사를 경험했음에도 그 기억을 곧 잊고 말았다.

볼커의 통화주의적 정책에 대한 반대급부로 떠오른 앨런 그린스펀이 연준 의장으로 임명되면서 전 세계 시장은 ‘매(긴축)’가 아닌 ‘비둘기(완화)’ 시대로 급변한다.

그린스펀에 대한 여론은 매우 호의적이었다. 기준금리를 지속적으로 내리면서 탈규제를 내세웠던 그는 1987년 연준 의장에 오른 뒤 무려 18년간의 임기를 지속한다. 이 기간 동안 미국은 경제 붐이 일며 ‘경제대통령’, ‘마에스트로’라는 명예로운 별명을 얻었다.

하지만 2008년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인한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지면서 그에 대한 책임론이 부각됐다.

경제학자들은 그린스펀이 2006년 버냉키에게 의장 자리를 내줬으나, 글로벌 금융위기의 책임은 그린스펀에게 있다고 지적했다.

폴 볼커가 거품을 걷어내고 만든 강한 펀더멘털의 덕을 누리다 완화적인 그의 정책에 따른 거품경제가 글로벌 금융위기를 통해 표출된 것이라는 주장이다.

낮은 기준금리로 인해 경제 상황에 대한 움직임의 폭이 줄어들었고, 이로 인해 그의 후임이었던 버냉키가 가용할 수 있는 방안이 지극히 제한적이었다는 게 그린스펀을 비판하는 학자들의 지적이다.

여러 논란이 있겠으나 통화 정책에 있어 긴축 정책과 완화 정책은 시기에 따라 적절하게 균형을 맞춰가야 한다는 것에는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 그것이 중앙은행의 역할이고 또한 중앙은행이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 중앙은행의 역할은 국가의 미래를 보는 것

경제와 관련해 ‘욕을 많이 먹는 중앙은행 수장이 일을 잘하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

금리를 인상함으로써 펀더멘탈은 올라가지만, 그로 인해 일시적으로 발생하는 경제침체에 대한 불만은 어쩔 수 없기 때문이다. 여러 번 반복된 역사임에도 사람들은 거시적인 방안보다 당장의 근시안적인 부분에 집중하는 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모두 똑같다.

지루할 수 있는 폴 볼커의 이야기를 굳이 꺼낸 이유는 그의 정책들을 통해 우리는 하나의 중요한 ‘교훈’을 도출해야 하기 때문이다.

처음으로 돌아가 한국은행이 보수적인 관점에서 ‘인플레이션’을 잡아내는 것에 최우선 순위를 두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보수적인 정권의 시선이 아니라 진짜 보수적인 관점에서 말이다. 그렇기에 경기침체 우려보다 서민들의 지갑이 얇아지는 것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여론의 눈치를 살피지 않도록 중앙은행에 독립성이 부여된 것도 이러한 이유다.

냉정하게 이야기해서 우리 경제는 이제 연착륙이 불가능하다는 판단이다. 이미 스태그플레이션은 시작됐고, 이런 상황에서 경착륙이라도 해야 그나마 건강한 경제주체들이라도 살려낼 수 있다.

고용노동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임금상승률에 비해 물가상승률이 더 높아지면서 처음으로 실질임금이 0.2%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실질임금 감소는 올해 더 커질 확률이 높다. 실제로 직장인들의 점심값은 만원이 넘는 상황이고, 소비심리는 점점 위축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은행이 경기침체 우려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것은 점점 커지고 있는 폭탄을 뒤로 돌리려는 행위로 밖에 볼 수 없다. 당장 여론의 눈치를 볼 것이 아니라, 장기적인 관점에서 상황을 계산하며 정책을 펼쳐야 하는 중요한 순간에도 말이다.

묵묵히 일하며 성실하게 살아가는 기업들과 성실한 서민들에게까지 피해가 가지 않도록 중앙은행뿐만 아니라 정부도 결단을 내려할 시기다. 아니 이미 그 시기는 지나고 있다. 지금이라도 과감한 결단을 통해 우리 경제에 곪은 부분들은 도려내고, 새로운 살이 돋도록 해야 한다.

버블을 걷어내는 작업을 통해 부실기업의 정리를 유도하고, 이로 인해 발생할 서민들의 피해에 초점을 맞춰야 할 시기라는 이야기다. 위기는 곧 기회가 될 수 있다. 지금 정리할 것들을 정리하고 미래지향적인 경제 체질 개선을 통해 다시 한 번 수출 대국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세계에서 가장 낮은 출산율에 가장 큰 몫을 차지하고 있는 부동산 가격의 안정화라는 목표도 달성할 수 있다. 당장 GDP가 급락할지라도 우리 미래에 가장 큰 숙원사업을 이 기회를 통해 실행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지금은 부동산 규제를 풀 때가 아니라는 이야기도 보태고 싶다.

통화주의를 지지하는 경제학자들은 완화 정책이 미래세대의 먹거리를 당겨쓰는 행위라고 비판한다. 나중에 쓰려고 쌓아둔 곡간에 곡식을 사용하는 행위로 해석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무조건 곡간을 채우는 게 능사라고 할 수는 없다. 다만, 어느 정도 곡간을 채워놔야 위기에 대응하고, 이를 종자삼아 다시 미래를 내다볼 수 있다.

곡간을 적당히 채우고 비우고를 해야 하는 게 중앙은행의 역할이다. 상황에 따라 뉴딜정책을 지지하는 정책이 필요할 수 있고, 반대로 강력한 통화 정책이 필요할 수도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지금은 강력한 통화정책이 필요한 시기다. 경제 사이클상 코로나19 사태가 발생하기 이전 금리 인상 사이클 시기가 도래했었다. 하지만 코로나19 사태를 극복하기 위한 방법으로 전 세계적으로 완화정책을 더욱 확대했고, 이로 인해 거품은 더 커졌다. 여기에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으로 인해 그렇게 쌓인 거품으로 인한 충격은 더욱 가중됐다.

이 충격을 감내하기 위해 선제적으로 기준금리를 올려갔어야 할 상황에서 정권과 여론의 눈치를 보느라 주춤거린 것이 지금의 한국은행이다. 폴 볼커를 통해 중앙은행의 독립성이 왜 필요한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보고, 여론이 아닌 국가 경제의 미래를 내다보며 통화정책을 운용해야 할 것이다.

아울러 시장전문가들은 무책임한 노골적인 완화 정책 요구 압박을 멈추고, 좀 더 큰 틀에서 냉정한 보고서를 발표하는 경제전문가들이 더 많아져 한 사람의 국민들이라도 시야를 더욱 밝혀주길 개인적으로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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