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채 발행 기피, R&D 위주 지출 구조조정 "성장동력 약화 우려"...후진국형 SOC 예산 늘려 대조

[주간한국 박철응 기자] 예상에 비해 수십조원씩 들어오는 돈이 적다. 사정이 급하니 정부가 이른바 '한국은행 마이너스 통장'을 역대급으로 쓰기도 했다.

불경기로 가계와 기업이 고통을 받고 있지만 정부는 재정 건전성을 지키겠다며 국채 발행과 재정 지출 확대를 불온시한다. 당장 내년 예산안을 짜면서 20조원대의 지출 구조조정을 하겠다고 했다. 암담한 상황이다. 

"6월까지의 수치보다는 세수 결손, 세수 부족이 더 크게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달 22일 국회에 나와 한 말이다.

올해 상반기 국세 수입은 178조  5000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39조 7000억원, 18.2% 적다. 하반기에 지난해와 같은 수준으로 세금을 걷는다고 하더라도 연간 세수는 356조원가량으로 올해 예상했던 세입 예산(400조 5000억원) 대비 44조원 이상 부족한, 역대급 세수 '펑크' 상황이다.

그리고 추 부총리의 언급처럼 7월 국세 수입은 지난해 동월 대비 3조 7000억원 감소했다. 1~7월 누계 43조 4000억원 줄어든 것이다. 

ⓒ연합뉴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달 24일 정부세종청사에서 내년 예산안 및 2023~2027년 국가재정운용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달 24일 정부세종청사에서 내년 예산안 및 2023~2027년 국가재정운용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55조 적자, '한은 마통' 이자 1100억
"2028년까지 최소 89조 감세"

올 들어 6월까지 정부의 총수입(296조 2000억원)에서 총지출(351조 7000억원)을 뺀 통합재정수지는 55조 4000억원 적자다. 그럼에도 정부는 국채 발행에 대해 '미래 세대에게 재정 부담을 지우고 기업 활동과 민생 경제 전반에 어려움을 가중시킨다'는 시각이다.

그러다보니 정부는 한국은행으로부터 일시 대출금으로 지난 1~7월 100조 8000억원을 조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급한 이자만 해도 1100억원에 이른다. 정부의 일시적 자금 부족을 메우기 위해 활용하는 수단인데, 관련 통계가 전산화된 2010년 이래 가장 많은 금액이다. 지난해 연간 일시 대출액(34조 2000억원)의 3배 규모다. 

내년에는 아예 세입 예상치를 대폭 낮춰 잡았다. 기획재정부는 내년 국세 수입 예산을 올해보다 33조 1000억원 줄어든 364조 7000억원으로 편성했다고 지난달 29일 밝혔다. 소득세가 6조원, 법인세는 27조 3000억원이나 감소할 것으로 예상했다. 

추 부총리는 국회에서 세수 결손 관련 질의에 "기업의 실적들이 워낙 좋지 않고, 반도체 기업들이, 10조 이상 세금을 내던 기업들이 지금은 거의 한 푼도 내지 못하는 큰 변동성"을 언급했다.

실적 악화의 영향만은 아니다. 정부는 '건전 재정'과 함께 민간 활력을 위한 감세를 기본 원칙으로 운용하고 있다. 추 부총리는 국회에서 "경제가 좋지 않으면 사실은 민간으로부터 세금을 적게 걷는 게 맞다"고 했으며, 지난달 29일 SBS TV에 나와서도 "재정 투입을 통해서 경제 활력을 도모하는 정책은 정말 하책 중의 하책"이라고 했다. 

누구보다 윤석열 대통령의 의지가 확고하다. 윤 대통령은 지난달 28일 국민의힘 국회의원 연찬회에서 문재인 정부를 기업에 비유하며 "벌여놓은 사업도 많은데, 하나하나 뜯어보면 전부 회계가 분식"이라며 "지난 대선 때 힘을 합쳐서 국정 운영권을 가져오지 않았더라면 '이 나라가 어떻게 됐겠나' 하는 정말 아찔한 생각이 많이 든다"고 했다.

