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운 언어의 가치가 1인당 커피 한 잔 값?…돌이켜 본 2022년 ‘공공언어 개선의 경제적 가치’ 연구

홍준표 현대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 (사진=이혜영 기자 lhy@hankooki.com)
홍준표 현대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 (사진=이혜영 기자 [email protected])

[주간한국 송철호 기자] 전 세계에서 한국 문화의 위상이 높아지고 있다. 그 위상은 그대로 한글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진다.

외국인들은 한글이 새겨진 옷을 입은 채 한국 가수들의 공연을 즐기고 한글 간판들이 노출되는 한국 드라마를 본다. 한글을 제2외국어로 채택하는 것은 물론, 아예 표기 문자로 사용하는 나라들도 있다. 이쯤 되니 ‘한글의 경제적 가치’가 얼마나 될지 궁금해진다.

현대경제연구원 신성장전략팀장 홍준표 수석연구위원이 ‘공공언어 개선의 경제적 가치’에 대해 연구 결과를 내놓아 눈길을 끌었다. 연구의 계기는 쉬운 우리말을 사용해야 된다고 아무리 목소리 높여도, 자칫 애국심에만 호소하는 것에 그치는 것 아니냐는 아쉬움에서 출발했다. 구체적으로 공공언어 개선의 경제적 효과를 직접 추정할 필요성을 인식한 것이다.

홍 수석연구위원은 “20대는 어려운 한자를 모르고 60대는 줄임말을 모르는 상황에서 언어는 계속해서 소멸하고 바뀌어 간다”며 “그럼에도 중앙부처나 지자체 등 공공부문에서 쉬운 우리말, 아름다운 우리말을 지키려는 정책이 끊이지 않고 유지돼야 우리말과 한글이 소멸되는 속도를 늦출 수 있다”고 강조했다.

▲‘공공언어 개선의 경제적 가치’라는 주제로 연구하게 된 동기는 무엇인지.

“현대경제연구원은 2010년에도 ‘공공언어 개선의 정책 효과 분석’이라는 주제로 연구를 한 적이 있었다. 이 연구는 공공언어의 어려움으로 인해 발생하는 불편 비용을 국민들이 직접적으로 추가 부담하는 시간 비용에 한정해 조사했다. 2010년 당시 어려운 한글을 쓰는 불편 비용은 연간 약 200억원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10년이 지난 시점에서 경제 규모는 커지고 사람들의 인터넷 사용량도 더 많아졌을 것이고 정보 매체도 다양해졌다. 물가 수준도 달라졌을 것이다. 이에 똑같은 개념으로 불편 비용이 과연 얼마나 더 늘어났을까, 혹은 줄었을까라는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한글의 경제적 가치’라는 주제로 연구하게 됐다.”

▲공공언어 개선의 경제적 효과, 즉 쉬운 공공언어의 공익적 효과는 얼마나 되는지.

“가상가치평가법과 취득 가능한 데이터인 설문 조사(1100명 국민 대상)를 활용해 연구를 수행했다. 불편함과 불완전한 소통을 방지하는 측면에서 ‘공공언어가 개선된다면 당신은 1년에 얼마를 지불할 의사가 있겠는가’라는 의향을 경제적 가치로 환산해 연구를 진행했다.

결과적으로 공공언어 개선의 경제적 효과, 즉 쉬운 공공언어의 공익적 효과는 3375억원으로 추정됐다. 이를 국민 한 사람으로 환산하면, 1인당 ‘공공언어 개선을 위해 1년에 7800원 정도는 지불할 의향이 있다’는 결론으로 재해석된다.

3375억원이라는 금액이 많은가 적은가는 보는 관점에 따라 다를 것이다. 농업·농촌의 공익적 가치가 연간 6조원이라는 연구 결과에 비해서는 턱없이 적은 금액이다. 서울시 미세먼지 관리 정책의 경제적 효과가 연간 5500억원이라는 연구 결과와는 비슷하다.

