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총통선거가 민주진보당 라이칭더 후보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선거 후 축하받는 라이칭더 후보와 당원들. ⓒ연합뉴스
대만 총통선거가 민주진보당 라이칭더 후보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선거 후 축하받는 라이칭더 후보와 당원들. ⓒ연합뉴스

대만 총통선거가 친미 성향의 민주진보당 라이칭더 후보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이번 대만 총통 선거는 각각 친미·친중 성향의 민진당과 국민당의 대결이라는 점에서 미국과 중국의 대리전으로 불렸다. 미·중 갈등이 해결되지 않는 상황에서 대만 정부가 미국과 중국 중 어느 쪽으로 기울 것이냐는 국제관계는 물론 경제에도 상당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사안이다. 향후 대중 관계에서 미국이 대만을 어떻게 활용할지, 중국은 대만과 미국을 어떻게 압박할지 이목이 쏠린다.

라이칭더 후보 승리 후에도 당장 무력 충돌과 같은 극도의 긴장 상황은 벌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중국은 기다렸다는 듯 국제 관계를 통해 대만과 미국을 압박했다. 라이칭더 후보 당선 확정 후 이틀도 지나지 않아 남태평양 섬나라 나우루가 대만과 단교를 발표한 것이다. 예상치 못했던 카운터 펀치였다.

나우루가 대만 대신 중국과의 국교 회복을 선언한 것은 대만 총통선거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가다. 나우루 정부가 밝힌 대만과의 단교 사유도 마치 중국이 써준 듯하다. 나우루 정부는 하나의 중국 원칙을 지지하고 대만을 중국으로 보지 않으며 중국 영토의 일부분으로 본다고 했다. 중국이 국제사회와 대만에 보내고 싶은 메시지라고 봐도 무방하다.

이제 전 세계에서 대만과 외교관계를 맺은 국가는 과테말라와 파라과이, 에스와티니 등 12개국만 남았다. 이들 국가도 언제든 중국의 편을 들고 대만과의 관계를 정리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대만과 반도체 산업으로 연관이 크지 않은 국가라면 중국의 요구를 뿌리치기 어렵다. 대만의 핵심 수출 산업인 반도체를 수입할 필요가 없는 저개발 국가들은 중국의 지원을 반길 수밖에 없다.

안나 파울스 뉴질랜드 매시대학교 교수는 워싱턴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대만 총선 직후 나우루가 대만과의 단교를 발표한 것은 우연이 아니라고 분석했다.

나우루는 최선의 이익을 위해 중국을 선택했다고 했지만, 대만은 불쾌감을 숨기지 않는다. 대만 정부는 총통 선거 직후라는 점에 지목하며 민주 선거에 대한 보복일 뿐만 아니라 국제질서에 대한 직접적인 도전이라고 중국을 비판했다.

미국도 당황한 모습이 역력하다. 미국은 허를 찔렸다. 그렇다고 미국이 아픈 티를 낼 수도 없다. 매튜 밀러 미 국무부 대변인이 성명을 통해 나우루의 결정에 대해 '실망스럽다'고 언급하면서도 이번 사태의 파문이 확산하는 것을 우려한 정도다.

밀러 대변인은 미국이 하나의 중국 정책을 지속해왔다면서도 “모든 국가가 대만과의 관계를 확대하고 민주주의, 올바른 거버넌스, 투명성 및 법치 준수를 지속해서 지지할 것을 권장한다"고 말했다. 미국의 요청과 달리 중국을 대신해 대만을 선택하는 국가가 생길 것이라는 기대감은 극히 낮다.

중국은 대만 총통 선거에서 일격을 당했지만, 나우루를 통해 미국에 경고를 보냈다. 마오닝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달러 외교’를 유용한 도구로 보는 사람들은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며 미국을 조롱했다. 왕이 중국 외교부장은 이집트 방문 중 기자회견을 하며 “타이완 사람 누구라도 독립을 생각한다면 그건 죽음의 길”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미국 언론도 같은 의견이다. 워싱턴포스트는 나우루의 발표는 대만과 수교한 국가들을 사라지게 하려는 중국의 노력이 승리한 것이라고 평했다.

나우루 사례는 중국이 남중국해를 넘어 남태평양에도 영향권을 확보하려는 야망을 재확인한 결과라는 해석도 있다. 이를 통해 미국이나 호주에 상당한 압력을 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덩달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인도 태평양 지역에서의 중국 영향력 확대를 제한하기 위해 태평양 도서국들에 대한 결집을 위해 시도한 2년여의 노력도 빛이 바랬다. 바이든 정부는 태평양 도서 국가들과의 관계 강화를 위해 2022년 8억 1000달러의 개발 지원을 약속했지만 돌아온 것은 중국의 역공이었다. 그만큼 미국과 중국의 경쟁은 쉽게 승부를 가리기 어렵다.

미국은 친미 대만 정권을 확보하고도 뒤끝이 개운치 않은 상황이다. 중국이 사전에 짜 놓은 시나리오를 감지 못했다는 것은 미국 외교에 대한 타격이기도 했다. 미국도 중국을 더이상 자극하지는 않으며 추세를 본다.

대만을 방문한 전직 미국 정부 고위 관리들은 차이잉원 총통과 라이칭더 당선자를 만나 타이완에 대한 미국의 공약이 바위처럼 단단하다고 강조했지만, 전직 관료들의 방문이라는 점에서 중국과의 갈등 수위를 조절했음을 알 수 있다. 미국이 중국에 확실한 메시지를 주려했다면 현직 관리를 보냈을 것이다.

미·중이 대만을 사이에 두고 갈등만 하는 것은 아니다. 양국은 대만 선거를 하루 앞두고 워싱턴에서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과 류젠차오 중국 공산당 대외연락부장이 고위급 회담을 하며 양국 관계의 진전도 모색했다. 대화를 단절하기보다는 유지하는 것이 실익이 크며 위기관리에 필요함을 알기에 나오는 조치다.

오히려 공방은 민간 차원에서 벌어진다. 중국 정부의 입장을 대변하는 후시진 전 환구시보 편집장이 '대만 독립은 전쟁을 뜻한다'고 하자 미국의 반중 인사인 고든 창 변호사는 '중국이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한다. 대만은 이미 독립했다'고 맞받아쳤다. 미국과 중국은 지난해 11월, 바이든 대통령과 시진핑 국가주석 간 정상회담 이후 고위급 교류를 이어가며 관계 안정화를 모색하고 있다.

오히려 숙제는 미국 이외의 국가가 받았다. 대만에 대한 축하는 중국과의 갈등을 부르는 요인이기 때문이다. 중국은 대만 총선 결과에 축하 메시지를 보낸 영국과 일본에 대해서도 경고했다. 우리 정부는 아직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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