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9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 브리핑실에서 열린 '윤석열정부 2년 국민보고 및 기자회견'에서 질문을 위해 손을 든 기자들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9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 브리핑실에서 열린 '윤석열정부 2년 국민보고 및 기자회견'에서 질문을 위해 손을 든 기자들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윤 대통령, 영수회담‧기자회견 이어가며 달라진 모습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9일 취임 2주년을 맞아 대통령실에서 대국민 기자회견을 가졌다. 올해 초만 해도 윤 대통령이 김건희 여사의 ‘명품백 수수 의혹’ 얘기 등 껄끄러운 질문들을 피하기 위해 신년 기자회견도 하지 않고 KBS와 단독 대담을 했음을 떠올리면 격세지감이 든다.

이날 기자들과의 문답에서 밝힌 윤 대통령의 생각에는 여전히 논쟁적이고 미흡한 부분도 적지 않지만, 그래도 국민적 관심사나 의혹에 대해 윤 대통령이 직접 자신의 입장을 설명한 것은 4월 10일 총선 이전과는 전혀 달라진 모습이다. 더구나 “앞으로 그동안 미흡했던 부분들을 생각하고 부족한 부분이 무엇인지 고민을 많이 하겠다”며 “결국 민생에 있어서 국민들이 체감하는 변화가 많이 부족했다”고 말하는 모습은 총선에서 표출된 정권 심판 민심에 겸허히 몸을 낮추는 태도였다. 이 역시 지난 2년간의 윤 대통령과는 전혀 딴판인 모습이다.

기자회견에 앞선 4월 30일에는 윤 대통령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첫 영수회담이 열렸다. 윤석열 정부 출범 722일 만에 성사된 여야 영수회담이었다. 총선에서 민주당이 압승하고 국민의힘이 최악의 참패를 당한 이후 생겨난 정국의 변화 가운데 가장 상징적인 장면이다.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이래로 영수회담은 늘 민주당과 이재명 대표 측의 요구 사항이었다. 그러나 윤 대통령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곤 했다. 검찰총장 출신인 윤 대통령에게는 ‘민주당 대표 이재명’보다 ‘피고 이재명’이 먼저 떠올랐던 것이다.

그랬던 윤 대통령의 태도가 총선이 끝나고 180도 달라졌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전화통화를 하면서 취임 후 처음으로 공식 회담을 갖자고 제안했다. 전화 통화 제의도, 만남 제안도 모두 윤 대통령이 한 것이다. “우리 대통령이 달라졌어요”라는 소리가 나올 만한 광경들이다.

윤 대통령이 이렇게 달라진 이유는 세상이 다 알고 있는 바와 같다. 22대 총선에서 얻은 국민의힘 의석수는 108석에 불과한 반면 민주당은 175석이나 된다. 민주당 의석에 조국혁신당 12석, 개혁신당 3석, 새로운미래 1석, 진보당 1석을 모두 합하면 ‘반윤 정당’의 의석수는 192석에 달한다. 국회에서 야당의 협조가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이 윤석열 정부와 국민의힘의 처지가 됐다. 윤 대통령은 결국 벼랑 끝에 몰려서야 협치의 손을 내민 것이니 만시지탄이 아닐 수 없다.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4월 2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집무실에서 열린 영수회담 시작에 앞서 악수한 뒤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자리를 권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4월 2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집무실에서 열린 영수회담 시작에 앞서 악수한 뒤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자리를 권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尹 국정 파트너’ 공인된 이재명 대표의 고자세

이러한 광경들은 정국의 주도권이 야당에 넘어갔음을 보여준다. 영수회담 전후의 상황을 지켜봐도 야당의 우위가 뚜렷하게 나타난다. 회담 의제에 관한 실무적 조율 과정에서 진통이 따르기도 했지만, 결국 대통령실은 “의제 제한을 두지 않고 다양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도록 사전 의제 조율이나 합의가 필요없는 자유로운 형식의 회담을 가능한 빠른 시일 내에 개최하자”는 입장으로 정리했다. 이 대표가 발언권에서 우위를 점해 자유롭게 말하고 윤 대통령이 수세적 입장에서 듣는 위치가 되는 상황이 예고된 것이다. 평소 혼자 장황하게 얘기하는 모습으로 각인됐던 윤 대통령이지만, 이제는 불편한 소리들을 참고 들어야 하는 처지가 된 것이다. 패자의 설움이다.