그러면서 "돈은 없는데 사장이 벤츠 S600 같은 고급 승용차를 굴리고, 이런 식으로 해서 안 망한 기업 없지 않나"라며 "선거 때 표를 얻기 위해서 막 벌여놓은 건지, 그야말로 나라가 거덜이 나기 일보 직전(이었다)"이라고 했다. 

역대급 세수 펑크에도 감세 기조는 계속된다. 지난 7월 말 기재부가 내놓은 세법 개정안은 '경제 활력 제고'를 내세웠으며 이는 곧 감세에 초점에 맞춰졌다. 영상 콘텐츠 투자, 국가전략기술 및 신성장 기술, 해외 진출 기업의 국내 복귀(리쇼어링) 등에 대한 세제 지원과 함께 가업 승계 증여세의 추가적 부담 완화 등이 담겼다. 재계의 요구가 대거 반영된 것이다. 

개정안이 확정될 경우 향후 5년간 3조원 넘는 세수가 감소할 전망이다. 나라살림연구소는 지난해 세제 개편안으로 2028년까지 72조 4000억원 세수가 줄어들고 올해 초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등 투자 세액공제 확대로 인한 13조원 감소를 포함하면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2028년까지 최소 89조원에 이르는 세수가 줄어들게 된다고 분석했다. 

내년 예산 증가폭 20년만에 최소
R&D 위주 23조 지출 구조조정

연구소는 "정부는 재정 건전성을 강조하지만 이 같은 감세 조치를 발표하면서 건전성을 이룰 수는 없다"며 "감세와 재정 건전성의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을 수 없다는 사실은 올해 사상 최악의 세수 결손을 통해 이미 증명되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정부는 세수 감소의 상당부분은 서민, 중산층에 귀속된다고 했으나 근로소득자 하위 35%는 면세점 이하로 세금 감면의 아무런 혜택을 누릴 수가 없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정부는 내년 예산안에서 통합재정수지 적자가 44조 8000억원으로 올해 예상(13조 1000억원)보다 31조 7000억원 늘어날 것으로 예상했다. 실질적인 나라 살림 사정을 보여주는 관리재정수지(총수입에서 총지출 및 사회보장성기금 수지를 뺀 지표) 적자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3.9%까지 불어나면서 정부가 추진하는 재정준칙 한도(3.0%)를 넘어서게 됐다. 또 국가채무는 올해 1134조 4000억원에서 내년에 1196조 2000억원으로 늘어나고,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은 50.4%에서 51.0%로 오른다.

그럼에도 비과세·세액공제·소득공제 등 국세감면액은 77조 1000억원으로 올해 전망치보다 7조 6000억원, 11% 늘어나면서 역대 최대치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내년 국세감면율은 16.3%로 추정되는데, 이는 직전 3개년 평균에 0.5%포인트를 더해 산출하는 법정한도(14.0%)를 2.3%포인트 넘게 되는 것이다. 과거에는 글로벌 금융위기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위기 대응 때 주로 발생했다. 

감세와 함께 재정의 역할 축소, 즉 '수입이 적으면 씀씀이를 줄여야 한다'는 기조는 내년 예산안에 고스란히 반영됐다. 총지출 656조 9000억원 규모로 올해 본예산보다 2.8% 늘어나는데, 이는 재정 통계가 정비된 2005년 이후 20년 만의 최소 증가 폭이다. 정부가 예상하는 내년 경상 성장률(4.9%)에도 크게 못 미치는 긴축이다.

불과 두달 전인 지난 6월 말 재정전략회의에서 보고된 '4%대 중반'보다도 2%포인트 가까이 낮다. 문재인 정부의 2018~2022년 예산안 총지출 증가율이 연 7~9%대였던 것과 비교해도 급격한 축소다. 

ⓒ연합뉴스 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이 지난 8월 22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정부 연구·개발(R&D) 제도 혁신방안과 '2024년 국가연구개발사업 예산 배분·조정'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이 지난 8월 22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정부 연구·개발(R&D) 제도 혁신방안과 '2024년 국가연구개발사업 예산 배분·조정'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지난해에 이어 또 다시 23조원 규모의 대규모 지출 구조조정을 단행한다는 계획이다. 세부적 내역은 아직 공개되지 않았으나 주요 분야는 연구개발(R&D) 및 국고 보조금 사업으로 제시됐다.

