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항 전경. 사진=연합뉴스
부산항 전경. 사진=연합뉴스

올해 1분기 경제성장률이 전년 동기 대비 3.4%(전기 대비 1.3%)로 나오자 관가에서는 일제히 환성이 터져 나왔다. 지난해 성장률 1.4%와 비교하면 그럴 만도 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최근 우리나라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2.2%에서 2.6%로 상향 조정했다. 우리 정부도 따라할 태세다.

성장의 내용은 어떠한가? 국내총생산(GDP)은 민간소비·투자·정부지출·순수출로 구성된다. 전년 동기 대비 민간소비는 1.1% 늘어나 그저 그랬다. 지난해 초 코로나19의 그늘로 소비가 위축돼 있었던 점을 감안하면 조금 기지개를 켠 정도다.

투자는 크게 설비투자와 건설투자로 구분된다. 설비투자는 0.6% 늘어났고 건설투자는 반대로 0.6% 줄었다. 전반적으로 정체 상태라고 볼 수 있다. 설비투자의 경우 압력이라는 채찍과 보조금이라는 당근으로 미국에 대한 투자가 대대적으로 이뤄지고 있으나 국내에서는 이렇다 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건설투자는 가계부채의 압력과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의 구조조정으로 하락추세가 이어질 전망이다.

정부지출은 0.6% 감소했다. 감세와 불황으로 세금이 적게 걷힌 데다, 건전재정 기조로 지출이 줄어든 탓이다. 올해 1분기 국세 수입은 전년 동기 대비 2조 2000억원 적은 84조 9000억원에 그치고 있고, 법인세 감소가 두드러진다.

수출은 6.3% 늘어나 최고의 공신이 됐다. 반도체의 호전이 결정적 요인인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지난해 10월부터 반도체 수출이 증가추세로 전환됐는데, 재고 소진과 더불어 인공지능(AI)에 대한 투자가 원인으로 꼽힌다.

제2 품목인 자동차 수출도 2.7% 증가한 175억달러(약 23조 8700억원)로 매우 좋았다. 전기차가 주춤하자 하이브리드카가 늘어나 간극을 메웠다. 유가 하락 등에 힘입어 수입은 5% 감소했다. 결론적으로 순수출이 성장률 회복의 주역인 것이다.

내수 규모가 작고 대외 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에게 수출 호조는 반가운 소식이다. 그러나 추세가 지속될 수 있을지 확언하기 어렵다. 그동안 반도체 생산은 정보통신업체의 데이터센터 투자에 힘입어 크게 증가했다. 슈퍼 사이클이라고 부를 만했다.

그러나 데이터센터 구축이 어느 정도 완료되고 생산과잉으로 재고가 쌓이자 가격이 급락하는 불황기를 맞는다. 거대 사업자의 영업이익이 아찔할 정도로 추락하고 감산까지 불가피했다.

지금 AI 붐에 편승해 일부 품목의 수요가 늘고 있지만 아직 제대로 된 시장이 형성되지 않아 미래를 예측하기 어렵다. 미국의 투자 압박과 중국에 대한 수출 제한은 반도체 수출 전망을 더 불투명하게 한다.

전기차 붐이 일단락되고 냉각기를 맞고 있지만 영구적이지는 않을 것이다. 오히려 기술 발전과 가격 하락에 따라 본격적인 전기차 시대로 접어들 가능성이 높다. 전기차의 핵심인 배터리의 제조와 소재를 놓고 미국과 중국의 밀당이 한창이다.

중국 전기차는 위협적이다. 우리가 강점을 갖고 있는 니켈·코발트·망간(NCM) 배터리는 가격 경쟁에서 중국의 리튬인산철(LFP) 배터리에 밀리고 있다. 더구나 보조금과 압력에 떠밀려 미국에 대한 투자가 주를 이루고 있다.

수출 증가로 이어질 수 있을지 장담하기 어렵다. 주력 산업이라고 할 수 있는 반도체와 자동차의 생산 기지가 해외로 떠나고 국내에는 껍데기만 남는 것이 아닌가 하는 두려움도 떨치기 쉽지 않다.