실제로 회담 당일 이 대표는 작심하고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다 쏟아냈다. 비공개 회담 전에 진행되는 모두 발언에서는 대개 의례적인 덕담이나 간략한 입장 표명 정도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이 대표는 A4 용지 10장 분량이나 되는 발언 원고를 준비해와 15분 동안이나 모두 발언을 했다.

“이태원 참사 특별법이나 특검법 등에 대한 거부권 행사에 대해 유감 표명과 함께 향후 국회 결정을 존중하겠다는 약속을 해주면 참으로 좋겠다”, “이태원참사, 채해병 순직 사건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강구하는 것은 국가의 가장 큰 책임이라고 생각한다. 채해병 특검법‧이태원 참사 특별법을 적극적으로 수용해달라”, “국정 운영에 큰 부담이 되고 있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면 좋겠다”, “행정 권력으로 국회와 야당을 혹여라도 굴복시키려고 하시면 성공적인 국정은 쉽지 않을 것이다” 등 평소 윤 대통령을 향해 민주당과 이 대표가 요구해왔던 내용들의 집대성이라 할만했다.

다른 때 같으면 자신의 얘기를 장황하게 이어갔을 윤 대통령이지만 이날만은 말을 아끼는 모습을 보였다. 게다가 자신이 준비했던 모두 발언은 생략하고 비공개 회담으로 들어갔다. 이 대표의 연설과도 같은 모두 발언에 이어 자신이 뭐라고 말하기가 민망하다고 의식했던 것 아닌가 싶다.

나중에 알려진 비공개 회담에서의 대화 내용을 살펴봐도 윤 대통령이 적극적이고 이 대표는 소극적인 태도의 차이가 읽혀진다. 한국일보가 보도한 전언들에 따르면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진정성을 보여주기 위해 3가지를 꺼냈다고 한다. ▲국무총리 인사 추천 ▲이 대표와 핫라인 구축 ▲여야정 협의체 등의 내용이다.

특히 인사와 관련해서는 “서로 대화를 나누는 동안에는 총리 인사를 하지 않겠다”, “보수 지지층을 고려해 야권 내에서도 중도성향의 인사를 총리로 추천해 달라”, “몇 분을 알려주면 미리 검증해 영수회담 테이블에서 결정해 보자” 등을 제안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 대표의 반응은 시큰둥했다는 것이다. ‘국정기조’ 전환을 우선했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 수사는 결국 문재인 정부에서 시작된 것 아니냐”, “영수회담이 쭉 이어져 앞으로 더 자주 만난다면 골프회동도 하고, 부부동반 모임도 하자”면서 여러 가지 유화적인 얘기를 꺼냈지만 이 대표는 국정기조 전환이 먼저이고, 그에 상응하는 신뢰 회복 조치가 있어야 총리 추천 등에 협조할 수 있다고 전제 조건을 제시했다고 한다.

그동안 야당에 대해 강경한 입장을 견지해왔던 윤 대통령으로서는 자신이 그만큼 유화적인 태도를 보였으면 많이 노력했다고 자평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회담 직후 이 대표는 “답답하고 아쉬웠다”고 말했다. 이제는 고자세가 된 이 대표의 위치를 실감하게 한다.

2일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여야 합의로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 특별법'이 통과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2일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여야 합의로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 특별법'이 통과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태원 특별법 합의 처리…채상병 특검법 등 여야 대치 상황은 여전

첫 영수회담에 대한 여야의 평가는 엇갈렸지만 회담 이틀 뒤 여야가 ‘이태원참사 특별법’을 합의 통과시킨 것은 그래도 후속 성과로 꼽힌다. 윤 대통령은 영수회담에서 이태원참사 특별법에 대해 “무조건 반대하는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에 대한 지원에 공감하지만 “국회 제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에서 영장 청구권을 갖는 건 법리적 문제 있으니 이런 부분을 해소하고 다시 논의하면 좋겠다”는 것이 윤 대통령이 밝힌 입장이었다. 이태원참사 특별법에 대한 윤 대통령의 이 같은 언급 이후 여야 합의 처리는 급물살을 탔다. 지난 2일 여야 합의를 거쳐 국회 행정안전위원회를 통과한 이태원 참사 특별법 수정안은 곧바로 법제사법위원회를 거쳐 당일 오후 본회의를 통과했다.

