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를 방문 중인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왼쪽)이 지난 13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회담을 했다. (사진=조선중앙TV 화면)
러시아를 방문 중인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왼쪽)이 지난 13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회담을 했다. (사진=조선중앙TV 화면)

두 ‘왕따’의 만남이 새로운 ‘악의 축’을 형성하는 것일까.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전격적인 정상회담이 국제사회에 새로운 불안감을 던지고 있다.

김정은과 푸틴의 만남은 4년5개월 만이다. 2019년 4월 김 위원장의 첫 러시아 방문은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과의 북미 정상회담이 아무런 성과 없이 끝난 직후였다. 김 위원장이 기댈 곳이 필요했던 때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해 외부와의 교류를 차단했던 김 위원장은 우크라이나 전쟁을 발판으로 러시아와 연계해 다시금 전 세계의 주목을 끌어냈다. 러시아와 북한이 모두 서로의 약점을 보완할 수 있는 관계로 변화한 때문이다.

2019년과 비교하면 김 위원장과 푸틴의 입장이 뒤바뀐 상황이다. 푸틴은 서방의 제재에 맞서 함께 할 동지가 필요하다. 김 위원장이 미국과의 협상 실패 후 차선책으로 푸틴에 기대던 과거와 달리 주도적인 협상을 할 수 있는 위치에 섰다.

회담의 주제도 비교적 명확하다. 모든 메시지는 군사적 협력으로 귀결된다. 최근 북한이 강조해온 핵잠수함, 로켓과 인공위성 분야에서 러시아의 협력을 끌어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러시아의 대북 협력이 동북아 정세는 물론 국제적으로도 위협적인 안보 환경이 조성될 수 있다는 의미다. 북이 러시아 기술로 핵잠수함을 선보이고 ICBM의 정확성을 높인다면 ‘북한-러시아-중국’으로 이어지는 ‘신냉전’의 트라이앵글이 형성될 수 있다.

김 위원장이 정상회담 모두 발언에서 “러시아가 패권 세력에 맞서 성스러운 싸움에 나섰다”고 두둔한 것은 미국 중심의 민주 진영과 맞서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김 위원장은 “지금 러시아는 반대 패권 세력과 맞서면서 국가 주권과 안보를 수호하기 위한 성스러운 싸움을 벌이고 있다”면서 미국에 맞서는 러시아의 입장에 북한이 기꺼이 동참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양국 협력은 밑지는 장사도 아니다. 군사적으로 북한은 러시아에 재래식 무기와 탄약 등을 공급하고, 러시아는 반대급부로 북한이 고전 중인 우주 로켓 기술을 제공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경제적으로도 북한이 다시 러시아에 노동자와 석탄을 보내고 러시아의 곡식과 유류를 받을 수 있다면 대북 제재 또한 유명무실화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는 북한이 소련의 설계에 기반했던 구식 장비를 대량으로 비축하고 있던 만큼 탄약과 폭탄을 러시아에 제공하고 경제 위기를 돌파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미국 언론들의 평가도 북한과 러시아의 달라진 위치를 주목했다. LA타임스는 한국전쟁 시 소련이 북한의 남진에 사용된 탱크를 지원했지만 이제는 역할이 뒤바뀌었다고 우려했다.

양 정상의 회담이 보스토치니 우주기지에서 열린 것도 서방 진영의 허를 찌르는 대목이다.

푸틴 대통령은 북한의 인공위성 제작을 도울 것인가에 대한 질문에 “북한 지도자는 로켓 기술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으며 그들은 우주를 개발하려 하고 있다”고 답했다. 푸틴은 “서두르지 않고 모든 문제를 논의할 것이다. 시간이 있다”고 했다. 즉답을 피하면서도 협력의 의지가 있음을 내비친 발언이다.

북한이 두차례 인공위성 발사에 실패한 만큼 러시아의 기술을 더해 인공위성 발사에 성공하면 미국이 받을 충격은 미루어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북한이 군사용 인공위성 개발까지 성공해 지구궤도에 올린다면 상황은 더욱 악화할 수밖에 없다. 트럼프 정부와의 협상이 무산된 후 핵과 로켓 기술 발전에 집착해온 김 위원장은 유엔(UN)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 제재 위반 여부는 고려의 대상도 아닐 것이다. 

김 위원장의 관심이 러시아의 군사 기술에 꽂힌 정황은 정상회담 후 러시아 내 행보에서도 읽힌다. 김 위원장은 5세대 전투기 수호이(Su)-57과 민간 항공기 등을 생산하는 ‘유리 가가린’ 전투기 공장을 둘러봤고 잠수함 생산 시설도 둘러볼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가 수호이-57을 북한에 공급한다면 상당한 파장이 일 수 있다. 영화 ‘탑건2’에서 무중력 기동을 선보였던 기종인 수호이-57이 북한에 배치될 경우 미국산 F-35에 크게 밀리던 공군력을 대폭 보강할 수 있다. 러시아는 수호이-57이 미국 F-35와의 일대일 공중전에서는 밀리지 않을 것이라고 자신해 왔다.

다만 푸틴과 김정은의 브로맨스가 고착화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의문이 남는다. 영국 BBC는 푸틴과 김정은의 만남이 브로맨스는 아니라고 진단하고 2023년 지정학적 현실에서 공동의 적을 대응하기 위한 결합이라고 평가했다. 북미 변화가 있을 경우 북러 관계에도 영향이 있을 수 있다는 진단이다.

이번 회담은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에 숙제를 남겼다. 미국은 러시아와 북한 간 정상회담을 면밀히 주시하고 있으며 필요시 제재를 부과할 것이라는 입장이지만 실효성이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다.

중국의 움직임도 간과할 수 없다. 북한이 러시아와 밀착할 경우 중국도 북과의 관계를 강화할 가능성이 크다. 중국은 아직은 북러 정상회담에 대해 본격적인 논평을 삼가고 있다.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이번 회담이 북중 관계에 어떤 의미가 있느냐’는 질문에 “김 위원장의 러시아 방문은 두 나라만의 문제”라고 말했지만, 중국이 북러 관계의 확대를 지켜만 보고 있을 리는 없다.

중국 관영 글로벌 타임스는 “러시아가 더 이상 서방의 추가 제재를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에 북한에 민감한 기술을 제공하는데 주저하지 않을 것”이라면서 “서방이 제재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의견을 제기했다.

러시아와 북한의 결탁을 초래한 원인은 미국과 주변 동맹국의 책임이라는 주장인 만큼 중국도 미국과의 갈등이 확대될 경우 북한을 매개체로 러시아와 힘을 합쳐 맞대응에 나설 수 있다는 의미로 풀어볼 수 있다. 한미일의 ‘캠프데이비드 선언’에 대응하는 북중러의 삼각 편대 출격에 대비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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