앞서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내년 R&D 예산을 올해보다 3조 4000억원, 14%가량 감소한 21조 5000억원으로 책정한 바 있다. 2016년 R&D 예산안 심의 이후 8년 만의 감소안이다. 이에 기재부가 이공계 대학 지원 등에 쓰이는 일반 R&D 예산안이 반영되자 감소율은 16.6%로 높아졌다. 올해 31조 1000억원보다 5조 2000억원 줄어든다. 국가의 미래성장동력을 위축시킨다는 우려가 나올 수밖에 없다. 

배경은 윤 대통령의 시각이다. 지난 6월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나눠먹기식, 갈라먹기식 R&D는 제로 베이스에서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지시한 바 있다. 사교육 시장에 이어 R&D 분야에도 '이권 카르텔'이 있다고 규정한 것이다. 

SOC 예산은 증가, 총선용?
참여연대 "재정 역할 포기 선언"

반면 사회간접자본(SOC) 예산은 올해 24조 9000억원에서 내년 26조 1000억원으로 늘려 잡았다. 나라살림연구소는 "1998년 IMF(국제통화기금) 시절이나 2008년 미국의 금융 위기에도 우리나라의 R&D 예산은 축소되지 않았다"면서 "(SOC 예산은) 철도와 항만 항공에서 증가했다. 수도권 GTX, 가덕도, 서산공항 등 지역에서 이슈가 되는 사업들이다. 내년 총선을 의식한 것이라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개발국가 시절의 미래 투자가 SOC였다면 선진국이 된 지금의 미래 투자는 R&D일 것"이라며 "R&D까지 줄이는 긴축을 하면서 그나마 늘린 예산이 SOC라는 것은 국가의 미래를 위해 우려되는 측면"이라고 했다. 

중앙정부가 지방자치단체에 보내는 지방교부세는 66조 7700억원으로 올해보다 11.3%가량 감소할 전망이다. 전국 243개 광역·기초 지자체의 재정자립도가 50% 수준임을 감안할 때 교부세의 대폭 감소는 지방 재정의 타격을 의미한다. 

나라살림연구소는 "내년에는 총선 관련 예산도 지원되는데, 이를 빼면 지방재정 지원은 최소 5%이상 감소한다. 더군다나 부동산 경기 위축으로 지방세도 감소하고 있다. 이런 부분에 대한 고려가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또 참여연대는 논평을 통해 "재정 정상화로 포장된 재정 역할 포기 선언과도 같은 내년도 예산안"이라고 규정하면서 기초생활보장제도 예산 증가의 경우 기준 중위소득 산출의 기본 산식을 지킨 것에 불과한 것이며, 생계급여 선정 기준을 기준 중위소득 35%까지 상향한다는 윤 대통령 공약에도 미치지 못 한다고 했다. 또 보건의료 예산 삭감과 공공 임대주택 예산의 낮은 증가 폭, 국방 예산의 인상 등을 비판했다. 

참여연대는 "올해 경제성장률이 1.5% 수준에 머물 것으로 예상되는 지금, 재정이 민생 안정과 경제 활력을 위해 사용되어야 함에도 윤석열 정부의 감세와 긴축 재정 기조로 인해 필요한 곳에 재정의 역할이 닿지 못할 우려가 크다"면서 "올해 2분기 GDP 성장률 0.6%의 경제활동별 및 지출항목별 성장 기여도를 살펴보면, 정부의 소비와 투자가 줄어서 0.5%포인트 끌어내렸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경기 침체를 극복하는 데에 기여해야 할 정부가 오히려 경제성장률을 끌어내리는 역할을 할 지 모른다"고 우려했다. 

한편 이렇듯 살림살이가 어려운데도 내년 예산안에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대응 예산 7380억원이 편성돼 논란이다. 해양 방사능 조사 등 직접적인 대응 예산이며 그 밖에 간접적인 비용까지 더하면 1조원을 훌쩍 넘길 것으로 예상된다.

원인을 제공한 일본에게는 책임을 묻지 않고 일방적으로 한국 국민들의 세금만 투입된다는 점에서 비판이 일고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오염수 방류 기간이 최소 30년에 이른다는 점에서 지속적인 재정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된다. 

저작권자 © 한국아이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