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 국빈 방문 일정을 마치고 귀국한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2003년 12월 15일 성남 서울공항 2층 실내행사장으로 귀국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네덜란드 국빈 방문 일정을 마치고 귀국한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2003년 12월 15일 성남 서울공항 2층 실내행사장으로 귀국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 2주년을 하루 앞둔 지난 9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내외신 기자회견을 가졌다.

윤 대통령은 회견에서 지난 2년의 국정운영 성과와 남은 임기 중의 운영 방향을 담은 대국민 메시지를 발표한 뒤 1시간 반 동안 기자들과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다.

윤 대통령의 기자회견은 내용보다 1년 9개월 만에 열리는 오랜만의 회견이라는 점에서 관심을 끌었다. 청와대를 나올 때 구중궁궐을 나와 국민과의 직접 소통을 넓히겠다고 선언한 윤 대통령이었다. 약속이행의 하나로 도어스테핑을 호기롭게 시작하기도 했다.

출근길에 기자들과 만나 현안에 대한 가벼운 질의응답 시간을 갖는 도어스테핑은 한국 대통령이 처음 시도하는 언론접촉 방식이어서 초기엔 신선한 느낌을 주었다. 그러나 정책현안을 지나치게 가볍게 터치하는 방식이고, 대통령의 일방통행적인 운용으로 신선도가 떨어지기 시작하면서 무용론이 나왔다. 그 무렵 MBC 출입 기자의 무례한 질문 사건이 있고 나서 중단됐다.

당시만 해도 도어스테핑은 횟수를 줄이던지 기자회견으로 대체될 것으로 기대됐으나 아무 소식도 없이 1년 9개월이 지나갔다.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일이다. 그것은 당연히 ‘불통의 대통령’ 이미지로 각색돼 대통령의 국정지지도를 떨어뜨렸고, 4·10총선의 대패라는 결과로 나타났다.

이날 회견에 앞선 대국민 메시지에서 윤 대통령은 선거 패배의 원인에 대해 “국정운영에 부족함이 많았다”고 짚었다. 가장 관심이 쏠렸던 부인 김건희 여사와 채상병 특검에 대해서는 수사기관의 수사가 미흡하다고 판단될 때 하는 것이 특검의 취지에 맞는다며 부정적인 의견을 피력했다. 야당과의 협치를 얘기했지만 여기서부터 대립이 불가피해 보인다.

김건희 여사 명품백 사건에 대해서는 “아내의 현명치 못한 처신으로 국민께 심려를 끼쳤다”고 밝혔다. 명품백을 받은 사실은 물론이고, 갖다준 재미동포 목사를 만난 것 자체가 현명치 못했다는 의미일 듯했다.

지난 2년 동안 대통령과 여당의 지지율 추이를 살펴보면 취임 초 잠깐 50%대를 보였다가 줄곧 30%대에 머물고 있다. 총선 후에는 20%대까지 떨어졌다. 용산 주변을 짓누르는 저기압골은 상당 부분 정책 운용의 잘못에서 기인한 것이지만, 대통령 부부에 대한 심정적인 불신감도 못지않게 작용하고 있는 것 같다.

지난 5일 어린이날 행사에 윤 대통령이 김건희 여사를 동반하지 않은 채 혼자 어린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냈다는 뉴스는 많은 사람들을 안타깝게 했다. 어린이날은 가정의 달의 시작을 알리는 행사로 대통령 부부가 자리를 같이 해야 할 행사이다.

자녀에 대한 사랑과 가족의 화목을 보여줘야 하는 행사로서 대통령 부인의 역할로 그보다 어울리는 행사는 없다고 하겠다. 그런 자리에 대통령 부인이 동행하지 못하는 정황이 그 저기압골의 정체라고 하겠다.

대통령 부인이 공식 석상에 나오지 않은 것은 지난해 12월 네덜란드 순방 이후 5개월이 넘었다. 그 안에 국빈 초청으로 온 루마니아 대통령 국빈 방문 환영 행사에도 안 나왔다. 이쯤 되면 대통령 부부 사이에 어떤 불화가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걱정을 하게 된다.

