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20일(현지시간) 워싱턴DC 백악관에서 칠면조 사면 행사를 주최하고 있다. (사진=AP 연합뉴스 제공)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20일(현지시간) 워싱턴DC 백악관에서 칠면조 사면 행사를 주최하고 있다. (사진=AP 연합뉴스 제공)

11월 23일은 미국의 추수감사절이다. 흩어져있던 가족들이 모여 연휴를 즐기는 시기다. 정치인들이 이런 중요한 시기를 이용하는 것은 당연하다. 마치 한국 정치인들이 설과 추석을 지지기반 강화의 기회로 여기는 것과 같은 이치다.

내년 대선을 1년 앞두고 재대결이 예상되는 조 바이든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미국인을 향해 내놓은 메시지는 확연히 달랐다. 공격에 나서는 트럼프는 기세를 올리고 있지만, 바이든은 지지율 하락 속에 고심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번 추수감사절에 맞춰 공개한 영상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글을 통해 낙담하거나 희망을 잃지 말라고 촉구했다.

그러면서 정적들에 대한 막말로 일관했다. ‘비뚤어진 조 바이든’, ‘급진좌파 미치광이들’, ‘공산주의자들’, ‘파시스트들’, ‘마르크스주의자들’, ‘민주당원들’이 트럼프가 추수감사절을 축하한 대상이다. 축하라기 보다는 조롱에 가깝다. 트럼프는 이어 “두려워하지 말라. 우리는 2024년 대선에서 승리할 것이고, 그리고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이는 내년 대선에서 공화당 후보로 출마할 것임을 기정사실로 하면서 지지 세력 결집을 강조하고 민주당 진영에 대한 견제에 나선 것라고 볼 수 있다.

특이한 점은 바이든을 부르는 트럼프의 표현이다. 트럼프는 2020년 대선 당시 바이든을 ‘졸린 조’(sleepy Joe)라고 불렀다. 대선 패배 후에는 ‘사기꾼 조’, ‘오물 같은 조’라는 표현이 등장했고 이번에는 ‘비뚤어진 조’로 진화했다.

그는 자신을 둘러싼 사법 처리를 압박하고 있는 인사들에 대해서도 ‘미치광이’, ‘인종차별주의자’라며 악담을 퍼붓는 것도 잊지 않았다. 시사주간 뉴스위크도 트럼프가 이번 추수감사절에 정적에 대한 분노를 보였다고 표현했다.

올해 트럼프의 추수감사절 메시지는 지난 몇년간에 비해 유달리 강도가 높다. 2021년에는 매우 흥미로운 시기라고 말했다. 지난해에는 자신에 대한 압박에 나선 법조계 인사들에 대해 비난에 주력했지만, 올해는 바이든을 공격 대상에 포함했다.

결국 자신과 바이든이 내년 대선에서 맞대결할 것으로 예상하며 대결 구도에서 주도권을 잡겠단 의미인 셈이다.

트럼프의 이번 메시지는 자신의 지지율이 바이든을 오차범위 이상으로 앞서고 있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연이어 나온 것과 연계해 봐야 한다.

지난 19일(현지시간) NBC 방송 여론조사에 따르면 바이든 대통령은 트럼프 전 대통령과의 대선 가상대결에서 처음으로 뒤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바이든은 44%의 지지를 얻는 데 그치며 46%의 지지를 받은 트럼프에게 밀렸다. 지지율은 바이든에게서 트럼프로 흘러 내리고 있다.

비록 오차범위 내라고는 하지만 미국 언론들은 이를 중대한 변곡점으로 여기며 비중 있게 보도했다. NBC 조사 외에도 대부분의 여론조사가 비슷한 결과를 내놓고 있다. NBC 여론조사에서는 젊은 층을 중심으로 바이든의 지지기반이 흔들리고 있다는 점도 확인됐다. 

반면 2020년과 달리 수성에 나서야 하는 바이든은 백악관에서 칠면조 사면 행사를 하고 자신의 81번째 생일을 기념했지만 들썩이는 분위기는 찾아보기 어렵다. 

의회 전문 매체 더힐은 바이든 대통령이 이번 추수감사절에 정치적으로 감사할 것들이 그다지 많지 않다고 파악했다. 고령 논란에, 고금리로 인한 경기 침체 가능성이 바이든 대통령을 위협하는 요인이다.

특히 재선을 위해 민주당 진영의 통합이 필요하지만 이마저 쉽지 않다. 지난 대선에서 트럼프와의 대결에서 승리하기 위해 바이든을 지지한 진보 세력들을 다시 묶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 코테즈(AOC) 등 젊은 민주당 진보 진영인사들은 바이든에게 불편한 시선을 보내고 있다. 이들이 바이든을 '패싱'한다면 무시할 일이 아니다. 이들 진보 진영 인사들은 젊은 층의 지지를 기반으로 한다. 바꿔 말해 바이든에 대한 젊은 층의 지지가 약해질 수 있다는 뜻이다.

반면 공화당 인사들은 트럼프에 대한 지원에 나서고 있다. 그레그 애보트 텍사스 주지사는 추수감사절을 앞두고 트럼프와 함께 군부대를 방문하고 식사하는 위문 행사를 가지기도 했다. 트럼프의 당내 영향력이 여전한 상황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바이든을 지지하던 이슬람계 유권자들의 민심 역시 흩어지고 있다. 바이든이 이스라엘을 지지하는 만큼 사라지는 이슬람계 표도 적지 않다는 의미다.

바이든은 뉴욕에서 열리는 추수감사절 행진 방송에 영부인과 함께 출연하며 반전을 노렸지만, 상황은 꼬여만 가고 있다. 바이든이 믿을 대목은 경제지만 그마저도 쉽지 않다.

백악관은 추수감사절 직전 물가 상승이 개선됐다는 내용의 보도 참고자료를 발표했다. 의도는 분명하다. 가족들이 모이는 추수감사절에 물가가 잡히고 있다는 것을 강조하며 자신의 경제 업적을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가족들이 모여 먹는 추수감사절 저녁 준비와 이동에 필요한 비용이 전년과 비교해 줄었다는 것이 백악관이 주장하는 포인트다.

백악관과 바이든 캠프의 전략은 이번에도 경합 주에 대한 화력 집중이다. 바이든 캠프는 이번 추수감사절에 대선 결과를 가를 수 있는 미시간주 디트로이트 및 위스콘신주 밀워키 지역에서 방송 광고를 내보내 건강보험료 및 처방 약값 인하, 청정에너지 투자 등 '바이드노믹스'의 성과를 홍보했다.

미국 대선은 승자독식제다. 각 주에서 승리한 이가 해당 주에 배정된 선거인단을 모두 확보하게 된다. 민주당과 공화당의 지지세가 뚜렷한 지역은 선거운동의 의미조차 없는 이유다.

특히 플로리다, 애리조나, 텍사스 등 이민자들이 늘어난 지역은 새로운 경합지역으로 부상하고 있다. 이들 지역에서 승리하지 못하면 백악관을 차지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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