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 사진=AP 연합뉴스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 사진=AP 연합뉴스

원 달러 환율이 올들어 7% 오르면서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한창이던 2009년에도 같은 기간 5.8% 상승에 그친 것과 비교하면 심상치 않다. 그렇다고 세계 경제나 우리나라에 특별한 위기 상황이 발생한 것도 아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물론 미국의 고금리가 근본적인 원인이다. 미국이 기준금리를 인상하기 시작한 2022년 초를 전후해 달러는 강세로 전환했다. 다른 나라 돈들은 모두 약세로 돌아섰고 원화도 예외가 아니다. 그 기조가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무역수지가 한창 적자를 보이고 있을 때는 달러 당 1400원을 돌파했다. 그 때에 비해서는 오히려 지금이 사정이 나은 편이다. 반도체의 업황도 개선되고 무역수지도 흑자를 보이고 있다, 우리만 겪는 일도 아니다. 일본 엔화는 한 술 더 떠, 달러 당 155엔까지 떨어졌다. 34년 만에 처음이다.

여러 이야기들이 나온다. 우크라이나와 팔레스타인에서의 전쟁, 이란·이스라엘의 무력 대치로 석유·가스 가격이 오름세인 것도 에너지를 많이 쓰는 우리에게 불리하다. 미국 고금리가 계속되면서 세계 각국의 수요가 정체되고 우리 수출 전망도 낙관하기 어렵다.

무엇보다 금리 인하로 돌아설 것처럼 보이던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딴소리를 하면서 낙담한 효과가 컸을 것이다. 지난 16일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인플레이션이 지속된다면 긴축적 통화정책을 길게 유지할 수 있다”고 밝혀 금리 인하를 학수고대하던 사람들을 실망시켰다.

세계 만방에서 비명 소리가 들리는데도 불구하고 미국이 고고한 자세를 유지하는 것은 경제가 괜찮기 때문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최근 발표한 세계경제전망에서 올해 미국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2.1%에서 2.7%로 상향 조정했다. 한국 2.3%, 일본 0.9%, 독일 0.2%를 압도하고 있다.

미국의 지난해 경제성장률은 2.5%로 양호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으로 급락·급등을 하고 난 다음인 2022년의 1.9%보다 오히려 올라갔다. 지난해 미국의 소비 증가율은 2.3%로 그리 높지 않았으나 견조했다.

인플레이션으로 소비가 위축될 법한데도 불구하고 코로나19 시기 정부가 뿌린 재난지원금이 여전히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원래 경제성장률을 좌지우지하는 것은 소비가 아니라 투자다.

지난해 미국의 신규 건물·교통 투자는 13% 상승해 기록적이었다. 이는 조 바이든 정부가 도입한 ‘인플레이션 감축법’과 ‘반도체와 과학법’에 따른 기업의 투자가 본격적으로 시작했음을 알려준다. 주로 건물에 대한 투자에 집중되고 있고, 추후 설비투자로 이어짐으로써 투자 붐은 상당기간 지속될 전망이다.

반도체·배터리 등 중국과의 기술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투자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정부지출도 4% 늘어났는데, 전략 부문에 대한 보조금이 큰 몫을 차지하고 있다. 미국 세수가 크게 늘어난 것은 아니므로 주로 국채를 발행해 자금을 조달했을 것이다.

순수출도 4.4% 늘어났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러시아 수입이 막힌 유럽에 가스·석유를 수출해 재미를 본 것이다. 과거 급등한 에너지와 식품 가격이 다시 급락함으로써 수입이 줄어든 것도 도움이 됐다. 미국 실업률은 지난달 3.9%로, 코로나19 직전인 2020년 2월 3.5%에 근접하고 있다. 전반적인 고용사정은 양호하며 구태여 금리를 낮춰 경기를 부양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금융 시장이 타이트하다면 금리를 낮춰야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연준은 역레포(RPP)를 통해 유동성을 적절히 풀고 있고, 스탠딩레포(SRP)를 도입해 국채를 담보로 은행에 돈을 빌려준다. 시중에 돈이 크게 부족하지 않은 것이다.

