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사진=AP 연합뉴스 제공)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사진=AP 연합뉴스 제공)

이스라엘을 전격 방문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해결사’ 아니라 ‘빌런’으로 전락했다. 일각에서는 이스라엘과 하마스와의 전쟁 확산을 막을 힘이 과연 미국에 있는 것인지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바이든 대통령은 단 8시간 이스라엘을 방문했다. 그의 방문에 앞서 지난 17일(현지시간) 가자지구 병원에 대한 이스라엘군 공습으로 500명 이상이 사망했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일이 꼬이기 시작했다.

바이든은 이스라엘이 벌인 일이 아니라고 했다. 하마스의 미사일 오발로 발생한 사건이라는 이스라엘의 입장에 손을 들어준 것이다. 중동지역의 여론은 급격히 악화하고 있다. 불을 끄러 갔다가 불을 붙인 꼴이 됐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스라엘 방문을 마치고 미국으로 돌아온 다음 날인 19일, 집무실에서 카메라 앞에 섰다. 그가 집무실에서 연설한 것은 취임이 이번이 두 번째다. 이스라엘 방문 시 불거진 잡음을 해소하고 이스라엘 지원에 대한 미국인들의 지지를 호소하기 위함이었다. 

그는 이스라엘과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이 미국 안보에 필수적이라고 선언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국제적인 침략이 지속될 경우 분쟁과 혼돈이 세계의 다른 지역으로도 확산할 것이라는 경고를 잊지 않았다. 하마스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원하는 것은 이웃의 민주주의를 완전히 말살하는 것이라는 설명을 곁들였다.

바이든 대통령의 연설 목적은 의회 지원을 압박하기 위해서다. 그는 20일 연방의회에 1000억달러 규모의 긴급 예산을 요청할 것이라고 밝혔다. 바이든은 이스라엘, 우크라이나는 물론 대만도 예산의 지원 대상이라고 밝혔다.

지역별로는 우크라이나에 600억 달러, 이스라엘에 140억 달러, 대만을 포함한 인도·태평양 지역에 70억달러, 인도적 구호에 100억 달러, 미국 국경보안에 140억달러가 배당될 것으로 알려졌다.

예산안은 이스라엘과 우크라이나 지원 외에 중국에 대한 견제도 포함하고 있는 것이 눈에 띈다. 미국은 이스라엘과 우크라이나에서 발생한 일이 대만에서 벌어질 수도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사전에 중국의 대만 침공을 방지하기 위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려는 것으로도 해석된다.

푸틴에 이어 시진핑 중국 주석도 잠재적인 불안 요인으로 점찍은 것이다. 이는 중국에 대한 견제 심리가 지배적인 의회를 의식한 것일 수도 있다. 예산 승인을 받기가 쉽기 때문이다.

대통령은 이번 예산안에 대해 미국 안보에 배당금을 주는 똑똑한 투자라고 강조하면서도 이스라엘에 미군을 직접 투입하지는 않겠다는 의사도 표명했다. 엄청난 역풍을 불러올 수 있는 미군 개입은 없다는 선언이지만 '돈의 힘'으로 민주주의를 파괴를 막으려는 동맹을 지켜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바이든의 고민은 미국 내에도 있다. 우선 예산안을 요청해도 이를 처리할 하원의장이 없다. 바이든 대통령의 탄핵을 추진한 케빈 매카시 하원의장을 끌어내린 것은 사실상 민주당이다. 친트럼프 진영의 급진 공화당 의원들이 추진한 매카시 불신임안에 대해 민주당 의원이 전원 찬성한 것이 부메랑이 되고 있다.

하원의장 선출은 공화당의 몫이지만 공화당은 이미 한 차례 의장 후보를 결정하고도 없던 일로 되돌렸다. 하원의장 부재 상황에서 11월 중순인 미국 임시 예산안 시한도 다가오고 있다. 이스라엘과 우크라이나 지원을 위한 예산 지원을 해봤자 승인을 받을 수도 없다. 이스라엘 사태는 바이든과 민주당의 계산에 없던 일이다. 자신들의 결정이 발등을 찍은 셈이 됐다.

하원 의장이 선출되더라도 공화당이 호락호락 승인해 줄 리도 없다. 공화당은 바이든 정부의 우크라이나 지원 확대에 반대해 왔다. 이스라엘에 대한 지원에는 찬성하겠지만 우크라이나 지원액을 두고 적잖은 협상이 필요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제때 지원이 이뤄지지 못할 수도 있다.

반발은 정부 내에서도 나타났다. 바이든 정부가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을 공격하는 데 사용할 무기를 지원하는데 반대한 국무부 관리가 사임했다.

국무부 정치군사국의 의회 및 대외 업무 담당 국장을 맡았던 조시 폴은 미국의 지원을 통해 이뤄지는 이스라엘의 하마스에 대한 보복 공격이 이스라엘인과 팔레스타인인 모두에게 더 큰 고통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동맹국에 대한 무기 지원을 담당했던 공무원이 관련 업무에 반발하고 사임한 것은 극히 이례적이다.

미국 내 여론이 갈라지며 갈등도 커지고 있다. 미국 내에서도 이스라엘을 지지하는 측과 팔레스타인을 지지하는 쪽으로 여론이 갈라지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이 연설하는 동안에도 뉴욕 맨해튼 타임스스퀘어에는 이스라엘을 지지하는 이들의 시위가 있었다. 이 시위에는 척 슈머 상원 원내대표와 에릭 애덤스 뉴욕 시장 등 민주당 계열 인사들이 화상 연설을 하기도 했다. 

팔레스타인과 하마스를 지지하는 이들 역시 거리 곳곳에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최근 미국에는 이슬람계 이민자들의 수가 상당수 증가했다. 이슬람은 기독교와 유대교에 이어 미국에서 3번째로 많은 신자를 가진 종교다.

2017년 인구조사에서는 인구의 1.1%였던 무슬림이 2020년 조사에서는 1.3%로 늘어났다. 백인의 비중은 줄고 있지만 아시아와 무슬림 인구는 지속적인 증가세다. 이들은 주로 민주당 지지 성향이 강한 지역에 거주 중이다. 일례로 디즈니가 제작한 마블 드라마 '미즈 마블'은 뉴저지주에 거주하는 이슬람 이민자들의 이야기가 중심이다.

미국은 전 세계 이민자들 받아들여 왔다. 러시아, 중국은 물론 최근에는 중동계 이민자들이 사회 곳곳에서 활약하고 있다. 이들은 미국의 입장보다는 모국의 입장에 서는 편이 많을 수밖에 없다. 이들 이민자까지 사회가 끌어안아야 하는 부담이 생기고 있다.

이미 미국 내 갈등은 폭력 사고로까지 이어졌다. 유대인들은 테러를 당할 것을 우려해 외출을 꺼리고 있고, 6세 팔레스타인계 어린이가 살해당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바이든 대통령은 증오범죄에 대한 단호한 대응을 밝혔지만 한번 시작된 증오를 쉽게 꺼뜨리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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