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대 국회서 문화·교육 분야와 형법 등 다수 한글화...국어기본법 개정안 등 수십건 법안 국회 계류 중

[주간한국 박철응 기자] 법은 어렵다는 인식이 일반적이다. 2019년 한국법제연구원의 '국민 법 의식 조사'에서는 법률 용어와 문장에 대해 10명 중 7명꼴로 '이해하기 어렵다'고 응답했다. 법치주의 국가의 주권자인 국민이 정작 법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그만큼 많다는 의미다. 

이에 이규민 전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은 2020년 12월에 '우리말글 법률 만들기를 위한 국회 의사 절차 임시특례 법안'을 발의했다. 법률안에 대한 체계·자구 심사에 대한 전문성을 가진 법제사법위원회에 법률 용어 및 표현의 정비에 관한 사항을 전담해 심사하는 소위원회를 한시적으로 두자는 내용이다.

특별소위원회는 국회사무처, 법제처, 국립국어원 등에 필요한 자료 제공 등을 요청할 수 있으며, 소관 상임위원회 및 소관 정부 부처의 의견을 듣도록 했다. 

ⓒ연합뉴스 한글날을 하루 앞둔 지난 10월 8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 세종대왕 동상 앞에 한글 단체 등이 마련한 화환들이 놓여져 있다.
ⓒ연합뉴스 한글날을 하루 앞둔 지난 10월 8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 세종대왕 동상 앞에 한글 단체 등이 마련한 화환들이 놓여져 있다.

 

발의 당시 이 전 의원은 "법률 간 용어의 통일성을 확보하면서 법률을 알기 쉽게 만들기 위해서는 국회 차원에서 현행 법률에 남아 있는 어려운 한자어나 외국어, 부자연스러운 표현 등을 전반적으로 검토해 한꺼번에 개정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방안"이라고 취지를 설명했다. 산발적으로 개별 법의 용어를 순화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일괄적인 변화를 모색한 것이었다. 

일괄적 한글화 법안 '물거품'
형사소송법 등 법안별로 통과

정부는 1985년부터 2003년까지 '법령 용어 순화' 사업을 실시했으며, 2000년부터 2005년에는 '법률 한글화 사업'을, 2006년 이후로는 '알기 쉬운 법령 만들기 사업'을 하고 있다. 그럼에도 방대한 법령을 쉬운 우리말로 바꿔나가기 위한 여정은 갈길이 멀기만 하다. 

이에 우리말글 법안은 법률 제정과 개정시 우리말글 사용을 아예 국회의 책무로 규정하는 내용을 담았다. 정비 대상 용어로는 '국어의 전통성과 합리성에서 벗어난 용어나 표현', '어려운 한자어나 한문식 표현', '불필요한 외국어나 외국식 표현', '그 밖에 국어기본법 제14조에 따른 공문서의 작성 원칙에 맞지 않는 표현'으로 제시했다. 

하지만 당시 송대호 국회운영위원회 수석전문위원은 "법률용어의 경우 명확성과 간결성을 가져야 하는데, 우리 고유어의 경우 의미 폭이 넓어 한자어라 할지라도 의미와 상황을 고려하여 해당 법문에서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한 경우가 있다"면서 "이러한 점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고 한자어 등을 우리말로 일괄적으로 바꾸는 것은 법의 의미를 변형하거나 법문의 명확성을 해할 우려가 있다는 점을 고려해 우리말글 법률 만들기 추진 여부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짚었다. 

결국 이 법안은 국회에서 제대로 논의되지 못했으며, 설상가상으로 이 전 의원은 발의한 이듬해에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당선무효형이 확정돼 국회를 떠났다. 

21대 국회에서 한글화에 대한 '큰 걸음'을 걷기 위한 시도는 이처럼 결실을 얻지 못했지만, 개별로 혹은 분야별로 묶어서 우리말로 순화하는 법안들이 다수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소액사건심판법, 되찾은 한글 명칭
'구근→알뿌리' 등 다수 순화안 통과

2020년 개정된 형사소송법은 '농아자'를 '듣거나 말하는 데 모두 장애가 있는 사람'으로, '수인할'을 '받아들일'으로, '금원'을 '금전'으로, '자력'을 '자금능력'으로 바꿨다. 또 '차폐 시설'은 '가림 시설', '연령'은 '나이', '자'는 '사람으로 바꿨다. 보다 간명하게 표현을 바꾸기도 했다. '취하여야'는 '해야'로, '아니하고'를 '않고'로 바꾸는 식이다. 