이태원 참사 특별법은 그동안 여야 간의 뜨거운 쟁점 법안 가운데 하나였다. 지난 1월 국회에서 야당 단독으로 통과시켰지만, 윤 대통령의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로 제동이 걸린 상태였다.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해 국회로 되돌아온 기존의 이태원 참사 특별법은 이번 합의로 폐기되고 새로운 수정안이 통과된 것이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은 핵심 쟁점인 이태원 참사 발생 원인과 책임 소재 등을 독립적으로 진상 규명하기 위한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의 구성과 조사 권한, 기간을 놓고 한 발씩 양보하며 의견을 모았다. 민주당은 국민의힘이 독소 조항이라고 주장한 직권조사 권한 및 압수수색 영장 청구 의뢰권을 삭제하는 데 동의했다.

대신 국민의힘은 특조위 구성과 기간을 양보했다. 특조위원 구성은 11명에서 9명으로 바뀌었고, 국회의장이 여야와 협의해 위원장 1명을, 여야가 각 4명을 추천하도록 했다. 의장은 다수당인 민주당 출신이 될 것이기에 특조위 구성에서 야당이 우위를 점하게 됐다. 특조위 위원장도 여야 ‘합의’가 아닌 ‘협의’로 정하도록 해 다수당인 민주당이 사실상 특조위원장을 뽑도록 했다. 특조위 활동 기간도 민주당의 요구대로 1년 이내로 하되 3개월 이내에서 연장할 수 있게 한 현행 조항을 유지하는데 국민의힘이 동의했다. 전체적으로 보면 대부분 야당의 요구가 반영되고 일부 조항에 대해서만 민주당이 양보한 야당 우위의 법안이 됐다.

그동안 이태원 참사 특별법은 정치권뿐 아니라 우리 사회의 갈등 사안으로 자리해왔다. 특검을 해서 남은 의혹과 책임을 가려야 한다는 야당과 유족들의 입장, 세월호 참사 때에도 나타났던 실체 없는 정치공세라는 입장이 팽팽하게 맞서왔다. 이런 상황에서 윤 대통령과 이 대표의 영수회담이 합의의 물꼬를 튼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이태원 참사의 성격상 특검을 해도 새롭게 규명될 대단한 의혹이나 책임이 있겠느냐는 회의적 시선도 여전하다.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이런 참사를 놓고 우리 정치사회의 갈등이 계속되는 상황을 해결하는 일이다. 진상규명 결과야 야당이 주도하는 특검과 법원의 판단을 통해 결론을 내면 될 일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모처럼 여야가 서로 양보하면서 합의를 통해 대표적인 갈등 사안을 해결하는 모습을 보였다는 점이다.

하지만 어디 하루아침에 여야 관계가 협치로 급변할 수 있을까. 다시 여야는 ‘채상병 특검법’을 놓고 대치 상황에 들어갔다. 민주당 등 야당들은 국민의힘의 강력한 반발 속에 '채상병 특검법’을 강행 처리했고, 이에 대통령실은 즉각 “나쁜 정치”라고 비난하며 거부권 행사를 시사했다. 이태원참사 특별법 합의로 잠시 반짝했던 협치의 분위기가 다시 이전 같은 대치 정국으로 돌아간 것이다. 민주당은 채상병 특검법에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해서는 안 된다며 이에 대한 윤 대통령의 결정을 영수회담 지속 여부의 조건으로 삼고 있다. 민주당을 비롯한 야당들은 더 나아가 22대 국회가 시작되는 즉시 김 여사 특검법과 그동안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법안 모두를 재추진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영수회담이 한 차례 성사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야당의 이 같은 총력 공세가 완화되기를 여권이 기대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특히 채상병 특검법의 경우는 군의 사기와 명예와 직결된 사안이라는 점에서 보수층에서도 찬성 여론이 적지 않다. 실제로 여론조사에서 국민의 70%가 찬성하는 특검법에 대해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면 총선 민심을 거부했다는 비판 여론이 비등해질 가능성이 크다. 거부권을 행사하더라도 채상병 특검법에 대해서는 재의결 과정에서 국민의힘 내부의 이탈표가 나올 가능성도 있다. 그래서 만약 재의결이 이루어질 경우에는 여권이 최악의 상황을 맞을지도 모른다. 대통령실도 그런 부담은 알고 있을 테니 야당과의 합의가 가능한 절충적 방식의 모색을 고민할 수밖에 없다.

이런 가운데 그동안 논란이 됐던 민정수석실의 부활을 대통령실이 지난 7일 발표한 것도 총선이 낳은 변화 가운데 주목할 부분이다. 검사 생활을 하면서 역대 정권에서 민정수석실이 사정 기관 장악 등의 폐해를 낳는 것을 직접 겪은 윤 대통령은 정치를 시작하면서부터 민정수석실의 폐지를 추진했다. 실제로 과거 민정수석실은 검찰·경찰·국가정보원·국세청·감사원 등 5대 사정기관을 총괄·지휘하는 역할을 수행했고, 민정수석이 ‘왕수석’이 되는 권력집중을 낳았기에 그 폐지는 여론의 호응을 얻기도 했다.

