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필요하게 어려운 의료 용어…국민 건강권·알권리 방해

서울의 한 보건소에 마련된 선별진료소에 ‘PCR검사’(중합효소연쇄반응검사)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서울의 한 보건소에 마련된 선별진료소에 ‘PCR검사’(중합효소연쇄반응검사)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주간한국 송철호 기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이 처음 국내에 퍼지기 시작했을 당시에는 정부나 의료기관이 방역에 주력하느라 관련 용어까지 순화시키기에는 어려움이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전염병이 전 세계적으로 크게 유행하는 현상’(팬데믹)이 장기화되면서 관련 용어를 좀 더 국민들이 이해하기 쉽게 바꿀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실제로 코로나19 확산 이후 ‘위드 코로나’, ‘부스터 샷’, ‘뉴 노멀’, ‘언택트’, ‘셧다운’, ‘의사환자’, ‘검체검사’ 등 외국어로 된 의료 용어를 비롯해 이해하기 쉽지 않은 한자어들이 범람하고 있다. 이는 한글화나 우리말 순화라는 상징적 의미를 넘어 국민의 건강권과 알권리를 방해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 꾸준히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무분별한 외국어 사용 심각
한국만 쓰는 신조어도 탄생

한글 창제는 백성과 소통하려는 세종의 강력한 의지가 없었다면 실현되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코로나19에 대한 정보는 한글로 전달되면서도 소통하는데 무리가 있다. 우리말보다는 외국어나 한자어가 많아 낯설고 어렵게 느껴지는 것이다. 한글의 본래 창제 목적과 어긋나는 것은 물론, 소통의 어려움으로 자칫 국가 방역에도 차질을 빚을 수 있는 상황이다.

코로나19 관련 용어가 아니더라도 원래 의료 용어는 어렵다. 일단 외국어로 쓸 필요 없는 용어부터 대체할 필요가 있다. ‘위드 코로나’라는 표현도 정부에서 ‘단계적 일상회복’이라는 용어를 공식화하기 전까지는 흔하게 사용됐다. 아직까지도 공식 문서나 행사 등에 사용되고 있다. 그래도 이 표현은 문화체육관광부와 국립국어원이 빠르게 우리말 대체어를 만든 편이다.

문체부와 국립국어원은 2020년 8월 ‘위드 코로나 시대’를 대체할 쉬운 우리말로 ‘코로나 일상’을 선정했다. ‘위드 코로나 시대’처럼 어려운 용어 때문에 국민이 정보에서 소외되지 않도록 ‘코로나 일상’과 같이 쉬운 말로 다듬었던 것이다. 비교적 빠른 대응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비대면’이라는 표현과 함께 사용되고 있는 ‘언택트’는 더 문제다. 언택트는 접촉을 뜻하는 ‘contact’에 부정사 ‘un’을 붙여 만든 신조어인데, 심지어 영어권에서는 사용하지 않는 ‘한국식으로 변형된 영어 표현’(콩글리시)이다. 영어권에서는 ‘non-contact’나 ‘zero-contact’ 등의 단어가 주로 사용된다.

문체부 관계자는 “국민들이 겪는 어려움을 반영해 코로나19 팬데믹이 시작된 이후 지속적인 검토가 이뤄지고 있다”며 “불필요한 외국어 남용을 지양하는 것은 물론, 자칫 외래어로 고착화될 수 있는 표현들을 찾아 순화된 대체어를 만드는 작업을 꾸준히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코로나19 확산 첫해 8월에 국민 600여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어려운 외국어에 대한 우리말 대체어 국민 수요도 조사’에서 응답자의 55.7% 이상이 ‘위드 코로나 시대’를 쉬운 우리말로 바꾸는 것이 좋다고 답했다”며 “또 그 응답자 중 96%가 ‘위드 코로나 시대’를 ‘코로나 일상’으로 바꾸는 것이 적절하다고 답했다”고 덧붙였다.

이 밖에 ‘백신 패스’와 ‘부스터 샷’, ‘코호트 격리’ 등 알 듯 말 듯 애매한 말도 우리 일상에 새롭게 스며들었다. 이에 정부와 의료기관 등은 ‘백신 패스’는 ‘접종 증명·음성 확인제’로, ‘부스터 샷’은 ‘추가 접종’으로 대체하고 있다. 또 ‘코호트 격리’는 ‘감염 질환 등을 막기 위해 감염자가 발생한 의료 기관을 일괄적으로 봉쇄하는 조치’라는 말로 풀어서 설명하고 있다.

의료계만 사용하던 한자어도 문제
‘PCR’ 등은 우리말로 풀어도 난해

부득이한 경우도 있지만 너무 어려운 한자어를 사용하는 경우도 많다. 앞서 언급한 ‘의사환자’와 ‘검체검사’가 대표적이다.

의사환자는 ‘감염이 의심되는 환자’를 말한다. '비길 의(擬), 닮을 사(似)'라는 한자를 써서 ‘의사’(擬似)라고 표현한다. 일반인에게는 낯선 용어다. 이에 보건 당국도 일일 브리핑 등에서 ‘검사 현황’이라고 대체해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검체검사는 ‘확진 검사를 위해 가래나 혈액 등을 이용한 검사’를 말한다. '검사할 검(檢), 몸 체(體)'라는 한자를 써서 ‘검체’(檢體)라고 표현한다. 각각의 한자 자체는 어렵지 않은 편이지만 공학이나 의학 실험에서 자주 사용되는 표현이다 보니 일상에서 대중이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지표 환자’와 ‘비말 감염’이라는 말도 흔하게 사용한다. 지표 환자는 ‘첫 확진자’로, 비말 감염은 ‘침방울 감염’이라고 대신할 수 있다. 병에 걸린 사람의 검사 결과인 ‘양성’, 병에 걸리지 않은 사람의 검사 결과인 ‘음성’이라는 말도 지금은 많이 익숙해졌지만 처음에는 현장에서 혼란을 일으키는 표현들이었다.

박미영 국립국어원 학예연구사는 “일상을 완전히 바꾸어 놓은 코로나19로 우리의 언어 생활도 새로움 투성”이라며 “매일같이 뉴스와 인터넷 소식들 속에 다양한 코로나19 관련 용어들이 넘쳐 난다”고 지적했다.

박 학예연구사는 이어 “코로나19와 관련된 정책들이 새롭게 전개되고 절차들이 만들어질 때마다 끊임없이 접하는 코로나19 용어들은 여전히 낯설다”며 “의료계에서만 사용하던 한자어 전문 용어들이 코로나19 일상으로 무분별하게 남용되고 있지만 한편에서는 정착하지 않도록, 쉽게 쓰기 위해 애써 다듬고 지속해서 알리는 순화 대상”이라고 설명했다.

의료 용어 특성상 한계점도 분명히 있다. ‘PCR(Polymerase Chain Reaction)검사’의 경우 우리말로 풀었을 때 ‘중합효소연쇄반응검사’다. 최근에는 유전자증폭 검사로 표현한다. 이 표현도 의학에 대한 지식이 없는 일반인에게는 여전히 어렵다. 한글로 표현하려는 노력과 함께 더 쉬운 용어로 바꿀 수 없는지를 고민하는 노력이 필요해 보인다.

경기도에 위치한 한 가정의학과 원장은 “의료계에 종사하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의료 용어를 무작정 한글로 표현하는 것이 더 어렵게 느껴질 수 있다”며 “보건 당국이 의료계 종사자들과 일반인들이 이질감 없이 사용할 수 있는 용어 개발에 힘써 주기를 바라지만 긴박하게 돌아가는 의료 현장 특성상 쉽지 않은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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