국내 경제의 여러 현상들도 방심을 어렵게 한다. 가계부채는 지난해 말 1886조원에 이른다. 저금리와 규제 완화로 일어난 부동산 붐은 가계부채 급증을 동반했다. 정부는 2027년까지 GDP 대비 100% 이내로 줄이겠다고 하지만 경기 위축을 무릅쓰면서까지 그렇게 할 수 있을지 지켜봐야 할 것이다.

부동산 PF 구조조정에 따라 건설경기가 더 가라앉고 일부 건설사와 금융기관이 부도 처리되는 상황도 배제할 수 없다. 여기에 막대한 공적자금이 들어가고 정작 민생에 쓸 재정지출은 줄어들어 가계를 압박할 가능성이 높다.

가계부채와 물가상승은 소비를 제약할 것이다. 가뜩이나 과잉인 자영업은 코로나19로 타격을 받아 구조조정이 가속화될 전망이다. 여기서 밀려나는 사람들을 어떻게 수용해야 할 것인가도 고민거리다.

시야를 넓혀 장기로 보면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은 하락추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외환 위기 이전 10%대까지 올라갔던 성장률은 이후 4~5%를 오가더니, 2010년대 3%대, 2020년대 2%대로 급강하하고 있다.

경제 규모가 커지면서 불가피하기는 하다. 그러나 중국의 제조업 역량이 날로 강해지고, 소비 시장이던 미국마저 제조업 생산 기지를 빨아들이는 상황에서 지금까지의 방식이 지속가능한지 의문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렇다고 뾰족한 방법이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의 GDP 대비 수출 비중은 43%로 주요20개국(G20)에서 독일(46.1%) 다음으로 높다. 내수 중심 성장 전략으로 돌아서기 어렵다.

상위 10대 수출 품목이 전체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68.7%로 압도적이며, 홍콩을 제외한 수출 대국 중에서 가장 높다. 이들을 제외하고 달리 의존할 만한 품목도 없다. 수출 대상은 중국과 미국의 비중이 60%에 이르러 지역적 편중도 심하다. 단기간에 이 구조를 바꾸기 어렵다.

결국은 반도체와 자동차 등 주력 업종에서 승부를 봐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반도체의 경우 메모리에 강세이지만 소재·부품·장비 및 후공정에 취약하다. 생태계가 골고루 균형 있게 발달해 있지 않다.

정부가 국가 전략 품목에 대한 투자 및 연구개발에 상당한 세액공제를 해주고 있으나 혜택이 중소기업까지 골고루 퍼지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대기업에 대한 세제 혜택보다는 취약한 분야의 중소기업에게 보조금을 집중적으로 제공하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배터리의 경우에는 중국 의존도를 줄여야 할 것이다. 어차피 중국의 LFP 배터리와 가격 경쟁을 할 수 없다면 고가품 위주로 갈 수밖에 없고, 미국과 유럽연합(EU)의 정책과 박자를 맞춰야 할 것이다. 미국은 공급망에서 가급적 중국을 배제하려 하므로 우리도 다양한 소스를 개발해야 하며, 중단된 해외 자원개발도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저성장은 어느 정도 불가피한 것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성장률 추이에 일희일비하기보다는 우리 경제가 지금 제대로 가고 있는지에 초점을 맞춰 평가해야 할 것이다. 전략 산업의 경우에도 대기업에 세금을 깎아주고 알아서 하라는 방식이 아니라 생태계와 공급망에서 취약한 부분을 찾아 보강해주는 것이 정부가 해야 할 일이다.

정인호 객원기자 프로필

▲캘리포니아 주립대 데이비스 캠퍼스 경제학 박사 ▲KT경제경영연구소 IT 정책연구 담당(상무보) ▲KT그룹 컨설팅지원실 이사 ▲건국대 경제학과 겸임교수 등을 지낸 경제 및 IT 정책 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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