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비트코인은 비제도권이 아닌 제도권에서 누구나 쉽게 거래할 수 있는 투자 상품으로 탈바꿈했다. (사진=로이터 연합뉴스 제공)
이제 비트코인은 비제도권이 아닌 제도권에서 누구나 쉽게 거래할 수 있는 투자 상품으로 탈바꿈했다. (사진=로이터 연합뉴스 제공)

‘디지털 금’이라 불리던 가상화폐 비트코인이 제도권 편입이라는 역사적인 상황을 맞았다.

미국이 비트코인 현물 상장지수펀드(ETF)의 증시 상장을 허용한 것은 비트코인의 등장 이후 가장 큰 뉴스로까지 평가된다. 이로 인해 가상화폐 투자에 새로운 장이 열릴 전망이다. 다만 비트코인 등 가상화폐가 현금을 대신할 것이라는 예상은 줄고 있다. 가상화폐의 용도는 통화보다는 투자 대상으로 자리 잡을 전망이다.

지난 11일(현지시간) 미국 증시에서 최초의 비트코인 현물 ETF 10개 종목이 거래를 시작했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하루 전 11개의 비트코인 현물 ETF를 승인했지만, 비트코인 선물 ETF에서 현물 ETF로 변경 예정이었던 해시덱스의 ETF는 조건을 충족하지 못해 첫 거래에 동참하지 못했다.

비트코인 현물 ETF 거래 결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증시 역사상 최초의 비트코인 현물 ETF라는 영광을 차지한 10개의 ETF는 개장 전 거래에서부터 강세를 보였고 정규매매에서도 많은 투자자가 몰렸다.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의 아이쉐어스 비트코인 트러스트는 장중 30%가 넘는 시세 상승률을 기록했다. 블랙록의 현물 비트코인 ETF는 개장 전 거래에서만 200만달러어치가 매매되는 등 활발한 거래가 이뤄졌다. 비트코인 현물 ETF중 가장 많은 비트코인을 직접 확보한 그레이스 케일의 ETF는 거래 개시 30분 만에 5억 3000만달러 규모의 매매가 형성됐다.

이날 거래 종료 후 10개 비트코인 현물 ETF의 거래대금은 45억달러에 달했다. 암호화폐 헤지펀드 헌팅힐 디지털의 공동 창업자인 아담 구렌이 비트코인 현물 ETF 첫날 거래 대금이 5억달러만 넘어도 대단한 것이라고 한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수준이다.

비트코인 현물 ETF 기대감으로 급등세를 이어온 비트코인도 이날 장중 4만 9000달러대를 기록하기도 했다. 비트코인에 이어 시가총액 2위 가상화폐인 이더리움의 값도 출렁이고 있다.

이날은 가상화폐 투자 역사에 기록될 만한 날이라는 평가까지 나온다. 이제 비트코인은 비제도권이 아닌 제도권에서 누구나 쉽게 거래할 수 있는 투자상품으로 탈바꿈했다.

ETF란 증시에 상장된 특정 지수나 기초자산을 추종하는 인덱스 펀드다. 주식계좌를 통해 주식처럼 거래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제 가상화폐 구입을 위해 가상화폐 거래소를 이용하거나 복잡한 절차 없이 증권사를 통해 현물 ETF를 매수하면 비트코인을 직접 산 것과 대동소이한 결과를 얻을 수 있다.

물론 이는 미국의 경우다. 우리 금융당국은 당분간 미국에 상장된 비트코인 현물 ETF를 살 수 없도록 할 방침으로 알려졌다.

비트코인 현물 ETF의 등장은 비트코인 수요를 확대할 요인으로도 기대된다. 수요가 늘다 보면 비트코인 값도 자연스럽게 올라갈 것이라는 예상이다. 비트코인 현물 ETF에 투자가 몰리면 ETF는 현물을 사야 한다. 수요 증가로 비트코인 값이 오를 수 있다는 뜻이다.

물론 반대의 경우도 가능하다. 가상화폐 업계는 물론 자산운용 업계에서도 비트코인 현물 ETF가 등장하면 투자의 패러다임이 바뀔 수도 있다고 진단한 이유다.

미국 월가에서는 2000년대 초반 금 ETF가 금 투자의 흐름을 바꾼 것과 같은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기대감도 형성되고 있다. 과거에는 금에 투자하려면 금을 사서 보유해야 했지만, 주식처럼 거래하는 금 ETF가 등장하면서 금에 대한 직접투자보다는 금 ETF를 소유하는 것이 일반적인 투자 방법으로 자리 잡았다.

SEC는 2021년 비트코인 선물에 투자하는 ETF는 허용했지만, 현물을 보유하는 ETF를 승인하라는 업계의 거듭된 요구를 외면해 왔다. SEC는 가상화폐의 과도한 변동성과 시세 조작 가능성을 의심했다. 미국 자산운용 업계에서 2013년부터 비트코인 ​​ETF에 대한 승인 요청이 있었지만, SEC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미국 법원이 지난해 SEC에 비트코인 현물 ETF 승인을 불허한 SEC 결정을 취소하라고 판결하면서 상황이 급반전됐다. 비트코인 규제론자인 게리 겐슬러 SEC 위원장도 어쩔 수 없이 비트코인 현물 ETF를 승인해야 했다.

비트코인 현물 ETF 승인은 막판까지도 혼란의 연속이었다. 거래 승인 발표 하루 전에는 SEC의 X(옛 트위터) 계정에 비트코인 현물 ETF 승인됐다는 소식이 올라와 가상화폐 투자자들을 흥분시켰지만, 이는 해킹에 의한 가짜 뉴스였다. 이런 혼란 속에서도 SEC는 비트코인 현물 ETF를 정식 승인하고 나섰다.

다만 비트코인 현물 ETF가 비트코인의 가격 상승 요인만은 아니라는 분석도 있다. 대형 기관 투자자들이 차익거래 및 다양한 옵션을 통한 헤징에 나설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비트코인의 지나친 변동성을 완화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투자 분야와 달리 가상 화폐가 결제 수단으로 진화하기는 쉽지 않은 상항이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미국의 비트코인 현물 ETF 승인 후 비트코인이 투자재로 자리 잡은 것 같다고 말했다. 이 총재는 비트코인이 화폐의 대체재가 아니라는 것을 누구나 인식하고 있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중앙은행 차원에서 블록체인에 기반한 디지털화폐(CBDC)를 발행해 화폐를 대체할 수는 있지만 현존하는 가상화폐를 통한 지급결제 역할에는 사실상 사형선고가 내려지고 있다는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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