그러나 막상 민정수석실이 폐지되니 대통령실이 국민 정서나 여론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계속 따랐다. 4‧10 총선 참패는 윤 대통령으로 하여금 폐지의 번복이라는 문제를 감수하고서라도 현장 민심을 제대로 파악하고 보고받아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대통령실은 사정기관 장악의 역할이 아닌 민심 청취에 방점을 둔 민정수석실을 설계할 가능성이 크다.

대통령실은 총선 패배의 충격 속에서 이런저런 변화의 움직임을 모색하고 있는데, 정작 패배의 당사자인 국민의힘은 별다른 움직임도 없이 손을 놓고 길을 잃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당을 새로 이끌게 된 황우여 신임 비대위원장은 “국민의힘은 보수정당으로서 정체성을 확고히 하겠다”는 말을 일성으로 내놓아 사람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2년 전 대선 때 자신들을 지지했던 중도층의 민심을 잃어 패한 선거 결과 앞에서 느닷없이 ‘보수 정체성의 강화’라는 방향을 제시하는 국민의힘 지도부의 모습은 보수정당이 아예 길을 잃은 것 아니냐는 시선을 낳기에 충분하다.

게다가 새 원내대표를 선출하는 경선은 송석준, 이종배, 추경호 의원 등 ‘친윤 3인방’의 경쟁 구도가 되면서 국민의힘이 과연 총선 민심을 제대로 읽고 있는가라는 의문을 낳았다. 그동안 보수정치의 새로운 대안으로 기대를 받았던 한동훈 전 비대위원장마저 물러난 상태의 국민의힘은 전당대회를 통해 ‘친윤’이 아닌 새로운 리더십이 등장할 때까지 혼돈을 면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김건희 여사의 '명품가방 수수 의혹'에 대해 전담수사팀을 꾸려 신속히 수사하라고 지시한 이원석 검찰총장이 7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으로 출근하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김건희 여사의 '명품가방 수수 의혹'에 대해 전담수사팀을 꾸려 신속히 수사하라고 지시한 이원석 검찰총장이 7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으로 출근하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김건희 명품백 의혹’ 수사 착수한 검찰의 움직임

총선 이후 전개되는 여야 정치권의 변화 풍경과는 별개로 주목되는 것은 검찰의 달라진 움직임이다. 검찰은 윤 대통령의 부인 김 여사의 ‘명품백 수수 의혹’에 대한 수사에 착수했다. 이원석 검찰총장은 지난 2일 송경호 서울중앙지검장으로부터 주요 사건 진행 상황을 보고받고 “김 여사 관련 청탁금지법 고발 사건은 전담수사팀을 구성해 증거와 법리에 따라 신속하고 철저하게 수사해 진상을 명확히 규명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서울중앙지검은 형사1부에 검사 최소 3명을 추가 투입했다. 서울중앙지검은 4차장 산하인 반부패수사3부, 공정거래조사부, 범죄수익환수부에서 각각 검사 1명씩 총 3명을 형사1부에 투입했다고 한다. 4차장 산하 부서들은 주로 권력형 비리와 부패사건 등 난도가 높은 사건들을 담당한다.

수사에 임하는 검찰의 이 같은 분위기를 보면 그냥 김 여사에게 면죄부를 부여하려는 요식 행위적 수사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야당에서는 검찰이 특검법을 피해가기 위한 구실을 만들려는 ‘약속대련’의 꼼수가 아니냐는 의심도 제기한다. 그러나 그렇게 해석하기에는 수사에 임하는 검찰의 분위기에 긴장감이 돈다.

이 총장은 지난 7일 대검찰청 출근길에서 이번 수사에 대해 “서울중앙지검 수사팀에서 오로지 증거와 법리에 따라서만 신속하고 엄정하게 수사하고 처분할 것”이라고 말했다. “여러 말씀을 덧붙이는 건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며 “수사 결과를 지켜봐달라”는 것이 이 총장의 말이다.

야당의 해석보다는 오는 9월이면 퇴임하게 되는 이 총장이 차기 검찰총장에게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자신의 임기 안에 이 사건에 대한 매듭을 지으려는 것일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 대통령실은 이에 대해 공식적인 입장을 내놓지는 않았지만 내부에서는 불편한 반응이 흐르고 있다는 얘기가 그러한 해석을 뒷받침한다. 당분간 검찰과 대통령실의 긴장관계를 예상할 수 있다.

