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7일 국회에서 전세사기, 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 등의 주최로 ‘전세사기 특별법 개정안 본회의 처리 촉구’ 기자회견이 열렸다. 사진=연합뉴스
지난달 17일 국회에서 전세사기, 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 등의 주최로 ‘전세사기 특별법 개정안 본회의 처리 촉구’ 기자회견이 열렸다. 사진=연합뉴스

주택임대 방식으로 월세와 전세가 있다. 그 중 전세는 우리만의 고유한 제도다. 나름대로 장점이 있었으니 그토록 오랫동안 유지됐을 것이다. 그러나 보증금이 갭투자의 실탄으로 사용돼 투기를 부추기고 부동산 침체기에는 역전세난과 전세 사기를 낳는다. 2년 단위 계약으로 주거도 불안하다.

임대주택은 전세의 대안이 될 수 있다. 최초의 임대주택은 최저소득층을 대상으로 하는 공공영구임대주택으로 1989년 건설됐다. 이후 서민을 대상으로 하는 국민임대주택, 대학생·사회초년생·신혼부부 등 청년층에 한정된 행복주택으로 확장됐다. 모두 공공임대주택이다.

민간임대주택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주택도시기금의 지원을 받거나 공공택지를 공급받게 되면 공공임대주택에 버금가는 규제를 받게 된다. 임차인 자격 및 초기임대료 제한, 분양전환 의무 등이 따라붙는다. 민간사업자의 구미를 당길만한 유인이 없고 따라서 활성화되지 않았다.

규제를 풀고 수익성을 높여 기업형 주택임대사업자를 육성하겠다는 정책이 나온 것은 2015년이었다. 일반임대주택을 장기(8년 이상)와 단기(4년 이상)로 구분해 취득세·재산세를 감면하고 종합부동산세를 합산 배제했다. 양도세 100% 감면이 꽃이었다.

장기임대주택은 ‘뉴 스테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렸는데, 임대료는 연 5% 이상 올릴 수 없지만 초기 임대료와 분양자격에 대한 규제 및 분양전환 의무가 없어 사업자에게 매력적이었다. 주택도시기금에서 공사비를 저리로 지원받을 수 있는데다 임대료는 시세보다 약간 싸게 책정하지만 분양가를 높게 받을 수 있어 수익성이 확보된다. 평형에 대한 제한도 없어 중산층을 대상으로 하는 임대주택이라고 볼 수 있다.

박근혜 정부의 규제 완화 조치와 세계적인 저금리가 맞물려 일으킨 부동산 광풍은 민간임대주택 활성화 정책을 수포로 돌려놓았다. 오히려 조세 회피 수단으로 활용돼 부동산 투기를 조장했다. 결국 2018년 단기 주택임대사업자 제도를 폐지하고 장기도 아파트를 배제함으로써 유명무실하게 됐다.

전세대출도 주택임대제도를 어긋나게 한 요인으로 꼽힌다. 이명박 정부는 2008년 보증금 1억원을 한도로 전세대출을 개시한다. 당시도 지금과 비슷하게 주택매매가격 상승이 둔화되면서 매수수요가 전세수요로 바뀌고 전세가격이 올라갔다.

박근혜 정부 때인 2015년에는 보증금이 5억원까지 올라갔다. 상당 부분이 실수요가 아니라 갭투자에 활용됐다. 부동산 활황과 더불어 전세대출 공급은 급상승했고 문재인 정부 시절 126조원이 늘어났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의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잔액은 161조원에 이른다.

최근 5년간 전세자금대출 총액은 286조원이며, 이 중 65%가 20·30대에 집중됐다. 갭투기와 영끌에 동원됐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국주택금융공사 등의 전세자금보증도 전세자금대출 폭증에 크게 기여했다. 정부가 전세 보증금 대출을 제공한 금융기관에게 반환 보증을 해주는 것으로서 은행은 안심하고 전세자금대출에 매진하게 된다.

전세자금대출이 갭투자에 사용돼 매매가를 끌어올리고, 전세가가 따라 오르고, 전세자금대출이 다시 늘어나는 악순환의 고리가 완성된 것이다. 주택임대사업자와 전세대출이라는 상호모순적인 제도가 동시에 도입되면서 나쁜 쪽으로 상승 작용을 일으킨 것도 어이가 없는 상황이다.

