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부터 '알기 쉬운 법령만들기' 사업 진행…2022년 한글날에 대통령 표창

사진=이혜영 기자 lhy@hankooki.com
사진=이혜영 기자 [email protected]

[주간한국 장서윤 기자] “어려운 법령을 하나씩 바꿔가는 노력도 필요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국민들께서 법령을 알기 쉽게 만드는 사업에 지속적인 관심을 가져주시는 것입니다.”

법제처 법제지원국 법령용어순화팀 이경아 주무관은 2006년부터 시작된 ‘알기 쉬운 법령 만들기(알법)’ 사업을 꾸준히 진행해오고 있다. 이 사업을 통해 지금까지 법률의 한글화 등 총 977건의 알기 쉬운 법률안을 마련하고 2000여 건의 하위법령 정비까지 수많은 법령의 용어와 문장을 정비했다.

이처럼 꾸준한 법령 한글화 노력에 힘입어 이 주무관은 지난해 한글날 대통령 표창을 받기도 했다. 그럼에도 아직 기본법인 민법, 형법 등 기본법을 한글로 바꾸고 알기 쉽게 만든 개정안은 국회를 통과하지 못하고 지난 19대 국회 때 폐기된 바 있다.

이 주무관은 “기본법이 다른 법령에 미치는 영향이 큰 만큼 기본법 개정이 국민중심의 법률문화를 만드는 데 중요하다”라고 강조했다.

▲법제처에서 2006년부터 '알기 쉬운 법령 만들기' 사업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우리 법령은 한자문화권의 영향과 일제 강점기 등을 거치며 자연스러운 우리말 표현이 아닌 어려운 한자어나 일본식 용어, 전문용어, 어색한 문체 등으로 해당 분야의 전문가나 법률가만 이해할 수 있는 법령이었다.

이후 2005년 '국어기본법'이 제정돼 국어의 보전과 발전을 위한 기틀이 마련되고, 한글날이 다시 국경일로 규정되면서 우리말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당시 대통령께서 일본식 용어 정비를 지시하셨고, 국회에서도 적극적인 관심과 개정 요구가 있었다. 법률한글화사업만으로는 그 효과에 한계가 있으므로, 근본적으로 법령의 용어와 표현을 알기 쉽게 정비해야 한다는 데 의견이 모아졌다.

이에 법제처는 실질적 법치주의 실현을 위해 법령을 알기 쉽게 정비하여 공무원이나 전문가 중심의 법률문화를 국민중심의 법률문화로 전환하기 위해 국민 눈높이에 맞는 친근한 법령 만들기를 시작하게 됐다."

▲'알기 쉬운 법령 만들기' 사업을 통해 대표적으로 바꾼 용어들은 어떤 게 있나.

"작년 한글날 즈음 온라인 투표를 통해 2022년 정비한 법령 용어 중 국민들이 가장 알기 쉽게 잘 고쳤다고 응답한 용어를 선정했다. 행정 분야에서는 ‘주서’를 ‘붉은 글씨’로, 경제 분야에서는 ‘일부인’을 ‘날짜도장’으로, 그리고 사회분야에서는 ‘수발’을 ‘접수ㆍ발송’으로 고친 사례가 잘 고친 법령 용어로 선정됐다. 또 2021년에는 ‘개호’를 ‘간병’으로, ‘대차대조표’를 ‘재무상태표’로, ‘상병’을 ‘부상 및 질병’으로 고친 용어도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라이트라인’이라는 전문용어를 ‘피난 유도선’으로 바꾼 것이 기억에 남는다. 국민 안전에 직결되는 것은 직관적으로 그 뜻이 전달되는 쉬운 용어를 써야 한다는 생각에서 좋은 개선 사례라고 생각한다.