다만 주식 시장에서 주가 상승 호재로 금리 인하를 고대하고 있고, 상업용 부동산의 부실이 걱정거리인 정도다. 전쟁으로 에너지 가격이 급등한다고 하더라도 미국은 에너지 순 수출국으로서 타격이 크지 않을 것이다.

노동자의 실질임금 보전을 위한 임금 상승 요구는 인플레이션 장기화로 이어질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섣불리 금리를 내리면 꺼져가는 불에 기름을 끼얹을 수 있다. 인플레이션 자체가 미치는 해악에 더해 달러가 세계통화라는 것도 중요하다.

미국 물가상승률이 상대적으로 높다는 것은 달러 가치의 하락을 의미한다. 고금리로 보전해주지 않으면 타국은 미국 국채 구매를 꺼릴 것이며, 이는 미국의 경제 운용을 위태롭게 한다. 미국 연준은 외국 중앙은행과 피마 레포(FIMA Repo) 계약을 체결해 국채를 담보로 달러를 빌려준다. 달러 유동성 부족으로 인해 미국 국채가 투매되는 것을 막는 장치다.

미국 경제에서 특별한 위기가 발생하지 않은 다음에는 금리 인하가 조기에 큰 폭으로 일어나기 어려운 상황이다. 최근 환율 상승은 이를 전제로 해석해야 한다. 중동에서의 불안한 정세, 주총 이후 외국인들의 배당금 송금수요를 노린 투기가 영향을 미친 것일 수도 있다.

달러 환율이 올라간다고 해서 우리나라가 외환위기를 맞을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외환보유고는 4200억달러에 이르며, 경상수지는 흑자이고, 미국과 피마 레포 계약을 체결해 급전을 구할 방도를 마련해 놓고 있다. 외환 당국은 구두개입을 통해 엄포를 놓고 있고, 유사시 실제로 시장에 개입할 것이다. 외국인들의 국내 자산 시장 이탈 조짐도 없다.

우리 자체의 문제라면 모를까 강달러는 대부분의 나라가 공통적으로 겪는 현상이다. 미국과 통화 스와프 계약을 체결하고 있는 일본도 엔화 약세로 고민하고 있다. 근본적인 해결책은 미국이 쥐고 있는 것이며, 우리는 외환 당국이 적절한 개입을 통해 관리하는 것 외에 뚜렷한 방법이 없다.

그보다는 고금리와 고환율의 장기화에 대비해 내부적인 관리에 주력하는 것이 타당하다. 고금리는 이미 부동산 시장을 급냉시키고 있고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대출 시장의 구조조정이 진행 중이다. 이미 벌어진 일이므로 정부가 사태를 잘 수습해 불똥이 경제 전반으로 튀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가계부채 누증과 부동산 가격 하락은 소비를 위축시키며 많은 가계를 압박하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한계 상황에 봉착한 자영업자는 수두룩하다. 이들에 대한 지원책은 미미하며 재기하기 어려운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고환율은 수입 물가 상승으로 이어져 민생을 어렵게 하고 있다.

우리나라 총부채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가계부채 37.2%, 기업부채 45.4%인 반면, 정부부채는 17.4%로 매우 낮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정부부채 비율은 50% 정도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120%보다 크게 낮다. 이는 국가의 재분배 기능이 약한데 반해 재정여력은 충분하다는 뜻이다.

재정은 필요한 시기에 풀어서 쓰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고금리와 고환율이 장기화되고 있는 지금이야 말로 생활고를 달래고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 필요한 마중물이다. 미국의 금리 인하를 기대하며 기우제를 지낼 것이 아니라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정인호 객원기자 프로필

▲캘리포니아 주립대 데이비스 캠퍼스 경제학 박사 ▲KT경제경영연구소 IT 정책연구 담당(상무보) ▲KT그룹 컨설팅지원실 이사 ▲건국대 경제학과 겸임교수 등을 지낸 경제 및 IT 정책 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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