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한 부동산 중개업소에 붙은 홍보물. 사진=연합뉴스
서울의 한 부동산 중개업소에 붙은 홍보물. 사진=연합뉴스

현재 부동산 시장의 화두는 전세 가격 상승과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의 구조조정이다. 과거 몇 년간 저금리에 힘입어 활황을 보였던 시장이 냉각되면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경기가 너무 얼어붙지 않도록 온기를 살리면서도 불똥이 금융기관으로 옮겨 붙지 않게 하려는 정부의 발걸음이 바쁘다.

서울의 아파트 전세 가격은 52주 연속으로 상승 중이다. 매매 가격이 하락하고 향후 전망이 불투명해지면서 매수 수요가 전세 수요로 돌아선 것이 하나의 원인이다. 다가구주택 등의 전세 사기 사태로 화들짝 놀란 세입자들이 외곽의 낡고 작은 아파트로 눈을 돌린 것도 놓칠 수 없다.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손실을 월세 인상으로 보전하려는 집주인의 행보도 전세 수요를 부추겼을 것이다.

일부 언론에서는 민감해진 세입자의 심리를 자극하는 논조를 펴고 있다. 그들의 주장에 따르면 전세가격 상승은 매매가와의 격차를 줄이면서 갭투자를 일으킨다. 부동산 경기 하락에 따라 인허가와 착공이 줄어들고, 이는 공급 감소로 이어진다. 이런 상태로 가면 부동산 투기가 재발하는 것은 시간문제다. 따라서 재건축·재개발 규제를 풀어 공급을 늘려야 한다. 공사비 급등으로 채산성이 악화된 건설사가 사업에 나서지 않으므로 분양가 규제도 풀어야 한다.

계약갱신청구권·전월세상한제·전월세신고를 규정하고 있는 주택임대차보호법 및 부동산거래신고법은 개정돼야 한다. 법에 따르면 집주인은 4년간 임대료 인상을 제한받으므로 계약 만료 후 전월세 가격을 크게 올린다. 가격 규제 때문에 시중에 매물이 나오지 않아 전세 가격이 더 오른다.

맞는 논리일까? 전세가율(전세가/매매가)이 오른다고 갭투자가 늘어나는 것은 아니다. 주택가격이 상승한다는 전망이 있어야 갭투자에 나설 것이다. 부동산 경기가 하락하면 신규 공급이 주는 것은 당연하다. 수익성이 안 나오기 때문이다.

재건축·재개발 규제를 확 풀면 어떻게 될까? 이미 안전진단 완화, 용적률 상향 등의 조치가 취해지고 있지만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 등 수익에 직접 영향을 주는 규제를 풀면 공급이 늘어나는 것은 당연하다.

재건축·재개발이 증가한다고 당장 공급이 증가하는 것이 아니다. 기존 주택은 멸실되므로 입주자들은 그동안 거주할 전세를 찾는다. 정부의 관대한 전세 대출 정책에 힘입어 수요는 확보된다. 일시에 다수가 전세를 찾아다니므로 전세가는 폭등한다. 과거의 패턴을 숙지한 집주인들은 전세보증금을 실탄으로 갭투자에 나설 채비를 갖추며 동향을 살핀다. 정책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시장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매의 눈으로 관찰할 것이다.

재건축·재개발을 한다고 집이 크게 늘어나는 것도 아니다. 기존 집을 부수고 용적률 규제의 한도 내에서 약간의 호수가 늘어난다. 그것을 일반공급으로 분양해 공사비도 분담하고 집도 새롭고 넓은 것으로 교체하는 것이다.

만약 분양가와 분양자격 규제를 완화하면 새 집을 차지하는 사람들은 신혼부부나 중산층이 아니라 부자와 투기꾼이 될 것이다. 분양권 전매규제까지 완화하면 투기는 가속화하고 지난 몇 년간의 광풍이 재현될 것이다. 지금 시장에는 그 때의 달콤한 추억을 잊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유념해야 한다.

주택임대차보호법에 따른 전월세 규제가 전세대란을 일으킨다는 말이 맞는 것일까? 계약갱신청구권·전월세상한제를 규정한 법 개정은 2020년 7월에 이뤄졌고 법 시행을 앞두고 집주인들이 전세가를 크게 올린 것은 맞다. 그러나 그 후 전세가는 횡보를 거듭하다 하락 추세로 돌아섰다. 69주 연속으로 내려갔다. 오르기도 하고 내리기도 한다면 법과 전세가격 사이에는 인과관계가 없다고 봐야 할 것이다.

