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 (사진=AP 연합뉴스 제공)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 (사진=AP 연합뉴스 제공)

전 세계 경제의 발목을 잡던 미국의 금리가 마침내 하락 반전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치솟는 물가를 잡기 위해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금리를 연이어 끌어올리며 시작된 충격파는 전 세계 외환 시장과 경제에 심각한 타격을 줬다. 미국 10년물 국채 금리가 5%를 상회했던 상황은 불과 2년 전만 해도 상상하기 어려웠지만, 마냥 치솟기만 하던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한 전쟁에서 금리 상승이라는 최고의 무기가 빠질 수 없었다.

그런데 미국 물가가 정점을 찍고 내려오고 있다는 정황이 확인되면서 전 세계의 ‘영끌족’들도 한숨을 돌릴 수 있을 것이라는 예상이다.

연준은 코로나19 이후 치솟는 물가를 잡기 위해 2022년 3월부터 기준금리를 인상했다. 이미 12번의 인상을 거치며 기준 금리는 5.25~5.5%에 달한다. 연준은 2020년 3월 코로나19 사태에 대응하기 위해 금리를 전격 인하하며 제로 금리 시대를 다시 연후 약 3년여 만에 기록적인 수준의 금리 수준을 만들어 냈다. 현재 미국 기준금리는 22년 만에 최고 수준이다.

연준이 금리 인상의 고삐를 당기는 데도 미국 경제는 호황세를 보였다. 금리 인상 전에는 연준의 늑장 대응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컸지만, 이제는 연준이 2%라는 물가 목표를 고집해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도 나올 정도다. 코로나19 이전과 이후의 통화정책을 동일하게 가져가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다.

그런 점에서 최근 미국 노동부가 발표한 10월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상당한 의미를 지녔다. 10월 CPI는 전년 동월 대비 3.2% 상승했지만, 시장의 예상치 3.3%를 하회했다. 전월의 상승률 3.7%와 비교해도 하락세가 완연하다.

유가 강세로 인해 7월(3.2%)과 8월(3.7%), 9월(3.7%) 물가가 다시 상승세로 돌아서기는 했지만, 주택 임대료 상승이 주도하는 인플레이션은 더 지속되기 어렵다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한때 CPI 상승률이 9%에 육박했다는 것을 고려하면 이제 미국의 물가가 오를 만큼 올라 현 수준에서 안정될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미국 경제를 달구던 고용 확대도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지난 10월 미 비농업 부문 고용은 15만명 증가에 그쳤다. 예상치 17만명에 밑도는 수준이다. 전달에 비하면 증가 인원이 절반으로 줄었다. 실업률도 3.9%로 올랐다. 임금상승률도 둔화하고 있다.

이번 CPI에 앞서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금리 동결 후 "긴축적인 통화정책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주저하지 않고 행동할 것"이라고 말했지만 행동에 나설 근거는 사라지고 있다.

고용, 인플레에 이어 소비 감소가 확인된 것도 예사롭지 않다. 미국의 10월 소매 판매는 전월 대비 0.1% 감소했다. 월간 소매 판매 감소는 지난 3월 이후 7개월 만이다. 금리 고공행진 속에 경제 상황이 악화하고 지갑이 얇아진 소비자들이 지출을 줄이는 순환고리가 형성된 것이다.

소비는 미국 경제의 3분의 2를 차지한다. 소비 감소는 곧 경제 둔화로 읽히는 이유다. 미시간대가 집계한 11월 소비자심리지수도 하락하며 소비심리 둔화를 대변했다. 이런 상황은 타깃, 월마트 등 소매 기업의 실적에서도 확인되고 있다.

이제 소비둔화는 피할 수 없다. 소비 둔화는 기업활동에도 영향을 미친다. 미국 도매 물가를 대변하는 10월 미국 생산자물가지수(PPI)는 전월 대비 –0.5%를 나타냈다. 예상을 크게 하회한 반전이다. 시장은 PPI 상승을 점쳤지만 전혀 다른 결과가 나왔다..

시장의 관심은 미국 금리가 언제 하락할 것인가에 쏠린다. 파월 의장이 통계수치에 현혹되지 않으면서도 과도한 긴축을 피하겠다고 한 만큼 어느 정도 기간은 현 수준 동결이 불가피하다. 연준 전망에 따르면 2026년까지 2% 물가상승률을 보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지금의 금리 수준을 유지하는 것은 연준은 물론 미국 정부에도 부담이다. 금리 인하가 미국 정부에 절실한 이유가 있다. 물가를 잡겠다는 금리 인상은 오히려 미국 정부의 부실을 심화하는 요인이다.

조 바이든 행정부는 제로 금리 시절 코로나19 대응을 위해 정부 지출을 대폭 늘렸지만 이로 인한 부메랑 효과가 심상치 않다. 국제신용평가사 무디스는 최근 미국의 신용 등급 전망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하향 조정한 이유에 대해 금리 상승을 한 축으로 설명했다. 금리 상승으로 정부가 지급해야 할 국채이자 비용이 눈덩이처럼 불어났지만, 지출 축소와 같은 노력은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무디스는 신용평가사 중 유일하게 미국 정부의 국가 신용등급을 ‘AAA’로 유지하고 있다. 등급 전망 하향은 향후 등급이 하락할 것이라는 예고편이다.

결국에는 2%의 물가 상승률에 도달하지 않아도 내년 어느 시점에서든 금리 인하가 필요하다는 의견에 힘이 실린다. 시카고상업거래소(CME)의 페드워치툴은 내년 7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금리 인하가 결정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인하의 방향은 큰 이견이 없지만 인하 시점에 대한 전망은 엇갈리고 있다.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내년 4분기까지 연준의 기준금리 인하는 없을 것으로 전망했다. 모건스탠리와 UBS는 내년 6월을 금리 인하 시점으로 판단했다.

앞서 지난 8월 또 다른 신용평가사인 피치는 미국 국가신용등급을 AAA에서 AA+로 강등한 바 있고,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2011년 하향 조정을 단행했다.

미국 정가의 금리 인하 압박이 이어져왔지만, 이번에는 파월 의장에게 영향력을 미치기 어려울 수 있다. 파월 의장이 연임을 앞두고 금리 인상에 인내심을 발휘하던 상황은 이제 없다. 경제 상황에 대한 유권자들의 불만을 접하고 있는 바이든 미국 대통령에게는 금리 인하와 이로 인한 경기 부양이 필요하지만, 또 한 번 파월의 힘에 기대기는 어렵다.

미국 금리 하락은 달러화의 약세를 불러온다. 고금리를 연료 삼아 질주하던 달러 가치 하락은 달러 강세로 고심해온 나라들에는 긍정적이다.

주요 통화 대비 달러화 가치를 보여주는 달러 인덱스는 미국 CPI 완화를 확인한 후 약세로 돌아섰다. 1350원에 육박하던 원·달러 환율도 1300원 이하로 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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