주택가격이 하락하면서 역전세난이 일어났고 다가구주택을 중심으로 전세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피해자가 양산됐다. 많은 경우 주택임대사업자로 등록해 전세를 놓고 전세보증금을 받아 다른 주택을 매입하는 방식이 동원됐다. 수천채까지 보유한 빌라왕이 등장했고 이들이 만들어 놓은 폰지 사기의 끈이 연쇄적으로 끊어지면서 수습하기 어려운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국회는 지난해 5월 ‘전세사기특별법’을 제정해 최우선변제금을 받을 수 없는 피해자에게 저리 대출을 제공하고 거주 중인 주택이 경·공매로 넘어가면 임차인에게 우선매수권을 부여하도록 규정했다. 그러나 이 방안이 큰 도움을 주지 않는다는 여론에 따라 개정이 논의되고 있다.

현행 법은 피해자가 보증금을 회수할 방안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 전세 사기는 당사자의 불찰로 인해 당한 것이므로 스스로 책임을 져야 한다는 시각이 깔려 있다. 어디에도 정책 실패를 인정하는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현재 특별법의 개정안이 국회에서 논의되고 있는데 가장 주목할 만한 내용은 ‘선구제·후회수’다. 주택도시보증공사 등 공공기관이 보증금 반환채권을 사들여 전세사기 피해자를 구제하고 나중에 임대인에게 구상권을 청구하는 제도다.

정부는 막대한 재원이 소요되고 채권의 공정가치 평가가 어렵다는 점을 들어 반대 의사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정부의 추산에도 최대 3만 6000명에 이르는 피해자가 발생하는 상황에서 각자도생하라고 내버려두는 것은 무책임하다. 이토록 많은 국민들이 단지 어리석기 때문에 피해를 당한 것일까?

사태 수습과 더불어 주택임대정책에 대한 전환이 필요하다. 첫째, 전세를 억제하고 월세로 전환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전세대출 요건을 취약계층으로 제한해 중산층 이상의 갭투자를 막아야 한다. 현재 전세대출이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에서 제외되고 있는 것도 시정해야 할 것이다.

모든 임대인에게 주택임대사업자 등록 및 반환보증가입을 의무화해 전세를 양성화하고 사금융으로 사용할 수 없도록 해야 한다. 보증금을 제3자에게 맡기도록 하는 에스크로 제도를 점진적으로 도입해 투기와 보증금 반환불능 사태를 막아야 한다.

월세에 대해 저리로 대출하는 제도는 이미 청년과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도입돼 있지만 대상과 금액을 점차 확대해야 할 것이다. 전세보증금 인상을 강하게 억제하고 전세에서 월세로 전환하는 경우 인센티브를 주는 방법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둘째, 장기공공임대주택 공급을 대거 확대해야 할 것이다. 주택가격 상승으로 인한 타격과 전세사기 피해가 주로 취약계층에게 집중된다는 점에서 전세대출을 확대하는 것보다 훨씬 효과적이다. 재원을 늘리고 고급화하면 중산층 수요까지 흡수할 수 있다. 정부가 통제할 수 있는 공공주택 재고량을 늘림으로써 부동산 투기를 완화할 수 있다.

고품질의 민간임대주택 건설은 시장에 의해 해결하면 될 것이다. 정부가 부유층과 기업에게 온갖 혜택을 주고 주택도시기금까지 동원해 지원한다는 것은 시장경제 논리에도 맞지 않는다. 부동산 투기를 억제하고 가격의 폭등을 막는다면 자연스럽게 자본은 민간임대주택에 흘러 들어갈 것이며 공공과 민간의 역할 분담은 적절한 균형을 이루게 될 것이다.

정인호 객원기자 프로필

▲캘리포니아 주립대 데이비스 캠퍼스 경제학 박사 ▲KT경제경영연구소 IT 정책연구 담당(상무보) ▲KT그룹 컨설팅지원실 이사 ▲건국대 경제학과 겸임교수 등을 지낸 경제 및 IT 정책 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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