김 여사는 2022년 9월 자신의 사무실을 찾은 지인 최재영 목사로부터 300만 원 상당의 명품백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당시 최 목사는 가방 전달 과정을 몰래 촬영해 유튜브 채널 서울의소리에 공개했다. 서울의소리 측은 지난해 12월 김 여사와 윤 대통령을 청탁금지법 위반 및 뇌물수수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검찰의 수사가 어디까지 갈지는 아직 알 수 없다. 청탁금지법에는 공직자의 배우자를 처벌하는 규정이 없기에 피의자가 아닌 김 여사에 대한 소환 조사는 어려울 것이다. 그리고 현재까지 검찰이 밝힌 수사 대상은 ‘명품백 수수 의혹’이다. 도이치모터스 관련 주가조작 의혹 수사로까지 확대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 비교적 단기간에 명품백 수수 의혹의 진상을 규명하고 법적 책임 여부에 대한 판단을 내리게 될 가능성이 크다.

사실 검찰수사까지 가지 않더라도 대통령실의 대응 방식에 따라서는 진즉에 매듭지어질 수 있는 사안이었다. 무슨 대단한 명품백을 받은 것은 아니었지만, 그것을 받아서 어떻게 처리했는가에 대해서는 법적, 정치적 논란이 따를 문제였다. 그런데도 대통령실은 ‘사안의 본질은 몰카를 이용한 정치공작’이라는 입장만 고수하면서 국민들이 묻는 명품백의 소재에 대해서는 아무런 설명도 없었다. 당사자인 김 여사나 윤 대통령의 사과가 없었음도 물론이다. 물론 몰카를 동원한 정치공작임은 맞지만, 받은 것이 사실인 이상 그렇게만 말하고 지나갈 일은 아니었다.

오히려 윤 대통령은 이 의혹에 대해 지난 2월 KBS와의 특별 대담 방송에서 “제가 보기에는 그것을 매정하게 끊지 못한 게 문제라면 문제”라면서도 “시계에다가 몰카를 들고 온 정치공작으로 대통령이나 대통령 부인이 어느 누구한테도 박절하게 대하긴 참 어렵다”고 밝힌 바 있다. 국민감정을 고려하지 못한 대단히 미흡한 설명이었다. 진즉에 사과를 하고 받은 명품백을 어떻게 처리했는가를 밝혔다면 이 정도로 오래갈 이슈는 아니었다.

윤 대통령은 지난 9일 기자회견에서야 “제 아내의 현명하지 못한 처신으로 국민들께 걱정 끼쳐드린 부분에 대해 사과를 드리고 있다”고 밝혔다. 민심을 제대로 읽지 못하는 용산의 느린 대응과 태도가 결국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아야 하는 상황을 자초한 셈이다.

결국 검찰이 윤 대통령 임기 한복판에 김 여사에 대한 수사를 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이 또한 총선 결과의 영향으로 해석하는 것이 현실적이다. 정권이 이 지경에 처하고 야당이 정국의 주도권을 쥐고 가는 상황에서 검찰이 정권 편만 들다가 스스로의 위기를 자초할 이유가 없다는 내부 공감대가 생기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아무리 총선에서 야당이 압승했다 해도 검찰이 하루아침에 야당 편을 들 이유도 없다. 그래도 기본적인 정치적 중립성은 유지하는 것이 검찰의 앞날에 바람직하다는 판단으로 계속 기울어질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윤석열 정부 집권세력이 검찰의 수사를 앞세워서 야당을 압박하고 정국을 주도하는 상황은 이제 점차 한계를 드러내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윤석열 정부의 호시절은 이제 끝난 것이다.

‘전쟁의 정치’ 아닌 ‘협치의 정치’ 22대 국회 기대

4‧10 총선 결과는 우리 정치에 이렇게 큰 변화의 움직임들을 즉각적으로 낳고 있다. 여전히 각자의 생존법이 있겠지만 국민들이 변함없이 원하는 것은 전쟁 같은 대결의 정치가 아니라 서로 공존하는 협치의 정치다. 압승을 거둔 야당은 겸손의 미덕으로, 참패한 여권은 반성과 쇄신의 노력을 통해 합리와 이성이 이끄는 22대 국회의 정치를 보여주길 바란다. 물론 윤 대통령이 기자회견에서 다짐한 소통과 협치를 이행하는 것은 그를 위한 대전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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