총선 기간 중에 김 여사의 모습이 나오지 않은 것은 대통령실과 국민의힘이 필요성을 공감한 판단일 것으로 여겨졌다. 김 여사의 일거수일투족을 악마화하려는 세력이 엄존하기 때문이었겠으나, 김 여사의 입장에선 매우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을 것이다.

그 점에서 김 여사의 은둔은 오히려 김 여사의 자의에 의한 결단일 것이라는 얘기와 함께, 결단의 기간이 상당 기간 지속될 가능성도 있다는 추측도 있다. 앞으로 대통령의 해외순방도 국빈 방문이 아니면 동행하지 않는 등 범위를 축소할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지난 총선에서 국민의힘이 선거에 이겼거나 비겼으면 공식 행사 복귀 부담을 덜 수 있었을 것이나 선거에서 대패한 마당이라 김 여사가 설 자리는 좁아졌다. 국민의힘 내부에서 선거의 가장 큰 패인을 김 여사 리스크에 돌리고 있고, 선거 기간 중에 일부 언론에는 윤 대통령에게 이혼을 하든지 사가(私家)로 보내라는 모욕적인 칼럼까지 등장했었다.

민주당은 디올백 특검을 새로 발의하겠다는 으름장을 놓고 있으며,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와 재의결을 거쳐서 폐기된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에 대한 특검도 되살릴 움직임이다. 특검이 발의된다면 다음 국회에선 거부권이 무력화될 가능성도 있다. 국민의힘에서 이탈표가 나올 정황이고, 민주당과 범야권이 똘똘 뭉치면 3분의 2 가결로 대통령 거부권도 힘을 못 쓴다.

이런 가운데 이원석 검찰총장이 디올백 사건의 신속하고 철저한 수사를 지시하고 나서 그것이 어떤 파장을 낳을지도 주목되고 있다. 사실 이 사건은 백을 전달했다는 목사에 대한 수사를 먼저 해서 전달한 목적부터 밝혔어야 하는 사건이었다.

그 목사가 온갖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매체에 나와 밝힌 바에 따르면, 김 여사와 같은 고향 경기도 양평 출신에 미국 시민권자로 북한을 수시로 드나든 북한 문제 전문가를 자처하고 있다. 그는 윤석열 정부의 대북정책에 큰 역할을 할 것처럼 김 여사에게 접근했고, 자신을 악마화하려는 집단의 일원인 것을 모른 김 여사가 여기에 현혹돼 수차례 면담과 소통을 하던 과정에서 백이 전달됐다.

이 같은 경위를 밝히고 자신의 현명치 못했던 처신에 용서를 구했더라면 국민이 이해할 수 있었던 사건을 ‘다정(多情)이 병이어서’ 선물을 뿌리치지 못한 사건으로 만들어 고가의 외제백을 받은 대가로 목사를 만나준 사건으로 변질된 것이다.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도 성격상 같은 사건이다. 문재인 정부 검찰에서 탈탈 털어 조사했다는 것과 투자를 해서 손해만 본 투자였다는 말에 안주해 현 정부 들어서 아무런 조치를 안 한 것이 문제였다. 윤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도 이 말을 되풀이해 협치에 큰 걸림돌이 될 전망이다.

이 사건의 투기 주범과 일당은 징역형을 받았으나 도이치모터스 회장은 집행유예, 김 여사보다 투자 금액이 큰 투자자는 무죄를 받았다. 김 여사의 투자가 구조적으로 중죄에 해당되기 어려운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특검을 하려거든 검찰 조사 후에 하라고 했으면 될 문제였다.

이 사건은 한동훈 법무부 장관 시절에 매듭지었어야 할 과제였다. 그는 그 일을 하지 않은 채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으로 가 선거를 앞두고 정치로 풀려고 했다. 그것이 ‘윤-한 갈등’이다. 회견에서 윤 대통령은 둘 사이에 아무 갈등이 없다고 했으나 이 갈등은 진행형으로 봐야 하고, 대통령 임기 내내 지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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