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왼쪽)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사진=연합뉴스 제공)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왼쪽)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사진=연합뉴스 제공)

미국, 중국,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전쟁과 미중 갈등의 해법을 찾을 수 있을까. 오는 11월 미중 정상회담 개최가 유력시되는 가운데 자국의 이익을 끌어내기 위한 외교 샅바 싸움이 한창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회담하며 북러 관계의 밀착을 예고한 데 이어 이번에는 중국 방문을 예고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항저우 아시안게임에 이어 푸틴 대통령과 회담하며 바이든과의 만남에 앞서 세불리기에 나섰다. 2023년의 마지막을 장식할 외교전은 총성없는 전쟁이다.

뉴욕에서 열리고 있는 유엔(UN) 총회는 외교의 월드컵이라 불린다. 하지만 최근 외교가의 관심은 유엔 총회보다는 다른 곳으로 향한다. 미중 정상회담이다.

지난해 시 주석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국가 정상에 취임하고 나서 처음 회동 한 후 두번째 회동이 예상되고 있기 때문이다. 오는 11월 미국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 정상회의에서 두 정상의 회담 성사를 위한 미중간의 협의는 지속되고 있다.

시진핑은 바이든과의 회담에 앞서 푸틴과의 연대를 강화하고 있다. 러시아측은 푸틴이 왕이 중국 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 겸 외교부장과 만난 후 시 주석의 방중 초청을 승낙했다고 밝혔다. 푸틴은 우크라이나 침공 후 첫 해외 방문지로 중국을 택했다. 그만큼 러시아와 중국의 관계를 중요시 하겠다는 선언이나 다름없다.

이번 방문은 올해 초 시진핑의 러시아 국빈방문에 대한 답방이지만 방문 시점이 묘하다. 푸틴이 김정은 위원장과의 회담을 마친 직후인 데다 오는 11월 예상되는 바이든 대통령과 시 주석의 회담에 앞선 까닭이다. 

항저우 아시아게임도 시 주석의 외교 행보에 힘을 더할 전망이다. 아시안 게임 개막식에는 여러 참가국 정상들이 모인다. 미국이 꺼리는 인사도 빠질 수 없다. 대표적인 예가 바샤르 알 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이다. 자국민을 학살한 아사드 대통령은 미국에는 눈엣가시 같은 존재다. 

시 주석은 최근 인도에서 열린 주요20개국(G20) 정상회의에 불참하며 바이든과의 조우를 사전에 차단했다. 반면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열린 브릭스(BRICS, 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남아공 등 국가모임) 정상회의에는 모습을 드러냈다. 시 주석은 아시안 게임, 푸틴과의 만남까지 마치면 바이든을 만나기 위한 외교적 정지작업을 마무리할 것으로 예상된다.

러시아는 시 주석의 지지를 희망하겠지만 일각에서는 시 주석이 푸틴 대통령과의 회담에서 러시아와 중국의 협력을 확인하려 함과 동시에 우크라이나 전쟁의 정치적 해결도 촉구할 것으로 예상한다. 중재를 옹호하면서 중국에 대한 서방의 압력을 완화하려 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시 주석과 푸틴 대통령의 연대에 대한 서방의 시선은 영국 일간 가디언에 실린 ‘푸틴과 시진핑은 정치인판 뚱뚱이와 홀쭉이'라는 제목의 칼럼에서도 파악할 수 있다. 자국 경제와 정치를 망치고 있는 두 정치인의 행보를 코미디 수준으로 평가한 것이다. 두 사람이 연대를 강화할 경우 더 큰 압박이 이어질 것임을 예상해 볼 수 있다.

이런 서방 진영의 인식을 고려한 듯 중국내 전문가들은 시 주석과 푸틴 대통령의 만남이 러시아의 일방적인 입장을 두둔하기보다는 러시아와 미국 사이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려 할 것이라고 내다본다. 추이헝 중국 국가연구소 분석가는 중국이 미국과 러시아 사이에서 조정자 역할을 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러시아 외무부가 중러 외교장관 회담 후 성명에서 왕 부장이 우크라이나 분쟁을 해결하는 데 러시아의 이익을 고려해야 한다는 데 동의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중국내 전문가들은 중국이 미국과 러시아 사이에서 미국과 러시아가 정보소통을 유지하도록 돕고 있는 것으로 해석했다. 아울러 서방측이 중러 동맹론을 과장하고 있다는 주장도 펴고 있다.

왕 부장이 러시아를 방문하기 전 몰타에서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보좌관과 회담한 것도 이 같은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미국과 러시아 사이에서 중국이 모종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인식을 심어주려 한 것일 수 있다.

중국이 러시아와의 파트너십을 확대하는 것도 쉽지 않다. 미국과의 긴장을 더욱 고조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바이든 행정부는 치명적인 무기를 공급하면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하면서 러시아에 군사 지원을 제공하지 말라고 중국에 거듭 압박해 왔다.

중국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서 중국 정부가 경제적 불안감을 자극할 미국과의 갈등을 키우기는 쉽지 않다. 오히려 러시아의 상황을 이용해 경제적 실익을 챙기려 할 수 있다.

푸틴의 방중으로 시 주석이 얻는 성과도 있다. 힘이 빠져가던 '일대일로'(육·해상 실크로드) 사업에 우군을 얻게 된 것이다. 푸틴은 일대일로 정상회담에 참석해 시 주석을 적극지원할 것이 분명하다. 이미 그런 의사도 밝혔다.

전 세계에 중국의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한 일대일로 사업은 시 주석이 구상하는 중국 대외 관계의 핵심이다. 다만 중국 경제 상황이 악화하며 세계 곳곳에서 일대일로 프로젝트의 잡음이 커져왔다. 시 주석의 입장에서는 푸틴의 지원사격이 필요하다.

미국 입장이 변하고 있다는 것도 중국으로서는 기회다. 우크라이나 전쟁의 장기화는 미국 정가에 큰 부담이다. 특히 적극적으로 우크라이나를 지지해 온 바이든 대통령의 재선에도 적신호가 켜졌다는 의견이 많다.

젤렌스키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전격적인 미국 방문시 미국 조야의 열렬한 환영을 받았던 것과 비교하면 이번 미국 방문에서는 달라진 기류가 읽힌다.

바이든 대통령이 정상회담에서 무기 추가 지원을 약속했지만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여론의 피로감을 고려하면 미국 정부의 입장이 언제까지 유지될 수는 알 수 없다. 이미 야당인 공화당은 바이든의 우크라이나 지원 정책에 대한 불만이 역력하다. 내년에 미국 대선이 실시되는 상황에서 유권자들의 반발도 무시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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