상승세로 돌아선 후 서울의 전세가 상승폭은 5%에 불과하다. 지방은 오히려 내려가고 있다. 법 개정 후 4년이 되는 오는 7월 전세가가 폭등할 것이라는 예측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전세계약은 그 전과 그 후로 분산돼 체결됐으므로 7월 대란설은 과장된 것이다. 집값과 더불어 전세가도 높은 수준이므로 과연 추가적인 인상을 감당할 수요가 얼마나 될지도 관건이다. 전세가가 상승하면 수요가 다시 반전세나 월세로 몰릴지도 모른다.

가격 규제 때문에 매물이 씨가 말랐다는 것도 옳지 않다. 여러 채를 가진 집주인들은 어차피 자기가 거주하지 않는 집은 전월세로 내놓을 수밖에 없다. 지금 시중에 전세 매물이 주는 것은 매수 수요가 줄어드는 데다 세입자들이 계약갱신청구권을 이용해 기존 집에 머물고 있기 때문이다. 전세 공급이 줄어든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잘못된 논리로 다시 부동산 시장에 불을 붙이려는 시도는 우리 경제의 현주소를 시사한다. 정부는 내수 시장의 부양 수단으로 부동산을 활용한다. 건설과 부동산은 경제 파급효과가 막대하므로 당장 경제성장률 상승으로 나타날 것이다. 수출이 여의치 않으면 부동산에 의존하고자 하는 유혹이 더 강해진다.

부동산 경기의 활성화는 가계와 기업부채 상승을 동반한다. 올해 1분기 가계대출은 1767조원으로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98.9%에 이른다. 이것이 얼마까지 늘어날 수 있고 지속가능한 것일까? 가계부채 증가는 소비능력을 떨어뜨려 오히려 내수를 위축시키기도 한다.

지난해 말 기준 기업부채는 2734조원으로 2018년 이후 1036조원 증가했다. GDP 대비 기업부채 비율은 95.6%에서 122.3%로 늘어났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가장 큰 원인은 금융기관의 부동산 대출 증가에 있다. 이들의 부동산 관련 대출은 301조원에 이른다. 2022년 말 기준 우리나라의 GDP 대비 부동산 대출 비율은 24.1%로 유로존(14.7%)·미국(11.3%)·영국(8.7%)에 비해 크게 높다. 그 부작용이 오늘날 부동산 PF의 부실로 나타난 것이다.

그동안 정부가 ‘4차 산업혁명’과 ‘혁신’을 기치로 휘두른 것과는 너무나 다른 결과가 아닐 수 없다. 비생산적인 분야로 지나치게 많은 돈이 흘러 들어갔고 과도한 불로소득과 심화된 자산 격차, 청년층의 낙담과 출산율 저하 등 사회적 비용은 감당하기 어렵다.

부동산 불황의 시기에는 정부가 민간의 역할을 대신하면 된다. 개발이 가능한 공공 소유 토지에 대한 용적률 규제 등을 풀어 공급을 늘리면 갑작스러운 민간 공급 축소의 충격을 줄일 수 있고 가격 급등시에는 반대의 기능을 기대할 수 있다.

부동산 PF에 대한 구조조정도 더 과감하게 해야 할 것이다. 토지를 경공매에 넘기는 대가로 우선매수권을 주는 식으로 사업자와 적당히 타협하려 하면 단지 장부상의 해결책으로 그칠 공산이 크다.

토지가 낮은 가격에 넘어가면 수익성을 확보하게 된 매수자는 사업에 착수할 수 있게 된다. 부동산 경기도 자연히 살아날 것이고, 그것이 시장 원리에도 부합한다. 부채에 의존해 부동산 대박을 추구하는 풍조를 바꾸기 위해서는 경기부양 수단으로 부동산에 과도하게 의존하지 않는 정부의 솔선수범이 필요하다.

정인호 객원기자 프로필

▲캘리포니아 주립대 데이비스 캠퍼스 경제학 박사 ▲KT경제경영연구소 IT 정책연구 담당(상무보) ▲KT그룹 컨설팅지원실 이사 ▲건국대 경제학과 겸임교수 등을 지낸 경제 및 IT 정책 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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