형사소송법은 1954년 제정된 당시의 어려운 한자어, 일본식 표현, 어법에 맞지 않는 문장 등이 그대로 사용되고 있다는 지적이 계속 제기돼 왔다. 형법 역시 같은 해 개정됐는데, '聾啞者(농아자)의 行爲(행위)는 刑(형)을 減輕(감경)한다' 같은 조문이 '(청각 및 언어 장애인) 듣거나 말하는 데 모두 장애가 있는 사람의 행위에 대해서는 형을 감경한다'로 바뀌었다. 

정부와 민주당의 이정문·최기상 의원이 각각 발의한 소액사건심판법 개정안은 국회 법제사법위원장 대안으로 병합돼 올해 2월 본회의에서 통과됐다. '少額事件審判法'(소액사건심판법)으로 돼 있던 법 명칭부터 한글로 바꿨다. 원칙적으로 한자 표기를 삭제하되 한글만으로 이해하기 어렵거나 다른 단어와 혼동될 우려가 있는 경우, 해당 단어가 가장 먼저 나오는 부분에 괄호로 한자를 병기했다. ·

예를 들어 '證人(증인)은 判事(판사)가 訊問(신문)한다. 그러나 當事者(당사자)는 判事(판사)에게 告(고)하고 訊問(신문)할 수 있다'는 조문은 '증인신문(證人訊問)은 판사가 한다. 다만, 당사자는 판사에게 알리고 증인신문을 할 수 있다'로 순화됐다. 

지난 7월에는 '법률 용어 정비를 위한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관 43개 법률 일부개정을 위한 법률안'이 통과됐다. '인프라'가 '기반시설'로, '혼재되어 있는'은 '섞여있는', '상이한'은 '서로 다른', '경과되지'는 '지나지', '방치한'은 '내버려둔', '제세'는 '각종 세금', '범하여'는 '저질러', '일체의'는 '모든', '부수한'은 '따르는', '패용하지'는 '달지', '정(情)'은 '정황', '체화'는 '내재', '부의하는'은 '회의에 부치는', '통상적인'은 '일반적인', '휴지'는 '정지', '풍치'는 '경관', '실사'는 '실제조사', '시용'은 '시험용', '국위 선양'은 '국가를 널리는 알리는 데' 등으로 바뀌었다. 

교육위원회 소관 34개 법률 개정안도 통과됐다. 대표적 변경 사례들을 보면 '촉탁의사'가 '계약의사'로, '환부금'이 '반환금'으로, '기하다'가 '도모하다'로, '병과'가 '동시 부과'로 달라졌다. '과태료에 처한다'는 권위적 용어도 '부과한다'로 변경됐다. 

그 밖에도 식물방역법의 '구근'은 '알뿌리'로 바뀌었으며, 하천법의 '어분'은 '생선가루'로, 국민건강진흥법의 '대합실'이 '대기실'로 변경됐다. 또 다수 법률에서 '지불'이 '지급'으로, '노임'은 '임금', '준수하다'는 '지키다', '감안'는 '고려', '추월'은 '앞지르기' 등으로 순화됐다. 

하지만 '구거'(溝渠)를 '도랑'으로 바꾸는 민법 개정안 등 수십건의 한글화 법안들이 여전히 국회에 계류 중이다. 그 중에는 공공기관, 단체, 시설 및 사업 등의 이름에 알기 쉬운 우리말을 사용하도록 하고, 방송·영화·비디오물 등 공공기관이 제작하는 각종 영상물이 어문 규범을 준수해 우리말로 제작될 수 있도록 하는 국어기본법 개정안도 각각 발의돼 있다.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21대 국회가 사실상 선거 국면으로 전환할 것을 고려하면 다음 국회로 역할이 넘어갈 공산이 커보인다. 

저작권자 © 한국아이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