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 (사진=연합뉴스 제공)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 (사진=연합뉴스 제공)

2030년 월드 엑스포 개최지 경쟁은 사우디아라비아 수도 리야드의 승리로 끝났다. 부산과 로마를 압도한 투표 결과는 향후 국제 정세에서 사우디의 위상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를 전 세계에 알리는 신호탄이 될 전망이다.

한국이 86아시안게임, 88 서울 올림픽을 통해 국제무대에서 부상한 것처럼 사우디는 각종 스포츠 이벤트를 통해 변화를 과시하려 한다. 사우디의 계획은 국가 개조에만 멈추지 않는다. 사막의 왕국에서 첨단 국가로 변화하려는 변신 시도를 통해 석유를 기반으로 한 영향력의 극대화에 방점이 찍힌다.

오일머니 공세라고는 하지만 목표 의식이 뚜렷하다. 그 이면에는 사실상의 집권자인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가 있다. 엑스포가 끝나는 2030년 빈 살만의 위상이 어디까지 달라질지는 국제 정세 차원에서도 중요한 요인이다.

사우디가 지금까지 엑스포 외에 확보한 국제 행사는 2027 AFC 아시안컵 축구대회, 2029 동계아시안게임, 2034 하계아시안게임, 2034 월드컵이 있다. 올림픽만 없을 뿐 엑스포 월드컵으로 이어지는 대규모 국제행사를 통해 세계의 이목이 자연스럽게 사우디에 몰릴 것이 분명하다.

2022년 카타르 월드컵 유치 당시인 2010년에도 열사의 중동에서 축구 경기가 열린다는데 의구심을 보인 이들이 많았다. 사우디는 한술 더 뜬다. 개최하겠다는 도시가 없어 무산 위기이던 동계아시안게임까지 차지했다. 사막 한가운데 설원을 만들어 스키 경기를 한다는 역발상이다.

사우디의 공세는 미국도 발칵 뒤집었다. 사우디가 주도한 LIV 골프와 미국 PGA의 합병은 석유가 아닌 분야에서의 사우디의 국제적 영향력이 확산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예다.

빈살만 왕세자의 사우디 전환 목표는 '관광'에 방점이 찍힌다. 그럴려면 과거와의 단절이 필요하다. 여성들에 대한 자유를 어느 정도 허가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사우디는 '포스트 석유' 산업으로 낙후됐던 관광을 키우고 있다. 해외 여행객의 여행 제한을 풀고 관광을 통해 정상적인 국가로 변화하기 위한 지렛대로 삼으려 한다.

사우디가 관광업에 투자하는 금액도 엄청나다. 사우디 관광청에 따르면 이미 8000억달러가 관광 분야에 투자됐다. 이를 통해 40만개의 호텔 객실을 확보하게 될 전망이다. 이들 호텔은 대부분 고대 유적지와 사막 관광의 중심도시인 알울라에 위치한다.

건축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프리츠커 상을 수상한 프랑스 건축가 장 누벨이 설계한 사막 위 암벽 속에 있는 ‘샤란' 호텔은 보는 이의 경탄을 자아낸다. 누벨은 서울 리움미술관을 설계해 우리에게도 친숙한 인물이다.

이미 사우디 관광 산업에 주력하는 국가도 있다. 프랑스다. 관광 대국 프랑스는 알울라 개발과 관광사업의 후원자다. 프랑스는 알울라 개발기관을 설립해 사우디에 관광 산업의 노하우를 전달하고 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노골적으로 사우디의 엑스포 유치를 공개적으로 선언하고 나선 것은 충분한 경제적 이익을 누리겠다는 계획이 있었던 셈이다.

전 세계 영화 팬들의 이목을 끌겠다는 계획도 진행 중이다. 필름 알울라와 미국 할리우드 기반의 스탬피드 벤처스는 3억 5000만달러 규모의 영화 스튜디오 설치 협약을 최근 체결했다. 알울라 지역에서 대규모 영화 촬영을 통해 관객들의 눈을 사로잡아 관광으로 이어간다는 계획이다.

사우디의 야심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알울라에서 매년 열리고 있는 대형 열기구 페스티벌 사진은 인스타그램을 통해 퍼져나갔다. 마치 미국에서 열리던 행사를 그대로 옮겨온 듯하다. 이 역시 관광객을 끌어들이려는 목적이다.

이 밖에도 영국 식스센스그룹 등이 사우디에 앞다퉈 초호화 리조트와 호텔을 건설하고 있다. 네옴시티 건설 산업은 빙산의 일각인 셈이다. 지속적인 수익은 관광 산업 투자에서 나올 것이라는 점을 관광 선진국 기업들은 파악하고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일회성인 건축과 토목이 아니라 장기적인 수익확보 계획을 세우고 있다.

사우디의 스포츠 관광 산업이 ‘정치적 워싱’이라는 지적도 끊이지 않는다. 프랑스 일간 르몽드는 “인생 최고의 여행이었다"라는 사우디 관광객의 발언을 소개하면서도 대규모 여행 산업 육성이 사우디의 인권과 정치 상황에 쏠리던 시선을 돌리기 위한 돈 잔치라고 지적한다.

엑스포 유치를 통한 최종적인 승자는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다. 뉴욕타임스는 "사우디 국가는 물론 자신의 이미지를 끌어올리려는 빈 살만 왕세자의 승리"라고 전했다. 오일 머니를 통한 공격적인 유치 활동을 통해 스스로 글로벌 리더로 자리매김하려는 계획이 성공을 거뒀다는 평가인 셈이다.

각국이 기후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친환경 에너지 산업 육성에 나섰지만, 석유를 기반으로 한 사우디의 위상은 흔들림이 없다. 오히려 사우디의 후원국인 미국도 쩔쩔맬 정도다.

엑스포 유치를 계기로 사우디의 국제사회 영향력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유치 과정에서 확보한 외교 자산은 사우디의 국제무대 위상을 높여줄 자산이다.

빈 살만 왕세자는 리야드 엑소프 홈페이지에 실린 인사말을 통해 "특별하면서도 비교할 수 없는 세계 엑스포를 개최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는 이어 “2030년 월드 엑스포는 사우디 ‘비전 2030’에 명시된 목표와 계획을 실현하는 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엑스포가 자신이 제시한 사우디 개혁의 최종 결과물임을 선언한 것이다.

2030년까지 7년이 남았다. 그때면 미국 48대 대통령의 임기도 끝나고 49대 대통령이 백악관을 차지하고 있을 것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집권도 언젠가는 끝나겠지만, 아직 30대인 빈 살만 왕세자의 영향력은 그때면 더욱 공고해질 것이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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