지난해 1000회를 맞이한 로또의 최고 당첨 금액이 407억원이라는데, 이것에 비해서는 분명히 큰 금액이다. 무엇보다 전체 금액이 아닌 1인당 1년에 7800원을 지불할 의향에 대해 쉬운 언어의 가치가 저 정도 수준밖에는 되지 않는가라는 자괴감이 들 수도 있다. 거의 커피 한 잔 금액이기 때문이다.”

홍준표 현대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 (사진=이혜영 기자 lhy@hankooki.com)
홍준표 현대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 (사진=이혜영 기자 [email protected])

▲공공부문 언어에도 이해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을 텐데.

“현대경제연구원은 ‘어떤 상황에서 공공언어가 어렵게 느껴지는지’에 대해 국민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했다. 국민들은 공공 부문에서 제공되는 보고서나 보도자료 등에 한자어나 영어 등이 많이 들어가 있는 경우, 너무 긴 문장으로 표현되는 경우를 어렵게 생각하고 있었다.

예를 들어 법원의 판결문을 보면 긴 문장이 끊어지지 않고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게다가 문장 자체에서 상당히 고압적인 느낌까지 든다. 어려운 낱말을 일반 국민들이 접하게 됐을 때 일단 이해가 어렵고 심리적으로도 큰 부담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이해하기 어려운 말들이 오갔던 회의나 세미나에서 느꼈던 소외감을 1년에 한두 번은 경험했을 것이다. 요즘 뉴스나 방송, 길거리의 간판과 현수막을 볼 때 도대체 저 말이 무엇이지라고 궁금했던 경험이 꽤 많다. 그렇다고 누구한테 물어보기도 그렇고 그럭저럭 대충 넘어가자니 어떤 경우에는 그 단어를 모르면 뭔가 피해를 볼 것 같은 경우도 있었을 것이다.”

▲공공부문 분야별로 각각의 문제가 있을 것 같다. 개선 방향은?

“일단 크게 봤을 때 공공 부문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세부적으로는 ‘정부나 지자체가 사용하는 언어’, ‘언론에서 사용하는 언어’, ‘전문가 그룹이 사용하는 언어’ 이렇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먼저 정부나 지자체는 정확하면서도 국민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표현을 중점적으로 고민해야 한다. 전문적인 내용을 쉽게 풀어야 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언론에서 사용하는 언어의 경우 공공언어라고 하기는 다소 무리가 있다. 그래도 상당부분 공익성이 있고 일반 대중이 일상에서 많이 체감하는 분야이기 때문에 중요하다. 신문이나 방송의 경우에는 분명히 사적인 영역이기 때문에 강제할 수 없다. 다만 콘텐츠 제작자가 시대의 트렌드를 따르면서도 쉬운 언어를 사용할 수 있는 고민이 필요하다.

전문가 그룹의 경우 일반 국민들이 이해할 수 있는 수준보다는 학문에서 설명하는 부분을 함축할 수 있는 단어를 써야 하고 동료 집단들이 선호하는 언어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같은 전문가 간에도 이해하기 어려운 언어를 남발한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것을 정확히 인식해야 한다.”

▲전문 분야일수록 쉬운 공공언어 사용에 대한 저항도 있을 텐데.

“분명히 전문 분야일수록 쉬운 공공언어로 개선하려는 작업에 대해 저항하려는 심리가 있다. 자신들의 전문 분야를 지키려는 마음가짐이 분명히 존재한다고 본다. 그래서 유독 한자나 영어를 고집하는 사람들이 많다. 다만 전문 분야에서 쉬운 공공언어로 개선하는 작업은 무리 없는 합의가 필요하다.

현대경제연구원의 설문 조사에서는 쉬운 한국말로 바꾸는 노력을 했을 때 자칫 북한말 같다는 지적도 나왔다. 한글 관련 기고문을 쓰면서 영어를 쓰지 말아야겠다는 다짐을 했지만 결코 쉽지 않았다. 물론 이런 것까지 영어나 어려운 한자를 써야 하나 싶은 것들이 분명히 있기 때문에 그런 것들을 우선적으로 개선하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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