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사진=로이터 연합뉴스 제공)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사진=로이터 연합뉴스 제공)

도널드 트럼프는 내년 미국 대선에 출마할 수 있을까. 조 바이든 대통령과의 리턴매치에서 우위를 점해가고 있던 트럼프의 백악관 재입성 전략에 '적신호'가 켜졌다.

발단은 콜로라도주 대법원이 주에서 치러지는 공화당 대선 경선 투표용지에서 트럼프의 이름을 제외하라고 판결하면서다. 이로 인해 트럼프는 콜로라도에서 열리는 공화당 경선에 나설 수 없다. 다만 콜로라도주 대법원도 이번 트럼프 측의 항소할 기회를 주기 위해 효력을 연기해 둔 상태다. 연방대법이 항소를 받아들이면 트럼프도 경선에 나설 수 있다.

이번 판결이 경선에 미치는 직접적인 영향은 크지 않다는 분석이 지배적이지만 역사적인 사례라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콜로라도주 대법원의 결정은 공직자가 반란 등에 가담할 경우 다시 공직을 맡지 못하도록 하는 미국 수정헌법 제14조 3항을 적용했다. 수정헌법 제14조 3항에 따라 대통령직 후보자 자격 박탈 결정이 내려진 건 이번이 처음이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반란을 시도했던 이가 대통령 선거에 나섰던 과거가 없기 때문이다.

콜로라도주 대법원의 결정은 2020년 대선 패배가 확정된 후 2021년 1월 6일에 발생한 의회 난입 사태에 트럼프가 가담한 것으로 인정한 것이다. 대법원도 이번 판결이 향후 정국에 미칠 영향을 인식한 듯 "우리도 이런 결정을 가볍게 내린 것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콜로라도주 대법원은 1심판결도 뒤집었다. 1심은 트럼프의 경선 출마를 금지할 수 없다고 결정했었다.

내년 1월부터 시작되는 공화당 경선에서 당연히 압승을 예상하며 본선 채비에 나서던 트럼프 진영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트럼프 캠프 측은 내년 3월 19일까지 공식적으로 공화당 대통령 후보 지명을 확정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하기도 했었다. 니키 헤일리, 론 디샌티스 등 공화당 내 경쟁자들의 지지율이 10% 초반에 머물고 있는 상황에서 60% 대의 압도적인 지지율은 이런 전망을 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미국 대선 레이스는 내년 1월부터 시작된다. 1월 15일에 열리는 아이오와 코커스, 같은 달 열리는 뉴햄프셔 프라이머리가 풍향계 역할을 하게 된다. 코커스는 당원 선거이고 프라이머리는 비 당원이 포함된 예비선거다. 경선 방식의 특성상 뉴햄프셔 프라이머리는 전반적인 유권자들의 성향을 파악할 수 있기에 뉴햄프셔의 결과에 이목이 쏠리게 마련이다.

이어 3월 5일에는 무려 16개 지역의 경선이 진행된다. 통상 '슈퍼 화요일'로 불리는 이날 경선에서 승리하는 후보가 대선 후보가 될 가능성이 크다. 마침 콜로라도 경선은 3월 5일 슈퍼 화요일에 진행된다. 콜로라도에 할당된 대의원의 수는 많지 않지만 다른 주의 경선 결과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게 문제다.

트럼프 캠프 측은 대선을 약 10개월 앞두고 후보를 확정 지은 후 여유 있게 바이든과의 승부를 대비한다는 계획이었다. 그리고 내년 7월 15일 밀워키에서 열리는 전당대회를 대선 출정식으로 만들 예정이었다.

트럼프가 2016년 대선 후보 경선에서 5월 말에야 겨우 후보로 결정됐다는 것을 감안하면 내년 대선에 대한 트럼프 진영의 대비가 속전속결로 이뤄질 것임을 예상하기 어렵지 않다. 민주당은 공화당에 비해 한 달여 늦은 8월에 시카고에서 전당대회를 열고 대통령 후보를 확정한다. 특별한 변화가 있지 않는 한 바이든의 재선 도전이 유력하다.

트럼프 측은 즉각 연방법원에 항소하겠다는 입장이다. 연방 법원이 항소를 받아들이면 트럼프는 콜로라도 경선에 후보로 올라갈 수 있다.

이미 콜로라도주와 다른 결론을 내린 주들도 있다. 뉴햄프셔주, 미시간, 미네소타주 법원은 비슷한 내용의 재판에서 트럼프의 손을 들어준 바 있다. 다만 텍사스주와 뉴멕시코주, 와이오밍주 등 10개가 넘는 주에서 비슷한 소송이 진행 중인 만큼 콜로라도와 같은 결정이 또다시 나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트럼프 측이 항소하고 연방 대법이 받아들인다면 그가 경선 후보에 나서는 데는 큰 문제가 없다. 항소를 맡을 연방 대법원은 트럼프에 의해 보수 재판관이 다수다. 미국 연방 대법원은 보수 6, 진보 3으로 보수가 절대다수를 차지한다.

그래도 트럼프가 안심하기는 이르다. 미국 연방 대법원은 흑인에게 불리한 남부 주의 선거구를 조정하라는 판결을 한 바 있다. 보수 우위 재판부지만 공정한 판결이 나오고 있는 셈이다. 특히 이번 문제가 미국 헌정에 대한 도전이었는지에 대한 판단을 다루는 만큼 연방 대법도 세심하게 판결할 가능성이 크다.

결국 이번 논란의 관건은 유권자들에 대한 영향이다. 유권자들에게 의회 난입 사건이 트럼프의 조정에 의한 것으로 인식될 경우 향후 대선에 미치는 영향이 상당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콜로라도주 대법원 판결이 나온 직후 유세에서 "우리는 그들이 2024 대통령 선거를 조작하도록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며 강한 불만을 토로했다. 그는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우리나라에 얼마나 부끄러운 일이냐"고 호소하면서 지지자들을 단속하고 나섰다.

공화당은 트럼프를 중심으로 뭉치는 모습도 포착된다. 경선 경쟁자들이 연이어 트럼프가 선거에 나설 수 없다는 판결을 비난한 것은 대선 경선 후 부통령 후보를 노려야 하는 이들의 입장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반면 최근 여론조사에서 트럼프에 밀리던 바이든은 즉각 반격에 나섰다. 트럼프의 기세를 꺾을 기회라고 판단한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트럼프가 반란을 지지한 것이 명백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트럼프가 반란군이 아닐 가능성은 제로(0)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바이든 캠프 측도 공세를 퍼부었다. 캠프 측은 트럼프와 히틀러를 비교한 사진을 올리며 '독재자'라는 인식을 심고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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