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피가 중동 정세 불안과 원/달러 환율 급등의 영향으로 2% 넘게 하락 16일 오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 현황판에 코스피, 원/달러 환율이 표시돼 있다.ⓒ연합뉴스
코스피가 중동 정세 불안과 원/달러 환율 급등의 영향으로 2% 넘게 하락 16일 오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 현황판에 코스피, 원/달러 환율이 표시돼 있다.ⓒ연합뉴스

중동 지역에 또 다시 불이 붙었다. 지난 1일 시리아 내 이란 영사관 피폭을 기점으로 중동 정세는 더욱 불안정해졌다. 동시에 이번 사건과 직간접적으로 연결된 이란과 이스라엘은 과거 수차례 있었던 중동전쟁 수준으로 감정의 골이 깊어졌다.

실제로 이란은 지난 13일(현지시간) 드론, 순항미사일, 탄도미사일 등을 동원해 이스라엘 본토를 직접 타격하는 군사작전을 실행했다. 중동 지정학 리스크가 최고조로 올라간 것이다.

다행히 원유를 포함한 상품시장은 아직 잠잠하다. 물론 이스라엘의 대이란 보복을 앞두고 유가 변동성이 어느 정도일지는 알 수 없다. 이스라엘의 실력 행사와 공격 범위에 따라 투자심리가 급변할 수 있다. 현재 미국을 비롯한 서구권은 이스라엘에 확전 자제 방침을 전달한 상태다. 이에 원유 가격상승이 제한될 것이란 전망도 확인된다. 그러나 장담할 수 없다. 언제든 유가가 급등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국면이다.

역사적으로 원유 가격은 중동에서 사건이 터질 때마다 급등했던 사례가 많다. 1970년대 1, 2차 오일쇼크를 시작으로 1990년대 걸프전과 2000년대 이라크 전쟁, 그리고 2010년대 아랍의 봄 시위까지 유가는 매번 빠르게 상승했다. 이번에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투자자 입장에서 걱정되는 부분은 유가 급등이 한국 경제와 금융시장에 상당한 타격을 줄 것이란 점이다. 우리나라는 원유를 생산할 수 없는 나라다. 필연적으로 에너지의 대외 의존도가 높을 수밖에 없기에 향후 유가 변동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할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유가 급등이 한국 경제와 산업에 미칠 변화를 미리 점검할 필요가 있다. 거시경제 측면에서 높은 유가는 물가 압력을 높여 한국은행의 금리 인하 계획을 바꿀 수 있다. 예를 들면 연내 2회 금리 인하가 1회로 바뀌는 식이다. 민간의 실질 소비여력이 약화되고 원화 가치가 하락하는 점도 부담이다.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만약 유가(미국 서부텍사스산 원유(WTI) 기준)가 2분기에 100달러를 상회한다면 어떨까? 결과론적으로 인플레이션이 다시 위로 향하게 될 것이다. 이는 한국의 물가상승률이 다시 반등한다는 걸 의미한다.

실제로 고유가가 물가 상승을 자극하면 중앙은행은 완화적 통화정책에 대해 유보적인 태도를 보일 수 있다. 즉, 한국의 금리인하 전망이 기존보다 뒤로 후퇴한다는 뜻이다. 또한 유가가 오르면 소비와 투자가 정체돼 경제 전반의 성장세가 둔화될 수 있다.

외환시장에서는 한국 증시에 불리한 원화 약세가 나타날 수 있다. 유가 상승은 두가지 측면에서 원/달러 환율의 상방 압력을 높일 것이다.

먼저 유가가 오르면 오를수록 물가와 금리가 상승해 달러 강세 압력도 높아진다. 또한 유가 상승으로 수입물가가 오르면 내수 부진 가능성이 높아져 원화가 자체 약세 압력에 노출된다. 이런 변화를 감안하면 원/달러 환율이 1400원 위에 위치하는 것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산업 측면에선 업종별로 결과가 상이할 전망이다. 정유, 조선, 해외건설 등은 유가 상승을 긍정적으로 해석할 수 있지만 항공, 유틸리티 등 업종 대부분은 고유가를 부담으로 여길 수밖에 없다. 기업 비용을 늘리는 유가는 실적 개선을 저해하는 요소이기 때문이다. 지금 당장은 유가 변동성이 제한돼 주가 영향력이 미미하더라도 방심할 수 없는 부분이다.

하나씩 살펴보면 정유는 유가가 상승할 때 재고평가 이익이 늘어날 수 있다. 이는 정유사의 이익 개선과 주가 상승을 견인할 수 있는 요인이다. 조선은 중동 산유국의 유조선(탱커) 및 해양 플랜트 발주를 기대할 수 있다. 특히 유조선은 유가에 동행하는 물동량과 운임이 올라갈 때 신조 수요가 늘어나는 특성이 있다.

해외건설도 중동 산유국의 재정 수입 증가를 호재로 반영할 수 있다. 원유가 높은 가격에 잘 팔릴 때 산유국은 원유 생산시설 신규투자와 노후시설의 개조·보수를 시도한다. 지금도 중동에서 활약 중인 한국 건설업체에 우호적인 요인이다.

반면 항공은 유가 상승이 부담이 될 수 있다. 고유가는 유류할증료를 높여 여행객의 항공권 수요를 위축시킨다. 팬데믹이 종료된 이후, 서서히 살아나고 있는 여행 산업에 있어 고유가는 손톱 밑 가시와 같은 존재다.

유틸리티는 전력 생산에 있어 원유를 비롯한 화석연료를 에너지원으로 사용한다. 따라서 유가가 상승하면 발전 비용도 늘어나는 게 당연하다. 문제는 지금처럼 전기료를 올리지 못하는 상황에서 원재료 가격이 올라가면 마진이 크게 훼손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럴 경우 주가는 당연히 하락 경로를 밟게 될 것이다.

중동의 거센 사막풍인 유가 상승은 한국 경제와 주식시장에 있어 풀기 힘든 고난이도 문제임이 틀림없다. 몇몇 산업은 높은 유가를 사업에 유리하도록 이용할 수 있지만 절대 다수는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특히 이번 유가 상승은 수요 증가보다 지정학 리스크에 의한 공급 불안에서 기인한 것이다. 우리나라가 특별히 대응할 수 있는 방안이 별로 없다.

주식시장은 이번 유가 상승을 목도하는 과정에서 조정 압력에 노출될 것이다. 물론 연초부터 코스피에 베팅했던 투자자라면 아직은 견딜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고점에 들어온 신규 투자자다. 매번 그렇지만 주식시장이 장기간 순탄하게 움직였던 적은 거의 없다. 이번 조정도 그 연장선이다. 너무 빠르게 다가온 조정이지만 지금은 버티는데 신경을 집중해야 한다. 기다린다면 악재의 영향력은 옅어질 것이고 시장도 다시 상승 경로에 안착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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