또, 의료분야 전문용어를 전체적으로 정비한 것도 기억에 남는다. 의료분야 용어는 장애보상 관련법과 병역 관련법에 주로 많이 나온다. 대한의사협회 의학용어위원회의 도움을 받아 일반 국민이 일상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의학용어들을 쉬운 우리말로 바꿨다. 예를 들면 ‘상지ㆍ하지’를 ‘팔ㆍ다리’로 ‘장굴’은 ‘손바닥쪽 굽히기’, ‘배굴’은 ‘손등쪽 굽히기’ 등으로 바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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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노력에도 불구하고 일반 국민들에게 법조문은 여전히 해석이 어려운 문장의 집합으로 여겨진다. 국민들이 법조문을 좀더 이해하기 쉽게 만드는 데 가장 중요한 부분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그동안은 어려운 용어 중심으로 법령을 정비하는 데 주력했다. 하지만 ‘알기 쉬운 법령 만들기 사업’의 최종 목표는 ‘법 문장 자체가 읽고 이해하기 쉬워야 한다’는 것이다. 2022년 설문조사에서 국민의 상당수가 법령을 어렵게 느끼는 주요 원인으로 법령 특유의 길고 생소한 문장과 복잡한 체계를 꼽았다. 이에 올해부터는 명확하고 간결한 ‘문장 정비’ 사업을 중점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먼저 국민 생활과 밀접한 주택, 건축 분야와 보건, 의료 분야 법령을 대상으로 쉽게 쓴 문장정비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법률용어 한글화 작업에 대한 반대 의견도 적지 않았을 것 같다. 이런 반대 의견들을 어떻게 극복하고 사업을 이어 왔는지 궁금하다.

"초창기에는 법조계에서 어려운 한자어와 문어적 표현들이 법령의 위엄과 무게 그리고 권위를 뒷받침한다고 여기는 경향이 있었다. 또 일부에서는 뜻글자인 한자어나 전문용어를 다른 쉬운 말로 바꾸었을 때 그 대체어가 원래 용어의 뜻을 온전히 담아내지 못한다는 우려가 적지 않았다. 이런 문제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정비안을 마련할 때 법령 소관 부서 담당자나 해당 분야 전문가에게 조언을 구하고 필요하면 전문가 회의 등을 개최하면서 신중하게 작업했다.

특히 일본식 용어나 어려운 전문용어 등을 집중적으로 정비하는 기획정비는 외부 법률전문가, 해당 분야 전문가 의견은 물론 소관 부서 담당자와 일일이 협의를 거쳐 정비안을 마련했다. 용어를 개정했을 때 의미가 달라지지는 않는지, 개선된 후에 문장이 더 쉽게 바뀌었는지 등을 고려하면서 조심스럽게 진행했다."

▲법률용어 한글화 작업에 있어 기준을 정하는 것도 중요한 부분일 것 같다. 한글화하는 데 어떤 기준을 가지고 있나.

"알기 쉬운 법령 만들기 사업의 목표는 의무교육, 즉 중학교 교육을 마친 국민이면 누구나 읽고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법령을 만드는 것이다. 이 기준에 따라, 먼저 법령 속에 남아 있는 일본식 용어, 어려운 한자어, 전문용어 등을 골라낸다. 일본식 용어는 쉬운 우리말로 바꾸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그에 대응하는 우리말이 없다면 널리 쓰이는 적절한 용어로 순화한다.

어려운 한자어는 고유어나 쉬운 한자어로 고쳐 쓰되 고유어나 쉬운 한자어로 쓰면 오히려 그 뜻을 이해하기 어렵게 되는 경우에는 먼저 한글로 쓰고 괄호 안에 한자를 함께 쓴다. 또, 전문용어는 특정 분야에서 사용하는 용어라도 법령에서 쓰는 용어나 표현만큼은 그 용어 자체가 해당 분야의 진입장벽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기준을 세웠다."

▲ 법률용어 한글화에 민법, 상법, 형법, 형사소송법 등 기본법 정비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했는데 해당 법들의 정비를 위해 지금 필요한 부분은 무엇인가.

"그간 법제처는 민법·형법·상법, 형사소송법 등 기본법을 알기 쉽게 정비해 법무부 소관 부서에 송부했고. 법무부에서도 지난 2015년과 2019년 민법을 알기 쉽게 정비한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하기도 했지만 국회 임기 만료로 폐기됐다. 방대한 양의 기본법을 한꺼번에 개정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부처와 국회 모두 부담이 컸다.

법무부에서는 올해 우선 민법 중 일상에서 거의 쓰이지 않는 일부 용어만이라도 개정하는 방안을 추진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작은 부분부터 바뀌면서 기본법이 조금씩 쉬워진다면 그것도 좋은 방안이라고 생각한다.

일반 행정법에서는 민법 등 기본법에서 쓰는 용어를 법체계의 일관성, 통일성 차원에서 그대로 쓸 수밖에 없는데 그러면 전체 법령이 쉬워지는 속도가 지연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개별적인 용어 정비는 그것대로 진행하되, 이미 국회 제출 전력도 있으니 전체적으로 개정하려는 노력도 동시에 진행돼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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