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군은 가자시티에 거주하는 모든 민간인을 남쪽으로 대피시키겠다는 계획이다. (사진=AP 연합뉴스 제공)
이스라엘군은 가자시티에 거주하는 모든 민간인을 남쪽으로 대피시키겠다는 계획이다. (사진=AP 연합뉴스 제공)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또 위기에 빠졌다.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이 중동과 전 세계의 평화를 흔들고 바이든의 정치 인생마저 뒤죽박죽으로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바이든은 취임 후 아프가니스탄에서 발을 뺀 후 우크라이나, 이스라엘에서 연이어 발생한 군사적 충돌을 겪고 있다. 정치 경력 대부분을 외교 관련 분야에서 보낸 그도 이런 상황은 큰 짐이 되고 있다. 중동의 평화를 위해 추진해왔던 이스라엘과 사우디아라비아의 수교, 이란 핵 협상 등도 물거품이 될 가능성이 커졌다.

도널드 트럼프의 시대에서 시작된 미국의 자국 우선주의 후폭풍이 어디까지 이어질지, 내년 미국 대선에도 어떤 영향을 미칠지 이목이 쏠린다.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은 미국의 지원 속에서 안전할 것으로 여겨졌던 이스라엘에 구멍이 뚫렸다는 충격을 남겼다. 미국과 이스라엘이 자랑하는 방어체계 ‘아이언돔’을 무력할 수 있는 하마스의 게릴라식 전법은 첨단 기술 시대에도 여전히 빈틈이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이스라엘 국민들의 충격은 당연하지만, 이스라엘의 후견인 역할을 해온 미국의 당혹감도 상당할 수밖에 없다.

하마스가 이스라엘뿐 아니라 미국, 태국, 중국 등 다양한 국가의 국민이나 동포를 대거 인질로 끌고 간 것도 전례를 찾기 힘들다. 사실상 전 세계를 상대로 도발을 한 셈이다. 이스라엘 집단농장 키부츠에서 많은 어린이가 참수로 희생됐다는 소식은 전 세계를 경악시키기에 충분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유대계 지도자들과의 만남에서는 전 세계를 놀라게 했던 이슬람 근본주의 범죄단체인 이슬람국가(ISIS)의 잔혹 행위를 상기하며 하마스를 ‘완전한 악’(sheer evil)이라고 표현했다. 다만 바이든 대통령은 중심을 지키는 것도 잊지 않았다. 바이든 대통령은 네타냐후 정부가 전쟁법을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테러와의 전쟁에 맞서는 이스라엘을 지원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면서도 이스라엘 정부의 대응이 선을 넘어 전 세계인들을 경악시킬 수 있는 상황에 이르는 것을 사전에 방지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워싱턴포스트도 사설을 통해 미국의 품위와 도덕적 명확성이 필요한 상황에서 바이든 대통령이 적절한 행동을 했다고 평했다.

이번 사태는 미국과 이스라엘, 사우디아라비아의 관계가 얽히고설킨 상황에서 벌어졌다. 미국은 중동 전체가 태풍 속으로 휘말릴 수도 있는 상황을 바라지 않는다.

미국은 최근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시도한 사법개혁에 부정적이었다. 시민들의 거센 반발에도 이스라엘 정부가 사법 개혁을 강행하자 바이든은 네타냐후를 멀리했다. 네타냐후는 취임 9개월이 돼서야 지난달 유엔(UN)총회를 계기로 바이든과 만날 수 있었다.

이 자리에서 네타냐후는 미국이 추진 중인 이스라엘과 사우디 간의 관계 정상화에 대해 긍정적으로 표현했다. 그는 이스라엘과 사우디 간의 역사적인 평화를 구축할 수 있으며 이슬람권과 유대 국가의 화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 진정한 평화를 진전시킬 것이라고 기대하기도 했다.

바이든 대통령 역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별도의 국가로 공존하게 하고 이란은 핵무기를 보유하지 않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음을 상기했다. 이미 상당한 수준의 논의가 이뤄졌으면 1년 이내에 사우디-이스라엘 수교가 있을 것이라는 보도까지 나오기도 했다.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 보좌관은 직접 사우디를 방문하는 등 분위기가 무르익고 있다는 예상이 지배적이었다.

물론 이러한 계획에는 조건이 있다. 미국이 이스라엘을 전적으로 지원한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이 선제공격을 받아 대규모 인명피해가 발생한 만큼 미국은 이스라엘에 대한 지원에 나설 수밖에 없다.

그러면서도 중동의 최고 맹주 사우디를 자극하지 않을 묘안이 필요하다. 누구도 해결하기 어려운 과제다. 이미 무함마드 빈살만 사우디 왕세자는 팔레스타인을 지지한다는 의사를 분명히 밝혔다. 아랍의 맹주를 꿈꾸는 빈살만이 이스라엘과 각을 세우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빈 살만 왕세자는 바이든과 갈등해왔다. 빈 살만 왕세자는 바이든이 희망하는 유가 하락을 원하지 않는다. 그는 오히려 감산을 통해 유가를 떠받치고 있다. 중동이 화마에 휩싸일 경우 사우디는 더 많은 석유 수입을 챙길 수 있다.

바이든이 사태 해결을 위해 고군분투 해야 하는 상황을 즐기는 이가 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다.

트럼프는 재임 시절 아랍에미리트, 바레인과 이스라엘의 수교를 주선했다. 당시에도 최종 목표는 사우디와 이스라엘의 화해였다. 사위인 제러드 쿠슈너가 비밀 임무를 맡았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트럼프 자신도 노벨 평화상을 노렸다는 것이 미국 정가의 관측이었다.

트럼프 입장에서는 세계 평화는 남의 일이다. 이미 트럼프 시대에 미국은 자국 우선주의로 돌아섰다. 중국, 러시아가 움직이기 시작한 것도 트럼프가 초래한 힘의 공백 상황을 노린 것이다. 트럼프는 달라지지 않았다. 그는 이번에도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이 바이든 탓이라고 몰아세웠다.

트럼프는 무조건 바이든과는 반대 주장을 펼친다. 그는 이스라엘이 하마스에 대한 공격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트럼프는 하마스가 매우 똑똑하다면서 "이스라엘 국방부 장관은 멍청이"라고 표현하며 이스라엘을 자극했다.

이런 언행의 이유는 간단하다. 트럼프는 위기의 확산만을 바랄 뿐이다. 위기 속에 바이든의 리더십이 흔들리고 자신이 정권을 차지해 그 상황을 해결하기를 바란다.

트럼프의 주장은 미국 내 트럼프 지지자들에게 고스란히 전달된다. 강경파 유대계 인사들은 트럼프와 친숙하다. 이들이 이스라엘이 하마스에 대해 대규모 공격에 나서도록 유도한다면 바이든의 중재 행보는 더욱 꼬일 수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의 고착화에 이어 이스라엘에서도 조기에 전쟁을 종식하지 못한다면 내년 대선을 앞둔 바이든에게는 짐이 될 것이 자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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